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2022년 바르셀로나 도서전을 가다 (2)
김정하의 스페인 문학 여행 (2)
많은 작품들의 무대가 되는 장소를 걸으며 주인공들의 세계에 들어가 보는 기쁨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감사한 일이다. (2022.11.08)
<채널예스>에서 '김정하 번역가의 스페인 문학 여행'을 연재합니다. |
도서전의 일정을 마치고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전날 기념을 하고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어렵지 않게 지난번 라몬 율 재단 초대로 왔을 때 알게 된 '네 마리 고양이' 식당이 떠올랐다. 음식도 분위기도 무척 인상적이었던 곳이다.
바르셀로나의 '네 마리 고양이(Els Quatre Gats)'는 1897년 6월 12일에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광장 가까이에서 문을 열었던 카페이며 레스토랑인데 그 이상의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는 역사적인 곳이다. 이곳에서 19세기 말 바르셀로나 최고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문학가, 예술가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알아가며 모임을 가졌다.
1903년까지 문을 열고 운영했던 6년 남짓한 기간 동안 카탈루냐 모더니즘의 중요한 장소가 되었으며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1900년에 이곳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피카소 이외에도 우리가 잘 아는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 시인 루벤 다리오(Rubén Darío)도 이곳의 모임에 함께 했던 예술가들이며, 음악가 이삭 알베니스(Isaac Albéniz)와 엔리케 그라나도스(Enrique Granados)도 이곳에서 연주를 하며 모임에 함께 했다고 한다. 또한 같은 이름의 잡지도 발행했다. 비록 1899년 2월부터 5월까지 15회의 발간에 그쳤지만, 당시 그곳에 모였던 젊은 모더니즘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상업적인 관심보다는 문화 활동에 중점을 주던 '네 마리 고양이'는 경영난과 또 여기 모이던 예술가들이 다른 곳으로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하면서 1903년에 문을 닫게 되지만, 1970년대에 다시 문을 열어서 오늘 우리가 옛 모습을 다시 감상하고 느끼게 되었다.
영화감독 우디 알렌(Woody Allen)도 이곳에서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Vicky Cristina Barcelona)>의 몇몇 장면을 촬영했다.
카탈루냐 광장과 고딕 지구 사이에 위치해 있는 이곳에 들어오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한 듯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피카소가 메뉴판을 위해 그렸다는 사진이 건물 왼편에 걸려있다. 내부에도 당시 그곳에서 활약했던 라몬 카사스(Ramon Casas)의 그림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볼 수 있다.
미리 예약을 했더니 2층 자리로 안내를 해 주었다. 옛 극장처럼 가장자리에만 2층의 좌석이 있는 구조라 신기해하면서 올라갔다. 라이브 음악이 연주되어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해주었다. 보통 스페인 식당의 저녁 식사는 8시가 되어서야 시작이 된다. 8시에 맞춰 예약을 하고 갔는데, 그곳은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어서인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끝없이 몰려오는 관광객들이 스페인의 일상적인 문화를 많이 바꾸어놓았다. 아주 오래 전 이곳에서 문학과 미술, 건축, 음악 등을 논하며 그들의 미래를 꿈꾸고 고민했을 예술가들의 흔적을 느끼며 천천히 식사를 하고 분위기를 즐겼다.
특별히 '피카소'의 이름이 들어간 디저트가 있었다. 웨이터가 재료를 식탁 옆 가까이에 가지고 와서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서 만들어 주었다. 불쇼에 가까울 정도의 퍼포먼스를 곁들인 이 디저트는 알고 보니 커피와 술과 생크림이 섞인 음료였다. 거의 모든 손님들이 그 모습을 동영상에 담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일에라도 온 마음과 정성을 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움직이고 감동을 하게 된다. '피카소'라는 디저트를 받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기타 연주와 함께 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피카소'라는 이름의 디저트를 마시면서, 이방의 하늘 아래에서 낯선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보다도 과거의 시간으로 이루어진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 시간의 흐름에 무관한 어떤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2022년의 도서전을 마무리했다.
이번 도서전을 준비하면서 너무나 많은 자료의 홍수를 피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작품들만 소개받으리라 굳게 마음을 먹었다. 마음이 통했는지 미팅을 함께 한 담당자들 쪽에서도 맘에 들지 않으면 빨리 이야기해달라고 한다. 사람 마음이 똑같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이제 다시 말라가로 돌아와서 짐을 풀고 바르셀로나 도서전에서 받은 작품들을 정리해본다. 오래전부터 많은 작가들의 관심이 되었고 수많은 문학상의 수상작들이 되었던 난민 문제(스페인이 아프리카와 바로 접하고 있어 실제로 수많은 난민들이 들어왔다)를 다루는 작품도 여전히 눈에 띠고, 또 최근 들어 많이 나오는 환경 문제를 다룬 작품들도 많이 보였다.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칠레의 Yekibud 출판사의 그림책 중에 특별히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
『술탄의 손수건(The Sultan’s Handkerchief)』은 모로코의 전설을 담은 그림책인데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작가가 모두 수작업으로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상하이에서 구해온 한지를 사용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한지에 물감을 들이고, 그림을 그리고, 가위로 잘라 천을 짜듯 종이를 끼우고, 오려붙이면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설명을 들으면서 작가의 인내심에 감탄을 했다.
작품 내용을 보니, 술탄이 한 신하의 딸에게 반해서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하지만, 신하의 딸은 무조건 결혼을 승낙할 수는 없고, 술탄이 뭔가 한 가지 일을 잘 하게 되면 생각해보겠노라고 한다. 이에 술탄은 옷감 짜는 일을 배우기로 하고 아름다운 손수건을 짜서 보낸다. 술탄의 정성과 노력에 감동한 신하의 딸은 결혼을 승낙한다. 옷감을 짜면서 술탄은 미소를 그리는 법과 인내심을 배운다. 그리고 사랑을 얻고 사랑하는 이의 지혜와 용기를 함께 얻게 된다는 이 단순한 옛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지혜, 관대함 등의 가치뿐만 아니라 여성성의 중요성과 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모로코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인데 그림책으로는 처음 나왔다고 한다.
도서전이 끝나고 난 뒤 『나무의 기억(La memoria del árbol)』(분홍고래 출간 예정)의 작가인 티나 발레스(Tina Vallè)의 다른 작품이 화이트 레이븐스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심사평과 함께 작품을 보내왔는데, 아직 카탈루냐어 텍스트만 있고, 영어 샘플 번역이 30쪽 정도 있었다.
스페인의 공식 언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페인어라고 알고 있는 카스테야노(castellano)인데, 그밖에도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 지역에서 사용하는 카탈루냐어, 갈리시아 지역에서 사용하는 갈리시아어, 그리고 바스크 지방의 바스크어가 있다. 놀랍게도 각각의 지역의 작가들은 자기가 속한 지역 언어로 먼저 작품을 쓰고 출간을 한다. 그러고 난 다음에 스페인어로 번역이 되어서 출간이 된다. 몇 년 전 독립 선언으로 뉴스를 장식했던 카탈루냐는 특히 카탈루냐의 문학과 문화를 소개하는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다. 라몬율재단을 통해 카탈루냐의 작가들의 출간을 지원하고, 또 번역 지원과 여러 가지 홍보 지원을 한다.
『미라(Mira)』라는 제목의 작품은 수줍음이 심한 열 살 소녀 미라가 여러 어려움과 의심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찾으면서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심사평에 나와 있다. 영어 번역본을 조금 읽어보니 끝까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하루빨리 스페인어 번역본이 나와 제대로 감상하게 될 날을 기다린다.
또, 요즘 손에 들고 다니면서 흥미 있게 읽고 있는 작품이 스페인의 청소년 소설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올린 카레 산토스 Care Santos의 『세 번 째 가면(La tercera máscara)』이다.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썼다는 이 작품은 어두운 이야기지만 너무 무겁지 않게 몰입하게 된다. 수줍고 친구를 못 사귀고 그림만 그리던 디아나가 어느 날 갑자기 범죄자가 된다. 디아나를 멀리서 알고 있던 사람들의 진술인 첫 번째 가면, 그리고 조금 가까운 곳에서 디아나를 겪은 사람들의 진술인 두 번째 가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디아나 본인이 털어놓는 세 번째 가면. 세 번째 가면의 진실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우리의 세 번째 가면의 진실을 우리는 과연 알고 있을까?
읽을 책들, 읽고 싶은 책들이 많이 쌓여있다는 사실에 배부름을 느끼는 것이 어쩌면 직업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도서전이 나에게 준 선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본다. 책이 좋은 만큼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귀한 선물이다. 또한, 많은 작품들의 무대가 되는 장소를 걸으며 주인공들의 세계에 들어가 보는 기쁨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감사한 일이다.
추천기사
관련태그: 채널예스, 예스24, 채널특집, 김정하의스페인문학여행, 스페인문학, 스페인, 바르셀로나도서전, 바르셀로나, 피카소, 네마리고양이, 술탄의손수건, 미라, 세번째가면
번역가. 어렸을 때부터 동화 속 인물들과 세계를 좋아했다. 스페인 문학을 공부하고 스페인어로 된 어린이책을 읽고 감상하고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틈이 나면 동네를 산책하거나 오르간 연주를 한다. 옮긴 책으로 『도서관을 훔친 아이』, 『난민 소년과 수상한 이웃』, 『유령 요리사』, 『빵을 굽고 싶었던 토끼』, 『나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