젊은작가상 수상 장희원 첫 소설집 『우리의 환대』
『우리의 환대』 장희원 저자 인터뷰
장희원의 소설에서는 스스로 세상을 등진 딸이 엄마에게로 가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오래전에 사랑했던 사람과 펄펄 내리는 눈을 맞을 수도 있다. (2022.12.14)
『우리의 환대』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잃어버렸거나 서서히 잃어가는 과정에 놓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이미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 하거나 자신에게서 멀어진 이에 대해 원망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가까이 있었음에도, 서로를 알지 못했던 시간으로 돌아가 그때의 마음을 천천히 되짚을 뿐이다. 장희원의 소설에서는 스스로 세상을 등진 딸이 엄마에게로 가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오래전에 사랑했던 사람과 펄펄 내리는 눈을 맞을 수도 있다.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가 다시 한번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의 부재를 확인하고 더 밝고 선명한 세계로 나아간다.
책 제목이 주는 따뜻함과 뭉클함이 있는데요. 그 남다른 감회와 독자들에게 이 소설이 어떻게 가닿기를 바라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책에 실린 소설 중 가장 먼저 쓴 소설이 「우리의 환대」라, 이렇게 제목이 된 일이 신기합니다. 굉장히 오래전에 막연하게 '이런 소설을 써야겠다'라고 마음먹었고, 5년 전에 처음 소설을 썼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막연했고, 소설에 대한 혹평도 많이 받아서, 이 소설을 발표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독자들에게 닿는다는 일만으로도 만족하고 행복하지만, 욕심을 부린다면 지금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분이 아주 잠시나마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순간으로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가 '부재'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소설 속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서서히 잃어가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과 마음들을 되짚어가는 과정에서 작가님이 가장 고민했던 지점이 있다면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사실 최근에서야 제가 '부재'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단 걸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을 쓸 때 고민했던 지점은 그때그때 다른데, 대체로 굉장히 아주 작고, 소소한, 누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들을 고민했습니다. 쓰는 저조차도 왜 이런 부분들을 고민했을까 싶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작은 부분들이 모여 소설의 어떤 '뉘앙스'를 만드는 것 같아 쓰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크게 공통적으로 고민했던 지점은 제가 생각하는 '이 마음'을 온전히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특정한 누군가를 잃는다는 마음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런 마음을 그대로 읽는 사람도 느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수록작 중 「우리의 환대」와 「Give me a hand」의 인물들은 각각 부모로부터 독립해 호주의 퍼스와 미국의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일궈나가는데요. 두 작품 모두 작중 화자가 부모라는 점과 그들의 자식들이 모두 타지에서 거주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설정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두 작품 모두 개인적인 제 경험으로 출발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호주와 뉴욕을 갔던 경험이 있는데, 제가 여행을 꽤 좋아하기도 하고, 확실히 장소만큼 직접적으로 해방감을 안겨주는 요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외에 작품과 연결된 다른 경험들이 있지만,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를 설정한 것은, 그 관계가 가장 복잡한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진부하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직접적이고도, 가까운, 서로를 가장 사랑하면서도, 또 가장 상처입힐 수 있는 관계라, 서로를 피할 수 있다면 낯선 이국이 아니라, 세계(언젠가는 우주로 가버리고, 또 우주로 쫓아가는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가 바뀌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쪽은 상처 입으면서도 보고 싶은 마음에, 아무리 낯선 곳이라도 그곳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두 작품이 부모의 입장에서 쓰였다면, 병원에서 아픈 아버지를 돌보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혜주」와 이미 세상에 없는 딸이 엄마를 보는 입장에서 쓰인 「기원과 기도」에서는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자식이 등장합니다. 부모 때문에 자꾸만 무너지면서도 그 곁을 떠나지 못하는 마음을 그릴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게 있으시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여기면서도,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서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담고 싶었습니다. 이런 내가 싫고, 이해할 수 없고, 못마땅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는 것을 멈출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요소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사랑은 정말 알 수 없는 실재적인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에는 종종 낯선 노인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요. 「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에서는 이웃집 할머니가 밤을 건네기도 하고, 「남겨진 사람들」에서는 낯선 노인이 귤이나 과자를 잔뜩 건네기도 합니다. 낯선 이의 호의와 환대가 어색하면서도 조용히 기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작가님도 우연히 낯선 어른에게서 위로를 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그런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근래에는 목욕탕에서 한 할머니가 수건으로 제 등을 닦아주신 적이 있습니다. 미안하고 어색하면서도, 그 손길이 또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요즘은 자꾸만 낯선 타자들을 경계하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야 할 만큼 세상의 어두운 부분들을 강조하고 보게 만들지만, 또 막상 실제 부딪히는 세계에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날 선 자세로 있다가 그런 분들을 만나면, 뭐랄까, 세상이 생각보다 좋고 따뜻한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잠시나마 행복한 기분에 젖어 혼자서 좋아하곤 했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저도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온기를 주는 낯선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수록작 「우리의 환대」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했을 당시, "모두가 자신의 세계를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내내 위로가 되었는데요.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님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었던 문장이 궁금합니다.
제 소설집에선 그런 문장이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제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었던 문장을, 이소 선생님의 글에서도 찾을 수 있어 조금 놀라웠습니다. 그 문장은 '진부하지만, 삶은 계속된다'입니다. 저는 글을 쓸 때마다 저를 미워하는 일을 좀처럼 멈출 수 없는데, 그럴 때마다 '그래, 그래도 삶은 계속되지, 계속되어야만 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는 합니다. 몇 년 전부터 누군가를 잃고, 때로는 자신이 싫어지고, 어떨 때는 계속해서 울고 싶을 만큼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삶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아주 공들여서 해왔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잡고 있습니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가장 환대받았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앞으로의 집필 계획도 말씀해 주세요.
안타깝게도 질문을 받고 바로 떠오르는 순간은 없지만, 그래도 찬찬히 생각해보니,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이 저를 보고 반가워하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저를 반겨주어서 늘 고맙고 그 모습들이 겹쳐 보여서, 우리가 조금 더 나이가 들었을 때도 서로에게 그런 미소를 지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앞으로의 집필 계획은 비밀인데, 정해진 방향이 있는 게 아니고 계속해서 수정이 될 가능성이 있어 구체적인 것을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만, 짧으면서도 긴 이야기를 쓸 계획입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진, 좋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장희원 199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폐차」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2020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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