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제 작품을 좋아하니까요 (G. 김화진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07회) 『나주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 좋다"고 말하는, 첫 번째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를 출간하신 김화진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2.11.10)
나는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어떻게든 완성이 되는 형태여야 하겠지만. 완성처럼 보이는 미완성이어야 하겠지만.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이어지지 않은 것들은 끊어지지도 않으니까. 완성보다 미완성이 더 오래 지속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종결되지 않은 것들이 내 주변을 행성처럼 돌고 있는 편이 더 행복하다고. 하루의 끝에 이불을 덮고 누워 오늘은 어떤 이름이 붙은 미완의 행성을 떠올려볼까... 그런 고민을 하고 누운 자리에서 하염없이 하염없이 과거의 사람들을 곱씹고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디에 살까 상상하는 일이 좋았다. 여러 생을 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김화진 작가님의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에 수록된 단편 「새 이야기」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등단 2년이 채 되지 않아 첫 번째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를 출간하신 김화진 작가님. 문학 편집자로도 일하고 있는 이 부지런하고 성실한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어긋나는 마음과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성실하게 그려냅니다. 그런 김화진 작가님의 소설집 출간 소식을 듣고 저도 무척 반가웠는데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를 출간하신 김화진 작가님을 모셔서 마음을 곰곰이 들여다보는 일과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오은 : 우리에게는 유튜브 <민음사TV>를 통해서 편집자로 먼저 알려진 분이시죠. 이 이야기부터 해볼까 합니다. 유튜브 촬영을 완벽하게 일로 생각하시는지, 편집자와 작가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했어요.
김화진 : 사실 별 생각 없이 시작했어요. 워낙 다들 처음이었고, 제가 말수 적은 편이 아니라는 것이 어쩌다 소문이 났는지(웃음) 필요할 때마다 들어가는 역할이었는데요. 유튜브 콘텐츠 팀이 본격화되면서 그 필요 아래 저도 움직이게 된 것이죠.
오은 : 화면에 얼굴이 담기는 거잖아요. 그게 처음엔 좀 부담스러웠을 것도 같은데, 지금은 좀 편해졌나요?
김화진 : 저는 처음부터 많이 부담스럽진 않았어요. 일은 일인데 부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나봐요. 구독자 수가 2천 명 시절부터 했으니까요. 그냥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거겠지, 원래 유튜브란 그런 곳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고요. 이후에는 조금씩 고민이 생기긴 했는데요. 유튜브를 더 잘하고 싶다는 고민은 아니었고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얼굴과 내가 만든 책을 알고 있으니까 책 잘못 만들었다간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책을 편집할 때 부담이 들었던 것 같아요.
오은 : 작가님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나주에 대하여」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가 있다. 문학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데 소설을 쓰는 일도 이 직업 덕분에 가능했다고 믿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힘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이상하게 소설에는 싫고 슬프고 나쁘고 아픈 이야기도 할 수 있어서 좋다.' 편집자 일을 하게 되면 하루에도 엄청나게 많은 활자들을 보게 될 텐데요. 그러면 집에 돌아가서 글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걸 다른 에너지 삼아 쓰셨던 힘이 무엇인지 여쭙고 싶어요.
김화진 : 제 경우 회사에서 많이 읽거나 뭔가를 쓰는 게 소설 쓰기와 크게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다른 사람의 소설 원고 교정을 열심히 보다가 집에 돌아왔다고 해도 제가 쓸 걸 생각하고 있으면 그냥 그거 한 문단 적고 자는 식이었어요. 반대로 저는 읽은 게 많이 없으면 생각이 텅 비어버려서 뭘 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오은 : 데뷔 2년이 채 되지 않은 시기에 첫 소설집이 나온 셈인데요. 생각보다 빨리 나온 것 같아요. 이것이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했어요. 빠른 출간에 따른 어떤 걱정 같은 것은 없었나요?
김화진 : 맞아요, 처음에 걱정했어요. 저의 편집자가 정영수 씨인데요. 원고 보내라고 했을 때는 내심 더 있다가 내도 될 것 같은데, 하는 불안함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가 저보다 편집자도 선배고, 소설가도 선배잖아요. 그런 사람이 제 소설이 좋다고 생각하고 얘기를 해준 것이기 때문에요. 내 마음이 뭐 중요한가, 싶은 생각이 나중에는 들더라고요. 지금은 사실 나오니까 되게 좋아요.(웃음)
오은 : 이제 작가님께서 직접 『나주에 대하여』가 어떤 책인지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책이죠?
김화진 : 저의 첫 번째 소설집이고요. 등단작이자 표제작인 「나주에 대하여」를 비롯해 여덟 편의 소설이 실려 있어요. 박혜진 평론가도 해설에서 말씀을 해주셨지만요. 저는 소설을 쓸 때 계속 남는 말들,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찌꺼기 같은 마음들, 좋아하는 데 서운하고 싫은 데 보고 싶은 양가 감정 같은 것, 나랑 다른 데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을 되게 궁금해하거든요. 왜 그런지 혼자 상상하다가 나름대로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정리를 해보자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몇 년 동안 쓴 소설의 묶음입니다.
오은 : 수록된 작품을 보니까 작가님께서 직접 만드셨다고 하는 독립잡지 <유령들>에 실은 작품도 있고요. 심지어 미발표작도 두 편이나 있어요. 보통은 작품을 아끼잖아요. 언제 청탁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작품을 보관하고 있다가 청탁을 받으면 그때 원고를 발표하곤 하는데요. 아낌없이 미발표작 두 편까지 수록한 이유에 대해서도 듣고 싶었습니다.
김화진 : 써온 기간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소설이 좀 있었어요. 또, 「나주에 대하여」도 쓴 건 2018년이나 2019년쯤이었을 거예요. 2021년에 등단을 하긴 했지만 3-4년 전에 미리 원고가 완성되어 있었던 거거든요. 소설을 발표한 시기와 쓴 시기 모두 시차가 좀 있죠. 제가 그렇게 쓰는 걸 좋아해서이기도 하고요. 약간은 불안한 것 때문이기도 한데요. 때문에 저는 소설을 한 문단씩, 조금씩 써서 모아 놓는 식으로 써요. 그냥 소설을 써두는 게 마음이 편하니까요. 그랬더니 영수 씨가 다 보내보라고 해서(웃음) 그중 첫 번째 소설집에 어울릴 만한 것들을 묶은 거였어요.
오은 : 독립잡지 <유령들>은 직접 만드신 잡지잖아요. 보통 잡지를 만들면 다른 사람 작품들을 많이 싣는데, 본인 작품을 실은 이유도 듣고 싶네요.(웃음)
김화진 : 저는 제 작품 좋아하니까요.(웃음)
오은 : 너무 좋네요.(웃음) 이제 '불꽂문' 코너로 가져온 문장을 얘기해볼게요. 『나주에 대하여 New Face Book』에 있는 문장입니다. '현실에는 싫은 면이 있지만 소설은 너무 좋지 않아요? 현실에서 내가 했던 선택들이 싫고, 현실에서 누군가 나한테 했던 말들이 너무 싫은데 어떤 식으로든 한바탕 머릿속에서 다시 생각하고 나면 무언가 소설이 될 만한 게 남잖아요. 그걸 진짜로 쓸 수 있게 되면 더 좋죠.' 현실의 싫은 면이 소설적 좋은 면이 되는 것은 이상적으로 들리기는 하지만요. 이 작업이 늘 성공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지 않은 일을 상상하면 파국으로 치달을 때도 있고, 약간의 불쾌함이 증오나 분노가 될 수도 있잖아요. 김화진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화학 작용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김화진 : 그 부분을 조금 자세히 말하자면 '제가 했던 싫은 짓들'이에요. 남이 싫은 짓 한 것으로 소설을 쓰려면 잘 안 되더라고요. 소설 한 편 분량을 완성하는 게 기뻐서 억지로 써본 적이 있어요. 왜 저렇게 살까(웃음), 이런 마음으로 써봤는데요. 그 소설이 별로 좋지가 않은 거예요. 그게 제가 좋아하는 소설의 면은 아닌 것 같고요. 그저 제가 저를 보고 '그때 안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를 생각하면서 다른 세계에 내가 있다면, 삶을 여러 번 바꿀 기회가 있다면 어떨지 상상하는 방식으로 쓰는 거죠. 나랑은 조금 다른 캐릭터 만들어서 그 캐릭터한테 시켜보는 게 좀 위로가 돼요.
오은 : 이제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 주세요.
김화진 : 공교롭게 최근에 작가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 나오는 책을 두 권 읽었어요. 그 중 '희망 편'이라고 부르는 것이 크리스티앙 보뱅의 『가벼운 마음』이고요. 오늘 소개해 드리고 싶은 건 '절망 편'이라고 부르는 잭 런던의 『마틴 에덴』이라는 책입니다. 마틴 에덴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이에요. 완전 노동자 계급이고요. 초등학교도 다 못 마치고 바로 노동 현장에서 일하고, 큰 돈 벌면 다 탕진하고, 술 마시고 욕하고 패싸움하며 살아요. 어느 날 상류층 남자를 구해주게 되고, 그 집에 초청을 받는데요. 거기서 '루스'라는 여성을 만납니다. 그렇게나 우아하고 격식이 있는 사람을 처음 본 거죠. 그 여자에게 한눈에 사로잡혀서 저 여자 옆에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해요. 이 계급을 뛰어오르는 방법은 작가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도서관에서 독학을 하면서 글을 쓰고요. 모든 생활 방식을 바꾸는 노력 끝에 진짜 작가가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작이죠.(웃음)
*김화진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나주에 대하여」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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