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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박오복 번역가 "텍스트를 읽는 것은 자신의 삶을 읽는 것" - 『다락방의 미친 여자』

『다락방의 미친 여자』 박오복 역자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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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더 넓히고 다듬어서 보다 많은 사람이 그 길로 들어서서 함께 걸어갈 수 있게 하는 일은 우리들, 특히 새로운 세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2022.09.19)


여성 작가의 좌표를 내리그은 최초의 이정표, 페미니즘 비평의 시대를 연 최초의 책, 문학 읽기의 새로운 길을 연 현대의 고전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미국 출간 43년 만에, 한국어판 출간 13년 만에 재출간된다. 문학의 역사를 여성 작가라는 키워드로 재구성한 이 책은 발표 당시 문학 연구 및 비평의 새로운 출발점을 세웠다는 찬사를 받으며 보통의 독자는 물론 문단과 학계에 파란을 일으킨 하나의 사건이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번역한 박오복 역자를 서면으로 만났다. 


출간 전부터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2009년 첫 출간 때, 절판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이번에 재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번역을 결심했을 때,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우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분량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이 주로 널리 알려진 대중적인 작품이긴 했지만, 그래도 학문적 비평서인 만큼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 이외에는 그렇게 관심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첫 출간본이 절판되고, 많은 분들이 어떻게 책을 구할 수 없느냐고 저에게 연락을 해왔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았는데, 재출간 소식에 한편으론 너무 기쁘고 또 한편으론 놀랐습니다. 

우선 그 오랜 시간 동안의 힘든 노동의 대가를 정신적으로 보상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기뻤고, 베스트셀러도 아닌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종이책도 독서 인구도 점차 사라지고 있고, 특히 젊은 친구들이 책을 보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견해에 저도 은연중에 동의하고 있었는데, 1,000명의 예약 판매 소식이 저의 그러한 편견을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이 거대하고 두꺼운 책을 번역하게 되셨나요? 처음 번역을 맡으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또, 번역에 쏟은 시간은 얼마나 되시는지요?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석사 학위 논문을 쓸 때 시작되어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쓸 때까지 쭉 지속되었습니다.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할 당시 페미니즘 문학 비평이 이미 하나의 비평 방법론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는데, 그때 이 책에 나온 디킨슨에 대한 글을 감명 깊게 읽으면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 대한 사랑을 키워갔습니다. 대학원 시절 내내 페미니즘 문학 비평을 관심이 있었지만, 이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는 학위 논문 이후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해외 연구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저는 이 책의 저자인 샌드라 길버트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데이비스 캠퍼스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비평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강조하면, 이 책이 열어준 페미니즘 비평이라는 새로운 시각은 19세기 영문학 전반에 걸친 이해를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후 전개된 다양한 현대 비평 이론들과 만나 교접하고 분기하는 과정에서 인문학 전반에 많은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이 책이 페미니즘 비평의 기원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영어권 바깥에 있는 많은 우리 독자들이 접할 수 있도록 번역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방대한 책이어서 감히 엄두를 못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초판본 출판사 대표님이 학교로 찾아와 번역 의뢰를 했을 때 너무 놀랐습니다. 인문학 도서 출판의 어려움은 익히 알고 있어서, 이 책의 진가를 알아봐준 출판사 대표님의 안목과 용기에 힘입어 그동안 마음속 깊숙이 묻어두었던 저의 내밀한 욕망을 실천할 결심을 했습니다. 이 작업에 겁 없이 선뜻 나서게 된 것은 샌드라 길버트 교수와의 인연이 한몫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 그분과 나누었던 시간과 추억들이 거의 2년 반에 걸친 지치고 힘들었던 번역 작업 내내 많은 격려와 위안이 되었습니다.

번역 작업 중 가장 어려우셨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역시 내용과 분량의 방대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은 결국 시간과 체력과의 싸움이고, 특히 이 책처럼 분량이 방대한 경우 지치지 않고 지속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혀 접해보지 못한 작품들을 읽어보고 찾아보는 일에 엄청난 시간의 노동이 필요했던 만큼, 초벌 번역이 끝났을 때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심경이 들 정도로 지치기도 했는데요, 편집자들의 노고와 격려는 늘 다시 새롭게 시작하게 해주었습니다. 내용 면에서 보면, 특히 시 번역이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운율과 리듬감을 살려 맛깔나게 번역해내느냐가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역본의 새로 출간된 번역본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다시 읽어나가시면서 어떤 부분에 집중해서 작업하셨는지요? 

일단 고유 명사의 번역이 새로운 기준에 의해서 많이 달라졌고, 문장을 좀 더 길지 않게 단문으로, 그리고 운문 번역은 되도록 구어체로 수정했습니다. 다시 읽어가면서 집중했던 부분은 물론 한번 읽어서 곧바로 선명하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오역이었던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문장이 너무 길고 애매한 대명사들의 반복 때문이어서, 그런 점을 고치려 노력했습니다.

이 책을 가장 깊이 들여다본 한 사람의 독자로서 말씀해주신다면, 선생님께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어떤 책인가요? 이 책을 처음 접한 독자들에게 간단히 설명해 부탁드립니다.

제 공부의 방향을 잡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제 삶을 다시 들여다보고 읽게 해준 책입니다.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하면서, 그 영역이 자연스럽게 다양한 현대 비평 이론으로까지 확장되어 나갔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의 제도권에서 제가 배웠던, 그리하여 제가 아무런 의문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많은 개념들, 즉 젠더, 인종, 계급, 종교, 진리 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들 여성 작가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에서 창조해낸 여성 인물들의 삶을 읽어가는 과정은 곧 저의 삶을 읽어가는 것과 같아,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읽는 것이라는 말을 절감하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는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조지 엘리엇, 에밀리 디킨슨 등 위대한 여성 작가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작가 중 선생님께 가장 마음이 가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이유도 궁금합니다. 

모든 작가들을 다 말하고 싶어 어려운 질문이지만, 한 사람만 꼽으라면 '에밀리 디킨슨'입니다. 아마도 제가 가장 오래 깊이 들여다봐서 가장 잘 아는 친숙한 작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대의 가부장적·미학적 기준에 맞지 않아,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작품도 거의 세상에 내놓지 않은 시인이지만, 디킨슨은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은 그 어떠한 권력과 제도와도 타협하지 않은 채, 그 완벽한 고독 속에서 더없이 반항적이면서도 풍요롭고 찬란한 정신의 힘을 가장 독창적인 형식으로 보여준 작가입니다.

한국에서 페미니즘 문학을 공부하신 거의 첫 세대 학자이실 것 같은데요. 선생님에게 여성 문학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저에게 여성 문학이란 저 자신과 여성뿐만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새롭게 읽어낼 수 있게 해주는 길잡이입니다.

샌드라 길버트 선생님과 함께 연구했다고 들었는데요. 기억나는 일화를 풀어주실 수 있을까요? 도움을 받았던 일이라든지, 대화를 나누었던 시간이라든지요. 

샌드라 길버트 선생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분을 처음 강의실에서 만났던 장면입니다. 한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콜라 컵을 든 채 강의실에 들어서던 그 당당한 모습, 그리고 쉬는 시간에 보도에 나가 맛있게 담배 피우던 모습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멋쩍기도 하지만, 한창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때는 선생님이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내심 존경해온, 그리고 사진으로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좁지 않은 강의실을 꽉 채운 듯한 그 아우라에 조금은 기가 죽어, 앞으로의 과정이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19세기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그분의 강의가 시작되자 우리 모두는 마치 작품 속의 여자 주인공이 된 듯한 분위기에 휩싸여 왠지 가슴 뿌듯하고 자부심 섞인 흥분을 느꼈습니다. 그 첫 강의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또한, 사적으로 그분의 연구실에서 만났을 때 선생님은 강의실에서의 모습과는 다르게 매우 친절했고 다정다감했고, 또 처음 만났을 땐 샌드라와 수전이 함께 엮은 그 두꺼운 『노턴 앤솔러지: 여성문학』에 '데이비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손수 사인을 해서 건네주었던 감동했던 기억도, 주말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버클리 캠퍼스 근처의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곧잘 사주셨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선생님은 한국의 페미니즘 문학에 대해 알고 싶어 하셨고, 저는 주로 그녀의 책에 대해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이 책을 새롭게 접한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에게 한마디를 들려주신다면요. 

위대한 여성 작가들이, 그리고 그들이 창조해낸 그 위대한 여성 인물들이 열어젖힌 그 길을 우리가 지금 걷고 있습니다. 남성 중심적 사회와 문화에 변화를 일으켜, 보다 나은 다른 세계로 나아가고자 했던 이들의 노력 덕택에 길은 만들어졌지만, 그 길을 더 넓히고 다듬어서 보다 많은 사람이 그 길로 들어서서 함께 걸어갈 수 있게 하는 일은 우리들, 특히 새로운 세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책이 그 길로 들어서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박오복

전남대학교 영어영문과와 서강대학교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과 미국 코네티컷 대학에서 연구 교수로 재직했다.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시절,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산드라 길버트 교수를 만나 수학했고, 그 인연으로 『다락방의 미친 여자』  한국어판 번역을 맡게 됐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에이드리엔 리치, 루스 이리가라이, 가야트리 스피박 등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에 관한 논문을 다수 썼으며, 저서로는 『에밀리 디킨슨 시에 나타난 비극적 변증법』이 있다. 『참을 수 없는 몸의 무거움』, 『현대문학 이론 입문』, 『19세기 영국 소설과 사회』, 『SF의 이해』 등을 번역했다. 현재 순천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락방의 미친여자     
      
다락방의 미친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저 | 박오복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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