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언어의 붕괴는 한 사회의 위험을 알리는 조짐 (G. 이라영 예술 사회학자)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08회) 『말을 부수는 말』
문해력이라는 건 사회의 다양성 문제라고 보거든요. 뒤섞여야지 그만큼 타인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죠. (2022.11.17)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황정은입니다.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된 시기에 저는 앤 카슨의 『녹스』를 조금씩 읽었습니다. 단 한 장의 긴 종이를 접고 접어 만든 이 책에는 페이지 수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고정한 흔적과 그 뒷면들, 말의 의미와 용례를 베껴 쓴 메모들, 오려 붙이고 뜯어내고 잘라내고 지워지고 덧붙인 말들, 남은 것들, 남긴 것들의 흔적으로 가득한 이 책은 앤 카슨이 오빠인 마이클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든 비망록입니다. 말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말의 가식과 위선, 거짓을 꼬집는 데 주로 사용하지만 말은 사실 만드는 게 맞죠. 예컨대 기록 노동자 희정 작가가 2세의 질환 직업병 문제를 다룬 책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노동자가 아픈 아이를 낳았다'라고 쓴 문장을 '태어난 아이는 아팠다'라고 고친 과정이 언급됩니다.
아픈 아이를 낳은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릴 수도 있는 말을 지우고 다른 말을 생각하기. '낳았다'와 '아팠다' 사이에서 아픈 사람과 아플 사람을 생각하며 고민하기. 이것이 말을 만드는 일이며 이런 노력은 문장이나 말을 수사적으로 아름답게 쓰려는 노력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려는 노력이며 몇 번이고 반복해서 생각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기어코 하지 않는 일이기도 하죠. 시민들이 잠시 위탁한 권력을 자기가 본래 가지고 태어난 것,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사코 하지 않는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질문 앞에 바로 서는 일. 책임을 묻는 질문 앞에 기어코 서지 않으려는 권력자들 덕분에 저는 요즘 앤 카슨의 책에서 만난 짧은 질문을 자주 생각합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 왜 얼굴에 붉은 빛을 띠는가.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예술과 정치, 그리고 먹을 것을 고민하는 예술 사회학 연구자를 모셨습니다. 최근에 권력의 말을 부수는 저항의 말이 더 많이 울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 『말을 부수는 말』을 쓰셨습니다. 이라영 작가님을 모셨어요.
황정은 : 작가님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라영 : 저는 글 쓰는 이라영입니다. 주로 비평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대로 주로 예술과 정치, 그리고 먹을 것을 많이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황정은 : 반갑습니다. 저는 재작년에 『타락한 저항』으로 이라영 작가님의 책을 처음 접했거든요. 그 책이 한국 사회의 반지성주의를 생각하는 책이었죠. 「진지충의 탄생」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책이었고. 그 책을 너무너무 재밌게 읽어서 그 뒤로 계속 이라영 작가님의 책을 사서 모으면서 계속 읽고 있는데 아직 다 읽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신간 『말을 부수는 말』을 갑자기 출간을 해주셔서 제가 다 부자가 된 기분인데요. 작가님은 어떠세요?
이라영 : 갑자기 너무 뿌듯하고 감사하네요. 황정은 작가님한테 이렇게 막 쏟아지는 말들을 들으니까 너무 기쁩니다. 저도 황정은 작가님 만나서 되게 반갑거든요. 사실 『디디의 우산』을 들고 와서 사인을 받아야 되나 망설였는데 소심해서 그렇게는 못 했어요.(웃음)
황정은 : 여러 권의 책을 내셨잖아요. 이번에는 좀 다른가요, 어때요?
이라영 : 『타락한 저항』 말씀하셨는데 (이번 책이) 『타락한 저항』과 궤를 같이 하는 사회 비평이라고 볼 수 있어요. 『타락한 저항』에 보면 제가 '화두의 지도'라는 표현을 쓰거든요. 화두의 지도를 찾는 작업을 해야 된다, 그 말에서 확장된 게 어떻게 보면 이 책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황정은 :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타락한 저항』이 더 많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다만, 뭐랄까, 『타락한 저항』보다 조금 더 화가 나셨다는 느낌이 좀 들었거든요. 약간 화가 더 나셨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래서 이 책을 묶을 때 또 뭔가 달라진 점이 있었나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습니다.
이라영 : 세상이 저를 좀 더 화가 나게 만들었던 게 아닐까...
황정은 : 그러니까요. (웃음)
황정은 : 『말을 부수는 말』은 스물한 개의 화두로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권력의 말과 저항의 말을 생각하는 책입니다. 고통, 노동, 시간, 색깔, 망언, 증언, 세대, 퀴어, 혐오, 여성, 동물, 몸, 권력 등등의 화두가 이어지는데요. 수많은 말 중에서 이 말들을 고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라영 : 정확히 말하면 제가 말을 골랐다기보다는 이어졌어요. 하나의 화두가 시작이 되면 계속 이어졌어요. 고통이라는 말에서 시작을 하면 노동의 고통을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노동과 공부의 어떤 위계 이런 것들을 생각을 하면서, 점점 노동을 생각하면 그 노동자들의 시간, 그러면서 또, 시간을 생각하다 보면 여성들의 나이 듦, 시간에도 젠더 문제가 섞여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이 계속 이어졌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예를 들어 증언이라고 하면 증언을 망치려는 망언들, 그리고 증언을 들여다보니까 광주 여성들의 증언을 별도로 더 제가 들여다보게 됐고, 처음에는 증언 안에 그 꼭지가 들어있었는데 나중에 광주 여성 증언을 따로 빼고,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졌어요.
황정은 : 릴레이 같은 형식인 거네요.
이라영 : 네, 맞아요.
황정은 : 그리고 그 릴레이를 추동하게 한 것은 결국은 우리가 속한 사회다, 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 책은 스물한 개의 말을 매개 삼아서 일상에서의 말하기와 말하는 권력을 생각한 과정이기도 한데요. 스물한 번의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 실린 글들은 어떻게 쓰기 시작했는지, 또 이렇게 말에 관심을 둔 이유도 궁금합니다.
이라영 : 일단 스물한 개의 질문이라고 표현해 주셔서 제가 굉장히 반갑고요. 저는 어떤 면에서 글쓰기는 '질문하기'라고 생각을 해요. 질문의 동지를 찾는다. 사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살기가 쉽지는 않거든요. 가깝다고 해서 생각이 가까운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까 글을 쓰면서 화두를 던지면서 나와 같은 질문의 동지를 만나고 싶다는 어떤 열망, 사실 그런 것들이 글을 계속 쓰게 만들기도 하고요. 이런 언어들에 대해서 늘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가볍게 얘기하면 불만. 나는 저런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데?
예를 들면 저도 얼마간의 유학 생활을 했는데 주변에서 '가난한 유학생'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되게 이상했거든요. 저는 유학 오기 전에도 원래 가난했는데, 약간 생각도 있고. 한편으로는 가난한 유학생이라는 표현 자체가 가난이 위협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찬가지로 창작의 고통(에 대해서도) 왜 창작자들이 자기의 고통을 자꾸 얘기하는데 시간을 더 할애하는 걸까, 고통받고 있는데, 말할 통로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더 많은 말을 하지 않을까, 이런 불만. 그런 관용적인 비유를 좀 물고 늘어지는 작업을 하고 싶었죠.
황정은 : 책에 실린 「권력」 글에서 이른바 보수 정치계가 극단적인 말과 대립 구도를 이용해서 사회의 전선을 긋고 지지자를 결속시키는 정치 양상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최근 그 보수 정치계의 전선은 '빨갱이'와 '여성'인 것 같은데, 이들의 전쟁에서 언어라는 무기가 중요해서 특히 젊은 세대 남성을 결집시키기 위해서 '밈(meme)'이라는 무기를 사용하고 있고, 또, "SNS는 이 무기를 휘두르기에 최적화된 영토다"라는 이야기도 하셨어요. 밈은 어떻게 정치적 무기가 될까요? 일단은 '밈'이라는 게 대체 뭔가요?
이라영 : '밈'이 뭔지 우리가 얘기를 들어가면...
황정은 : 되게 광범위하더라고요.(웃음)
이라영 : 네, 도킨스까지 가고, 그렇게 할 수는 없는데...(웃음)
황정은 : 근데 그게 뭔지는 어렴풋이 이미지로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라영 : 네, 우리가 바로 그렇게 다 알고 있는데...
황정은 : 짤방 이런 걸로 돌아다니는 이미지라든지...
이라영 : 네, 그렇게도 쓰이고. 정치인들이 나름 자기 딴에는 젊은 세대와 소통한다는 방식으로 SNS에서 그런 말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그렇게 하는데. 사실 트럼프가 트위터를 이용하는 방식도 약간 비슷하죠. 공식 문서를 통해서 발표해야 되는 사안을 트위터를 통해서 발표하잖아요.
황정은 : 그랬죠.
이라영 :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건데. 그게 이번에 우리 대선에서도 봤잖아요. 여성 가족부 폐지, 병사 월급 200만 원, 이런 식으로 문장이 형성이 되지 않아요. 주어와 서술어가 모두 탈락 하고 그냥 딱 목적어만 있는 그런 말들. 저는 언어가 붕괴된다는 건 한 사회의 위험을 알리는 어떤 조짐이라고 보거든요. 너무 과장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솔직히 저는 이게 과장이 아니라는 어떤 믿음이 있어요. 예를 들면 지금 마포구청에서 작은 도서관 9곳을 모두 독서실로 바꾸고, 작은 도서관을 폐지한다고 하잖아요. 저는 이런 것들이 하나의 어떤 징후라고 생각해요.
황정은 : 일관된 징후죠.
이라영 : 네. 어린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빌려보고 이런 것들이 미치는 영향을 사소하게 생각하는 거잖아요. 참 걱정이에요. 조금씩 조금씩 아이들은 다양한 언어를 잃어가게 될 거고. 저는 문해력이라는 건 사회의 다양성 문제라고 보거든요. 뒤섞여야지 우리가 그만큼 타인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고, 예를 들면 단순하게는 반려동물하고 사는 사람들이 울음소리 하나도 더 잘 알 수 있고 할머니를 경험한다거나 갓난아이를 경험한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있잖아요. 그런데 예를 들면 'LH 아파트 우리 동네에 들어오지 마' 이런 것들은 섞이지 않겠다는 거잖아요. 계층이 섞이지 않고 세대가 섞이지 않고 인종이 섞이지 않는데 어떻게 언어가 섞일 수가 있고, 그럼 당연히 문해력이 떨어지고 알아듣는 말만 알아듣고, 그런 것들이 굉장히 폐쇄적인 사회를 만들고. SNS에서도 자기가 사실은 폐쇄적인 사회에 있는 줄을 모르고 자기 말에 좋아요 누르는 사람들에게만 도취하고 듣기 싫으면 차단해버리고, 이런 것들을 지금 정치인들이 하고 있는 거잖아요. 좋아요 정치, 팬덤 정치.
황정은 : 그렇습니다.
*이라영 예술 사회학 연구자. 모든 종류의 예술을 사랑한다. 미술과 예술 경영을 공부한 후 문화 기획과 문화 교육 분야에서 일했다. 개별의 작품보다 작품을 둘러싼 사회 구조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프랑스에서 예술 사회학을 공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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