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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비로소 새로워진 '난 나야', (여자)아이들의 'I love'
(여자)아이들 'I love'
미니 앨범으로 여러 번 반복해 곱씹을 가치가 넉넉한 작품이다. 백화점식 앨범의 전통을 가다듬어 주제와 무드의 일관성을 벼리고 주제 의식의 유기성을 주조해낸 수작이기도 하다. (2022.11.02)
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
(여자)아이들의 <I love> 미니 앨범은 얼핏 도발적인 타이틀 곡 'Nxde' 이후 감정선이 내리막길을 걷다가 후반에 반등하는 구조로 들리기도 한다. 또한, 웃음기 없는 조롱이 그로테스크의 영역에 들어서는 'Nxde'에 이어, '다양한 무드와 장르'가 보다 톤 다운 된 채 때로 조금 보수적인 내용(이를테면 이별 후의 질척임)마저 담아내며 가요적인 백화점 앨범으로 흐른다고, 또는 이를 통해 타이틀의 공격적인 메시지를 중화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잠깐, (여자)아이들에게 완벽 그 이상을 요구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야비하고도 독기 어린 태도를 더 많이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소속사 큐브 엔터테인먼트는 케이팝의 첨단과 통속성을 잘 조화시켜 온 기획사다. 꽤 과감한 메시지와 아주 평범한 가요성을 대놓고 병치해 놓으면서 1990년대 X세대의 '난 나야' 같은 언어를 곁들이는 방식은 큐브의 레거시라고 해도 좋을 법하다. (여자)아이들이 데뷔 단계부터 줄곧 '나(I)'를 강조하거나 '여자'를 괄호 처리하거나 때로는 아예 생략하기도 하면서 여성의 정체성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수록곡 중 'LOVE'와 'Reset'이 이별 뒤의 이야기를 드라마적으로 그려내며 '널 빼앗아간 그 언니' 같은 구절을 넣는 것도 꽤나 가요적인 기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LOVE'는 비혼주의의 뉘앙스마저 슬그머니 풍기는 탈연애 후 자신감의 회복을 주제로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말하며 행복하고 기세 좋게 비트를 울린다. 그렇다면 보다 통속적이고 구구절절하게 이별의 상처를 말하는 'Reset'은 이를 '중화'하기 위해 배치되었을까? 여기서 'Nxde'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그 메시지와 풍성한 콘텍스트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기에 이를 자세히 논하는 일은 불필요할지 모르겠다. 마를린 먼로에게 영감을 받은 이 곡은 있는 그대로 인간의 모습을 말한다. 편리할 대로 혹은 부적절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곡과 함께 수록되었을 때 'Reset'은 보기보다 전복적인 위치에 놓인다. 사랑을 잃고 허덕이는 것은 아주 많은 이에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일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인물이 '사랑밖에 모르는' 인간이라고 납작하고 신파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누드와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오히려 'LOVE'가 'Reset'의 보론에 가깝게 들리기도 한다.
'이별의 상처는 한 사람의 전부가 아닌 한 단면에 불과하다니까요? 이해가 안 되세요? 이별 후에 당당해진 이야기도 들려드릴까요? 이게 다 같은 사람의 여러 얼굴이라니까요?'
데이트 폭력에 가까운 상대에게 맞춰가면서까지 사랑받고 싶다는 '조각품'의 가사 역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지나치게 편리해 보인다. 자신을 파괴해 가면서 매달리는 절박함은 인간이기에 가질 수도 있는 감정이지만, 그것이 한 사람의 진심의 전부라거나, '여자들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게 한다. 위악과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사운드와 무드의 전환도 그러하지만, 역시나, 타이틀이 'Nxde'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지막 트랙 'DARK (X-File)'은 진실과 오해, 의도되거나 불가피한 거짓 사이를 안개처럼 부유하고 있는 사랑 노래다. 'Nxde'가 진실과 의도된 오해를 낳는 자아와 시선의 관계를 논한다면, 이 곡은 이를 연애 관계에 대응한다. 이를 통해 앞선 수록곡들이 'Nxde'의 주제 의식에 하나로 꿰어진다.
마지막까지 매정하게 끊어버리며 손에 잡힐 듯한 허무감을 그려내는 'Change'를 포함해, 어두우면서도 가라앉은 수록곡들은 오히려 보다 진솔하고 진중하게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여자)아이들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때로 유쾌하고 때로 도발적이며 때로 편안하거나 감상적이지만, 이들이 한데 엮여 움직이면서, 보다 풍성한 맥락을 만들어낸다. 대중 앞의 스타이자 여성이자 사랑을 아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얼굴을 보여주고, 이를 서로 충돌시키거나 서로 기대게 함으로써 결국 인간에게는 여기서 거론되지 않은 수많은 얼굴이 더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서두에서처럼 'Nxde'의 표독을 더 즐기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사이다'의 납작한 기대보다 훨씬 입체적인 존재가 인간이다. 그리고 그것이 (여자)아이들이 말하는 '나(I)'다.
미니 앨범으로 여러 번 반복해 곱씹을 가치가 넉넉한 작품이다. 백화점식 앨범의 전통을 가다듬어 주제와 무드의 일관성을 벼리고 주제 의식의 유기성을 주조해낸 수작이기도 하다. 또한, 가요적 통속성을 오브제처럼 가져다 놓고 그 맥락을 '설치'함으로써 메시지를 이끌어내는 수법을 통해, '큐브의 전통'이나 '케이팝의 현실'을 패러디하는 듯, 가지고 노는 듯 하며 기존 문법을 성큼 진일보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전하는 것이 결국, '난 나야'라고? 30년 정도 들어온 그 마니페스토가, (여자)아이들에게서 비로소 유의미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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