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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린고비』 노인경 작가에게 듣는 삶의 색채와 온도

『자린고비』 노인경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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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씨가 걱정되지 않아요. 서점에서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알며 건강히 지낼 거라 믿어요. 들고 있는 가방이 무거우면 옆에 잠시 내려놓아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2022.09.23)


어려서부터 가난과 한식구처럼 살아온 고비 씨. 다행히 남들보다 잘하는 걸 일찍 찾아서 그림을 그려 돈을 벌며 살고 있다. 성실히 일하고, 특별히 자기 의견을 내지 않으며, 마감일을 정확히 지키는 것이 고비 씨의 원칙이다. 고비 씨의 식사는 하루에 두 끼, 김밥이다. 최대한 얇게 썰어 달라고 해서 최대한 천천히, 속을 하나, 하나, 빼서 먹는다. 옷은 어쩌다 보니 속옷까지 모두 까만색이다. 까만색은 물감이 튀어도 안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어른이 되니 옷이 작아져서 못 입는 일은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정직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수채화로 담아낸 『자린고비』. 빈틈없이 굴러가는 일상에 순간순간 침입하는 기쁨과 새로움을 느껴보자. 노인경 작가와 서면으로 만났다. 



『자린고비』 표지의 느낌이 초가을의 온도와 잘 맞는 것 같아요.

여러 시안 중에 앞을 보고 서 있는 자린고비 씨의 모습이 좋았어요. '자린고비'라는 고전적인 말에서 오는 느낌과 자기 몸만 한 그림 가방을 든 여자의 모습이 어딘가 어긋난 듯 흥미로워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 같았어요. 그림을 아주 많이 그렸어요. 책에 실리지 못한 그림도 많습니다. 식물에 물을 주듯, 바싹 마른 종이에 색색 물감을 입히며 종이가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출간 전에 편집자와 어떤 종이를 선택할 것인지, 전체적인 색조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의논을 했어요.

'고비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소개를 부탁드려요.

고비 씨는 가난의 경험으로부터 욕망은 위험하다는 걸 몸으로 깨닫고, 일상의 색채를 스스로 포기하며 단조로운 삶을 선택한 인물입니다. 그는 정직하고 단단하며 나름의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요.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않고요. 그런 삶이 부족하다고 느끼지도 않아요. 그의 경험으로 규정된 세계는 딱딱하고 차가운 곳인데 그렇지 않은 누군가를 만나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봐 온 사람이지만, 고비 씨는 여전히 의심하고 경계해요. 그렇지만 조심스럽고 다정하고 지속적인 두드림에, 자신의 속도에 맞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지요.  

『자린고비』는 '그림책이라기에는 아주 길고, 그저 에세이라기에는 또 픽션의 성격이 있고, 소설이라기엔 또 그림이 있고, 마치 그 어느 장르에도 순순히 속해 주지 않겠어!'하고 말하는 책 같아요. 『자린고비』는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태어나게 되었나요?

마음 졸이는 일이 있어서 침대에 며칠을 누워 있었어요. 특별히 다른 걸 할 수가 없어서 글을 썼는데 그때 쓴 글이 『자린고비』였어요. 옛이야기의 주인공 중에 제가 가장 닮은 인물이 자린고비예요. 어릴 적부터 원하는 것이 별로 없었어요. 있는 거 먹고, 있는 거 입고 그랬어요. 청소년기에 집이 경제적으로 휘청했는데, '모든 것을 잃게 될 경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그때 자주 생각했어요. 최악의 순간은 오지 않았고 상황은 나아졌지만 저는 초절전 인간이 되었어요. 글을 먼저 써 놓고 더미 없이 한 장 한 장 그리며 채워 갔어요. 시작할 때는 책의 볼륨이 어느 정도 될지도 가늠하지 않았어요. 일단 그리고 났더니 이런 모습의 책이 되었네요. 

자린고비 이야기는 독립 출판물로 먼저 선보였던 책입니다. 다시 매만지면서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그림책 작가들이 만든 '바캉스'라는 프로젝트 그룹이 있어요. 상업 출판에서 만날 수 없는 성격의 이야기들을 매년 독립 출판물로 펴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전해 보고 싶은 것들, 지금까지 안 했던 것들을 시도해 보게 돼요. 『자린고비』가 독립 출판물로 나왔을 때 독자 반응이 좋아서 놀랐어요.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겠구나 자신이 생겼죠. 문학동네에서 펴내기로 하고서는 편집자와 이야기하며 많은 부분을 더했어요.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면면을 더 담고자 했고,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읽히도록 여러 번 장면의 흐름을 수정했어요. 또, 후반부에 새로운 수채화 그림을 여러 장면 더했어요. 독립 출판 때는 단색으로만 되어 있었어요. 고비 씨가 알아가게 될,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게 될 세계의 색채가 마지막에 짧은 영상처럼 흘러가요. 그로 인해 고비 씨의 삶이 더 입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어요.



출간되자마자 많은 독자들과 동료 작가들이 저마다 벅찬 공감의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어요. 책을 읽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지점에 이끌려서 감동에 이른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장면은 어디인가요?

매트리스 어깨에 이고 가는 장면, 머리카락 자르는 장면 등 여러 장면을 좋아하는데, 그중 편집자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는지 물어보는 장면을 가장 사랑해요. 저를 놀라게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요. 그런 사람들은 마음을 헤아리며 말을 할 줄 알더라고요. 그들의 말에 담긴 온기가 좋아요. 안 닮은 점은, 저는 고비 씨처럼 정직하지는 않은 거 같아요. 필요 없는 말도 자주 하고요.

얼마 전에 이탈리아로 이주하며 삶의 터전이 바뀌었지요. 요즘의 일상은 어떤가요?

크게 달라진 점은 없어요. 청소하고 식사 준비하고 그림 그리면서 지내요. 집 근처에 앨리스 도서관이 있어서 가끔 가고, 아이 축구할 때 밖에서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요. 전화기가 울리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적어요. 이탈리아엔 교회와 성이 많은데, 성에 갔다 오면 욕심이 줄어들어요. 시간의 흐름에 감탄하고, 우주 속 작은 저를 인식하게 돼요. 이곳에 오니 하루가 길어진 느낌이에요.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그런가 봐요. 시댁이 바닷가 앞이라 여름의 반은 그곳에서 지냈어요. 아침에 그림, 그리고 점심 먹고 바다 갔다가 늦은 오후는 수영장에서 보냈어요.

『자린고비』를 함께 만든 사람들, 또 독립 출판물로 먼저 읽고 기다려 주신 독자들, 모두가 고비 씨와 깊이 정이 들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고비 씨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고비 씨가 걱정되지 않아요. 서점에서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알며 건강히 지낼 거라 믿어요. 들고 있는 가방이 무거우면 옆에 잠시 내려놓아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노인경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순수 미술을 공부했다. 『고슴도치 엑스』,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 『책청소부 소소』, 『기차와 물고기』, 『너의 날』을 쓰고 그렸으며, 동시집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 『엄마의 법칙』,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 『맛있는 말』에 그림을 그렸다.



자린고비
자린고비
노인경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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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린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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