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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시스, 혁명에서 낭만으로
픽시스(Pixies) <Doggerel>
여덟 번째 정규 앨범 <Doggerel>은 풍성한 편곡과 감성적인 사운드로 어쩌면 그간 닿지 못했던 신대륙에 기착한다. (2022.10.26)
1988년부터 1991년까지 픽시스는 절륜했다. 이 시기에 내놓은 넉 장의 스튜디오 앨범 <Surfer Rosa>(1988), <Doolittle>(1989), <Bossanova>(1990), <Trompe le Monde>(1991)는 미국 인디록의 보석으로 남았다. 사나운 소리에 아름다운 선율을 버무린 음악은 청춘과 공명했고 예술성에 고취된 마니아들까지 사로잡았다.
무려 23년의 공백을 갖고 2014년에 발표한 <Indie Cindy>는 전성기 파괴력에 못 미칠지언정, 밴드의 구심점 블랙 프랜시스(Black Francis)의 저력을 확인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듯 꾸준한 음반 발매로 얼터너티브 록의 자존심을 지켜가는 픽시스는 영국의 록 듀오 로열 블러드와 작업했던 젊은 프로듀서 톰 달거티와 2016년 작 <Head Carriers>와 2019년 작 <Beneath The Eyrie>에 이어 신작 <Doggerel>을 합작했다.
'Debaser'와 'Velouria'의 파괴력을 억하는 이들에게 신작은 일견 밋밋하나 작금의 픽시스는 지난 시절의 분노를 성찰로 치환한다. '엉터리 시(詩)(Doggerel)'라는 음반 제목처럼 난해한 노랫말은 여전하나 유순한 사운드와 잘 다듬은 편곡이 변화를 타진한다. 황량한 분위기에 빔 벤더스의 영화가 그려지는 'Thunder and lightning' 속 '일단 그게 사라지고 나면 조수와 달이 함께 간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이교도 남자여 당신은 멀리 떨어져 있노라니(Once it's gone you'll know, tides and moons go, pagan man, you re miles away)'처럼 가사는 문학적이고 함축적이다.
픽시스는 분명 블랙 프랜시스의 팀이지만, 훗날 브리더스(The Breeders)를 이끄는 베이시스트 겸 보컬 킴 딜의 존재는 무시할 수 없었고, 'Gigantic'과 'Silver'와 같은 대표곡에 발자취를 남겼다. <Head Carriers>부터 본격적으로 밴드에 승선한 새 여성 멤버 파즈 렌찬틴(Paz Lenchantin)은 딜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룰 뿐만 아니라 'Vault of heaven', 'You're such a saduccee'같은 펑크(Punk), 하드록 사이로 밴드 내 여성 코러스의 전통을 계승했다.
한 곳에 매몰되지 않고 감정의 여러 부면을 아우르는 블랙 프랜시스만의 능력은 가사와 사운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신보도 얼터너티브 록의 틀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첫인상을 강하게 심는 'Nomatterday'와 전성기의 흔적을 드리운 펑크(Punk) 록 'There's a moon', 나른한 기타 톤과 아프리칸 퍼커션이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Doggerel'가 다채로운 사운드스케이프를 확립했다.
블랙 프랜시스로부터 발현하는 밴드 특유의 냉소적인 톤은 여전하나, 소리의 모험을 감행한다는 점에서 톰 달거티와의 동행은 경력의 새로운 장이다. 날선 펑크에 팝 록을 더한 2016년 작 <Head Carriers>와 고딕 록을 품었던 2018년도 음반 <Beneath The Eyrie>에 이은 여덟 번째 정규 앨범 <Doggerel>은 풍성한 편곡과 감성적인 사운드로 어쩌면 그간 닿지 못했던 신대륙에 기착한다. 그토록 혁명적이었던 픽시스는 사반세기를 지나 부드러움과 낭만의 세계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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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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