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울어주는 아이 '곡비'를 떠올린 이유
『눈물 파는 아이, 곡비』 김연진 작가 인터뷰
아픔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그로 인한 상처는 이겨낼 수 있으니, 그것은 누군가의 따뜻하게 웃어 주는 웃음 때문일 수도 있고, 함께 울어 주는 눈물 때문일 수도, 다정하게 잡아 주는 손길 때문일 수도, 아낌없이 내어 주는 어깨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2022.09.21)
작품 속 주인공 '아이'는 양반집에 초상이 났을 때 가족 대신 울어 주는 '곡비'의 딸이다. 하지만 아이는 곡비가 되고 싶지 않았다. 엄마 손에 억지로 끌려간 상갓집에서 자신과는 반대로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상복을 입지도 못하는 '오생'을 만난다. 오생은 양반집 대감의 손자이지만 팽형을 받은 아버지 때문에 호적에도 오르지 못해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며 살고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수원 화성에 나타난 선비가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독자는 선비의 정체를 추리하는 재미에 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들 앞에 곤룡포를 입고 나타난 선비의 정체가 조선의 왕 '정조'라는 걸 알았을 때 퍼즐이 완성된다. 『눈물 파는 아이, 곡비』 속 '곡비'와 '팽형', '정조'라는 역사적 사실 위에서 아이와 오생과 정조가 만들어 내는 감동은 줄타기를 보는 듯 아슬아슬하면서도 완벽하다.
『눈물 파는 아이, 곡비』는 작가님의 첫 역사 동화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동화를 쓰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위인전을 좋아했고 지금도 시대극은 관심 있게 봅니다. 내가 살지 못한 시간, 인류가 지나온 오래된 과거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역사 동화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록된 역사를 바탕으로 기록되지 않은 과거를 상상하는 것은 재미있었습니다. 밑그림 있는 퍼즐을 새롭게 나만의 그림으로 완성시키는 것 같은 묘한 만족감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조선 시대인데요. 편집자인 저도 원고를 보며 '곡비'라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어떻게 곡비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셨는지요?
10년 전쯤 다큐를 보고 '곡비'라는 직업을 보게 됐습니다. 곡비에 대한 다큐는 아니었고 스치듯이 등장했는데 기억에 남았습니다. 다큐를 보고 얼마 지나지 않은, 눈이 펑펑 오는 날이었습니다. 걸어오는 학생의 얼굴에 내린 눈이 녹아서 눈물로 보였고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시각적 이미지가 시작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역사 속 '팽형'이라는 형벌에 작가님의 상상이 더해진 설정이 '오생'이라는 아이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합니다. 어떤 의도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울지 못하는 주인공 '아이'는 반드시 울어야 하는 '곡비'입니다. 어떤 상황이 되어야 '아이'가 진정한 곡비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진심이 담긴 눈물은 전염된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팽형을 받은 '오생'의 아버지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취급되어 진짜 죽었어도 장례를 치르지 못합니다. '아이'가 준비한 장례식에서 슬피 우는 '오생'의 눈물이 마중물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조는 굽이치는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인물로 영화, 책 등에 고뇌와 비운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전작이 많은 만큼 다루기 어려울 수도 있었을 텐데요. 작가님이 정조를 어린이들과 연결시키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버지 사도 세자가 비참하게 죽었을 때 정조는 고작 11살 아이였습니다. 더구나 울며 애원해도 아버지를 살려주지 않은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야 했습니다. 상처받은 아이를 그대로 가슴에 품은 채 말이죠. 그 어린 정조가 늘 신경 쓰였습니다. 그 아이를 화성 행궁 아이들과 만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처럼 상처를 지닌 '아이'와 '오생'에게 도움을 주면서, 오히려 본인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기를 바랐습니다. 남을 도우면서 스스로 힐링되는 경험을 하는 것처럼요.
주인공 '아이'는 조선 시대 천대받는 노비 신분의 약자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신분과 성별에 매이지 않고 매순간 자신과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하고 당차게 행동으로 옮깁니다. 작가님은 '아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자유'로 꼽습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버겁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제 어린 시절을 떠올려봐도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유가 많이 제한됩니다. 하물며 신분 제도에 얽매인 조선 시대의 곡비 '아이'는 오죽했을까요? 삶은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멋진 배를 타고 가는 아이도 있고 조각배를 타고 가는 아이도 있을 겁니다. 그저 헤엄치는 아이도 있겠죠. 그래도 폭풍우가 쳐서 배가 뒤집혔을 때 생명을 구하는 건 수영 실력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마음 속에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지요. 어린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으셨나요?
아픔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그로 인한 상처는 이겨낼 수 있으니, 그것은 누군가의 따뜻하게 웃어 주는 웃음 때문일 수도 있고, 함께 울어 주는 눈물 때문일 수도, 다정하게 잡아 주는 손길 때문일 수도, 아낌없이 내어 주는 어깨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주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역사 동화로 큰 발걸음을 떼셨습니다. 다음 한걸음은 어떤 작품일지 궁금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계획인가요?
평행 세계 SF를 쓰고 있습니다. 생일날 학교에 5학년 0반 교실이 나타나고, 그 안에서 주인공과 똑같은 아이가 나옵니다. 그 아이는 주인공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데 주인공이 두 세계의 삶을 살아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또, 청소년 역사 소설을 고치고 있습니다. 선조가 왕위에 즉위하기 전, 하성군일때의 삶을 다뤘습니다. 관직에 오르기 전인 청년 이순신과 왕이 되기 전인 하성군의 만남, 왕이 되고 싶은 하성군의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김연진 청주의 어느 산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과수원의 나무와 하늘과 샘물이 상상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대학교에서 국제 통상을 공부하고 회사를 다녔지만, 늘 작가를 꿈꾸어 지금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문화일보 신춘문예, 푸른문학상, 살림어린이문학상에 당선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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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진> 글/<국민지> 그림11,7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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