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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K의 반쯤 빈 서재] 함께 쓰는 소설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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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라는 공통의 목표와 이상향을 향해 함께 걷는다. '적절한 위로와 다그침'을 양손에 쥐고 우리가 함께 만들, 아직은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는 또 다른 책을 기대하며, 나도 외쳐보고 싶다. 소설 만세, 우리 존재 만세! (2022.11.04)


정용준 작가님의 첫 산문집 『소설 만세』를 읽었다. 표지에 쓰인 마티스의 그림이 어딘가 작가님과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수줍은 듯 살짝 입을 가리고 웃는...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은 꼭 할 것 같은 눈빛... 작가님이 소설 쓰기와 읽기에 대해 순정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애정이 큰 사람이란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정돈된 문장들로 읽으니 새삼 마음이 뜨끈해졌다.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 생각하고 원하는 것, 그것을 관념적인 차원의 일이 아니라 '계속하는 일'로 이어지게 하려는 간절함이 투명하게 와닿았다. 

'소설 쓰기. 다시 소설 쓰기. (열심히) 다시 소설 쓰기.' 

더불어 작품 속 인물이 작품이 끝난 후에도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엿보는 건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읽는 사람에게도 큰 용기가 되었다.

사실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부터 나는 이미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작가의 말」을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나는 작품보다 「작가의 말」을 먼저 읽는 편이다. 「작가의 말」은 대개 편집 과정이 거의 마무리되었을 때 작성된다. 원고를 한창 쓰던 때를 지나, 그것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기까지의 과정을 지나, 그 시간들을 회고하며 쓴 짤막한 글.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사람에게 이 작품이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를 알고 나면, 작품의 첫 페이지를 읽을 때 이미 마음이 좋고 더 설렌다.

'함께 쓰는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소설 만세』의 「작가의 말」은 특히 나 같은 편집자들에게는 잊지 못할 글이 될 것이다. 창작 일지이자 문학론인 첫 산문집의 「작가의 말」 거의 전부를 편집자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채우다니... 이것은 오랫동안 품어온(?) 생각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특히 두 부분이 마음에 남았다. 하나는 '편집자가 고마운 건 쓴 소설을 더 좋게 만들어준 것도 있지만 아직 쓰이지 않은 소설을 쓸 수 있게 도와줬기 때문이다.'라는 문장. 문학 편집자로 일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나도 자연스레 이 생각을 많이 하게 됐기 때문이다. 오자와 오류 없이 깔끔하고 정확한 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가가 작품을 끝낼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러고 또 다른 시작을 해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

문학책 편집 일의 특수성이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작가가 무엇을 쓸지 모르는 채로 계약한다는 것"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무엇을 쓸지 모르는 작가와 편집자가 마주 앉아 계약서를 쓰는 장면, 정용준 작가님과 나에게도 있었다. 작가가 그간 써온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힘과 빛, 창작에 대한 신념, 태도, 의지 같은 것이 합쳐져 작가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고, 그것이 계약서로 이어지고, 집필과 편집과 출간으로 이어진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건 상대적으로 쉽지만, 완성해 내는 것은 절대적으로 어렵다는 걸 작가님들과 일하며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잘 끝내고 또 잘 시작할 수 있도록 앞으로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력자가 되고 싶다.

다른 한 대목은 '생각을 생각나게 해주고 어지러운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이라며 그간 함께한 편집자들의 이니셜을 찬찬히 열거한 부분이다.(나도 '세 번째 소설집과 두 번째 장편을 만들어준 K'라고 들어가 있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여러 편집자가 함께 만들어가고 있구나 싶었달까. 정용준 작가님의 책을 만든 다른 편집자들에게서 내가 그간 배웠던 것들도 곱씹어볼 수 있었다. 작가님 책이 나오면 제목과 표지, 신간 안내문을 보면서 "아, 이 편집자에게 정용준이라는 작가는 이렇게 표현되는구나, 독자들에게 이런 점을 더 잘 보여주고 싶어 했구나"하고 나도 많이 공부하니까.

그리고 나에게 잊히지 않는 장면으로 남은 2016년 겨울의 기억. 제16회 황순원문학상에 작가님의 단편 「선릉 산책」이 선정되어 그해 연말 시상식이 있었다. 그때 한 수상 소감을 작가님은 기억하고 있을까? 함께 작업한 편집자들과 앞으로 작업하게 될 편집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감사 인사를 했던 것. 그렇게 편집자들의 이름을 전부 호명하는 작가는 처음 봤다. 말에는 분명 예언적인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 후에도 내가 이 자리에 변함없이 머무르며 『프롬 토니오』와 『선릉 산책』 두 권을 만들 수 있었던 건 그날 들은 수상 소감의 영향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문학 작품은 뚝딱 찍어내듯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지라 작가와 편집자는 제법 오랜 시간 관계를 맺는다. '좋은 책'이라는 공통의 목표와 이상향을 향해 함께 걷는다. '적절한 위로와 다그침'을 양손에 쥐고 우리가 함께 만들, 아직은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는 또 다른 책을 기대하며, 나도 외쳐보고 싶다. 소설 만세, 우리 존재 만세!



소설 만세
소설 만세
정용준 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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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윤정(문학 편집자, 유튜브 채널 <편집자K> 운영자)

『문학책 만드는 법』을 썼고 유튜브 채널 <편집자 K>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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