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무뎌진 마음에 보내는 책 편지"
에세이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
지금은 여유가 좀 생겼어요. 내 마음을 솔직하게 써내려갔으니 담담히 보여드리자는 마음이에요. (2022.11.14)
책을 너무 사랑해서 서점 주인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책과 멀어졌다고 김소영 작가는 고백한다. 작은 독립서점이었던 책발전소가 점점 성장하면서 그는 낭만보다 효율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온종일 책에 둘러싸여 지내면서도 책 속에 빠져들 수는 없었던 지난 날, 김소영 작가는 책편지를 쓰며 잊었던 감정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5년만에 두 번째 책이 출간됐어요. 책발전소에서 제작한 첫 번째 책이기도 하죠.
『진작 할 걸 그랬어』가 나왔을 때도 <월간 채널예스>와 인터뷰를 했죠. 그땐 '사람들이 이 책을 어떻게 봐주실까'라는 설렘과 걱정으로 무척 떨렸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여유가 좀 생겼어요. 내 마음을 솔직하게 써내려갔으니 담담히 보여드리자는 마음이에요.
책발전소 북클럽 서비스에서 보낸 책편지의 일부가 책으로 묶였어요.
책을 다정하게 권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북클럽 멤버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이후에 편지를 따로 구하고 싶다는 요청이 더러 있었지만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죠. 그럼에도 마음 한 편에는 더 많은 분들께 이 편지를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는데, 실현되어서 기뻐요. 그동안 쓴 편지들을 모아서 퇴고한 경험도 의미가 있었죠. 일이 너무 바쁜 달에는 아쉬움을 남긴 채로 편지를 보낼 수밖에 없어서 한 번쯤 다시 써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거든요.
책을 소개하는 책은 정말 많지만, 편지 형식이라 색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편지에 소개된 책을 꼭 읽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만한 글을 보내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책의 줄거리를 풀어놓기 보다는 책을 읽고 일어난 내 안의 감정 변화에 초점을 맞춰서 편지를 쓰려고 노력했죠. 만약 독후감을 매달 5장씩 써야 했다면 중간에 그만뒀을 텐데요.(웃음) 편지라고 생각하니 어디서도 털어놓지 않았던 나의 속내를 드러내게 되더라고요. 시간을 내서 편지를 읽어주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책발전소 북클럽의 멤버들은 주로 어떤 성향의 독자들인가요?
정말 다양해요. 처음 북클럽을 기획할 때는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비스를 신청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북클럽 리뷰를 보면 그렇지 않더라고요. 가장 뿌듯한 건 "여태까지 책을 거의 안 읽고 살았는데, 책발전소 북클럽 덕분에 태어나서 가장 많은 책을 읽은 한 해가 됐다"는 말을 들을 때예요. 누군가를 '읽는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니까요.
에필로그에서 '쓸모 있는 일들만 골라 열심히 해 온 몇 년간, 저는 직설적이고 효율적인 인간으로 변해갔습니다'라고 했어요. 이번 책은 '원래 이렇지 않았던 나를 다시 불러온 작업'이었다고요. 어떤 의미인가요?
첫 책을 펴낸 5년 전에 비해 경험도 많이 쌓였고, 충분히 성숙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유독 글을 쓰기가 점점 더 어려웠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5년 전에는 방송국을 퇴사한 직후라 하루의 대부분을 글 쓰는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었더라고요. 지금은 가정과 회사에서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내다 보니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죠. 때로는 절망감을 느낀 적도 있었어요. '나는 앞으로 책을 못 쓰겠구나. 작가로서의 삶은 끝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편지를 쓰면서 조금씩 달라졌어요. 업무의 일환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2년쯤 하다 보니 어느덧 다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거든요.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라는 제목이 떠오르네요.
정말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그동안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 점점 삭막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는데, 북클럽 멤버들에게 보낼 책을 고르고 편지를 쓸 때만큼은 과거의 내가 찾아와 말을 거는 느낌이었죠. 사색을 좋아하고, 고요한 시간 속에서 힘을 얻고, 책을 읽을 때 마냥 행복했던 본래의 제 모습이요.
가장 좋아했던 취미가 일이 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나요?
독서가 행복이자 휴식이었던 순간이 문득 그립긴 해요. 그래서 여행갈 때 제일 설레죠. 캐리어에 책을 가득 넣고 떠나서 잔뜩 읽고 돌아오거든요. 그때만큼은 일을 떠나서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을 가지고 가요. 지금은 유일하게 여행을 떠났을 때만 자기 전에도 책을 읽죠. 평소에는 독서가 휴식이 되는 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오랜만에 그 느낌을 받으면 너무 행복해요.
김겨울 작가의 『책의 말들』을 소개하며, 책을 라볶이에 대입한 편지가 재미있었어요. 독서의 즐거움을 알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졌죠.
서점을 운영하며 가장 놀란 건, 독서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저는 월급을 받으면 꼭 책을 사는 사람이라 다들 그런 줄 알았거든요. 책에 있어서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도 많죠. '사놓고 못 읽은 책이 많다'거나 '언젠가 산 책이 재미없었다'는 이유로 책을 사지 않는 것처럼요. 보통 1만 5천 원짜리 물건을 샀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에 더 좋은 걸 찾아야겠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책이 별로면 굉장히 원통해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웃음) 저는 책을 대할 때 라볶이를 먹는 것처럼 가벼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제든 마음이 동할 때 읽고, 재미가 없으면 얼마든지 책장을 닫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도 되죠.
책을 읽으며, 5년 전에 비해 무척 유연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디서 비롯된 변화일까요?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보통 안정적으로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불안할 거라는 시각이 많은데요. 저는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지금 가장 유연하고 단단해요. 물론 아나운서로 일할 때도 보람 있고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이 일의 의미가 뭘까? 내 삶은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20대의 대부분을 써버렸죠. 지금은 무슨 일이 생기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유가 있어서 훨씬 더 담대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많다는 걸 이제 아는 나이가 되기도 했고요.(웃음)
2020년, 한 매체와 나눈 인터뷰에서 "3년 뒤에는 책발전소가 없어질 수도 있지만,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면 그 생존기 자체로 브랜드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그 말이 실현된 것 같아요.
여전히 서점은 내년에도 문을 닫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꾸며서는 만들 수 없는 브랜드의 정체성이 생기는 것 같고요. 한 자리에서 책 파는 공간을 묵묵히 운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독자 분들이 귀하게 봐주시는 것 같거든요. 아마 책발전소를 멀리서 바라보는 분들은 제가 큰 계획 하에 사업을 운영한다고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독립서점을 운영하다가 책과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온라인숍 '브론테'를 열고, 북클럽 서비스까지 운영한다고요. 하지만 어느 하나 계획 없이 시작한 일이었어요. 여기까지 올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죠. 요즘은 사업이 잘 되는 것보다 지속하는 게 진짜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독립서점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반적인 경제 상식으로 보면 서점은 쉬운 사업이 아니에요. 시장의 규모가 작고 '책'이라는 상품이 가진 특별함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더 공평한 시장이기도 해요. 큰 자본이 투입되거나, 감각이 세련되고 유명한 누군가가 시작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결국, 이 일은 책을 향한 애정이 있어야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책을 사랑하는 마음만이 이 일을 계속 하게 만들죠.
매달 누군가에게 추천할 책을 선정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북클럽의 책을 선정할 때 '의미'와 '재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나요?
6:4의 비중으로 의미와 재미에 무게를 두는 것 같아요. 사실, 독서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책을 추천할 필요가 없어요. 자기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너무 잘 아니까요.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도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책을 추천할 때는 재미를 결코 빼놓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아나운서로 일했던 경험도 책을 선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 같고요. 뉴스는 누가 들어도 무슨 말인지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전달해야 하잖아요. 이런 기준이 있기 때문에 제가 정말 좋아하지만, 북클럽 도서로는 선정할 수 없는 책들도 있죠.
이 책은 어떤 분들에게 추천할 수 있을까요?
책 읽는 순간만큼은 평온해지고 싶은 분들, 바쁜 일상으로 저처럼 마음이 무뎌진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독자에게 계속 힘내라고 말하는 책은 잘 읽지 않아요. 그걸로 힘이 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타인의 이야기를 읽으면 엉킨 마음이 풀리고, 위로를 받죠. 여기 소개된 책을 꼭 읽지 않아도 괜찮아요. 누군가의 이야기로 위로 받고 싶은 분들께 저의 책편지를 보내드리고 싶어요.
*김소영 MBC 아나운서로 5년간 일하다가 큐레이션 서점 책발전소를 내고 5년째 운영 중이다.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커머스 '브론테(BRONTE)'를 운영하며 종이책 구독 서비스 '책발전소 북클럽'의 대표 북큐레이터로 매달 책을 권하는 편지를 보낸다. 『진작할 걸 그랬어』를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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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아나운서를 그만둔 후 ‘당인리책발전소’ 서점 주인으로, 그리고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찾은 김소영. 책과 문장의 힘을 믿는 그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언제나 책이 곁에서 말을 걸어준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책과 데면데면해지면서 책 속 문장들을 통해 자신의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