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내 마음속 베스트셀러 1위는 이 책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295회) 『다정한 서술자』,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제철동 사람들』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2.10.13)
불현듯(오은) : 이번 주제는 '내 마음속 베스트셀러 1위는 이 책'입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지금 현재 베스트셀러 1위인 책은 아닌 거죠.(웃음)
올가 토카르추크 저 / 최성은 역 | 민음사
올가 토카르추크 작가님의 첫 번째 에세이에요. 그리고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 출간된 책이기도 합니다. 작가님은 팬데믹 시기에 내가 지금까지 소설을 쓰면서, 혹은 사회 현상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팬데믹이라는 시기가 자신에게 그런 시간이 되어 주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여섯 편의 에세이와 여섯 편의 강연록이 담긴 책인데요. 그 하나 하나가 전부 이 시대를 사는 일에 대해 묻고 있어서요. 그만큼 묵직한 책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문학의 비밀, 문학적 자양분에 대해 이야기한 글들이 있는데요. 뿐만 아니라 작가님이 평소에 주목하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 동물권, 난민 문제, 탈중심주의처럼 21세기에 커다란 화두로 떠오른 키워드들이 글의 소재가 되기도 해요. 하나같이 현재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읽으면서 역시 대가는 이렇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좋았어요.
첫 번째 글이 '오그노즈야'라는 글이에요. 오그노즈야는 올가 작가님께서 만드신 단어이기도 해요. 실어증의 반대 개념으로 만든 용어로, 어쩌면 어디서든 말들이 출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는 단어이기도 한 거죠. 보통은 문제에 접근할 때 한 가지만 보고 해결하려고 하지만요. 이것은 종합적이고 다중적인 접근을 유도하는 방식의 용어이기도 합니다.
내게 문학이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직조하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상호 간의 영향과 연결이라는 통합적 관점으로 세상을 조망하는 에너지가 문학만큼 강력한 장르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능한 한 폭넓게 이해된다는 점에서 문학은 본질적으로 네트워크와 유사하다.
표제작이기도 한 「다정한 서술자」라는 글에서 작가님은 어릴 적 이야기를 해요. 작가님이 기억하는 첫 번째 사진이 자신이 태어나기 전, 어머니께서 젊은 시절에 찍은 사진이라고 하는데요. 볼 때마다 다양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고 해요. 이 감정의 근원이 궁금해서 후에 물어본 거예요. 왜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슬픔이 가득 들어있는 것 같은지 말이죠. 그랬더니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답변을 하셨대요. "엄마는 네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너를 그리워하느라 슬픈 거야." 어린 올가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리워할 수 있는지 반문하는데요. 엄마는 또 이렇게 답합니다. "때로는 순서가 바뀔 수도 있어. 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그 사람이 거기 존재하게 되는 거란다"라고요. 멋지죠? 책을 다 읽고 나서 오랜만에 나도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윤경 저 | 사계절
심윤경 작가님의 첫 에세이입니다. 연말에 양육자로 살고 있는 친한 친구들한테 이 책을 돌리려고 결정할 정도로 너무나 좋았던 책이에요. 여러 번을 읽었는데 다시 읽어도 뭉클해서 눈물이 나는, 내용을 알고 또 읽는데도 밑줄을 치게 되는 책이에요.
저는 어떤 책이 정말 좋다고 평가할 때의 세 가지 기준이 있어요. 우선 '새로운 이야기여야 한다'가 첫 번째인데요. 생각보다 겹치는 이야기, 이미 단행본으로 많이 나와 있는 이야기를 쓰는 책도 있거든요. 두 번째는 '재미있어야 한다'예요. 내용이 너무 좋으니까 재미는 없어도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독자로서 어떤 책을 좋아하는 기준에 재미가 꼭 들어가야 하는 것 같아요. 세 번째는 '나한테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건데요.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는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된 책이었습니다.
나는 할머니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할머니가 나를 사랑했음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해 섭섭한 것도 없다.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사랑하지 않는 경우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러니 사랑하다는 말 자체는 거의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사랑이 무엇이냐, 당신은 할머니께 무엇을 받았기에 그리 잘 아냐고 묻는다면 역시 당황스럽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언어를 다루며 살게 되었지만 내가 경험한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질 때 나는 할머니의 작은 방을 떠올린다.
할머니가 표현을 많이 하신 것도 아니고, 말수도 적으셨는데요. 그냥 할머니랑 있으면 평안하고, 나 자체로 존중을 받는 느낌이었던 거예요. 작가님은 할머니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어요.
'나는 내가 그렇게 많은 것을 받은 줄도 몰랐다. 받은 사람이 받은 줄도 모르게 하는 것. 할머니에게 배운 사랑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주는 평화일 것이다. 할머니가 나에게 무언가 잘해주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두둑한 세뱃돈 한 번 받아본 일도 없고 하다 못해 그분이 차려준 밥을 먹어본 것도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분은 나를 위해 애쓰고 고생하지 않았다. 그저 그분의 작은 평화 속에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끌어안으셨다.'
작가님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관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믿음을 할머니로부터 받았다고 말씀하시고요. 그것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자신감의 씨앗이 되었다고 표현하시거든요.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라면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하고요. 저 역시 힘들어질 때마다 이 책을 계속해서 읽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반드시 양육자가 아니어도 좋죠.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에서 얻는 용기가 있거든요. 그리고 막 부담스럽지 않아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도 들어요. 심지어 문장까지도 좋기 때문에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종철 글, 그림 | 보리
이종철 만화가님의 전작인 『까대기』가 지금까지도 제 마음속 베스트셀러의 상위 목록에 있어요. 택배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서는 지금도 계속 뉴스에 나오고 있잖아요. 그래서 자주 생각하는데요. 바로 그 작가님이 3년 만에 출간하신 장편 만화입니다. 작가님이 어릴 때 포항 제철 공단 지역에서 성장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만화의 제목에 있는 '제철동'은 바로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제철동 지역을 가리키고 있는 거예요.
'작가의 말'에 '나에게 『제철동 사람들』은 만화가로서 오랜 숙제였다'는 문장이 있어요. 그만큼 작가님은 나의 역사, 뿐만 아니라 자신을 성장시킨 모든 사람들의 역사를 기록하고자 하는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주인공 화자인 '강이'가 이종철 만화가님으로 추측되는 인물이에요. 『제철동 사람들』은 강이가 바라본 마을 사람들, 제철소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동네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공장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들의 이야기, 동네에서 분식집이나 미용실, 식당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곳에서 성장하는 강의 또래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낱낱하게 펼쳐지는 작품이에요. 특히, 사업에 실패한 강이의 부모님이 제철동에서 식당을 차리는데요. 그 식당이 김치찌개 맛집이에요.(웃음) 이 식당에서 일하는 이른바 '이모들'이라고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아주 호쾌하게 그려지거든요. 저는 그 대목이 참 좋았어요.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이 있어요. 강이가 초등학교 시절,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만화책을 읽게 돼요. 친구네는 『슬램덩크』 전권이 다 있는 완전 부러운 친구였죠. 그 친구의 꿈이 만화가라는 말을 듣고 자신도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어요. 그때부터 강이는 맨날 만화를 그리는데요. 엄마는 강이가 만화 그리는 게 싫었어요. 본인이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했으니까 내 자식들은 공부를 마음껏 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강이를 막 혼내는데요. 그때 주방에서 일하는 이모 한 분이 강이 편을 들어주죠. 오히려 엄마를 혼내고요. 이모가 엄마를 강이 방에서 쫓아내면서 강이를 향해 윙크를 날립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다정하다고 느꼈는데요. 왜냐하면 어떤 인물도 단편적으로 그리지 않아요. 이 인물이 어떤 삶의 맥락에서 지금 이 위치에 있는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삶을 사는지를 다정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자칫 대상화하기도 쉽고, 인물의 일면만 보여주기가 쉽잖아요. 그런데 『제철동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어요. 읽는 내내 불편함이 거의 없었고요. 오히려 등장 인물들이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 궁금해지기까지 하는 거죠. 그래서 새삼스럽게 누구나의 이야기는 책이 될 수 있구나, 누구나의 이야기가 다 책이 돼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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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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