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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희 "번역가는 충실한 전달자라고 생각해요"

『체셔 크로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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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부분들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콘셉트들을 원작의 캐릭터들에게 입히는데요. 불편하게 하진 않거든요. 저는 그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어요. (2022.12.09)


『마션』의 앤디 위어가 초기에 그래픽 노블을 그렸다는 사실, 그 작품을 '사라의 낙서장' 시리즈의 사라 앤더슨이 다시 그려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번역가 황석희는 일단 끌리는 마음으로 작품을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체셔 크로싱』이라는 이 작품에는 칼을 차고 하늘을 나는 '웬디 달링'과 거울을 통과하는 반항적인 '앨리스 리들', 순간 이동을 하는 '도로시 게일'이 등장했다. 앤디 위어의 작품 속에서 『피터팬』『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오즈의 마법사』에서 보았던 맑고 순수한 소녀들은 이제 10대가 되어 있었고, 이들은 한껏 반항적이고 거친 매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황석희 번역가는 그것만으로도 즐거워서 '냉큼' 번역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체셔 크로싱』은 앤디 위어의 위트와 상상력, 사라 앤더슨의 아름답고 다채로운 이미지, 그리고 황석희 번역가의 맛깔나는 번역이 즐거운 화학 작용을 일으키는 그래픽 노블이다. 동화 속 소녀들이 악당과 혈투를 벌이고, 거친 말을 내뱉고, 마음껏 욕망을 분출하는 동시에 의리를 지켜나가는 이 이야기를 사랑하지 않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번역 과정 자체가 즐거웠어요

'번역 의뢰를 받았을 때 앤디 위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주춤했다.'(126쪽)고 했어요. 그럼에도 이 작품을 번역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일단은 제가 영화를 번역하는 양이 많아서 텍스트가 많은 작품을 작업하기는 어렵거든요. 할 수 있는 것은 운문 형식으로 된 소설이나 『체셔 크로싱』 같은 그래픽 노블 같은 것인데요. 처음 앤디 위어의 작품 번역 제안이 들어왔을 때 그래서 주춤했어요. 하지만 '앤디 위어'라는 이름에도 끌렸고요. 앤디 위어의 그래픽 노블이라고 해서 더 끌렸어요. 이 작가의 그래픽 노블이라니까 수락하기 전에 우선 살펴본 거죠. 알고 보니까 그림은 앤디 위어가 그렸던 걸 다른 분이 다시 그려서 만든 작품이었어요. 여러모로 독특하잖아요. 또, 요즘 이런 크로스오버 작품이 많죠. 영화 쪽에도 그런데요. 동화에 나오는 소녀들 세 명이 등장한다니까 굉장히 독특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냉큼 하게 됐어요.(웃음) 

번역을 하면서도 너무 재밌었어요. 그냥 동화였다면 굳이 내가 번역해야 될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했거든요. 그런 쪽은 저보다 더 잘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좀 달랐어요. 유머 같은 것도 냉소적인 부분들이 많거든요. 비꼰다거나 풍자도 있고요. 이런 부분들을 잘 살려서 번역하는 것도 재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원문의 매력을 살리는 데에 신경이 많이 쓰였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살리려고 대단한 노력을 했다기보다는요. 원문 자체가 워낙 그래서 문체만 따라가도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만, 그런 것들을 번역하는 과정이 되게 즐거웠던 거예요. 되게 뾰족하게 말하네, 싶은 부분도 있고요.(웃음) 흔히 동화 속 소녀들은 티 없이 맑고, 마냥 착하고 그렇잖아요. 근데 『체셔 크로싱』에서는 욕도 하고요. 서로 헐뜯기도 하고, 막 장난치고 그래요. 짓궂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재밌더라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번역가는 충실한 전달자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의도적으로 원작의 톤을 염두에 두면서 어미를 그에 맞춰 바꿔보는 식의 기술적인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렇지만 지금은 원문의 흐름만 따라도 되지 않나, 생각할 때가 많아요. 내가 인위적으로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고요. 원문에만 충실하게 번역해도 충분한 것 같아요. 과하게 번역해야 하는 장면이 사실 많지 않거든요. 『체셔 크로싱』에서도 앤디 위어가 애초에 대사를 그렇게 썼어요. 그게 문맥에서 읽히죠. 이 작품에서 '앨리스'가 되게 까칠하잖아요. 동시에 독자들이 이 인물을 미워하게 쓰진 않았어요. 약간 까칠한 수준의 톤만 유지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주의하는 거죠. 마냥 재수 없다는 생각은 안 들도록 선을 유지하는 거예요. 번역하는 과정에서는 그런 작업이 인위적이지 않고요. 흐름을 따라가면 어느 정도는 유지할 수 있는 선이라고 생각해요.

『체셔 크로싱』에 등장하는 세 인물은 원작에서의 순수하고, 선의로 가득한, 맑고 고운 소녀들이 아니에요. 지난 경험을 가지고 10대가 되어 악에 받힌 모습도 보이고요. 때로는 의리 있는 모습도, 호전적인 모습도 보이죠. 그런 새로운 면들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저도 그런 매력이 제일 좋았어요. 인물들이 한없이 선한, 동화 속 공주님처럼 그려지지 않잖아요. 다들 정말 평범한 10대처럼 그려져요. 앨리스, 도로시, 웬디뿐 아니라 피터팬도 그렇죠. 피터팬이 어짜다 사춘기 나이가 되자 갑자기 이성에게 관심을 갖는 장면도 되게 흥미로운 설정이었고요. 그에 대한 앨리스의 대처도 되게 귀엽죠. 그런 것들을 보면서 이 작품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구나, 생각했어요. 현실적인 부분들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콘셉트들을 원작의 캐릭터들에게 입히는데요. 불편하게 하진 않거든요. 저는 그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어요. 

영화 쪽에서는 처절하게 그리는 작품들도 많거든요. 백설 공주나 핸젤과 그레텔 같은 것들은 공포 영화로도 많이 나왔고요. 그것도 물론 재미있는데요. 『체셔 크로싱』은 내가 생각한 선보다 조금 더 가나, 하면 거기서 예쁘게 잘 마무리를 해줘서 또 웃게 만들더라고요. 그런 지점들이 좋았어요.

앨리스, 도로시, 웬디 중 어떤 인물이 제일 좋으셨어요? 

앨리스가 특히 현실적인 것 같거든요. 저는 현실적인 캐릭터들을 좋아해요. 사실 앨리스가 세 명 중에서 비중이 제일 큰 것 같기도 하고요. 앨리스 캐릭터는 이 세계관을 거의 통달하고 있는 사람처럼 대활약을 하잖아요. 눈도 부리부리하고, 늘 화가 난 표정인데 또 챙기긴 다 챙겨주죠. 시쳇말로 '츤데레'예요.(웃음) 까칠하면서도 챙길 때는 챙겨주고, 속으로는 살짝 다정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아요. 앨리스의 그런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상상력을 자극하는

처음에 세 인물이 만나는 곳이 기숙학교라는 곳이잖아요. 그곳에서 연구 대상으로 있게 되고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른 데로 갈 수도 있었을 텐데요. 앤디 위어는 오히려 이들을 보호해 주는, 메리 포핀스를 연상하게 하는 존재까지 등장시키면서 인물들이 시원하게 한바탕 모험을 하게 하죠.  

게다가 지금은 슈퍼 히어로의 시대잖아요. 여기 나온 주인공들도 다 자기들만의 능력이 있어요. 앤디 위어가 서문에 이런 말을 썼거든요. '아이들을 모을 방법은 고민할 것도 없었죠. 집에서 십 대 돌연변이를 어쩌겠어요? 그들의 능력을 이해해 줄 교사가 있는 기숙사 학교로 보내는 수밖에요.'(10쪽) 이게 무슨 뜻이냐면, 영화 <엑스맨> 얘기예요. 그 영화에 '자비에스쿨'이라는, 돌연변이들만 모으는 학교가 있잖아요. 슈퍼 히어로만 모아서 그 능력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잘 가르치는 슈퍼 히어로 학교 말이에요. 『체셔 크로싱』에서는 이 아이들한테 돌연변이라는 말을 쓰지 않지만요. 기숙사로 보내는 것을 앤디 위어는 당연한 공식처럼 얘기하는 거예요. 이렇게 슈퍼파워를 가진 아이들을 기숙사 학교로 보낸다는 설정이 <엑스맨>의 '자비에스쿨'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체셔 크로싱』 본문 20p.~21p.

말씀처럼 모르면 지나치기 쉽지만 아는 사람이라면 알아볼 수 있는 재밌는 요소들이 많이 있는 작품이에요. 작가님이 특별히 흥미롭게 본 장면은 뭔지 궁금해요. 

원작에서의 일을 겪은 지 6년 후에 아이들이 기숙 학교에 도착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하죠. 비서가 아이들의 도착을 알리자 기숙 학교의 '러더퍼드 박사'가 비서에게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물어보지 않겠네"라는 말을 해요. 이 대사가 뜬금없잖아요. 이 뒤로도 아무 설명이 없고요. 제 짐작에는 비서가 예지력이나 천리안 같은 류의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대사를 이렇게 쓱 써 놓은 걸 텐데요. 설명은 없어요.(웃음) 그런 설정이 툭툭 튀어나오는 게 재미있어요. 한편으로는 이게 앤디 위어의 초기작이라 허술한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건 독자가 이해하기 나름이니까요. 어쨌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건 확실해요.

그런 차원에서 번역할 때 신경 쓰였던 부분도 있었겠네요. 

과하진 않지만 조금씩 원작의 레퍼런스를 가져온 부분들이 있어요. 『오즈의 마법사』나 『피터팬』『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저도 읽어보긴 했지만 기억이 완벽하게 나지는 않았어요. 옛날에 읽기도 했고요. 원본으로 안 읽은 것도 있거든요. 어린이를 위한 버전으로 요약된 책을 읽었던 거죠. 그러니까 원작의 레퍼런스들을 전부 알고 있는 게 아니어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혹시 『체셔 크로싱』에 원작의 레퍼런스를 썼는데 내가 모르고 지나가면 어떡하지, 하고요. 그래서 그런 것들에 최대한 유의했어요. 

가령 앨리스가 어떤 나무 얘기를 하면서 되게 이상한 표현을 해요. 실제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도 말도 안 되는 단어들이 되게 많거든요. 작가가 단어들을 혼합해서 만든 단어들이 진짜 많아요. 그중에는 실제로 사전에 등재될 만큼 존재감이 큰 단어들도 있고요. 제가 '애처로잡하네'(89쪽)라고 번역한 부분도 원문에는 '애처롭다'와 '바스락거리다' 이런 것들이 합쳐져 있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편집자님과 상의해서 각주를 달았죠. 사실 저는 각주를 달 생각도 못했어요. 영화 번역은 각주가 없잖아요. 어떻게든 그 안에서 납득을 시켜야 되거든요. 근데 책에서는 각주를 달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각주 얘기를 하면서 하셨는데요. 책을 번역하는 것과 영화를 번역하는 것은 무척 다른 작업일 것 같기도 해요. 어땠나요? 

책은 글이고, 자막은 말이거든요. 영화 자막이 텍스트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글이라고 생각을 하시는데요. 그냥 그 캐릭터가 한 말을 받아 적는 것이에요. 그 사이에 번역이라는 과정이 끼어 있을 뿐이죠. 그래서 저는 맞춤법을 일부러 틀리게 하는 방법도 많이 써요. 구어체답게 쓰는 거죠. 예를 들면 '배부르구만'을 맞춤법대로 한다면 '배부르구먼'이지만 그렇게 쓸 수는 없잖아요. 저는 그냥 '~만'으로 쓰거든요. 안 그러면 읽을 때 어색할 테니까요. 그처럼 저는 영화 번역은 말이라 생각하고 작업하는데요. 책은 다르죠. 다만 이 작품은 또 달랐어요. 그래픽 노블은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대화만 하잖아요. 지문도 없고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제가 책 번역을 한다면 그나마 내가 해왔던 경험치를 쏟을 수 있는 것은 그래픽 노블이 아닐까 싶었어요. 영화처럼 말을 쓰는 거니까요. 확실히 영화 번역과 그래픽 노블 번역은 좀 통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번역할 때 중요한 것들

작가님이 『체셔 크로싱』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후크가 등장하는데요. 보면 피부색이 약간 까무잡잡하잖아요. 남미 쪽 사람처럼, 라틴계처럼 그려 놓았고요. 말투도 좀 근엄해요. 원래 우리가 아는 후크는 되게 비열하고 악마 같고 그렇잖아요. 악덕하고요. 그런데 『체셔 크로싱』에서 후크는 자기가 한 약속은 다 지키고, 생긴 것도 잘생겼어요.(웃음) 후크가 서쪽 마녀와 로맨스를 펼치는데요. 그들의 로맨스도 재미있고, 둘이 하는 대사도 되게 재미있었어요. 마녀는 좀 악독한 면이 있는데 후크는 되게 신사 같더라고요. 그런 설정도 흥미롭죠.


『체셔 크로싱』 본문 65p.

그렇다면 앤디 위어의 작품에는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앤디 위어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위트 있는 톤을 구사하는 것 같아요. SF를 쓸 때도 그 안에 위트 있는 대사들이 많거든요. 가령 『마션』의 첫 문장은 정말 유명하잖아요. "아무래도 좆됐다." 이런 구절도 강렬하지만 재미있어요. 앤디 위어는 그런 식으로 과하지 않게 발칙한 문장들을 잘 쓰는 것 같아요. 『체셔 크로싱』에서도 선을 넘지 않고, 과하지도 않게 살짝살짝 발칙한 것들을 잘 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앤디 위어의 특기가 아닐까 싶어요. 어떤 장면 안에 있는 웃음 요소들을 놓치지 않는 것 말이에요. 우리가 조금이나마 웃고 지나갈 수 있을 만한부분을 과하지 않게 살릴 수 있는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정말 큰 재능이죠. 보통은 여기서 웃겨야 된다는 생각으로 작정하고 쓰거나 소소하게 웃길 수 있는 지점을 놓치고 지나가게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앤디 위어는 그런 것들을 포착해내는 재능도 있고요. 더구나 그걸 본인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서문에서 사라 앤더슨 얘기를 하면서 '일상적인 무능에서 비롯된 웃음. 우린 모두 그런 식의 감정을 느낄 때가 있죠. 사라는 그걸 유머로 바꾸는 능력이 탁월해요.'(11쪽)라고 말하잖아요. 그것은 일상에서의 장면 가운데 웃을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는 거거든요. 바로 그것을 포착해내는 재능, 그리고 그런 유머를 좋아하는 기호가 앤디 위어의 작품에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이 작품은 특히 더 그렇죠. 애초에 판타지다 보니까 그런 것들을 살릴 수 있는 여지가 많았던 것 같아요.

말씀을 듣다 보니 번역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시는지, 작가님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져요. 

아침에 일어나서 쭉 작업을 해요. 요즘은 아이의 등원을 제가 하고 있어서 그렇지만 원래는 등원을 제가 시키지는 않았거든요. 그냥 주구장창 번역 작업을 하고 오후 3시가 되면 아이의 하원을 시키죠. 그러고 집에 와서 6시까지 작업을 한 다음에 저녁을 먹고요. 아이랑 나가서 한 시간 반 정도 놀다 보면 저녁 8시 반쯤 돼요. 그러면 아이를 씻기고, 재우죠. 아이가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 자거든요. 저는 이때부터 새벽 3시까지 다시 작업해요. 매일 그렇게 하고요. 그러다가 여유가 나는 날은 아이랑 노는 시간이 끝나면 저녁에 2시간 정도 복싱을 해요. 다시 와서 씻고 또 새벽 3시까지 일하는 생활의 반복이죠. 그런데 저만 그런 건 아니에요. 다들 이렇게 번역하시는 것 같아요.

나의 번역에서 중요한 기준이 있다면 뭘까요? 작가님의 번역 철학이 있다면요? 

몇 가지가 있는데요. 저는 대사를 번역하는 사람이니까요. 가장 신경 쓰는 건 캐릭터예요. 이 인물이 어떤 캐릭터인지, 어떤 말투를 쓸 법한 캐릭터인지 연구하는 게 되게 중요해요. 캐릭터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요. 철칙처럼 지켜지지는 않지만 원칙처럼 갖고 있는 건 있어요. 욕설을 번역해야 하거나 특정 집단에 대한 비난을 번역할 때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 해요. 특히 사회적 약자들, 장애인이나 가난한 사람들, 더 크게 본다면 여성들까지, 그런 분들에 대한 표현이 있을 때 주의하려고 많이 노력하죠. 

언젠가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영화 번역을 하면서 알게 된 건데요. 농인 분들이 외화를 정말 많이 보세요. 자막이 있으니까요. 메시지를 주신 분이 함께 영화를 본 농인인 형이 자막에 장애인을 비하하는 욕이 몇 번 나오니까 너무 표정이 안 좋았대요. 그 말을 듣고 정말 미안했어요. 그때부터는 극히 조심하는 편이에요. 진짜 강하게 써야 될 때는 쓰기도 하지만요. 번역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데 그걸 의도적으로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 것들을 많이 주의하는 편이에요.

번역가로서 가장 기쁜 순간은 역시 그런 노력을 사람들이 이해할 때일 것 같아요. 

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주시는 것도 좋았고요. 내 노고를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게 굉장히 기뻤어요. 지금도 그런데요. 번역가는 사실 늘 원문 뒤에 숨어 있고, 드러나지도 않잖아요.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이름도 별로 없어요. 제 경우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이건 반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저한테 가장 기쁜 건 클라이언트에게 득이 될 때예요. 제가 작업한 결과물이 소비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좋지만요. 그보다 클라이언트에게 득이 됐을 때 가장 좋아요. 영화 번역을 할 때도 영화가 잘 되면 너무 좋아요. 번역 덕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 번역이 좋다는 얘기를 듣거나 번역으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없어요. 

번역가로서의 만족감은 어떤 작업을 해도 다 느껴요. 아주 별로인 작품을 번역할 때조차 번역가로서의 도전이나 모험은 매 문장마다 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인데요. 제가 관여해서 작업한 결과물들이 어쨌든 상업적으로 좋은 성과를 냈으면 좋겠어요. 그게 가장 보람차고 기뻐요.

함께 일하는 마음이네요. 

그렇죠, 저는 "제가 번역했어요" 하고 자랑하면 끝이지만 제가 번역한 영화나 책이 잘 안 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저만 자랑하고 지나간 거죠. 아무한테도 득이 안 되고요. 그런 것들을 좀 겪다 보니까 민망하고요. 그래서 제가 알려지든 안 알려지든 작품이 잘 되는 게 좋아요. 클라이언트의 결과물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책을 읽으면서 선물해 주고 싶은 주변 친구들이 많이 생각났어요. 번역하시면서 작가님은 어떤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으셨나요. 

우선 세 가지 이야기를 다 알고 있는 사람한테 보내고 싶어요. 원작을 알아야 더 재밌을 것 같아요. 구두가 갑자기 왜 나왔는지, 거울을 통해서 어떻게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건지 배경 지식이 없으면 이 책에 나오는 장면들을 보면서도 잘 모를 것 같아요. 워낙 설명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이야기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이 가장 재밌을 것 같고요. 연령대는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정도면 충분히 괜찮을 것 같아요. 이 책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성인까지도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탁월해요. 초반에 어린이들이 보면 약간 충격 받을 수 있겠다 싶은 장면도 있긴 한데요. 요즘은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이 정도는 나오니까요. 그런 장면을 지나고 나면 흥미롭게 보지 않을까 싶어요. 성인 중에서는 특히 이 정도의 까칠한 농담들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을 거고요.




*황석희

1979년생으로 번역가이자 남편, 아빠이다. 2005년부터 번역을 시작하여 주로 영화와 뮤지컬을 번역하며 흰수염 번역단 대표를 맡고 있다.




체셔 크로싱
체셔 크로싱
앤디 위어 글 | 사라 앤더슨 그림 | 황석희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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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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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셔 크로싱

<앤디 위어> 글/<사라 앤더슨> 그림/<황석희> 역 18,0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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