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5주년 특집! 오은, 프엄, 캘리의 인생 장면, 인생 책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03회) 『너의 표정』, 『82년생 김지영』, 『두 늙은 여자』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2.10.27)
불현듯(오은) : 녹음하는 오늘이 정확히 <책읽아웃>의 5주년이 되는 날이었어요. 스튜디오로 오는 중에 휴대 전화에 계속해서 알람이 떠서 봤더니 광부님들께서 SNS에 축하 메시지 릴레이를 펼쳐주셨더라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프랑소와엄 : <책읽아웃> 5주년을 맞아 청취자 분들을 대상으로 리뷰 대회도 열었는데요. 그 글들도 정말 좋았어요. 당선작은 <채널예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불현듯(오은) : 그래서 오늘은 <책읽아웃> 5주년 특집 '내 인생의 장면들'을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함께 인생책도 소개할게요.
박찬욱 저 | 을유문화사
제 인생의 장면 첫 번째는요, 처음으로 털어놓는 이야기예요.(웃음) 대학교 때 농활을 갔어요. 김매기 시즌이어서 잡초를 뽑으러 간 것인데요. 환경이 바뀌니까 화장실에 가는 일이 너무 어려워진 거예요. 그러다 8일째가 되는 날, 김매기를 하러 장화를 신고 논 안쪽까지 들어갔는데 그때 신호가 왔어요. 논 깊숙이에서 나오느라, 장화까지 신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더디게 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 저를 지켜보던 친구가 "너의 그렇게 비장한 표정은 처음 봤다"고 했을 정도로요.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다 말이 '마려운' 사람들 같거든요. 저도 글로 그런 마려움을 해소한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글이 잘 안 되거나 말이 힘들 때는 논에서 걸어 나오던 그 장면을 떠올려요. 마려웠던, 뭔가 간절하게 하고 싶었던 그 순간이 저에게 하나의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최근의 일이에요. 이사를 결심하고, 지금 사는 동네를 더 들여다보고 싶어져서 평소 가지 않던 길로 산책을 했어요. 가보니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지는 거죠. 놀이터가 있었는데 하필 거기서 촬영을 하고 있는 거예요. 정확히 무엇을 촬영하는지는 알 수 없었고요. 무심코 영화일까 드라마일까 뮤직비디오일까를 되새기면서 집에 오는데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용기를 내서 무슨 촬영을 하는지 물어봤다면 속은 시원해졌겠죠. 하지만 저는 궁금한 상태로 돌아오고 싶더라고요. 또 다시 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요. 글을 쓰게 된 것도 어쩌면 정확히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떤 것을 모르는 상태로 놔두면서 거기를 끊임없이 유영하고, 모험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 생각을 며칠 전에 했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책들 중 앞서 말한 두 가지 경험과 맞닿은 책을 생각하다 바로 이 책이 떠올랐어요. 얼마 전 제주도에 있는 '만춘서점'에서 행사가 있어서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왔는데요. 비치된 책들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책이에요. 박찬욱 감독님의 『너의 표정』이라는 사진집입니다. 여기 담긴 사진들은 대부분 촬영을 갔다가 혹은 여행을 갔다가 찍은 사진들이에요. 보면서 박찬욱의 예술이 원래 있는 것을 어떻게 담느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처음하게 되었습니다. 사물과 동물, 사람의 뒷모습 같은 데서 표정을 잡아채는 사진집이고요. 다 말하지 않아도 어떤 것을 환기시키고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에 저는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는데요. 그런 사진들로 가득한 사진집이었습니다.
조남주 저 | 민음사
제 첫 번째 인생의 장면은 저희 스튜디오가 홍대에 있던 시절이에요. 2019년, 제가 처음으로 책을 냈을 때요. 지인들 외에는 반응이 없었을 극 초반기였는데요. 당시 김하나 작가님께서 <김하나의 측면돌파>를 진행하고 계실 때여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출간 기념 사인회를 하고 있었어요. 팬 분들이 엄청 많이 왔고요. 저는 스태프로 일을 하고 있었죠. 그때 어떤 분이 저한테 살짝 다가오시더니 엽서를 주시는 거예요. 저는 김하나 작가님께 전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보니까 『태도의 말들』을 읽은 청취자 분이셨던 거예요. 제 책이 얇기도 하고, 소소한 이야기지만 되게 어렵게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렇게 생각하고 실천은 안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도 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보여서 너무 좋게 읽었다고 써주셨어요. 그 엽서를 열 번쯤 읽고, 책상 앞에 아주 오랫동안 붙여 놓았죠. 너무 감사한 장면이었어요.
두 번째는 두 분과 함께 했던 저녁 식사 장면이에요. 홍대에서 녹음을 마치고 셋이 지하철을 타고 한남동에 갔었잖아요. 그때만 해도 이렇게 친하지 않았을 때고, 막 친해지려던 때였는데요. 그 날의 기억이 너무 좋게 남아 있어요. 오은 시인님이 저희를 정말 동료로 생각한다고 느꼈고요. 음식도 맛있었고, 그 레스토랑의 조명과 벽에 걸린 그림, 대화를 나누던 분위기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두 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리고 싶어요.
마지막 장면은 집 앞 칼국수집에서의 장면인데요. 반차를 내고 아이 하원을 시켰을 때였어요. 너무 배가 고파서 칼국수집에 갔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요. 그냥 심리적으로 되게 많이 힘든 날이었어요. 아이는 점심을 먹은 상태여서 배도 안 고픈데 칼국수랑 파전을 시켜 놓고 마주보고 있는데요. 저는 스스로한테 연민을 갖는 걸 즐기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그냥 내 자신이 너무 슬프게 느껴졌어요. 그 장면이 지금도 되게 선명하게 기억나요. 눈물이 막 차오르는데 아이가 앞에 있으니까 참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 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제가 두 분한테 인생책 없다고 하소연을 했잖아요.(웃음) 어떤 책을 가지고 올까 고민을 진짜 많이 했는데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인생책까지는 없었어요. 진짜 한 권만 뽑으라면 『82년생 김지영』이거든요. 그 책을 읽었을 때 이런 소설도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너무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오늘은 제가 30대에 읽은 책 중 정말 좋았던 책들 몇 권의 제목만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시의 문장들』, 『서울 염소』,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 씨』,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1, 2』까지, 『82년생 김지영』을 포함해서 여섯 권의 책을 꼽아봤습니다.
벨마 월리스 저 / 짐 그랜트 그림 / 김남주 역 | 이봄
제가 꼽은 인생의 장면은 계획한 것 말고, 계획이 조금은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감정을 일으켰던 장면들로 생각해봤는데요. 첫 번째는 강아지 후추를 만난 일이에요. 살아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어요. 무엇보다 새롭게 발견한 것은 돌보는 것의 기쁨이거든요. 이런 말이 되게 조심스러워요. 한국 사회의 여성으로서 다른 존재를 돌보는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고 얘기했을 때, 돌봄 노동으로 부당하게 차별 받고 있는 여성들도 많은 현실에서 오해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정말로 누군가를 돌보는 데서 느끼는 기쁨이 있더라고요. 돌봄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 저의 인생의 장면이에요.
두 번째는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에요. 지난 주말에 엄마와 함께 영탁 님의 콘서트를 갔다 왔습니다. 엄마랑 TV를 보는데 <미스터 트롯>의 가수들을 보는 엄마의 에너지가 저는 평생 본 적이 없는 에너지였어요. 그러다 공연에 간다면 엄마 인생이 아주 다채로워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연을 가자고 할 때, 처음에는 엄마가 거절할 줄 알았어요. 자신의 욕구는 쉽게 포기하는 선택을 해온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단번에 좋다고 하셨고요. 공연에서도 너무나 즐거워했어요. 심지어 며칠이 지나서도 너무 좋았고, 계속 생각난다고, 고맙다고 하시는 거예요. 엄마라는 한 명의 개인이, 자기 삶에서 대단히 기억에 남을 어떤 장면을 만났구나, 싶고 그것을 발견한 것이 저한테도 큰 장면이 되었어요. 그렇게 우리가 한 사람으로 만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하나의 장면은 아니고 통틀어서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요. 인터뷰를 하는 일을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인터뷰에서의 경험이 저의 큰 자양분이고요. 그래서 인생책도 그 과정에서 만난 책을 연결해서 말씀드릴게요. 『두 늙은 여자』라는 책이고요. 띠지에 '노년의 성장 소설'이라고 되어있거든요. 성장이라는 게 노년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라 정말 좋아해요. 이번에 준비하면서 다시 읽었는데 새롭게 발견한 게 있어요. 삶에 대한 의지나 투지가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메시지도 있더라고요. 서로가 있었기 때문에 힘을 냈다는 부분에서 다시 한 번 이 책의 가치를 생각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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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