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집 『겨울의 색채』 펴낸 서동욱 인터뷰
『겨울의 색채』 서동욱 작가 인터뷰
『겨울의 색채』는 제목 그대로 겨울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눈과 추위 속에서 별다른 외투도 없이 홑겹 옷 하나만 입고 홀로 서 있"는 사람들, "심지어 춥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소설집에 등장한다. (2022.11.28)
201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서동욱 작가의 첫 소설집이 나왔다. 소설집은 세 편의 단편 소설(「당장 필요한」, 「아껴 쓴다면」, 「크리스마스 택배」)과 한 편의 중편 소설(「겨울의 색채」), 그리고 소설집의 이야기들을 더욱 풍성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겨울의 색채』는 제목 그대로 겨울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눈과 추위 속에서 별다른 외투도 없이 홑겹 옷 하나만 입고 홀로 서 있"는 사람들, "심지어 춥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소설집에 등장한다. 이 겨울, 고독한 인물들에 자리를 내주는 『겨울의 색채』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 보자.
언제 처음으로 소설을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처음의 소설로부터 지금까지 소설을 쓸 수 있도록 한 동력도 이야기해 주세요.
처음으로 소설을 썼을 때는 아마 스물다섯 살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비교적 늦게 글을 쓰기 시작한 편이지요. 이 나이를 기억하는 이유는 제가 군대를 다녀온 이후에 처음으로 글을 써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군대에 있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었는데 그 책이 너무 감명 깊게 다가왔습니다. 나도 이렇게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군 시절에는 일기를 쓰는 정도에 그쳤는데 제대 이후 처음으로 소설이라고 할 만한 글을 써봤습니다. A4용지 세 장 정도 분량의 글이었는데 그때는 현란한 문장을 주로 써서 뭔가 있어 보이고 그럴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면 이불 속에 숨고 싶을 만큼 유치한 글입니다.
하지만 꾸준히 글을 썼던 것은 아닙니다. 한동안은 철학과 사회학 책에 빠져 살았기 때문에 소설 형태의 글보다는 논문처럼 딱딱한 글을 썼습니다. 그러다가 첫사랑과 헤어졌는데 그때의 강렬한 감정이 계기가 되어 제대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고 할까요. 뭐라도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뭔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그런 상태가 있을 때마다 소설을 썼고, 그것이 지금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저는 '진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진짜'라고 해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작가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수백 번 고민해 온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습작을 하던 시절에 그렇지 못한 소설을 많이 봤거든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자신에게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억지로 지어내거나, 이론적으로 그럴싸한 주제로 보이기 위해 자신이 오랫동안 고민해보지 않은 문제를 쓰는 소설들 말입니다. 좋은 소설은 진짜 이야기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군말이 필요 없는 소설들,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건 진짜다'라는 느낌이 드는 소설들, 저는 그런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러자면 우선 정확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점 하나까지 꼭 필요한 말만 정확하게 써야 한다고 말입니다. 소설은 진실된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하고, 읽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필요하지 않은 글자는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그런 태도로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필요한」은 아버지의 부고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되며, 「아껴 쓴다면」에는 친구의 죽음이 예견되지요. 「겨울의 색채」 또한 주인공의 생애 속에서 가장 가까웠던 인물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인물 간의 친소 관계는 다르지만 소설집 속 거의 모든 작품의 배면에 '죽음'이 이야기됩니다. 작가님의 소설에서 이토록 죽음이 중요하게 이야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저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입니다. 생각해 보자면, 기본적으로 소설은 즐거움보다는 슬픔의 감정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모든 것이 즐겁다면 글 같은 걸 쓸 생각을 할 필요가 없거든요. 그냥 즐거운 상태를 즐기면 됩니다. 하지만 인생은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고 슬픔과 낙담, 절망 같은 것들이 반복되어 일어납니다. 그중에서도 죽음은 슬픔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고 글로 써야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어떤 것입니다. 무의식중에 죽음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슬픔이 제가 글을 쓰는 중요한 동력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작품들과 가장 다른 톤을 보여 주는 작품이 「크리스마스 택배」가 아닐까 합니다. 작가님께서 할머니에 대해 가지는 기억 또는 인상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요. 이 작품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들려주세요.
아주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습니다. 부모님들은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모두 일을 하러 나가시고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저는 많은 시간을 할머니의 손에서 컸습니다. 그때는 할머니의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크고 나서 생각해 보니 할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맹목적인 사랑을 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위해 사는 것 같은데, 마치 자신의 인생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오로지 손자만을 위해 사셨으니까요. 저에게 할머니는 추운 겨울을 나게 해 주는 집 같은 것입니다. 밖에서 아무리 고된 추위를 겪고 와도 그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따뜻하게 있을 수 있는 그런 집 말입니다. 모든 슬픔과 힘듦을 잊고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이죠.
이 소설은 한겨울 눈이 내리고 있을 때 썼습니다. 책을 읽다가 잠시 창밖을 바라봤는데 눈이 많이 쌓여 있었죠. 사람들이 눈 속에 빠진 발을 꺼내며 느리게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혼자 있을 때 저렇게 눈이 내리면 어쩌지 하고 말입니다. 할머니가 눈 속에 갇히는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것이 이 소설이 되었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할머니보다는 '나'가 눈에 갇히게 되지만요.
이번 소설집 속 모든 인물에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계시겠지만, 유독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과연 누구일까요? 저는 뜬금없지만 「아껴 쓴다면」의 청설모가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워서 기억에 남습니다.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벌어진 일 앞에서 무력하게 있을 수밖에 없는 청설모의 모습이 소설집 속 인물들의 모습과도 닮았다고 느껴졌고요.
「아껴 쓴다면」에서의 '나'가 특히 애착이 갑니다. 친구가 죽어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모습 때문에요. 저는 항상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그 앞에서 도무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는 인물들에게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이 소설 속의 '나'처럼요. 그런 인물들을 보면 이상하게도 애착이 갑니다. 아마 때때로 저 자신이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웃음)
작가님의 소설은 읽고 나서 서사의 전개나 결말 등 그 내용으로가 아니라 특정한 장면으로 기억된다고 느껴집니다. 오은 시인 또한 추천사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며 『겨울의 색채』를 "읽는 일은 적극적으로 장면에 가담하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독자들에게 이 소설집이 어떤 '장면'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지요?
저는 단편 소설의 묘미는 읽는 사람의 인상에 강렬하게 각인되는 장면들과 분위기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서사의 전개나 이야기 자체도 물론 소설의 재밌는 요소지만, 아무래도 단편 소설에서는 인상적인 장면, 장면들을 더 선호하는 쪽입니다. 생각건대 살면서 인상 깊게 각인된 장면들이 소설을 쓸 때 무의식중에 쓰이는 것 같습니다. 그 장면들은 각각 고유의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각각의 장면마다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맞는 정서들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정서는 차갑고 삭막한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온화하고 따뜻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겨울의 색채』 속 소설들은 제목처럼 겨울을 닮은 소설집입니다. 건조하고 냉랭해 보이지만 온기를 품고 있지요. 앞으로는 과연 어떤 소설을 쓰게 되실지 궁금합니다.
'건조하고 냉랭해 보이지만 온기를 품고 있다'고 표현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원하는 것이 딱 그런 것이거든요. 차갑고 건조해 보이지만, 그 안에 어쩔 수 없는 따뜻함이 있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아니, 그런 것을 떠나서 사실 그런 식으로 사고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저의 천성인 것 같습니다. 글은 그 천성이 밖으로 드러났을 뿐인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소설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태도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써 왔던 글들을 보니 지금처럼 '알고 보니 따뜻한' 인물만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도 따뜻한 인물들도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웃음)
*서동욱 1985년 출생. 2019년 <조선일보>에 「당장 필요한」이 당선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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