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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비건이 되어버린 직장인들에게

직장인의 비건 생활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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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의 짐처럼 언젠가는 해야 하는데, 하고 미뤄왔던 비거니즘. 작년 1월 1일 나는 비건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며 결국 비건 지향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2022.10.21)

대체육(언리미트 민스)이 들어간 마파두부밥

마음속의 짐처럼 언젠가는 해야 하는데, 하고 미뤄왔던 비거니즘. 작년 1월 1일 나는 비건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며 결국 비건 지향 직장인1)이 되어버렸다. 비건을 시작하며 많은 초보 비건들과 같이 이런 것들을 기대했다.

지금과 같은 공장식 축산 환경이 조금이라도 바뀌고, 환경에도 좋은 영향이 있겠지. 건강도 좀 챙길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매사가 그렇듯 현실은 기대와는 다르기 마련. 비건 직장인들이 실제로 얻는 것도 다르다. 나는 환경 포인트 1000점 대신 어마무시한 속도로 살림 스탯에 능력치를 쌓았다. 비건 메뉴가 옵션으로 있는 식당이 회사 주변에 있다면 다르겠지만, 아마도 서울의 특정 지역이 아니라면 그런 행운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적을 터. 끝내 많은 비건들이 도시락의 길을 걷는다.

도시락 준비하기! 여기엔 엄청나게 많은 행위가 선행되어야 한다. 도시락을 싸려면 일단 식재료를 구비해야 한다. 마트나 온라인몰에서 장을 본 식재료를 다듬고, 소분하고, 그것들을 이용해서 적당량의 음식을 만든다. 퇴근 후 바로 눕고 싶어도 그날 먹은 도시락을 설거지하고 다음 날 먹을 밥과 반찬을 담고... 이걸 무한 반복해야 한다. 비건 직장인들을 위한 한 가지 팁이 있다면, 이 모든 과정 중 하나라도 줄일 수 있는 게 있다면 줄이라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딱 1인 가구가 2주 정도 먹을 분량의 신선한 (그리고 조금 못생긴) 채소를 보내주는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다. 장을 보러 가는 과정만 줄었을 뿐인데 이전보다 훨씬 할만 하다고 느껴지고,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1인가구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요즘에는 비건 반찬 구독 서비스도 있다)

비건을 지향하면 자연스럽게 향상되는 또 다른 스킬이 있다. 유머와 너스레다. 비건이 되면 막 옆의 사람들에게 비거니즘을 전파하고, 고기를 먹는 것이 얼마나 동물과 지구와 인간에게 해로운 행위인지 설득하고 싶어진다. 그것도 중요하고 꼭 필요한 방식이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 주변인들, 한 술 더 떠서 비건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에 화가 나고 쉽게 지치기도 한다. "고기를 안 먹으면 영양 불균형이 생겨서 몸에 안 좋다"하는 말에 신선한 채소를 골고루 섭취해도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고 매번 대꾸하는 것은 피곤하다. 가끔은 "절 그렇게나 생각해주시다니~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라는 너스레로, "채소는 불쌍하지 않냐"는 무례한 질문에 "어유, 그러니까요. 너무 불쌍해서 그냥 다 안 먹고 굶어 죽을까 봐요"하고 가볍게 넘기는 유머는 당신의 마음과 사회적 자아를 단단히 지켜줄 것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운동이 된다고 생각한다.(이렇게 점잖게 말해도 어느 날에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며 도대체 얼마나 더 인간사회가 망해야 (지구는 안 망하니까) 다들 정신을 차려서 일회용품을 덜 쓰고 고기를 안 먹을지 모르겠다고 속으로 외치기도 한다) 기대하던 속도보다 느려도 확실히 변한다. 2년 정도 꾸준히 비건 지향을 하자 이제는 주변에서 "고기 먹는 것을 많이 줄였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채식을 해보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자발적으로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함'이다. 이제는 조금 진부하게도 들릴 수 있겠지만 특히 비거니즘을 지향한다면 더더욱 '완벽'보다는 '오래 지속하는 것'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빠질 수 없는 회식 자리가 있다면 채식을 할 수 있는 식당을 제안해 보기도 하고, 모든 동물성 식품을 제외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비덩주의'2) 등의 유연한 방식을 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점심시간에 개인적으로 식사하는 게 어려운 환경이라면 집에서 먹을 때만큼은 남을 해치지 않은 식탁을 꾸릴 수도 있다.

식단을 조절하기가 너무 부담스러울 때에는 먹는 것뿐만이 아니라 바르고, 입는 것에서도 비거니즘을 지향할 수 있다. 매일매일 바르는 스킨과 로션, 수분크림, 선크림, 립밤, 립스틱 등을 비건 제품으로 구매하면 어떨까? 다 쓴 제품부터 하나씩 불필요한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비건 인증 제품들로 대체하면 매일 아침 작지만 알찬 비거니즘 실천을 할 수 있다. 계절이 바뀌어 따뜻한 옷이 필요하다면 꼭 새 옷이 아니더라도 멋스러운 빈티지 옷들을 입어보자.(구제 옷에 달라붙은 귀신은 세탁기와 햇빛으로 퇴마할 수 있다. 나는 자주 사용하는 방법인데 꽤나 강력해서 지금까지 뭐에 씐 적이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환경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실천하면 된다. 비건을 지향하는 삶은 그 자세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올해 산악회에 가입 후 일주일에 한 번씩 등산을 갈 만큼 등산에 푹 빠져있는데, 우리 산악회의 슬로건이 되게 멋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간다!'이 슬로건, 비거니즘에도 차용해 보고 싶다. 불완전한 비건들은 함께 아주 멀리 갈 것이다. 진짜로 세상을 바꿀 때까지!


#비건일상 인스타툰 <비몬툰>

비건으로 도대체 뭘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하거나, 주변에 비건 커뮤니티가 없어 외롭다면 

*인스타그램 비건몬스터 구독 



1) 비거니즘은 종차별에 반대하고, 동물 착취를 통해 얻은 모든 것들을 소비하지 않는 삶의 방식이자 철학이며, 비건은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사람을 뜻한다. 모든 상황에서 완벽하게 실천하기는 어려워도 비건을 지향하는 삶을 살겠다는 뜻의 '비건지향인'이라는 표현이 비건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쓰이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비건과 비건지향인을 번갈아 사용했다.(글쓴이는 비건지향인이다)

2) 한식 맞춤형 채식 지향 방식. 덩어리 고기는 먹지 않지만, 육수나 김치 등에 들어간 동물성 성분은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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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최지원(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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