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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특집] 2022년 문학을 돌아봅니다 - 심진경, 전승민 평론가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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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진경과 전승민, 문학 비평 유튜브 <옥상정원>을 진행하는 두 명의 평론가가 2022년의 문학장을 돌아봤다. 올 한 해의 문학이 빼곡하게 그리고 깨끗이 씻겨 나왔다. (2022.12.08)


심진경과 전승민, 문학 비평 유튜브 <옥상정원>을 진행하는 두 명의 평론가가 2022년의 문학장을 돌아봤다. 올 한 해의 문학이 빼곡하게 그리고 깨끗이 씻겨 나왔다.

(진행 : 기낙경)

2022년 한 해의 문학장을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먼저, 한 분씩 2022년 문학장의 전반적인 흐름과 경향에 대해 얘기해 주실까요?

전승민 : 코로나19가 한창 극심했을 때보다 소설과 시의 독자가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출판도 많이 됐고, 특히 시집은 신인 작가들의 책을 포함해 진짜 많이 나왔어요. 소설의 경우도 다양한 작품이 양적으로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심진경 : 출판 시장은 얼어붙었지만, 코로나19 기간 동안 독서 인구가 증가했어요. 그러다 출판 시장이 해동되면서, 본격적으로 여러 종류의 책이 나왔고 독자들의 선택권도 넓어졌죠. 또, 요새는 책을 열심히 읽는 일반 독자들도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잖아요. 책을 어려워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아요.

'소설의 에세이화' 경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심진경 : 소설 속 세계는 익숙한 세계가 아니라 낯선 허구의 세계예요. 독자는 그 속에 들어가서 그 세계의 문법을 학습하고 경험한 다음 다시 현실로 돌아오죠. 이 경험은 현실과 낙차는 있지만 낙차만큼 깊이가 생기는 것인데, 에세이화한 소설은 현실과 소설의 단차가 없어요. 현실의 연장이라는 느낌이고 이때의 현실도 안온해요. 그 때문에 내가 짐작할 수 있는 혹은 경험했음직한 세계를 계속 동어 반복하게 되기 마련이죠. 내가 생각하는 어떤 좋은 것을 되풀이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전승민 : 에세이는 나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과 공감대를 만드는 거잖아요. 하지만 소설은 굉장히 타자적인 장르예요. 내가 모르던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위기를 뚫고 가는 미덕이 있죠. 그런데 이것이 에세이화한다면 내가 이해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거기서 편안해하는 세계에서 끝! 이게 어떻게 보면 자기 동일성적인 세계를 벗어나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어요.

심진경 : 그게 바로 '보수화'예요. 보수라고 하는 게 안정을 추구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거잖아요. 명확한 삶의 테두리가 주어져야 하고 지금까지 익숙하게 알아왔던 세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고요.

전승민 : 그렇다면 왜 그런 보수화가 생겨나느냐 했을 때 현실이 너무 힘들고 각박해서겠죠. 현실이 언제 힘들지 않은 적이 있었냐라고 하겠지만 요즘은 유례가 없는 것 같아요.

에세이의 인기도 꾸준하고 출판도 확실히 증가하고 있지요. 이유는 뭘까요?

심진경 : 에세이를 많이 읽는 이유는 우선 편안함 때문인 것 같아요. 새로운 것과 만나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고요. 정신적 피로도가 높은 시대에 에세이는 휴식처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해요.

전승민 : 정반대의 벡터도 있어요. 에세이 중에 특수한 것도 많거든요. <어쩌다> 시리즈, <아무튼> 시리즈를 보면 연필, 스윙, 인기 가요, 태권도 등등 다양한데, '내가 태권도를 하니까 태권도 에세이를 봐야지'가 아니에요. 에세이를 통해 내가 모르는 세계를 알고 싶은 욕망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자기 계발서나 재테크 책들은 여전히 인기가 있습니다. 가난이나 공정 같은 화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요.

심진경 : 요즘에는 자기 계발서가 필수예요. 자기 계발이 곧 취업이죠.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보면 사회학적 시선에서 요즘 20대의 자화상을 다루고 있는데, 이들은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요구받고 있다고 말하기도 해요.

전승민 : 내가 욕망하는 것과 지금 나의 현실이 다르니, 그걸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 것 같아요. 일치하기 위해선 변화해야 하는데, 변화에 대한 방법론을 자기 계발서에서 찾는 거죠. 기존의 자기 계발서 트렌드가 동기 부여였다면, 최근엔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담, 구체적인 방법론을 보여줘요. 어떻게 보면 자기 계발서도 에세이화한 거예요.

심진경 : 요즘 사람들은 '당신이 가난한 이유는 네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고 자기 계발을 하지 않아서'라고 여겨요. 혐오했던 사람들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라도 계속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고요.

전승민 : 자기 계발이 미시적으로는 일상에 좋은 변화를 줄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큰 시장에 있다는 것은 구조에 대한 사유를 완전히 닫아버린다는 점에서 위험해요. 가난의 이유가 꼭 개인의 문제만이 아닐 수 있는데, 그렇게만 몰아가는 것은 더 이상 구조를 깰 수 없게끔 하는 악순환인 거죠.

책을 추천하는 인플루언서들의 활약은 어떻게 보시나요?

전승민 : 저는 독자들이 인플루언서의 추천에만 기대는 것 같진 않아요. 독서를 계속하는 사람들의 경우 책방에서 추천한 책을 구매하는 경향도 늘었고 책방에서 열리는 북클럽 활동도 활발히 하거든요. 자신의 독서 활동을 SNS에 기록하기도 하죠. 적자를 면치 못하는 책방도 많지만요.

심진경 : 한두 권의 베스트셀러가 나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렇게 독서 인구의 저변이 늘어나는 것이죠. 자기가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꾸준하게 선택할 수 있고 그걸 찾으려 노력하는 인구가 많아진다면 독서 시장도 성장할 수 있고요.



계속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단편 소설의 경향이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심진경 : 김초엽이나 천선란처럼 아무래도 SF적인 상상력에 기반한 소설이 지난해부터 쭉 인기가 있었어요. 몇 년 전부터 퀴어 소설도 많아졌는데, 이 소설들의 주제가 주로 '정체성 찾기' 형태였다면, 지금은 퀴어가 주인공이고 또 자기들만의 언어적 표현 방식을 획득한 것 같아요.

전승민 : 제가 느끼는 경향은 비인간이에요. 동물이 말을 한다거나 유령이 나온다거나, 유령도 인간도 아닌 어떤 독특한 존재가 나오기도 하죠. SF적인 것과는 다른 건데, 저는 기후 위기의 시대에 작가들이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식이 고취되어 그렇다고 봐요.

심진경 : 작가들도 확실히 장편과 단편이라는 장르의 차이를 의식하면서 쓰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총체성의 세계를 다루는 장편은 단면만 보여준다고 해도, 그 안에 세계가 담겨야 한다는 의식이 있는 것 같은데, 단편은 어떤 정지된 순간을 다루면서 인물도 적고 사건도 적어요.

전승민 : 저는 오히려 단편 안에 시대성이 훨씬 강하게 반영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소설에는 굴 양식장을 하던 부부가 갑자기 망하는데, 굴에서 이유를 알 수 없이 계속 모래가 나와요. 그런데 그게 기후 위기 때문인 거거든요. 경장편처럼 짧게 나오는 트렌드가 지금은 회의적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작품들 안에서 동시대적인 흔적들이 굉장히 많이 발견되지 않을까요?

이민진의 『파친코』나 마야 리 랑그바드의 『그 여자는 화가 난다』처럼, 이민자나 해외 입양인 등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 대한 작품도 많이 발표된 한 해였어요.

심진경 : 작년에 출간된 『마이너 필링스』, 올해 나온 『H마트에서 울다』도 이민자의 이야기죠.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인기가 있었어요. 이민 2세대, 3세대가 자기 부모 세대를 추억하거나 역사화하는 과정이라고 보는데, 그 세계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그쪽 문화에 동화된 사람들이 쓰는 거라 훨씬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싶어요.

전승민 :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나 이주 자체를 '디아스포라'라고 하죠. 이 디아스포라 문학이 요즘 유독 유입되는 이유는 초연결 시대 덕분이 아닌가 생각해요. 번역도 시간 차를 두고 왔던 것이 지금은 훨씬 빨라졌을 테니까요. 또, 소설로서 내 얘기를 하겠다라는 욕망은 한국 사회만이 아닌 지구 전반의 현상이잖아요. 나에 대해 말하려면 정체성 얘기를 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가족과 부모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겠죠. 시간이 지날수록 디아스포라는 특이한 타자성이 아니게 될 거예요. 너무 많이들 이동하고 있으니까요. 양상도 달라져서 예전에는 강제 이주, 생계를 위한 이민이었다면, 요즘은 유학도 하나의 디아스포라일 수 있고요.

두 분이 꼽은 올해의 책은 뭔가요?

전승민 : 이미상의 『이중 작가 초롱』이라는 단편집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나게 강력한 소설인데, 올해의 책을 꼽는다면 저는 단연 이 책이에요. 페미니즘 그리고 동시대 문학장의 문제를 날카롭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심진경 : 김멜라의 『제 꿈 꾸세요』를 꼽고 싶어요. 제목을 참 잘 지은 것 같은데, '너희들은 만나본 적은 없겠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나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봐'라는 거잖아요. 그동안 비가시적 존재로 소외됐던 존재들이 등장하는 꿈을 굉장히 유쾌하고 즐겁게 그려나간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덕분에 한 해의 문학장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승민

문학 평론가. 202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및 제19회 대산대학문학상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말과활 강의 <퀴어 문학 제발 퀴어하게 읽기>를 진행하고 있으며 여러 북 토크와 젊은 작가들의 작품 비평을 활발히 하고 있다.

 
*심진경

문학평론가. 1999년 『실천문학』에 「여성성, 육체, 여성적 시 쓰기」를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파라21』, 『문예중앙』, 계간 『자음과모음』의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지은 책으로 『여성, 문학을 가로지르다』, 『한국문학과 섹슈얼리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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