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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드림캐쳐가 제시하는 신중한 비전
드림캐쳐 미니 7집 <Apocalypse : Follow us>
신작 <Apocalypse : Follow us>는 콤팩트하지만 본격적이고, 콘셉추얼하지만 팝적 매력도 든든하다. (2022.10.19)
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
데뷔 초기 드림캐쳐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적 공예품인 드림캐쳐를 다양하게 변주하며 상징으로 사용했다. 디스코그래피는 악몽을 테마로 삼은 일련의 서사로 꿰어졌고, 흔히 악몽을 막아주는 주술적 효과가 있다고 하는 드림캐쳐도 이와 연관되었다. 문화적 전유라는 비판도 물론 없지 않았다. 그것이 올봄의 정규 앨범 <Apocalypse : Save us>부터 사라지고, 신작 <Apocalypse : Follow us>는 마이크를 형상화한 로고가 등장했다.
타이틀곡 'VISION'은 매우 전투적이다. 느긋한 템포가 비트의 헤비함을 강화한다. 후렴만 놓고 보아도 기타 리프가 격렬하게 쏘아대는 동안 매우 단조롭고 냉담한, 구호를 외치는 것에 가깝게 들리는 멜로디가 전개된다. 전작 'MAISON'이 신화적 이상향과 아포칼립스 세계를 교차시켰다면, 이번의 드림캐쳐는 흰 드레스를 벗고 붉은 제복을 입는다. 환경 재앙을 소재로 한 이 연작에서 'MAISON'은 문제적 '그대'를 호명하고 "누군가 우리를 위해 싸워달라"고 했는데, 약간 '유체 이탈 화법'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라 치고, 'VISION'은 '누군가'를 독려하고 지휘하며 사기를 고취한다.
다시 마이크. 마이크와 앰프가 없었다면 독재자 히틀러는 없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큰 소리'(이를테면 천둥)는 신성성과 권력을 상징했고, 인체에게는 불가능할 정도로 큰 소리를 멀리까지 전달하는 도구인 마이크와 앰프는 한 사람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증폭했다. '스타'라는 존재도, 프로파간다도 그렇게 탄생했다. 가수의 상징이기도 한 마이크가 'VISION'에서는 전쟁의 도구로 연결된다. 음악가로서 갖는 영향력을 환경 재앙과의 전쟁에 쓰겠다는 포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면 'VISION'은 이 연작의 본편에 해당한다.
한정반 패키지인 'T' 버전에 포함된 미니 포스터는 고전적 마이크가 즐비한 연단에 서서 "비전을 주겠다"고 말하는 멤버들의 독사진이 세트로 구성돼 있다. 정치인 포스터의 느낌을 주기도 하고, 어쩐지 참가자들이 롤플레이를 하는 TRPG 게임의 소도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심지어 룰렛도 포함돼 있는데, 사실 썩 잘 돌아가지는 않아서 '최애'의 얼굴을 꺼내놓는 용도에 가까울 것 같기는 하다. 또한, 포토 카드가 'VISION'이라는 작전을 수행하는 요원들의 신상 카드 포맷으로 돼있다. 물론, 케이팝 패키징에서 흔한 것이기는 하나, 이 미니 앨범의 맥락 속에서는 꽤나 걸맞아 보인다. 환경 재앙이라는 주제 의식에 대해 롤플레이 게임 속 이야기처럼 거리감을 주려 하기 때문이다.
청자에게 사안의 심각성을 정면으로 전달하거나 구체적 행동을 유도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며 이는 전작의 한계점과도 상통한다. 그러나 매우 직접적인 가사와 시각 이미지로 캠페인송 같은 인상을 남기기보다는, 환경 재앙과의 '전쟁'같은 테마가 자칫 일으킬 수 있는 낯간지러움을 기피하고, 흥미롭고 짜릿한 케이팝 콘텐츠로서 즐길 수 있게 한다. 단점이라고 할 수도, 상업적/예술적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느 판단이든, 그와 같은 맥락의 덧댐이 상당히 케이팝적인 버릇 또는 기술이고, 동시에 사회적 사안에 대한 케이팝의 시장적 표현 한계를 시험하는 찰랑찰랑한 수위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전에도 드림캐쳐의 수록곡들은 타이틀곡의 테마를 직접 건드리기보다 주변부에서 부가 에피소드 같은 입장을 취하고는 했다. <Apocalypse : Follow us>에서는 수록곡의 테마 연관성이 다른 때보다도 더 느슨해 보이는데, 이를 매우 구체적인 감정선을 드라마틱하게 전달하는 인트로와 아우트로로 보강했다. 'Fairytale'은 아련함과 결기가 뭉클하게 치고 들어오는 록 넘버로 멤버들의 보컬 매력을 물씬 느끼게 해주고, 우악스러우면서도 쫄깃한 비트의 'Some Love'는 아기자기한 구조 속에 낙천과 자신감을 선 굵으면서도 시원스럽게 펼쳐낸다. 6/8 박자 발라드 '이 비가 그칠 때면'은 청순하고 예쁜 서정을 선보이는데, 자칫 느끼해질 수 있을 정도의 선까지 가지만 그것이 드림캐쳐 특유의 정서 세계 속에서는 충분히 소화됨을 증명한다. 모두 서사 속에 포함된 뮤지컬 넘버처럼 해석하려 해도 가능하기는 하고, 다채로운 시도가 담긴 좋은 팝 미니 앨범의 구성품으로서도 훌륭하게 기능해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드림캐쳐에게는 메탈 걸그룹의 시원함과 화끈함, 콘셉추얼 아이돌로서의 가슴 철렁한 긴장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의 수용을 의심해야 할 정도로 과감한 선택에서 시작된 아티스트지만, 조심스럽고 꼼꼼한 판단의 연속이 지금의 드림캐쳐를 있게 했다. 그 점을 새삼 느끼게 하는 <Apocalypse : Follow us>는 콤팩트하지만 본격적이고, 콘셉추얼하지만 팝적 매력도 든든하다. 마지막으로, 최근 환경 이슈와 관련하여 케이팝에서 드문드문 채택하기 시작한 '플랫폼 앨범' 버전으로도 발매된 점 역시 신중한 행보의 예라 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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