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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도시 탐구] 철도와 국수의 상관관계

곽재식의 도시 탐구 (1) -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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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음식으로 대전에서 유명한 것은 빵과 국수다. 둘 다 밀가루 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발달해 온 과정은 사뭇 다르다. (2022.11.22)


곽재식 작가가 들려주는 우리나라 도시에 숨겨진 과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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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음식으로 대전에서 유명한 것은 빵과 국수다. 둘 다 밀가루 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발달해 온 과정은 사뭇 다르다. 요즘은 유명한 한 빵집이 그 무엇보다도 대전의 뚜렷한 상징처럼 자리 잡은 느낌이다. 기차역에 자리한 이 빵집의 분점에 가 보면 "대전에 왔다 가는데, 그래도 이 빵은 기념으로 사 가야지", "유명한 대전의 맛이라고 하니 가족에게도 맛을 보여 주어야지"라면서 모여든 사람들이 언제나 줄을 서서 빵을 사고 있다.

내가 대전에서 살던 시절에도 빵이 유명하기는 했다. 특히, 튀김 소보로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 있다. 달콤한 빵이란 것이 원래 유럽에서 발달한 음식인데, 일본에서 발전한 소보로빵이라는 형태가 한국에 들어오고, 그것을 다시 튀겨서 튀김 소보로로 만든 제품이 대전에서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여러 지역에서 들어온 다양한 문화가 어울리는 가운데, 새로운 상품이 탄생해 정착하는 신생 도시 대전의 특성을 나타내기에 어울리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2000년대 초 무렵만 해도 빵이 대전의 대표 음식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누가 대전에 왔을 때 일부러 튀김 소보로빵을 맛보여 주어야 한다거나, 그 빵을 사서 가족들에게 맛보라고 준다는 생각도 그렇게 널리 퍼져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때는 대전 음식이라고 하면 가락국수, 칼국수 같은 다른 밀가루 음식이 더 친숙했다. 대전의 어떤 칼국수 집은 전국 어느 집 못지않게 잘한다거나 어떤 거리의 칼국수 집들은 어디를 가든 평균 이상은 된다는 생각으로, 칼국수를 대전의 자랑거리처럼 여겼던 기억이다. 빵이 워낙 유명해졌기에 조금 가려져서 그렇지, 지금도 대전에는 맛있는 칼국수 가게가 여러 군데 있고, 대전 시민들은 그 맛을 친근하게 생각한다.

대전의 국수가 발전한 것은 아무래도 철도 교통의 발달과 함께 살펴보아야 할 듯하다. 애초에 대전이라는 도시가 탄생한 이유부터가 철도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전역의 가락국수가 칼국수 이상으로 대전하면 바로 떠올릴 만한 음식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전은 원래 '한밭', 즉 넓은 밭이 있는 터라는 옛 지명을 한자어로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전은 아무것도 없는 넓은 빈터라는 뜻에 가까운 이름이다. 그런데 20세기에 도시가 급성장하면서 엉뚱하게도 '빈터라는 의미의 지역이 인근의 다른 어느 이름을 가진 동네보다도 많은 인구가 모여 살고 건물이 가장 가득 들어찬 곳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대전이 급격히 발전하게 된 계기는 1914년 호남선의 완공이다. 서울에서 호남 지방으로 갈 수 있는 호남선 철도는 애초에 대전에서 경부선과 갈라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남쪽으로 가는 사람이면 누구든 일단 대전까지 왔다가 대전에서 각각 호남이나 영남으로 나뉘어 갔다. 반대로 남부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사람들도 어디서 출발하건 항상 대전에 모여서 서울로 가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대전에서 기차를 갈아타는 사람도 많았다.

자동차도 별로 없었고 비행기도 운항하지 않던 20세기 초에는 육지에서 기차만 한 교통수단이 없었다. 곧 대전은 전국의 사람과 물자가 지나다니는 지역으로 변했다. 자연히 여러 가지 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고, 무엇보다 철도와 기차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인력이 모여들며 도시가 커졌다. 고속 철도 시대인 지금도 한국 철도 공사가 대전역에 바로 인접해 있어서, 대전은 여전히 철도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대전역 인근에는 소제동이라고 하는 20세기 초에 생긴 동네가 있는데, 이 동네가 있던 구역은 원래 소제호라고 하는 호수였다. 대전역 인근에 철도 관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모여들다 보니까, 호수 하나를 메워서 사람 사는 동네를 건설한 것이다. 지금도 이 지역은 '철도관사촌'이라고 하여, 지은 지 100년 가까이 된 집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냥 철도 일을 하던 사람들이 살던 동네라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이 있는 곳은 아니며, 곧 재개발이 진행되면 상당 부분 사라지게 될 거라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전통 한옥도 아니고 요즘 짓는 집도 아닌, 옛 유행에 맞춰 지은 그 시대의 독특한 집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생각해 보면 대전만큼 철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도시는 한국에 또 없는 것 같다. 대전역 인근에 누구나 길 가다 들를 수 있는 철도 역사 구역이나 철도 전시관 같은 곳이 하나쯤 커다란 규모로 갖추어져 있어도 재미있지 않을까? 옛날에 사용하던 증기 기관차부터 기술의 발전에 따라 도입되고 또, 사라진 여러 디젤 엔진 기관차, 전동차, 비둘기호, 통일호 같은 낡은 옛날 객차와 그 시대의 철도 식당칸, 침대칸 등이 가득 차례대로 늘어서 있어서 한참 돌아볼 수 있는 넓은 곳이 있다면 대전의 역사에 잘 어울릴 거라고 상상해 본다.

다양한 철도 신호기, 옛날 철도 레일, 노선 변경을 위한 장치, 옛날 철도 근처에 설치되었던 광고판, 표지판 등을 같이 세워 두어도 재미있을 것이다. 비슷한 박물관이 경기도 의왕시에 만들어져 있기는 한데, 규모도 크지 않은 편이고, 찾아가기도 조금은 애매한 위치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 철도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대전의 역 가까운 곳에 무엇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는 자주 한다.

지금은 호남선과 경부선이 분리되어 운영되는 노선이 많지만, 과거에는 대전역에서 호남선과 경부선을 갈아타거나 완행열차와 급행열차를 갈아타는 일이 굉장히 빈번했다. 이때 잠깐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대전역 가락국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전역 가락국수는 기차 여행의 재미처럼 자리 잡아서, 대전역에서 짬이 나면 가락국수 한 그릇은 꼭 먹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로 유명해졌다. 기차 여행 문화가 좀 더 빠르고 틈이 없게 바뀌면서 인기가 쇠락하기 전까지는, 기차 여행하면 가장 많은 사람이 떠올리던 별미 두 가지가 천안 호두과자와 대전 가락국수였다.



나는 대전역 가락국수가 대전 시내의 칼국수와 비슷한 계통의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가락국수는 일본식 우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음식으로, 어떻게 보면 한국식 우동의 한 가지 형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외에서 수입되어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가던 밀가루를 확보하기 좋은 곳, 육수를 내기 위해 사용하는 멸치와 같은 해산물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곳에서 값싸게 만들 수 있는 부담 없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칼국수와 가락국수가 닮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넘겨짚자면 전국으로 유통되는 이런 식재료가 철도를 통해서 퍼져 나가는 가운데 철도의 중심지 대전에서 발전한 음식이 칼국수, 가락국수 같은 밀가루 국수 음식이라고 짐작해 볼 수도 있을 듯싶다.

대학 시절 나는 가끔 골목 구석에 있는 어느 평범한 대전의 칼국수 가게에서 칼국수를 사 먹었다. 맨 처음 먹을 때는 상당히 놀랐다. 일단, 가격이 2,000원인가 밖에 되지 않아 당시로서는 무척 싼값이었는데, 나온 칼국수를 보니 별다른 고명이랄 것 없이 그냥 뽀얀 국물에 국수가 있고 깨가 조금 뿌려진 것이 전부였다. 이래서 값이 그렇게 쌌구나 싶었는데, 먹어 보니 막상 맛은 무척 훌륭했다. 무엇보다 양이 정말 많았다. 그렇게 값싼 음식이었는데도 다 먹고 나니 배가 빵빵해질 정도였다. 한번은 같이 칼국수를 먹으러 간 선배가 도저히 다 먹지를 못해 남겼던 기억도 난다. 이후로 돈이 없는 대학생, 대학원생 살림에 무엇인가 맛있는 것을 넉넉히 먹고 싶을 때 그 싼 칼국수 가게를 종종 찾아갔다.

칼국수나 가락국수 육수를 내기 위해 널리 사용되는 재료인 멸치 역시 철도와 비슷하게 20세기에 들어온 후 한국인들에게 널리 퍼진 식재료다. 현재 어류·생선 계통의 식재료 중에서 한국인들 사이에 가장 소비량이 많은 상품은 멸치인데, 정작 250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한국 사람들은 생각보다 멸치를 많이 먹지 않았다. 물론, 어촌의 어민들 사이에는 멸치가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멸치는 너무 작아서 잡기도 불편했고, 잡은 후에도 쉽게 썩어서 유통하기에 번거로웠다. 그 때문에 과거에는 멸치 비슷한 용도로 멸치보다는 밴댕이를 더 많이 사용하던 시대도 있었던 듯하다.

그러다 20세기 이후에 기술이 발달하여 멸치를 대량으로 잡을 수 있는 그물과 배, 멸치를 손쉽게 말려서 포장·유통할 수 있는 기계 설비들이 개발되었다. 그러면서 멸치는 불과 몇십 년 만에 한국인의 입맛 속에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중요한 식재료로 뚜렷이 자리 잡았다.

칼국수나 가락국수 육수를 우려낼 때 멸치를 사용하면 특히 맛있는 까닭은 멸치 몸속에 포함된 이노신산 계통의 물질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이노신산은 묘한 맛을 끌어내 음식의 인기를 높이기에 좋은 물질이다. 그래서 시판 조미료 제품에도 이노신산을 반응시켜 가루 형태로 만든 물질들이 자주 투입된다.

멸치를 우려내기 전에 적당한 온도에서 열을 가하면, 멸치 몸속에 있는 단백질이 열에 의해 파괴되고, 파괴된 부분 부분이 이노신산과 반응하여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낼 것이다. 아마도 그 때문에 국물을 우려내기 전에 멸치를 볶거나 구워서 사용하면 더욱 다채롭고 깊은 맛과 향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렇다면 대전의 훌륭한 가락국수 가게, 칼국수 가게에서는 멸치의 이노신산이 일으키는 화학 반응을 절묘하게 조절해서 멋진 맛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풀이해 볼 수도 있겠다. 내가 좋아하던, 고명 하나 없던 그 칼국수도 사실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국물 속에 이노신산이 원료가 되어 여러 다른 단백질, 펩타이드, 아미노산, 탄수화물, 당분이 함께 반응해서 만들어진 다양한 물질이 제 역할을 하도록 딱 맞춰 녹아 있었기에 그렇게 맛있었던 거라고 짐작해 본다.



곽재식의 도시 탐구
곽재식의 도시 탐구
곽재식 저
아라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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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곽재식(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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