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기 아쉬운 가을, 찰나의 아름다움을 담은 그림책
『단풍 편지』 황진희 번역자 인터뷰
『단풍 편지』는 그런 아름다운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다. 가을이 가 버리기 전에 단풍을 보고 싶은 생쥐와 다람쥐, 직박구리는 함께 탐험을 시작한다. (2022.12.02)
사계절 중 가을은 유독 짧게 느껴진다. 푸르던 나뭇잎들이 하나둘 붉게 색을 바꾸는가 싶으면, 금세 떨어져 버리고, 시원한 가을 바람이 살랑 불어온다 싶으면, 그새 세찬 겨울 바람이 매섭게 들이닥치지요. 어쩌면 가을은 찰나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풍 편지』는 그런 아름다운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다. 가을이 가 버리기 전에 단풍을 보고 싶은 생쥐와 다람쥐, 직박구리는 함께 탐험을 시작한다. 세 친구는 과연 단풍잎을 찾을 수 있을까?
『단풍 편지』를 번역하시게 되고 무척 기뻐하셨어요.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번역자님께 이 책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기쿠치 치키의 작품을 특히 좋아합니다. 『단풍 편지』는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작품이었어요. 작가의 작품 중에 계절을 그린 작품들이 있는데, 작년에 출간된 『눈』이 겨울 그림책이고, 내년 봄에 나올 예정인 『산 고양이 이야기(가제)』는 봄 그림책이거든요. 가을 그림책인 『단풍 편지』도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번역자님은 평소 기쿠치 치키 작가의 많은 작품을 번역해 오셨어요. 평소 번역할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것과 기쿠치 치키 작가 작품과의 연관성이 있다면 함께 들려주세요.
생명을 다룬 이야기나 어린이의 본성이 잘 나타나 있는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기쿠치 치키의 그림책에는 어린이들의 시간과 마음이 잘 그려져 있다고 생각해요.
기쿠치 치키 작가의 작품을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 작가의 작품을 번역할 때에 선생님이 느끼시는 번역자로서의 기쁨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 주세요.
기쿠치 치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의 빗장이 풀리는 기분이 듭니다. 과감한 붓 터치와, 색감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따뜻함에 무장 해제가 되고 맙니다. 마치 물웅덩이를 보면, 저도 모르게 첨벙첨벙 발을 담그는 아이처럼 책장을 넘기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다른 『단풍 편지』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기쿠치 치키 작가의 그림책 소재의 대부분이 아들과 함께한 일상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것이 많습니다. 『단풍 편지』는 제가 두 번째로 만나는 작가의 계절 그림책이었는데, 가을의 단풍을 동물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동물들이 단풍 편지를 반가워하는 이유는 인간이 가을을 즐기는 마음과 사뭇 달랐습니다. 단풍 편지를 보자 생쥐와 다람쥐 직박구리는 같은 말을 합니다.
"와! 단풍편지다. 곧 눈이 오는 거야?"
동물들에게 단풍은 곧 겨울이 온다는 의미였을까요? 이 책은 자연이 아름다운 홋카이도에서 성장기를 보낸 기쿠치 치키만의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자연을 깊이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지요. 기쿠치 치키의 가을입니다.
『단풍 편지』를 번역하시면서 특별히 신경 쓰신 점이나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함께 소개해 주세요.
그림만 보아도 아름다운 책이었습니다. 단풍으로 가득 메운 면지의 발랄함은 가을을 기다리는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해 주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편지'라는 말이 가져다주는 정감은 또 얼마나 아련하고 따뜻한지 모릅니다. 독자들이 '가을이 실어다 주는 편지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열기를 기대했습니다.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은 운율이었습니다. 단풍잎을 찾아 나선 동물들이 빨간색을 발견할 때마다 나오는 대사를 일본어와 같은 리듬으로 살리고 싶었습니다. 단풍잎을 발견하는 기쁨을 노래를 부르듯 표현한 원서의 느낌을 그대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입말로 표현하면 더 살아 있는 표현이 되었겠지만 글자 수를 맞추고 싶은 욕심을 부려 보았습니다.
아!
빨갛다, 빨갛다.
저거야, 저거야.
찾았다.
찾았어.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마지막 문장이었습니다.
ゆきじたく ゆきじたく
직역을 하면 '겨울 채비 겨울 채비'인데, 겨울 채비라는 말은 우리말에서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에요. 풀어서 쓰면 겨울이 오기 전에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한다는 뜻이거든요. '겨울맞이'라고 하기에는 무엇인가를 맞이하는 설렘이 더 느껴지는데, 그건 이 책에서 동물들이 겨울을 맞이하는 기분과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눈이 오면 동물들은 안전한 보금자리를 잃기도 하고, 먹이가 없어지기도 하고, 생명에 위협을 받기도 합니다. '단풍 편지'는 이제 곧 눈이 오는 계절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예고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겨울을 맞을 동물들의 각오가 담긴 문장으로 고쳐야 했어요. 제일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입니다. 원서처럼 똑같은 문장을 두 번 넣고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의미를 전달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아 풀어서 표현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보내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요? 책을 만날 독자들에게 인사를 건네주세요.
『단풍 편지』는 자연이나 계절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그림책입니다. 기쿠치 치키의 그림책에는 속 깊은 자연이 담겨 있거든요. 아름다운 자연의 이면에는 늘 다른 모습이 함께합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붉은 빛이 사라지면 곧 나목의 계절이 옵니다. 모든 잎을 다 떨구고 이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 계절을 이겨 내는 나무의 겨우살이와 혹독함 속에서 자신을 지켜 나가는 동물들의 모습을 그려 보세요. 우리의 삶은 순간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독자 분들이 『단풍 편지』를 읽으며 나뭇가지에 앉아 단풍을 바라보는 다람쥐와 생쥐, 그리고 직박구리의 기분을 상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림책이 주는 힘은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입장이 되어 그 너머를 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이해하는 마음이지요. 단풍은 곧 겨울이 올 거라는 신호입니다. 겨울의 혹독함을 탓하지 않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연의 세계를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겨울이 있어야 봄이 오는 것처럼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2023년에 출간될 기쿠치 치키의 가장 최근작 『친구의 색(가제)』을 함께 작업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그림책이지요. 독자 분들이 기대해 주시기를 바라요.
*황진희 (번역자)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림책 여행을 할 때 가장 마음이 설레고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림책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눌 때 가장 행복하다. '황진희 그림책테라피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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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치 치키> 글그림/<황진희> 역16,200원(10% + 5%)
보내기 아쉬운 가을, 그 찰나의 아름다움을 담은 그림책 사계절 중 가을은 유독 짧게 느껴집니다. 푸르던 나뭇잎들이 하나둘 붉게 색을 바꾸는가 싶으면 금세 떨어져 버리고, 시원한 가을 바람이 살랑 불어온다 싶으면 그새 세찬 겨울 바람이 매섭게 들이닥치지요. 어쩌면 가을은 찰나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