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2022년 바르셀로나 도서전을 가다 (3)
김정하의 스페인 문학 여행 (3) - 말라가, 말라가 어린이 문학상
상상력이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세계를 열어줄 수 있는지, 그리고 문화와 인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되어 우정을 나누고 잊지 못할 경험을 했던 추억이 주인공의 일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채워주었을지 눈앞에 그려보면서 참 따뜻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22.11.29)
<채널예스>에서 '김정하 번역가의 스페인 문학 여행'을 연재합니다. |
'말라가(Málaga)'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위치한 휴양 도시다. 스페인에서 인구 규모 6위의 대도시로 태양의 해변 'Costa del Sol'로 유럽 전역에서 햇빛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내려오는 바닷가 항구 도시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놀랄 만큼 많은 관광객을 볼 수 있었다. 항구 도시이기 때문에 거의 매일 항구에 크루즈가 정박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크루즈가 들어온 날은 거리가 더 많은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것도 눈에 보인다.
아름다운 자연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다양성도 지니고 있는 도시다. 고대 페니키아로부터 시작해서 로마와 이슬람, 기독교 문명의 흔적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여러 모습의 말라가가 있지만, 말라가 하면 처음으로 떠오르는 건 말라가 시청과 아나야 출판사가 함께 진행하는 말라가 어린이 문학상이다. 2010년 첫 수상작을 낸 말라가 어린이 문학상은 어린 독자들의 독서 활동을 증진시키고, 어린이 문학 작가들에게는 그들의 작품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2010년 이후 해마다 좋은 작품과 작가들을 발굴해서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함께 출간된 작품들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말라가 어린이 문학상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난주에 이곳에서 경험했던 문학 산책 이야기를 잠깐 하고 싶다.
11월 11일은 스페인에서 '서점의 날(Día de las Librerías)'로 기념하는 날이라고 한다. 2011년부터 스페인 서점 협회에서 독서를 장려하고 문화를 풍부하게 하기 위한 중심 기능으로서의 서점의 역할을 찾기 위해 해마다 기념하는 날이다.
11일 금요일 오후 5시 30분부터 말라가 공공 도서관 옆 마당에서 모임이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기자 출신의 신인 작가인 라우라 카르네로스(Launa Carneros)가 최근 출간된 본인의 작품에 나오는 말라가의 몇몇 거리를 소개하면서 서점 투어를 함께 하는 형식이었다. 먼저 한 거리에 멈춰서 이 거리가 등장하는 작품속의 한 장면을 읽어주었다.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했던 이 거리의 추억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고 나서 첫 번째로 들른 서점은 '프로테오-프로메테오서점(Librería Proteo-Prometeo)'이었다. 2019년에 50주년을 기념한 이 서점은 말라가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라고 했다. 지난봄에 화재로 많은 부분을 잃었지만 이제 완전히 복구를 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와 함께 서점의 역사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점 한편은 로마 시대의 유적이었고, 또 한쪽에 화재의 참사를 보여주는 그을린 책들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서점의 역사에서 특이했던 점은 초기 서점을 설립한 목적이 프랑코 독재 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모임의 자금을 지원하기 위함이었고, 또 당시 금서로 여겨지던 책들을 구해 와서 필요로 하는 독자들에게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진열장을 이중으로 만들고 금서를 안에 보관하고, 앞에 보이는 책장에는 다른 책들을 진열해 놓았다고 한다. 군사 독재를 경험했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그 다음에 들른 '라유엘라서점(Librería Rayuela)'에서는 어린이 그림책이 많이 보였다.
'앙코라 서점(Librería Ancora)'은 음악과 시, 동양의 책에 집중하고 있는 서점이라고 했는데, 신간보다는 구간 위주로 책을 구비해놓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루세스 서점(Libería Luces)'은 말라가 시내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는 서점이었는데, 마침 그때에 여러 서점인들의 간담회가 열리고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서점을 하는 사람들이 왔다고 소개를 해 주었다. 이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서점인들 모임에 많이 참가를 해서 모두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모든 나라의 서점인들이 하는 고민이 똑같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국 서점만 못 만나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웃으면서 했다.
말라가에 와서 골목골목을 다니며 서점들의 수가 많은 것에 놀랐는데, 이번 서점 투어를 하면서 눈에 띠지 않은 작은 서점들도 많이 있고, 또 각각의 서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대부분 독서 모임과 글쓰기 교실, 문화적 공간으로 서점을 활용하고 있었고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자부심과 사명감도 특별해 보였다. 길가다 보면 서점에 항상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해마다 '올해의 서점'을 선정해서 상을 주고 격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요즘 특색 있는 작은 책방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책을 구해볼 수 있지만, 책들이 예쁘게 진열되어 있는 공간에서 책을 만져보면서 감상할 수 있는 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제 말라가 문학상으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수상작들을 살펴보면 이 상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을 그린 『우리 아파트의 별난 이웃들』(꿈섬, 2020 수상작), 난민 문제를 다룬 『버려진 버스에 사는 내 친구 아일라』(한울림 어린이, 2017년 수상작),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는 『올가의 비밀』(봄볕 출간 예정, 2019년 수상작) 등 여러 수상작들이 이미 한국에 소개 되었다.
오랫동안 스페인의 중요한 문학상을 휩쓸었던 난민 문제부터 시작해서, 이웃과의 연대, 공존에 관한 문제, 최근 들어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된 환경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이 선정되었다.
올해의 수상작은 『경이로운 몬스터(Prodigioso Repelús)』(꿈섬 출간 예정)인데, 어쩌다 책을 먹어보게 되고 너무나 맛이 있어서 계속 책을 찾아 먹게 되는 보통의 몬스터들과는 아주 다른 몬스터의 이야기다. 어렵고 딱딱한 책은 도무지 맛이 없어서 먹을 수가 없다. 어린이 책만 찾아 맛있게 먹는 우리의 몬스터. 책을 구할 수 없어 아이들이 있는 집에 찾아들어가 원하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책을 훔쳐야 하는 몬스터, 그리고 책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반응 등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잃어버린 책을 찾기 위해 아이들은 모험을 펼치고 결국은 몬스터가 아이들에게 잡히게 되는데 도무지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상상력과 이야기에 대한 결말이 놀라운 작품이다.
지난해 수상작 『카르멜로를 구해야해(Hay que salvar a Carmelo)』 가 2022년 화이트 레이븐즈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다.
이 작품에는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하지만 스페인 어린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동방 박사가 등장한다.
동방 박사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동방에서 온 세 박사들을 말하는데, 스페인에서는 동방 박사가 아기 예수를 경배한 날이라고 여겨지는 1월 6일 전날 밤이 동방 박사들이 어린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날이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동방 박사들이 배를 타고 항구를 통해 내리는 모습부터 시작해서 행사가 이루어지고 각 도시마다 대규모 퍼레이드를 하면서 아이들을 직접 만난다. 아이들이 동방 박사의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다. 특히, 항구가 있는 대도시의 경우 동방 박사들이 배에서 내리는 장면부터 연출을 하고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도 하고, 아이들은 직접 나가서 동방 박사들을 맞이하고 만날 수 있다. 곧 다가올 이번 동방박사의 날 행사가 이곳 말라가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이 작품 안에서는 놀랍게도 동방 박사들이 큰 실수를 했다. 발렌틴에게 진짜 돼지를 선물해준 것이다. 발렌틴은 돼지를 부탁하긴 했지만 무게가 100킬로가 넘고 냄새나는 진짜 동물이 아닌 인형을 부탁했었는데. 발렌틴은 동방 박사들에게 편지를 쓴다. 선물이 잘못 왔으니 이걸 가져가시고 인형으로 바꿔서 보내달라고. 좁은 아파트 안에서 진짜 돼지를 키울 수 없고 문제가 너무 많으니 제발 가져가시라고 애원을 하는 편지를 매일매일 보내는데, 어린 아이의 편지 내용을 보면 너무나 순수하고 생생해서 기분 좋은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동방 박사들은 정말 너무나 바쁜가보다. 답은 오지 않고 문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아르헨티나 이민자로 어머니와 함께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넉넉하지 않은 모습, 차가운 이웃들의 반응, '카르멜로'라고 이름을 지어준 돼지를 돌려보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하루하루 정이 들어 위로가 되고 진짜 친구가 된 카르멜로를 구하기 위해 어렵게 모험에 나서는 발렌틴, 그리고 그 모험과 의지 덕분에 마침내 모두 함께 마당이 있는 새로운 집에서 살 수 있게 되고 발렌틴은 동방박사가 이런 결말을 준비해준 것이라 믿고 감사의 편지를 보낸다. 유쾌한 결말로 기쁨을 느끼며 박수를 보내게 되는 작품이다.
말라가 어린이 문학상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2010년 첫 수상작인 『셀바의 자전거(La bicicleta de Selva, Mónica Rodríguez Suárez)』다. 첫 수상작인 만큼 이 상의 의미와 방향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상을 받은 다음해에 스페인에서 중요하게 꼽히는 스페인 가톨릭 위원회 영예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길지 않은 분량에 아름다운 그림과 시적인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오랫동안 긴 여운으로 머릿속에 남아있는 작품이다. 사막이 있는 먼 나라에서 와서 피부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른 아이 셀바. 녹이 슬고 종도 달려있지 않은 자전거를 보고 아이들은 하찮게 생각하지만 셀바의 이 자전거 안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병이든 할아버지에게 사막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셀바를 도와 주인공은 셀바와 함께 병 속에 시를 담아 할아버지에게 사막을 선물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기억은 평생을 잊지 못하고 오래 전 여름의 태양빛처럼 마음 속 깊이 살아 있다. 상상력이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세계를 열어줄 수 있는지, 그리고 문화와 인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되어 우정을 나누고 잊지 못할 경험을 했던 추억이 주인공의 일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채워주었을지 눈앞에 그려보면서 참 따뜻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라가에 와서 지내면서 아름다운 바다와 항구, 로마 유적, 이슬람의 성과 아랍의 흔적이 담긴 미로 같은 골목길, 피카소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피카소 미술관과 피카소 생가 등을 찾아보고 매일 산책을 한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 기억의 한편에 차곡차곡 자리를 잡고 하나씩 꺼내어서 나에게 보여줄 것이다. 해가 저문 저녁 시간에 말라가의 골목을 함께 다니며 들었던 서점의 이야기들 또한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말라가 어린이 문학상은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에도 이어질 일이라 계속 기대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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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어렸을 때부터 동화 속 인물들과 세계를 좋아했다. 스페인 문학을 공부하고 스페인어로 된 어린이책을 읽고 감상하고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틈이 나면 동네를 산책하거나 오르간 연주를 한다. 옮긴 책으로 『도서관을 훔친 아이』, 『난민 소년과 수상한 이웃』, 『유령 요리사』, 『빵을 굽고 싶었던 토끼』, 『나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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