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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완의 다음으로 가는 마음] 탐정과 나 : 추리소설을 읽는 마음

제 6화. 탐정과 나 : 추리소설을 읽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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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책의 대부분은 추리소설이었다. 매년 연말에 올해 읽은 책의 목록을 정리해보는 편이다. 몇 년간은 100권을 채우려고 노력했는데 목록을 적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2022.12.13)


<채널예스>에서 격주 화요일
영화감독 박지완의 '다음으로 가는 마음'을 연재합니다.


일러스트_박은현

내일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할 때, 나는 좋은 추리소설을 읽었다. 두꺼울수록 더 좋았다. 내일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밤을 새우고 이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의미이고, 아무런 계획도 없지만 책을 찬찬히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은 불안한 나를 덜 초조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끝이 알고 싶으면서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다. 나는 이야기 속으로 도망쳤다.

내가 읽는 책의 대부분은 추리소설이었다. 매년 연말에 올해 읽은 책의 목록을 정리해보는 편이다. 몇 년간은 100권을 채우려고 노력했는데 목록을 적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다양한 책을 읽지 않는다. 소설의 비중이 80프로에 가깝고 그 중의 90프로가 추리소설인 해도 많았다. 목록을 볼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이야기를 쉬지 않고 읽어대는가, 진심으로 염려가 되었다.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알고 싶어 하는가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내가 사는 세상과 인생을 알고 싶은 마음,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모두에게 있다.

또 진짜 같은 정교한 거짓말을 좋아한다. 쫄보인 나에게 어떤 '진짜'는 겁을 먹게 만드는데, 그럴듯한 '가짜', 진짜 같은 이야기는 편안함을 준다. 내겐 그런 약속이 바로 추리소설이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드러나는 사실은 일상은 그렇게 견고하지 않다는 것, 누군가의 인생은 단순한 사건으로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누군가는 의문을 갖는다. 그 일의 당사자이거나, 당사자와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고 직업적으로 당연히 의문을 가져야 하는 사람, 그러니까 경찰이나 보험조사원 같은 사람들도 있고, 또 특별히 의뢰를 받아 사건에 투입되는 탐정도 존재한다.

경찰은 공무원이고 어느 나라 사람이든 보통은 피곤한 상태다. 상쾌한 아침을 시작하는 경찰은 추리소설에 잘 나오지 않는다. 피곤하지만 그 피곤을 달랠 방법 정도는 가지고 있고 직업의식 역시 각자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경찰은 '해리 보슈'다. 일단 작가 마이클 코넬리는 책을 많이 냈고,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책도 많다. 내가 처음으로 집중해서 보게 된 시리즈물이기도 해서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만약 읽기 시작한다면 시리즈 첫 권인 『블랙 에코』부터 읽기를 추천한다) 해리 보슈는 엘에이 경찰이라 그의 동선이 책 속에도 자세히 등장한다. 지도 앱을 켜고 경찰청이 있는 동네와 그가 묘사해둔 커피숍 건물, 해리 보슈의 집이 있는 동네를 찾아보았다. 베트남 전쟁을 겪은 나이 많은 아저씨지만,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리우드에 팔아서 돈도 좀 있는 상태인 것이 내가 안심이 될 정도로 그 캐릭터를 친근하게 느낀다.

아마도 작가의 취향일 테지만 해리 보슈가 듣는 재즈 장르의 특정 노래를 적어 놓기도 하는데, 나는 종종 그 음악 틀어놓고 읽기도 한다. 마이클 코넬리도 그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글을 썼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최근에는 그가 소개해 준 Frank Morgan & George Cables의 앨범을 듣고 있다. 

이 작가의 가장 부러운 점은 그는 경찰 하나, 변호사 하나, 기자 하나 튼실한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내키면 그 캐릭터들을 다음 번 새로운 소설 속에서 만나게 한다. 어찌 보면 작가에게 가장 뿌듯한 일이 아닐까. 각자의 존재가 살아있게 만들고 캐릭터들이 마주치면 그 세계가 합쳐질 수도 있다니.

작가로만 따지면 '마쓰모토 세이초'를 제일 믿는 것 같다. 그의 이야기는 늘 다 읽고 나서도 그 이야기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동안 생각하게 된다. 모든 작품을 좋아하지만 최근의 독서인 『일본의 검은 안개』가 계속 남아있다.

나는 후일담을 좋아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중간보다 다 끝나고 시간까지 개입해서 뭐가 진실인지 더 알 수 없어지는 상황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쓰고 보니 너무 잔인하다) 그래서 탐정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이상한 일을 감지한 사람들이 의뢰를 해야만 그 사건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인물, 그들이 탐정이다. 거절할 수도 있지만 일단 의뢰를 받으면 자신의 방식대로 사건에 접근한다.

'스기무라 사부로'는 늘 신간을 살피며 열심히 읽는 '미야베 미유키'의 탐정 캐릭터이다. 누가 봐도 놀랄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데 그게 또 매력적이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 속에 한 개인의 비밀들이 밝혀진다.

한동안은 왜 자꾸 요괴가 나오는 괴담을 쓰시는 걸까, 『모방범』 같이 다 읽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책을 읽고 싶어 아쉬워했다. 그러나 소설가도 인간이고 그의 관심사도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옮겨간다. 작가 자신은 어떻게든 작품 속에 남아서 나는 결국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이야기 역시 사랑하게 되었다. 요괴가 왜 이곳에 왔는가는 그 범죄가 왜 '여기', '지금' 일어나는가에 대한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시리즈도 좋아하는데 '매튜 스커더'라는 인물은 탐정 일을 미친 듯이 열심히 하지 않고 자기가 궁금한 이야기를 찾으러 다니다가 실수도 저지르고 후회도 많이 한다. 그러나 탐정은 정답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나는 완벽하지 않은 매튜 스커더를 좋아한다.

추리소설 속의 세상은 냉혹하다.

남의 불행을 외면해야 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야만이고 남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아야 내가 더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문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현실의 나는 제법 안전한 상태로 누군가의 곤혹스럽고 괴로운 상황을 떠올려볼 수 있다. 그냥 구경할 때도 있지만, 나와 잘 맞는 작품 속에서 나는 그 일들을 상상으로 겪어볼 수 있다.

용감한 인물들은 진실이 어떤 추악한 모습이더라도 진실을 보고자 한다. 그게 가짜가 아니어야 진짜인 생각을 하고 다음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일은 너무 망가져서 처참한 결과만 남아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조각조차 어떤 이들의 흔적이며 어떤 시간을 살아낸 결과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당연히 진실이 버거운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훈련하면, 조금씩 해보면 좋아진다고 믿는다.

나는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그 훈련을 미약하게나마 조금씩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이야기를 읽어대는가?'라는 의문이 좋은 추리소설과 만나, '어떻게 사람들은 끔찍한 일이 일어났음에도 계속 살아가는가?'하는 질문으로 바뀌는 순간들 때문에 나는 여전히 추리소설 서가에서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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