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가] 이훤 시인, 양눈으로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시집 『양눈잡이』
시의 일이 하나의 입구로 들어가서 여러 문으로 나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면, 사진으로도 시의 일을 정확하게 성취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2022.11.02)
타국에서 16년을 보내며 이훤 시인은 자신이 '양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느꼈다. 미국과 한국, 이질적인 시공간과 언어 사이를 헤매며, 그는 사진을 찍고 시를 썼다. 두 세계를 오갈수록 고립감이 더해졌던 날들. 그러나 시인은 세 번째 시집 『양눈잡이』을 묶어내며 단절 대신 새로운 변화를 보았다고 말한다. 언어도 시차도 가늠되지 않는 곳으로 용감하게 사라지는 화자들과 '우정-하는' 이민자 동료들. 최근 한국으로 돌아와 더 가까이 독자의 곁에 다가온 이훤 시인을 만났다.
16년 만에 한국에 오셨어요.
귀국 직후에는 '아, 집에 왔다'는 느낌이었어요. 몇 달이 흐른 지금은 일상의 리듬이 생겨서 원래부터 제가 여기 있었던 기분이 들어요.
19세에 미국으로 가셨죠. 청년기 이후로는 쭉 미국에 계시다가 최근에 한국에서 정착하기로 결심했어요. 큰 변화였을 것 같은데요.
미국 사회에 잘 적응했지만, 이상하게도 단절감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좋은 친구와 동료도 생겼고, 사회적으로나 언어적으로도 불편함이 없었는데도 말이죠. 어느 순간 모국어로 된 책을 구하기 어렵고, 친구들을 편하게 만날 수 없다는 게 숨이 막히더라고요. 그때부터 조금씩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어요. 시카고에서 사진 공부를 하고, 학기가 끝날 즈음에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했죠.
시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요?
처음 시를 쓴 것은 고등학교 때였는데요. 본격적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미국에 건너간 이후였죠. 기계 공학을 전공했는데, 연구보다 글 쓰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거예요. 10년 뒤에도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할까,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요. 이 일이 재미없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했던 일은 뭐였지? 그게 글쓰기와 사진이었어요. 그 때부터 시를 계속 쓰고, 문화 월간지의 에디터로 일하기도 했어요.
'양눈잡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었어요. 시인이자 사진가,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시공간을 오가는 시인님의 이력이 떠올랐어요.
오래 타국에 머무르면서 한쪽 눈으로는 지금 여기의 광경을 주시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먼 모국의 일을 주목한다고 느꼈어요. 시인이자 사진가로서 두 개의 시선으로 보는 순간도 있었죠. 그 두 가지를 잘 포착할 말을 고민하다 '양눈잡이'를 떠올렸어요. 안경점에서 시력 검사를 하는데 직원분이 "오른눈잡이냐 왼눈잡이냐?" 묻더라고요. '사람이 그걸 어떻게 아나, 이쪽 눈으로 보다가도 다른 눈으로 보기도 하고 하지 않나'하다가 떠올린 표현이에요.
독자가 멀리 있어 외롭기도 했을 것 같아요.
미국에는 한국어로 쓰인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적을뿐더러 흩어져 있잖아요. 처음에는 내 시가 독자들에게 읽히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지금 나한테 쓰는 일이 중요하니까 계속 썼죠. 이번에 귀국해서 긴 시간동안 독자들을 만났는데요. 이게 가능한 거였네 싶더라고요. 책이 출간되면 홀로 시를 쓰던 시간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종종 들거든요. 그런데 제 음성으로 시를 읽으면 독자들이 표정과 고갯짓으로 되돌려주는 일이 일어나더라고요.
독자들을 초대해 낭독회를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죠.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시는 이래요.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아도 여기의 이미지가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는 듯한 경험을 주는 것. 독자들이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집의 이미지들에 다음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같았어요.
'이미지가 읽는 사람을 어딘가로 데려간다'는 감각을 『양눈잡이』를 읽고 느꼈어요. 시집 곳곳에 모호한 시공간이 겹치는 순간들이 있어요. 비행기 안에 방이 있다고 상상되거나, 버스 안에서 화자가 문득 사라지기도 하죠.
타국에 있다 보면 지금 여기에서 갑자기 사라지고 싶다는 욕망이 들 때가 있어요. 제가 그렇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어딘가로 튕겨 나가는 사람들을 주목하게 되는 것 같아요. 비행기라는 시공간도 그래서 좋아해요. 비행기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데다 승객들 역시 사회적, 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동등한 자격으로 앉아 있잖아요. 한 공간에서 모두가 잠시 지워지는 느낌이 들죠. 그런 상황을 상상하다 보면,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시 태어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 시집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를 내고 4년이 흐른 뒤에 나온 시집이에요. 그 시간만큼 변화도 느껴지더라고요.
실제로 변화를 많이 겪었어요. 두 번째 시집에 타국에서 느끼는 단절감을 쏟아내고 나니, 그 이야기로부터 벗어나고 싶더라고요. 새로운 공간으로 나가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제가 한국어를 생각보다 더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시집 제목이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였는데도 오히려 절박해졌던 거죠.(웃음) 그래서 두 번째 시집을 네 개의 새 몸으로 상상하고 물리적으로 재구현한 아티스트 북 시리즈 <사라지고, 불가능성>(2021)을 만들었던 거였어요. 시집에 포함된 한국어 시어만 오려서 한 권, 영어로 된 시어만 오려서 한 권, 그리고 다른 한 권에는 오려낸 모든 단어를 넣고, 마지막으로는 열리지 않게 봉한 책을 만들었죠. 제 안에만 머물던 것들을 물리적인 책을 통해 구현하고 나니, 생각보다 내 몸을 디딜 언어의 땅이 너무 좁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번 시집이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군요.
맞아요. 초고를 묶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시들이 테두리 안에 갇힌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 시절로부터 나와서 좀더 용감해지고 싶었어요. 시의 화자들이 갈 수 있는 자리를 확장하고, 다음 자리를 묻고 싶었죠. 많은 시들을 빼고 새로 쓰면서 지금 이동하는 시간을 정확하게 담는 시들만 남기려고 했어요.
영어와 한국어가 번갈아 배열된 시들이 재밌었어요. 두 언어가 매끄럽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번역되고 엇갈리죠.
두 언어를 오가는 일이 지난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어요. 미국에서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하려면 머릿속에서 언어를 재조립해야 하는데, 반대로 모국의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한국어가 마음처럼 나오지 않는 거예요. 두 언어 사이에서 나의 일부가 계속 상실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정확한 소통이 미끄러지는 지점에서 자주 절망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언어 사이에서 수동적으로 깎여 나갈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간극을 만들자. 일부러 의미가 어긋나게 번역하니 두 언어 사이에 새로운 공간이 생겨나더라고요. 그동안 잃어온 것에만 집중했는데 두 언어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다르게 감각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4부는 피에르, 로리, 세헤르 등 여러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로 구성됐어요. 지난 시집에도 편지가 있었지만, 이번 시집에 보다 다양한 수신자들이 등장하더라고요.
시 안에서 용감해지기로 한 뒤에 여러 화자를 능동적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을. 먼 거리에서 보면 한 국가의 주류 바깥에서 다들 비슷하게 사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출신 국가나 이민을 온 시점 등에 따라 삶의 모습이 정말 달라요. 다양하게 펼쳐지는 이민자들의 삶을 고유하게 조명하고 싶었어요.
시집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겹치며 에필로그를 이루는 듯해요.
사진으로 된 연작시에서 피사체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것들,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여러 변화의 방들이 중요하죠. 그것이 『양눈잡이』라는 시집을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해요. 지난한 한 시절이 지났고, 무엇을 겪었는지 정확하게 풀어낼 수 없어도 우리를 관통한 변화들. 그것을 문자 언어가 아닌 시각 언어로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시의 일이 하나의 입구로 들어가서 여러 문으로 나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면, 사진으로도 시의 일을 정확하게 성취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양눈잡이』로 한 시절의 변화를 흘려보냈잖아요. 앞으로 '본다는 것'을 어떻게 탐구해나갈지도 궁금해지는데요.
근래 저에게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시각장애인인 김성은 작가님을 만난 것이었어요. <일간 이슬아> 인터뷰 특집에서 인터뷰이를 사진이라는 시각 언어로 담고 시와 산문 등의 활자 언어를 덧대는 협업자로 참여했어요. 그런데 시각 정보가 없는 작가님에게 사진을 전달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내가 해온 사진 매체는 절반쯤은 실패한 작업 아닌가 근본적으로 묻게 됐어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경험할 수 있는 사진의 방식이 필요했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사진을 묘사하는 방식을 떠올렸어요. 그런데 여러 사람이 각자의 관점으로 사진을 본 듯한 진술들이 이어지죠. 그게 '보는 방식'에 대한 시인의 응답 같았어요.
맞아요. 비장애인도 하나의 사진을 보고 각자의 진실을 길어 올리잖아요. 결국 본다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엇갈리는 거예요. 그렇다면 여러 화자의 목소리로 사진을 목격한 것을 보여주자. 엇갈리는 증언들 사이에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여러 자리들이 만들어지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팽창하는 사진들> 시리즈가 시작됐고,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에요. 사실, 『양눈잡이』를 끝맺을 때쯤 이런 변화를 겪어서, '시인의 말' 마지막 문장은 김성은 작가님에게 바치는 것이기도 해요. 그것이 이 시집 이후 제게 찾아온 변화예요.
*이훤 시인, 사진가. 시집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양눈잡이』 등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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