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소설/시 PD 박형욱 추천] 지상에서 먹는 기내식의 맛, 여행의 맛
『기내식 먹는 기분』
여행의 시작과 끝에 먹는 기내식은 음식의 종류만 다른 것이 아니라 '맛'이 다르다. (2022.12.13)
여행은 좋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이 '좋음'을 다른 이에게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생각과 문장과 상상력과 말솜씨가 필요할 것이다. 듣는 입장에서도 엄청난 인내와 공감과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을 기꺼이 포기할 줄도 아는 넓은 마음이 필요할 테다. 어쩌면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은 그나마 그 여행의 좋음을 (훗날의 나를 포함해서) 상대가 납득할 수 있게 보여줄 만한 것은 사진 뿐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니까 각자의 이 기분을 딱 알맞게 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 같은데, '기내식 먹는 기분'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될 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시작과 끝에 먹는 기내식은 음식의 종류만 다른 것이 아니라 '맛'이 다르다. 떠날 때의 기내식이 여행의 첫 식사로 들뜬 맛이라면, 돌아올 때의 기내식은 거기에서 설렘이 빠진 조금은 무거워진 맛. 여행이 남긴 것들을 꼭꼭 씹어 삼키면 그렇게 여행이 마무리 되는 듯하다. 그곳과 이곳 사이에서 먹는 식사는 소화가 잘 안 될 수도 있는데, 집에 돌아오고 일을 하고 걷고 읽고 쓰는 동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소화되어 내 안의 곳곳으로 퍼진다.
『기내식 먹는 기분』은 그 과정을 그리게 한다. 여행을 맛보고 소화시켜본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다가올 여행을 기대하게 한다. 작가는 "여행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정확한 내가 되도록 한다"고 말한다. 여행을 통해 내가 아닌 부분들을 나에게서 하나 둘 덜어낸다는 것이다. 사는 일이 그런 것처럼.
여기 한 여행자가 산티아고에서, 인도에서, 미국의 피츠버그에서, 한국에서 살아낸 시간들이, 삶의 조각들이 따뜻한 네모 그릇 안에 빼곡히 담겨있다.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고 사진도 한번 찍고 하나하나 집어 들어 맛을 본다. 어떤 것은 입에 꼭 맞을 테고 어떤 것은 영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또 좋다. 지상에서 맛보는 기내식은, 여행은 그 자체로 무척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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