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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의 짧은소설] 숲과 호수 사이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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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생활은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사이에 끼어 있지만 숲과 호수 사이에 놓인 곳은 계속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2022.12.13)


거기에 갈까.

출근 준비를 하던 윤이 그렇게 말했다. 

우리 거기에 갈까.

월차를 쓸 생각에 들떠 있던 모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툭 떨어졌다. 모와 윤에게 거기에 가자는 말은 일종의 신호와 같았다. 나 좀 힘들어, 안정이 필요해, 처럼 심정을 에둘러 표현하는 암호이자 구조 요청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윤이 거기에 갈까, 라고 했을 때 모는 무슨 일이 있구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확실히 최근 며칠 사이의 윤은 멍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있는 일이 많았다. 휴대폰을 보다가 미간에 힘을 주거나 입술을 꾹 깨문 채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모는 윤이 부엌의 작은 창을 보며 창이 더 크면 좋을 텐데, 라고 중얼거리다가 멈추고, 갑자기 아니지, 아니야, 하며 고개를 여러 번 젓는 모습도 보았다. 그럴 때 윤의 얼굴 위로는 여러 표정들이 맥락 없이 지나갔다.

윤은 괜찮아지면 그제야 속을 털어놓는 타입이라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도 별일 없어, 좀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같이 사는 동안 모는 윤이 말이 없을 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게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그치면 윤은 어딘가로 숨어버리거나 입을 다물어 버렸다. 윤이 거기에 가자는 말을 하는 건 나아지기를 바란다는 뜻이니 아주 심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사실 말이야, 하면서 윤이 말을 꺼내면 모는 안도하며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 이번 주에 갈까. 

모는 서두른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명랑하게 대꾸했다.

가방을 멘 윤이 괜찮아? 다른 약속 없어? 하며 운동화를 신었다.

나도 가고 싶었어. 토요일 아침에 출발하자.

모가 한쪽 손을 들고 잘 다녀오라고 하자 윤이 손을 흔들며 좋은 시간 보내라고 했다.

도어 록이 잠기는 소리를 들으며 모는 식탁 의자에 앉았다. 조조 영화를 보러 가려고 했는데 어쩐지 울적해졌다. 창문을 여니 아침 같고 암막 커튼을 치니 밤 같았다. 모는 어둠 속에서 눈을 깜박거렸다.

모와 윤에게는 각각 그곳에서 보낸 시간 덕분에 회복된 경험이 있었다. 그곳은 북 카페인데 한쪽 창으로는 호수가 보이고 반대쪽 창으로는 초록의 숲이 보였다. 풍경이 근사한 것 외에는 평범했다. 책이 많거나 큐레이팅이 특별한 것도 아니고 커피 맛이 훌륭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마저 뛰어났다면 입소문이 났을 테고 두 사람이 조용히 앉아서 밖을 내다보는 여유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모와 윤은 그 카페의 평범한 커피 맛과 적당한 규모의 서가를 사랑했다.

처음 그 카페에 가게 된 건 모의 멀미 때문이었다.

2년 전 주말에 두 사람은 조금 먼 도시로 드라이브 겸 꽃구경을 가기로 했고, 윤이 맛집을 예약하고 유명하다는 카페도 찾아두었다. 모와 윤 모두 회사 생활에 지친 상태라 먼 곳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바람을 쐬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떠났다.

사람들이 보내고 싶은 주말의 형태란 대체로 비슷한지 식당 안은 포화 상태였다. 테이블에는 빈자리가 없고 주문하고 사람을 부르고 먹고 웃고 말하는 소리와 다양한 음식의 냄새로 식당 안이 꽉 찼다. 윤은 그런 음식점을 예약한 걸 미안해했고 모는 마음에 안 드는 티를 내서 미안했다. 맛집답게 밑반찬과 메인 메뉴 모두 맛있고 푸짐했다. 평소였다면 다음에 다시 오고 싶은 곳 리스트에 올렸겠지만 그날 모와 윤은 좀 버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꽃이 흐드러진 길에도 사람들이 많아 줄을 서서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은 조용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고 실내를 정원처럼 꾸며놓은 카페의 사진을 보며 기대에 부풀었다.

천장이 높고 초록의 식물들 사이에 테이블이 놓인 카페는 웨이팅이 길었다. 윤이 급하게 다른 곳을 알아보는 동안 모는 포토 스폿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팔을 올려 하트를 만들거나 웃는 얼굴로 포즈를 취하는 걸 보며 주말이 끝난 뒤 만나게 될 회사 사람들을 떠올렸다.

모의 연봉은 삼 년째 동결이었고 처음에는 열심히 일해도 오르지 않는다는 것에 화가 났지만 어느 순간 문제는 연봉이 아닌 다른 쪽으로 번져 나갔다.

모가 연봉을 올려달라고 소심하게 요구했을 때 팀장은 경기도 안 좋고 다들 힘드니 올해까지만 참아달라고 했다.

올린 사람 아무도 없어. 나도 그대로라고. 

팀장은 모를 원망하듯 덧붙였다. 모는 작년에도 그렇게 말했잖아요, 라고 덧붙이지 않았다. 팀원들 모두 개인적으로 찾아와 불만을 표현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팀장이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높은 직책을 맡은 사람들의 지시를 따르다 보니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모의 입장에서도 연봉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팀장뿐이었다.

그날 친한 동료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몇 사람이 모였고 모는 오래간만에 술을 많이 마셨다. 취한 김에 거지 같은 회사,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말이야, 하고 연봉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생일을 맞은 동료도 동조했다.

진짜 조금 올려주더라. 그렇게 조금씩 올려서 언제 카드 빚 갚냐고. 

모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동료를 쳐다보았다. 동료는 아차 싶었는지 말을 돌렸다.

연봉 안 올려주면 그만둘 거라고 했더니 올려줬어. 그대로나 마찬가지야. 

모는 팀장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순순히 물러섰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술김에 말해 버린 동료의 실수가 아니라 팀장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되어서, 앞으로 그런 사람과 어떻게 같이 일해야 하나 싶어서 기운이 빠졌다.

다음 날 팀 회의가 끝난 뒤, 팀장이 모에게 일을 추가로 부탁했을 때 모는 천천히 심호흡을 한 다음 연봉 얘기를 확인했다. 처음에 팀장은 모가 잘못 안 거라며 시치미를 떼더니 동료 얘기를 꺼내자 얼굴이 굳었다. 그 자리에서는 모에게 양해를 구하더니 나중에 동료를 불러 비밀을 지키지 않았다며 주의를 줬다. 동료는 모 때문에 자신이 곤란해졌다며 언짢아했다. 모는 자신이 잘못한 것과 자신에게 잘못한 것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을 보았다. 모가 원한 건 팀장의 솔직한 말과 사과였는데 오히려 모가 말을 옮기는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팀장을 대하는 것이 껄끄럽고 동료를 보는 것도 편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같이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표면적으로 달라진 건 없는데, 사무실에 돌아오면 아랫배가 싸르르 하다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모는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밥을 먹는 게 두려워졌다. 병원에서는 장염이라고 했는데 약을 먹으면 괜찮아졌다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신경 쓰면 금세 재발했다.

일주일 정도 지속된 장염이 괜찮아졌을 때 윤이 맛있는 것도 먹고 꽃도 구경하자고 해서 떠난 나들이였다. 그런데 모와 윤은 인파에 시달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애써 괜찮은 척하며 걷고 감탄하고 사진을 찍었지만, 서로의 얼굴을 보며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집에 가는 길은 윤이 운전하기로 했다. 도로에 차가 많아서 가다 서기를 반복했고 다음 날 출근할 생각에 모는 속이 불편해졌다. 국도 쪽을 달릴 때 모가 멀미가 난다고 하자 윤이 근처의 카페를 검색해서 찾았다.

길도 막히는데 한숨 돌리고 가자. 

두 사람은 창가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허브티를 주문했다. 카페는 양쪽에 커다란 창이 있고 한쪽 창으로 호수가, 반대편 창으로 숲이 보였다. 그때 호수와 숲은 좀 어둑했지만 그것대로 운치가 있었다. 모와 윤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창밖이 검게 변해 가는 것을 보았다. 인파와 멀미에 시달렸던 속이 천천히 내려갔다. 하루를 통틀어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모가 스트레스성 장염을 앓는다면, 윤의 경우는 힘들면 위경련에 시달렸다. 소화가 잘 안되고 속이 답답하고 쓰리다가 어느 순간 쥐어짜는 것처럼 아프다고 했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배를 감싼 채 몸을 둥글게 말거나 침대에 누워 끙끙거렸다. 윤은 누군가 힘센 사람이 위의 이쪽과 저쪽을 양손으로 잡고 비트는 것 같다고 했다. 모는 그 고통에 대해 짐작도 하기 어려웠다.

그날 숲과 호수 사이에 놓인 북 카페에서 한숨 돌리고 온 뒤로 두 사람은 계절마다 그곳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창가의 테이블에 앉아 봄에 꽃이 핀 숲과 여름의 초록이 우거진 숲, 가을의 울긋불긋한 숲을 보았다. 거기에는 계절과 함께 변하는 숲과 그대로인 호수가 있었다. 모와 윤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창가에 앉아 같이 호수를 바라보기도 하고 윤이 호수를 볼 때 모는 숲을 보기도 했다.

나무와 뻗어 나간 나뭇가지들과 촘촘히, 혹은 듬성듬성하게 달린 나뭇잎들을 보고 있으면 모는 나무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온몸으로 기운이 번져 나갔다. 나뭇잎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도, 색이 변해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거나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리는 것도 대견했다. 호수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윤은 주로 호수를 보며 '물멍'을 즐겼다. 넓고 많은 물을 보며 어떤 기분과 감정을 흘려보낸다고 했다.

의도하거나 약속했던 건 아닌데, 모와 윤은 마음을 다치거나 지칠 때마다 그곳에 갔다. 그 카페의 창을 통해 사계절의 풍경을 보았다는 건 계절마다 마음을 다치는 일들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고 거기 앉아 있던 시간을 통해 일상으로 돌아올 힘을 얻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토요일 아침에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윤은 말없이 앉아 있다가 모에게 눈 좀 붙일게, 라고 했다. 모는 운전을 하면서 카스테레오의 볼륨을 줄였고 가끔씩 윤의 얼굴을 살폈다. 눈을 감았지만 자지 않는 윤의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거기에 가면 단풍이 들어서 숲이 멋질 거야, 모는 조용히 속삭였다.

오전의 카페에 손님은 모와 윤뿐이었다. 호수를 한참 바라본 뒤에도 윤은 말이 없었고, 모가 무슨 생각해, 라고 묻자 죽음에 대해 생각해, 라고 했다. 모는 모멸 정도를 떠올렸는데 죽음이라는 말에 멍해졌다.

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자, 얼마 전에 회사에서 말이야, 하며 윤이 쓰레기로 꽉 찬 봉투를 내다 버리듯 말을 꺼냈다. 같이 일하던 사람이 출장을 갔다 죽었는데 회사는 어영부영 처리하고 싶어 하고 유족들에게 사과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고에는 여러 가지 상황과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회사의 간부들은 책임을 미루고 서로 발을 빼려 했다. 그들은 유감이라느니,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느니, 안됐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반응했고 자꾸만 죽은 사람의 사소한 실수를 들먹였다. 보상은 하겠지만 자신들이 잘못한 건 없다는 입장이었다.

윤은 자신이 갈 수도 있는 출장이었다고 했다. 

사고를 못 막았으면 사과는 해야 하잖아. 

윤은 동료의 죽음도 고통스럽지만, 자신이 사과의 언어가 없는, 다른 사람을 헤아리지 않는 무례한 사람들하고 같이 일해야 하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그런 데서 일하는 것도 고역인데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흐르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이 편 저 편으로 나뉘어 싸우게 된다고 했다.

왜 이 죽음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지지 않아? 

사과에 왜 그렇게 집착해. 사과한다고 뭐가 달라져.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같이 점심을 먹고 회의를 하고 회식을 하는 동료인데 입장과 마음이 다르다는 걸 확인하는 게, 그래서 자꾸 미워지는 게 힘들다고 했다.

내가 죽어도 그렇게 지나가겠지. 

윤은 울먹이다가 웃었다. 

나 좀 미친 것 같지. 

모는 고개를 저으며 윤의 손을 잡았다. 

누가 그러더라. 하나만 하라고. 

윤은 다시 웃음을 거두고 울먹거렸다. 이곳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밖의 생활은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사이에 끼어 있지만 숲과 호수 사이에 놓인 곳은 계속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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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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