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란 "이제 슬픔이 녹아가는 거예요"
『수면 아래』
'이제 녹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소설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2022.09.08)
"사건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를 살아가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주란 소설가는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저는 사건 자체를 엄청 잘 쓰지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 후에 살아가는 마음 같은 건 잘 쓸 수 있어요."
작가의 첫 번째 장편 소설 『수면 아래』는 그런 이야기다. '해인'과 '우경'에게 사건이 있었고 두 사람은 어긋났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시간을 거쳐 지금에 다다랐는지 세세하게 알 수는 없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소설이 그리고 있는 것은 '그 후에 살아가는 마음 같은 것'이다. 인물들은 서로 만나고, 밤새 잘 잤는지 묻고, 같이 밥을 먹고, 거리를 걷고, 대화를 하고... 그렇게 서로의 곁을 서성인다.
『수면 아래』의 출간을 기다리며 박연준 시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저는 주란 씨 소설 속 인물들이 힘들고 슬픈 일을 겪은 뒤에 밥을 하고, 상을 차리고, 장을 보고, 일을(그렇죠, 일을!) 하러 가는 걸 보는 게 힘들면서 좋아요. 그게 딱 삶이잖아요." _<월간 채널예스> 2월호 「신간을 기다리며」 중에서
이주란 소설가는 2012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에 단편 소설 「선물」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 있다. '제10회 젊은작가상',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새 책의 출간과 연재로 바쁘게 지내실 것 같아요.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일상은 똑같아요. 일을 하기 때문에 거의 회사원처럼 출근했다가 돌아와서 쉬고 집안일하고... 일주일에 며칠 쉬는 날이 있어서 그때 글을 써요. 일상은 엄청 평범하고 특별한 게 없어요.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계시죠?
네.
예전에 <문장의 소리>에 출연하셔서 말씀하시기를, 아이들이 글을 쓰기 전에 '어떤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물어본다고 하셨어요. 이후에 인물과 배경을 정하신다고요. 작가님이 소설을 쓰시는 순서도 비슷한가요?
네, 제가 쓰는 방식으로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것 같은데요. '어떤 이야기를 쓸 거야?'라고 물어보면 처음부터 생각해내지 못해요. 그런데 사람마다 원하는 분위기는 다 있는 것 같아요.
작품을 쓰실 때마다 떠올리시는 분위기가 다 다른가요?
분위기를 가장 중요시하는데, 제가 원하는 분위기가 몇 년째 똑같아요. 엊그제도 핀 시리즈(『어느 날의 나』)가 나와서 '몇 년간 이 분위기에 엄청나게 사로잡혀 있었나 보다' 하는 걸 느꼈어요.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약간 고민이 있었거든요. '왜 이렇게 나는 똑같은 것만 쓰지?'하는 고민이 있었는데, 결과물로 나오고 나니까 '내가 이 분위기를 엄청 좋아했나 보다'하고 그냥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 분위기가 어떤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음... 슬펐다가 괜찮아질 무렵? 그 직후는 쓸 수가 없고 그 다음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박연준 시인님이 <월간 채널예스>에 쓰신 글을 봤어요. 작가님께 연서를 보내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웃음)
저도 그 글을 읽고 엄청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이런저런 글쓰기에 고민이 많았는데, (박연준 시인님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되게 힘이 나더라고요.(웃음)
박연준 시인님이 '무엇보다 잘 쓰려는 의지 없이 제대로 말해버리는, 작가의 태도가 매력적'이라고 쓰셨어요.
최선을 다하기는 하는데, 저한테는 잘 쓰려는 의지가 없는 게 최선인 것 같아요.
잘 쓰려는 욕심을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세요?
네, 그리고 못 쓴다는 생각도 안 하려고 하고요. 잘 쓰려고도 안 해요.(웃음) 아무 생각도 없는 상태로 하려고 노력한 다음에 글을 쓰는 것 같아요.
두 가지 다 어려울 것 같은데요. 못 쓴다는 생각도 안 하고, 잘 쓰려고도 안 하고.
그런가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니 더 망쳐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쓰고 싶은 이야기도 하나인 것 같아요.
쓰고 싶은 소설은 어떤 모습인지,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말로 하는 건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분위기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음...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멀리 어떤 동네가 보이잖아요. 시내 도로가 아니라 제방도로 같은 바깥 도로를 지나갈 때 보이는 동네요. 띄엄띄엄 집이 몇 채 있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이 소설을 쓸 때 버스 타고 그런 마을을 많이 지나가보면서 그곳에 사는 한 여자를 생각했어요. 그런 도로에는 버드나무가 엄청 많아요. 소설에는 버드나무가 딱 한 번 나오는데, 저는 버드나무가 있는 한적한 마을 풍경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 '해동이라는 단어에는 여러 뜻이 있는데 전부 마음에 든다'고 쓰셨습니다. 집필하시는 동안 '해동'에 대해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저한테는 쓰기 직전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쓰기 전에 많은 걸 구상해 놓지는 않지만 '이런 걸 써야지, 이런 걸 쓰고 싶다'는 마음이 중요해요. 이 소설을 쓰기 전에 '해동'이라는 단어를 많이 생각했고, 쓰면서는 크게 염두에 두지는 않았어요.
'해동(解凍)'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2월쯤이었던 것 같은데, 백사실 계곡에 우연히 가게 됐어요. 바깥 온도는 십 몇 도였는데 거기는 꽝꽝 얼어 있었어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랬어요. 그래서 '여기 있는 물고기들은 어떻게 살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때가 겨울잠을 자는 시기였던 거예요. 그래서 '녹겠다, 알아서 잘 얼어 있다가 겨울잠을 자다가 이제 녹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소설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제 녹겠다'라는 생각이 작가님에게 위로가 되었나요?
음... 오히려 위로의 반대 느낌이 들었어요. 어련히 그렇게 될 텐데 내가 걱정했구나, 같은. '자기들만의 시기가 있고 방식이 있을 텐데 내가 미리 걱정했구나, 다들 자연스럽게 살겠지'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첫 장편 소설입니다. 걱정과 긴장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없었어요. 처음에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웃음) 그런데 첫 주에만 그랬던 것 같고요. 책이 나왔을 때도 별다른 느낌은 없었는데, 쓸 때는 달랐어요. 쓰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느낀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글쓰기가 힘든 거구나'하는 것도 처음 느껴봤고, 이렇게 엄청나게 고친 것도 처음이었고, 매일매일 한 소설 생각만 한 것도 처음이었어요. 글을 쓸 때 느끼는 모든 것들을 거의 처음 느낀 것 같아요.
저는 두 번 소설집을 냈으니까, 지금까지 열여덟 편 정도를 썼다고 하면 그 중에 열다섯 편은 '재밌다, 즐겁다' 이러면서 썼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처음으로 그런 걸 느꼈던 것 같아요. 매일매일 소설 생각을 하다 보니까 다른 동료들이 엄청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왜 괴롭다고 했는지 공감되면서 알게 됐고요. 저는 그 괴로움에서 빨리 빠져 나오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다른 분들은 계속 괴로움 속에서 쓰고 있을 걸 생각하니까, 엄청 큰 힘도 되고 존경심도 들었어요. 쓰는 과정에서 더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내 직업이 소설가구나'라는 것도 처음 느끼고요.
이전에는 별로 체감하지 못하셨어요?
체감할 일이 없었어요. 그냥 소설을 쓴다는 느낌이지 '내 직업은 소설가야' 그렇게 크게 느끼지는 못한 것 같아요. 이번에 '소설가가 직업이구나, 진짜구나' 이렇게 느꼈어요.
인물들이 서로 '지난밤에 잘 잤는지, 무슨 꿈을 꾸었는지' 물어볼 때가 많아요.
잠을 많이 이야기한 건, 제가 엄청 좋아하는 친구 중에 두 명이 불면증이 있어요. 연락을 하게 되면 잘 잤냐고 물어보는데 99%의 확률로 못 잤기 때문에 그 질문은 무의미해지는데요. 그러니까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 친구가 잘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되게 잘 자는데, 그러니까 미안하기도 하고요. 잠을 잘 자는 게 안부 인사가 되어버린 건 개인적인 경험이기도 해요.
꿈 이야기는, 제가 꿈꾸는 걸 좋아하는데 꿈을 꾸면 꼭 노트에 적어요. 관련 책도 사서 볼 정도로 좋아하는데요.(웃음) 어떤 때는 의도와 상관없이 말도 안 되는 등장인물이 나올 때도 있잖아요. 그러면 '뭐야, 왜 이런 꿈을 꿨어?' 그러지 않고 '왜 꿨을까?' 이렇게 생각해 봐요. 혼자서 생각하면 엄청 답답하고 그 생각이 빨리 끝날 텐데, 꿈을 연구하는 친구가 있거든요. 그래서 같이 '오늘 무슨 꿈을 꿨냐 하면...' 이러면서 이야기해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거죠. 그러면서 파헤쳐가 봐요. 그런 게 제가 일상생활을 살아갈 때 엄청 도움이 많이 되고, 재밌고 좋아요.
해인과 길을 걷던 우경이 카디건을 벗어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해인은 춥지 않다고 하는데 우경은 "아냐, 너 추워"라면서 굳이 카디건을 건네줘요.
우경이 나쁜 의미로 그렇게 한 건 아니지만, 해인이 진짜 안 춥다고 계속 말했는데도 "너 추워"라고 하잖아요. (그 장면은) 두 사람이 끝내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였어요. 우경의 입장에서는 배려였고 좋은 의도였을 텐데, 해인의 입장에서는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아요.
사랑해도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고 서로 미끄러지기도 하는 게 현실이죠.
그렇죠. (사랑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별개인 것 같아요. 사랑하지만 '난 이래'라고 말해도 안 들어주는 것 같아요. 대부분은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해서 결정하고 행동하고. 결국 별개의 인간이니까요.
작가님은 어떤 순간에 이해했다거나 이해 받았다고 느끼세요?
이해 받을 일이 별로 없어요. 이해 안 받아도 상관없고요. 평소 누군가한테 이해를 바랄 일이 거의 없는데... 한 가지 떠오르는 건, 글 쓰면서 사는 일은 이해 받기가 좀 어려운 것 같아요. 뭔가 대단하고 특별하다는 게 아니라,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잘 없다는 거예요. 뭔가 힘들다고 하면, 다른 일들은 많이 이해해주거든요. 글쓰기의 힘든 것은 이해 받고 싶은데 그런 경우가 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들끼리도 다 다르잖아요. 각자의 입장과 스타일이 달라서 다 이해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큰 틀에서 힘들고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은 많이 공감해주는 것 같아요. 그때 이해 받는다고 느껴요. 말을 엉망으로 하는데도 "뭔지 알아" 이렇게 말해주니까. 그럴 때 체증이 내려가면서 죄책감, 부끄러움, 그 많은 감정들이 다 사라지면서 "그치? 내 기분 알겠지?" 이런 상태가 돼요.
많이 토로하시는 글쓰기의 힘듦은 어떤 거예요?
소설을 쓰고 나서 많이 느낀 건데, 제가 그 과정을 별로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신나거나 즐겁고 행복한 거라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오는 많은 기분들까지 통틀어서 즐기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글쓰기는 결과도 결과지만 과정이 더 길고, 글을 쓰는 게 직업이니까 그 과정을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될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회사원이 회사 다니는 게 너무 힘들면 그만둬야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내가 글쓰기의 이 많은 과정들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걸 잘할 수 있는 사람일까?'하는 고민을 해요. 그게 힘든 것 같아요.
소설을 읽으면서 해인의 유년이 궁금해졌어요. 해인은 스스로를 '슬픈 어린이'였다고 하잖아요.
처음에는 '해인이랑 우경이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했는데 결국은 헤어지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어요. 이 이별이 더 끔찍해지려면 둘이 가족 같아야 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해인이에게는 엄마는 있지만, 엄마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방치된 것 같은 느낌의 상황이 있었고요. 우경의 부모님은 돌아가셨다는 설정을 했어요. 그런 두 사람이 열일곱 살에 서로를 만난 거죠. 결혼도 일찍 했고요. 그래서 더 소중했을 거고, 더 헤어지기 어려웠을 거고, 그렇지만 헤어진다는 설정으로 썼어요. 그런데 (원고를) 고치다 보니까 헤어지는 건 똑같지만 미워하지는 않게 되었죠.
그렇게 바뀐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나요?
음...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미워하는 게 현실적인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개월이 지나서 고칠 때 즈음에는 '이렇게 단칼에 끊을 수는 없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그대로 두는 게 더 자연스럽고 진짜 같을 것 같았어요. 진짜 현실은 이거 같아요. "다시는 연락하지 마"라고 하고 속으로 그리워하는 거. 그게 바로 괴로움이거든요. "네가 싫어"라고 말한 다음에 그리워하는 게 또 괴로움이잖아요. 헤어지는 건 헤어지는 거고 그리운 건 그리운 거다, 그렇게 그대로 두는 게 두 사람이 덜 괴로울 것 같았어요.
'겨울 날씨 같은 3월'에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겨울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시기'에 끝이 나요. 시작과 끝의 계절이 똑같은 이유가 있나요?
저한테는 1월과 2월을 빼는 게 더 중요했어요. 마지막에 퇴고할 때 생각한 건 납골당에 갔다 온 저녁으로 시작하는 거였는데, 그 앞을 쓰기가 싫었다고 해야 될까요. 그래서 1월과 2월을 비워뒀죠. 해인이가 3월부터 12월까지 살아가는데, 어떻게 보면 그냥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슬픔은 1~2월에 얼어붙어 있고 이제 녹아가는 거죠. 3월부터 살짝살짝 녹아가는 거예요. 퇴고할 때 1월과 2월에 대한 이야기를 넣고 싶었는데, 혼자서 '1월과 2월은 그냥 둬야지, 얼어 있으니까'하고 생각했어요.
해인과 우경 사이에 있었던 일이나 이후의 시간들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의도하신 것 같아요.
음... 너무 중요해서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할까요.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건 자체도 너무 중요하지만 , 그 이후를 살아가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요. 그리고 저는 사건 자체를 엄청 잘 쓰지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 걸 잘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글을 쓸 때의 마음가짐과 별개로 그냥 능력이라고 할까요. 묘사를 잘 한다거나, 그런 능력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걸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 후에 살아가는 마음 같은 건 잘 쓸 수 있어요. 저 자신도 어떤 사건이든 그 다음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 능력도 사건보다는 이후를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게 결부된 것 같아요.
인물들이 밥을 지어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자는 소소한 일상을 이어가는데, 그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내셨어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엄청 조그만 일에도 너무 힘들어요. 어렸을 때부터 생각하면 너무 많은 일을 겪은 것 같고, 그러니까 작은 일에도 '으악, 또?'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러면 살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서 그냥 살자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해요. 그냥 살자. 그 생각을 많이 하는 한다는 건, 그러지 않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돈이 많은데도 돈을 더 벌고 싶을 수도 있지만, 돈이 없으니까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처럼요. 그러지 못하니까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많은 은유와 상징이 담긴 소설 같아요. 이를테면, 우경이 회사의 보조 열쇠와 설탕과 리모컨을 잃어버리는데요. 마치 해인과 우경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겉으로 볼 때 우경은 평범한 회사원인데, 그런 우경이 잃어버릴 수 있는 걸 세 가지 생각해봤어요. 회사 보조 열쇠는, 진짜 없어도 되는 거잖아요. 설탕은, 사랑처럼 조금 달콤한 걸 넣고 싶었고요. 리모컨은 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거죠. 그러니까 우경의 삶은 회사랑 해인이랑 집 안에서의 혼자만의 생활인 거예요. 자기 자신, 회사, 그리고 사랑. 그런데 잃어버렸죠. 어떻게 보면 우경은 해인보다 더 큰 슬픔이 있어서 오히려 베트남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이에요. 직면한다고 할까요. 그 슬픔에 직면해본 적이 있어서, 그래서 가는 사람이에요.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지 않나요'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작가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고요.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 제가 겪은 건 그렇지 않은데, 그건 제가 많은 사람을 못 봐서인 것 같아요. 보는 사람만 보고 다양한 사람을 보지 못하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고.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다 비슷하지 않을까요. 다르다고 생각하면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이주란 1984년 김포에서 태어났다. 2012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2012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선물」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김준성문학상, 제10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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