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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역자 후기를 쓰지 못한 이유 - 노승영 번역가

『여우와 나』를 번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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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수십 편의 역자 후기를 썼지만, 비판적 읽기가 이번만큼 힘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우가 요술을 부린 걸까? (2022.10.18)

노승영 번역가

안녕하세요. 번역자입니다.

그동안 별일 없으셨는지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청탁 주신 날로부터 오늘까지, 너무 금방이고 말았습니다.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부탁하신 후기를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1)

번역자, 편집자, 비평가는 책을 읽는 자세가 사뭇 다르다. 내가 이 책을 번역하긴 했어도 2022년 5월 31일에 최종 원고를 넘긴 지 석 달도 훨씬 지나고서 역자 후기를 의뢰받은 터라 내용이 벌써 가물가물하여 원고를 다시 읽어봐야 했는데, 이런 독서에서는 아무래도 비평가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적절하겠지만, PDF 파일을 화면에 띄울 때마다 번역자도 아니요, 편집자도 아니요, 비평가는 더더욱 아니요, 다름 아닌 '독자'의 자세로 책을 읽게 되는 바람에 후기에 쓸 글감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나의 원래 계획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작품과 거리를 둔 채 작품의 주제, 내용의 전개, 인상적인 문구, 까다로운 문장,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입할 만한 시사점을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작품과 거리를 두는 것은 고사하고 책 속으로 자꾸만 빠져드는 바람에 마지막 페이지를 끝냈을 즈음이면 마치 KTX를 타고 부산에 갔다가 곧바로 돌아온 듯, 그러니까 아무 데도 다녀오지 않은 듯, 마치 책을 읽지 않은 듯 시간을 제외한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세 번의 시도는 세 번의 실패로 끝났다.

지금껏 수십 편의 역자 후기를 썼지만, 비판적 읽기가 이번만큼 힘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우가 요술을 부린 걸까?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책이 있는가 하면, 제목만 봐서는 내용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책도 있다. 이 책은 당연히 전자다. 『여우와 나』라는 제목에서 저자가 여우를 만나 친해진다는 스토리 말고 무엇을 예상할 수 있을까? 나도 그랬다. 번역을 의뢰받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이 얼마 만이었는지. 자연 에세이는 내가 좋아하고 나름 잘할 수 있는 장르인 데다 출간되는 책마다 독자 반응도 좋았으니까. '이번 책도 무난하게 번역하여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군'하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9개월 뒤 번역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책이 단순한 자연 에세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낌새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자연 에세이를 좋아하고 수월하게 번역하는 이유는 서술이 담백하고 명료하기에 원문을 있는 그대로 번역해도 읽을 만한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다양한 주제와 의미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뿐 아니라 문장도 암시와 복선이 난무하는,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독특하고 기발한 표현은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 호소력을 잃기 십상이다. 게다가 저자는 온 세상을 통틀어 그녀 자신만 쓸 법한 사적 표현을 자유롭게 구사했다. '편집자는 이 책에 꽤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던데, 내가 실망시키면 어떡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이 책을 번역하면서는 역자 교정 과정에서 고집을 꽤 많이 부렸다. '위기의 여자들'(190쪽)에 달린 역주를 빼자고 제안한 것도 그중 하나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을 가리킨다는 건 누구나 알 거라고 생각했다. 드라마와는 담쌓고 지내는 나도 정주행했을 정도이니까. '빨간색 3단 기어 슈윈이 없는 부서진 자전거 자물쇠'(244쪽)의 역주에서도 '여기서 저자는 자물쇠만 남기고 자전거가 사라진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라는 문구를 빼달라고 요청했다. 독자들이 이 표현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고 묘미를 온전히 느끼게 하고 싶었다. 고맙게도 내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지적 자극을 주는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이 고스란히 남을 수 있었다.

'벙어리'는 번역하는 내내 고민스러웠던 문제였다. 이 책의 여우는 성대가 없어 다른 여우들이 내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mute).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다. 이 세상에서 말을 할 줄 아는 여우는 갯과에서 여우가 갈라져 나온 약 1000만 년 전 이후로 단 한 마리도 없었다.2) 즉, 말은 인간만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벙어리'를 '말 못 하는'으로 바꿀 수는 없다. '성대가 없는'도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 'The fox is mute because he doesn't have vocal chords'라는 문장을 '그 여우는 성대가 없어서 성대가 없다'로 번역할 수는 없지 않은가. '벙어리'를 순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벙어리'가 "'언어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풀이되고 '벙어리장갑'조차 '손모아장갑'(326쪽) 등으로 순화되는 추세이니까. 독자들 중에서 '벙어리'라는 표현에 눈살을 찌푸릴 사람이 있으리라는 것, 누군가는 출판사에 전화하여 항의하거나 온라인에서 비판할지도 모른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번역자에게는 '벙어리 여우'가 '언어 장애가 있는 여우'로 바뀌면서 다섯 음절이 아홉 음절로 늘어나고 한눈에 이미지가 떠오르는 명사구가 복잡한 두뇌 활동을 요하는 명사절로 비대해지는 것 또한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설령 일부 사람들이 비하적 의도로 쓰는 말일지라도 당사자가 스스로를 언급하며 쓸 때는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저자와 여우의 한 가지 공통점은 둘 다 장애가 있(었)다는 것이다. '선천적 장애는 그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앞니 사이의 주름띠를 제거하고 잇몸을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다'(438쪽) 저자는 여우의 장애를 아무 감정 없이 담담하게 묘사했을 것 같다. 다만 편집자가 내 마음을 돌리려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음을 밝혀둔다. 그러니 이 책의 '벙어리' 표현에 대한 책임은 모두 저자에게 있다.

'소녀'라는 표현에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에서 40대의 저자가 자신을 '소녀'로 지칭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한 인터뷰에서 인터뷰어가 '소녀' 표현을 언급하며 저자의 당시 나이를 묻자3) 저자는 스스로를 'lady'나 'woman'으로 부른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며, 자신이 체구가 작으므로 여우의 눈에 여자아이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답한다. 저자의 취지를 온전히 살리려면 '여자아이'로 번역해야 했겠으나 독자에게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 '소녀'로 타협했다.

'Fox'의 번역도 고민거리였다. 대문자 'Fox'는 주인공 여우의 이름이다. 저자는 여우를 대면했을 때 'Fox'라고 호칭하고4) 독자에게 그를 묘사할 때에도 'Fox'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대문자가 없는 한국어에서는 이 특별한 여우를 여느 여우와 구분할 방법을 따로 고안해야 했다. 처음 든 생각은, 저자가 한국어를 쓴다면 여우를 '여우야'라고 부를 테니 (이를테면) '여우야는 언제나 스케줄을 정확하게 지켰다'와 같은 식으로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독자가 이 표현을 아무리 많이 접하더라도 결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해법은 '우리 여우'였는데, '나의 여우'가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나는 '나의' 여우를 잃은 것이 아니므로. 그는 내 것이 아니었다"(231쪽)라는 문장에서 보듯 저자는 'my fox'라는 표현을 소유의 의미로 여겨 거부한다. 그러니 한국어판에서도 '나의 여우'라는 표현을 쓸 수는 없었다.(저자가 자신의 철학을 깜박했는지 307쪽에 'my fox'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한국어판에서는 '나의 여우'로 번역하지 않으려고 편법을 써야 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특히 힘들었던 부분은 저자가 배경 지식을 알려주지 않은 채 툭 내뱉는 표현들이었다. '족제비 오줌!(Weasel pee!)'도 그중 하나다. 낯선 표현을 만난 번역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것이 문자 그대로의 표현인지 비유적 표현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첫째, 문자 그대로의 표현이라면 단어들을 영한사전에 나와 있는 대로 번역했을 때, 문맥 속에서 뜻이 통해야 한다. 그런데 저 문구는 여우와 족제비가 무슨 관계인지, 족제비의 오줌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지 못하면 해석할 수 없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것들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둘째, 비유적 표현이라면 더 나아가서 이것이 관용적 표현인지 창의적 표현인지 알아내야 한다. 관용적 표현은 관용어 사전에 들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사전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문화적으로 통용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weasel pee'가 '싱거운 맥주'를 가리킨다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차라리 아무 정보도 못 찾았으면 속 편할 텐데 이렇게 뭐라도 나오면 번역자는 점점 검색과 고민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가지를 무한히 뻗어나가며 오만 가지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번역자의 뇌는 달달한 먹거리나 볼거리를 갈구하게 된다.) 어느 해석도 만족스럽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이 표현이 저자가 만들어낸 독창적 문구가 아닌지 들여다봐야 한다. 이 문구가 감탄사라는 것까지는 알아냈지만5) 정확한 의미와 뉘앙스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는데, 나중에 저자와 연락이 닿아서 드디어 해결할 수 있었다. 15쪽의 옮긴이 주는 이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번역자의 목표는 독자가 이 책을 한 번 읽고서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나조차도 퇴고와 교정을 위해 대여섯 번 읽을 때마다 이전에 놓친 것을 발견했으니까. 독자들에게도 이 책을 곁에 두고 거듭거듭 읽기를 권하고 싶지만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으니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을 수는 없다. 그래서 독자들이 놓쳤을지도 모르는 ―내가 놓쳤던― 것 몇 가지를 설명해두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대목과 여우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대목이 있다. 이를테면 14쪽 둘째 문단이 후자에 해당한다. 저자는 각각의 문단이 누구의 관점에서 서술되는지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기 때문에, 오독하지 않으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경착륙'(109쪽)과 '연착륙'(292쪽)을 이해하려면 여우의 사냥 방식6)을 알아야 한다. 여우는 사냥할 때 수직으로 솟구쳤다가 체중을 온전히 실어 땅바닥에 '착륙'하는 방법을 쓴다. 그러니 사냥에 실패하면 딱딱한 바닥에 몸을 고스란히 처박을 수밖에 없다.(경착륙)

저자가 여우를 기다리면서도 '나타나지 않길 바란'(12쪽) 이유는 오지에서의 외로운 삶을 버리고 사회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정상적인 삶 속으로 첫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여우를 만났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우와 사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여우와의 만남은 저자의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끈다. 그 덕에 우리는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고.

'보름'(38쪽)이라는 표현이 왜 뜬금없이 나왔는지 궁금하다면 3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그러면 원어 'fortnight'을 왜 '2주일'이 아니라 '보름'으로 번역했는지도 알 수 있다) 여기서 보듯 저자는 결코 자상하지 않다. 독자에게 글을 떠먹여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독자 입장에서는 수수께끼를 풀듯 의미를 해독하면서 독서의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여우와 사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저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암시한다. 저자 말마따나 "사람들은 '가장 친한' 친구가 여우라는 말을 '유일한' 친구가 여우라는 말로 받아들"이니까(399쪽). 저자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말 뒤에 숨은 뜻을 눈치채지 못하고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지 못한다. 반면에 여우와 교감하는 것에서 보듯 남달리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정규분포 곡선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평균적인 인간이 아니다.

평균적인 내가 이렇게 독특한 저자의 글에 (역자 후기를 쓰지 못할 정도로) 속절없이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책이 대책 없이 재미있기 때문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평균적인 인간에게도 평균적이지 않은 자아가 있고 그 자아는 평균적이지 않은 저자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번역하고 퇴고하고 교정하는 내내 '저자의 심정을 너무 잘 알겠는데 세상에서 그 심정을 알아줄 사람이 나밖에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여우와의 관계를 조금씩 진전시키는 길목 길목에서 일화, 책, 주장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 책은 자연 에세이처럼 읽히기도 하고 사회 비판서처럼 읽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로맨스처럼 읽히기도 한다. 저자가 과학자로서 받은 훈련에 반기를 들고 동물을 인격화한(24쪽) 덕에 우리는 여우의 생각과 감정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역자 후기를 쓰지 못한 이유」를 먼저 읽고서 본문을 읽는 독자는 이 책이 자신이 상상한 것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이 글이 역자 후기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신의 내면에 들어 있는 수많은 방식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행운을 믿는 당신에게 이 책이 행운을 가져다주길.(87쪽)



1) <악스트> 제9호(2016년 11·12월호) 12~15쪽에 실린 요조의 서평 「악스트 담당자님께」 첫머리를 일부 수정하여 인용했다.('요조'를 '번역자'로, '리뷰'를 '후기'로 바꿨다)
2) www.wildlifeonline.me.uk/animals/article/red-fox-evolution-early-distribution
3) youtu.be/R_EmhP_YwlY?t=530 
4) youtu.be/R_EmhP_YwlY?t=330
'Fox'에서 's'를 길게 끄는 발음을 한국어로 표기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124쪽)
5) 다음 두 개의 링크를 참고하시라.
*newtownreviewofbooks.com.au/catherine-raven-fox-and-i-an-uncommon-friendship-reviewed-by-ann-skea/
*hannahjames.substack.com/p/the-fox-and-the-raven?s=r
6) www.youtube.com/watch?v=H5kokc0ULuo



여우와 나
여우와 나
캐서린 레이븐 저 | 노승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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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승영(번역가)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지과학 협동과정을 수료했다. 컴퓨터 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환경 단체에서 일했다.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을 썼으며,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 『당신의 머리 밖 세상』, 『헤겔』, 『마르크스』, 『자본가의 탄생』 등을 번역했다.

여우와 나

<캐서린 레이븐> 저/<노승영> 역17,820원(10% + 1%)

『파이 이야기』의 얀 마텔로부터 “소로가 『어린 왕자』를 읽었다면 『여우와 나』를 썼을 것”이라는 극찬을 받은 책. 한 무명의 생물학자가 쓴 이 회고록은 PEN 에드워드 윌슨상과 노틸러스 북어워드 금메달 외 다수의 출판상을 휩쓸었고 유수 언론사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꼽히며 과학적 성취와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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