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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솔의 적당한 실례] <이 정도로> 사건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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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실례로 인하여, <이 정도로>라는 노래의 작사란에는 내 이름이 있다. (2022.12.09)


서울 강남 사거리에 얽힌 공포스런 일화가 있다. 거리는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으러 가는 직장인들의 달뜬 발걸음으로 가득했다. 그때 인파 속에서 한 여자가 우뚝 멈춰 선다. 여자는 못 볼 걸 본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그 얼굴은 삽시간에 믿을 수 없이 일그러지더니 찢어질 듯한 비명으로 이어진다. 

"안 돼애애애애애애!"

사자의 포효 같은 소리가 일대에 울려 퍼지고 모두가 화들짝 놀라 돌아본다. 여자는 이제 실성한 듯이 웃기 시작한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

사람들은 잰걸음으로 그녀를 피해 간다. 여자는 외친다.

"이 정도로! 이 정도로!"

사건 발단 당시에 그녀는 휴대폰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뮤지션으로부터 오매불망 기다리던 답신이 와 있었다. 거기엔 한없이 상냥하고도 친절한 문체로 책을 보내주시면 잘 읽겠으며 너무나 감사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제는 추신이었다.

'제 노래 중에는 <이 정도로>라는 노래가 없어요. 이참에 <이 정도로>라는 노래를 들어보고 좋으면 내 노래라고 앞으로도 뻥을 치려고 했는데, 이 제목의 노래도 없는 것 같더라고요. 다솔 씨도 옛 기억이라 조금 헷갈린 것 같은데 그 노래가 무엇이었나요?'

모든 것은 실례가 되는 메일 한 통으로 시작됐다. 때는 바야흐로 2018년, 『간지럼 태우기』라는 문제의 책이 독립 출판물로 발간된다. 그것은 인쇄되는 즉시 작가에 의해 여러 권씩 적치되어 박스 테이프에 휘감겨 협탁이나 스툴의 형태로 쓰이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운이라는 것이 발하여 다행히도 책이라는 본연의 쓰임새로 독자들을 만나게 된다. 비관적이기로 유명한 작가 본인도 '살면서 해본 모든 형태의 시도 중에 가장 성공적인 성과'라 부를 만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작가는 그 책을, 좋아하는 뮤지션이자 작가인 '요조'에게 선물하고자 알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메일 한 통을 보내게 되는데...

한껏 들뜬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기를 반나절. 작가는 긴 고민 끝에 폭풍우와 우박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달짝지근한 목소리로 적셔준 요조의 노래들을 떠올리며 그에 대한 찬사로 메일의 포문을 열겠다고 다짐하는데...

"제 청소년기는 요조 님의 <이 정도로>라는 노래로 설명되는 어떤 시기가 있었습니다. 가사 하나하나가 알맞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멜로디 덕분에 친구들과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폭풍 같은 나날을 지나곤 했어요."

당차면서도 감성적인 게, 썩 적절한 찬사라고 생각하며 전송 버튼을 누른 그녀였다. 그러나 연이어 드러난 충격적인 사실은 <이 정도로>는 요조의 노래가 아니며, 심지어 '누구의' 노래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사건이 있은 후 요조 님과 처음 만난 것은 홍대 인근의 족발집에서다. 지금은 우리 둘 다 고기를 먹지 않으니 마치 전생의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어두운 옷을 입었다. '석고대죄' 룩이었다. 그녀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상체를 앞으로 고꾸라트렸다. 얼굴이 무릎에 닿을 것 같았다. 요가의 전굴 자세를 하는 건지 인사를 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죄송합니다!"

거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쳤다. 꼭 조폭 두목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것이 요조 님과 나의 첫 만남이다. 요조 님은 깊게 숙인 내 정수리에 콩 하고 꿀밤을 먹이는 대신 히히 웃기만 했다. 털로 짠 비니를 쓴 하얀 얼굴의 그녀는 청초한 진주처럼 빛났다. 모르긴 몰라도 분노를 담는 그릇으로는 절대 쓰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얼굴을 보느라 그녀의 첫마디가 반갑다였는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연이어 100도, 80도가량으로 상체를 굽혀가며 사과를 거듭했다. 그러고는 약속했던 책을 건넸다.

마침 팟캐스트 녹음을 끝내고 온 요조 님 일행들과 함께 족발집에 둘러앉았다. 나는 긴 식탁의 가장 귀퉁이에 앉아 잠자코 먹기만 했다. 가끔 반찬이 떨어지면 일어나서 옆 테이블까지 먹으러 가고, 조용히 손을 들어 면 사리를 두 번, 공깃밥을 한 번 추가했다. 옆에 앉아 있던 이슬아 작가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야, 얻어먹는 주제에 뭘 자꾸 시켜."

나는 이슬아의 옆구리를 찔렀다.

"뭐든지 잘 먹는 게 최고거든."

이슬아는 그날 팟캐스트의 출연자였다. 성공한 애답게 1인분보다 살짝 적게 먹었다. 접시에 코를 박은 나에게 팟캐스트 제작팀의 팀장님이 물었다.

"무슨 일 해요?"

나는 말했다.

"시민 단체요."

그날 족발집에서의 만남은 나에게 다소 신화적이다. 이후 요조 님이 팟캐스트에서 내 책을 직접 낭독해 주는 기념비적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강남 사거리의 어떤 식당에서 꽁치를 집어 먹다가 그걸 듣고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버리는 바람에, 동료로부터 "꽁치가 그렇게 맛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족발집에서 나에게 하는 일을 물었던 팀장님은 훗날 나의 상사가 되었으며, 나의 영원한 팀장님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2022년 11월 11일에는 농담처럼 요조가 부른 <이 정도로>가 세상에 발매된다. '이 정도로' 적당한 실례가 어디 있냐며 요조는 말한다. 네가 말한 그 노래, 노는 땅이길래 내가 건물 세웠어. <이 정도로> 빌딩이야. 나의 끔찍한 실례가 만천하에 알려지는 창피함과, 사랑하는 뮤지션의 영감이 된 영광스러움이 반반씩 섞여 내 얼굴은 알 수 없이 일그러진다. 전제 자체가 바뀜으로 인해 우리의 첫 만남에 있던 오류는 사라졌다. 어떤 실례로 인하여, <이 정도로>라는 노래의 작사란에는 내 이름이 있다.



요조 - 이름들 (Names) [화이트 컬러 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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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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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양다솔(작가)

글쓰기 소상공인. 에세이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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