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선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288회) 『기념의 미래』, 『덕다이브』,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무엇보다도 '선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작업이 왜 중요하냐면 기념이라는 것이 단순히 과거를 곱씹거나 과거에 벌어진 참혹한 사건에 경악하고 공포를 느끼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22.09.08)
최호근 저 |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기념의 미래』는 기억문화의 한 영역인 기념문화를 살펴보는 책입니다. 최호근 저자는 기념문화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념문화는 사회적 기억의 형성, 계승, 전유 과정을 각인하는 매체의 특징과 작용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기억의 계승, 가공, 심화와 확대를 지향하는 모든 기획과 활동, 매커니즘과 영향까지 포괄한다."
예를 들어서 역사 기념관들, 박물관들, 역사와 관련한 전시들, 기념물들, 이런 것들이 기념문화에 포함되고 그것이 관람객인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기록은 대개는 증거들이고 강자보다는 대개 약자의 무기이기 때문에 강자는 기록을 늘 억압하고 말살하려는 시도를 해왔죠. 부패한 권력이 언론을 통제하려는 이유도 그것일 테고요. 나치가 바르샤바 유태인 게토나 폴란드의 절멸 수용소를 떠날 때 가장 먼저 철저하게 한 작업이 바로 기록 말살이었습니다.
우리가 부담스러운 과거사를 굳이 기억하는 이유는 참상을 세상에 알리고 집단으로 기억을 간직하고 세대를 넘어서 국가 폭력과 인간의 야만성을 경계하기 위해서인데 기록이 이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념의 미래』에 언급된 일화를 소개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때 바르샤바 게토 안에서 활동하던 저항 조직이 모든 일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만드는 일을 했는데요. 1943년에 게토 소개 작전이 임박했을 때 '링엘블룸'이라는 사람이 이 자료를 선별해서 우유통 3개 안에 넣고 땅에 묻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이 자리에서 두 개가 발굴이 되었고 게토의 실상을 알리고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현재까지도 활용이 되고 있다고 해요.
기억은 기록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렇지만 기록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을 하는데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해도 후세대가 꾸준히 읽고 보고 들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동시대와 꾸준히 만나려는 가공 작업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기념이 하는 일이며 그래서 기념문화가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기념의 미래』는 복잡하고 부담스러운 과거사를 가진 한국에서 기억은 어떻게 전승되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전시기념문화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모색을 합니다. 우리는 일어난 지 8년도 안 된 사회적 참사를 향해서 이제 그만하면 되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삶 자체가 불안정하다 보니까 과거사를 언급하고 기억하는 일은 점점 부담스러운 일이 되고 있잖아요. 그래서 새롭게 갱신하면서 더 오래 더 많은 당대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좋은 기념문화가 필요한 것이죠.
『기념의 미래』는 한국과 외국의 기념관, 박물관 전시 중에서 우리 기념 문화가 참고할 만한 예들을 소개하면서 사건의 직접 당사자만이 아니고 먼 후세대가 기념관이나 전시를 통해서 어떻게 과거의 기억과 연결되며 당사자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연결과 공감을 통해 사회적 기억을 먼 시간까지 살아남게 하는 방법을 모색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시 내용으로는 구체적인 피해 내용의 재현보다는 예술을 통한 여백과 부재를 통한 상상의 여지를 주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작업이 왜 중요하냐면 기념이라는 것이 단순히 과거를 곱씹거나 과거에 벌어진 참혹한 사건에 경악하고 공포를 느끼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각심을 심어주면서 동시에 다르게 행동할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여는 일까지가 기념문화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현석 저 | 창비
'덕다이브'가 서핑 용어라고 하더라고요. 서핑을 하다가 보더가 팔로 물을 열심히 저어서 파도 쪽으로 가잖아요. 그런데 못 타는 파도가 있을 수 있다고 해요. 파도가 너무 크다거나 아니면 타이밍이 안 맞았다거나 그러면 보더가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파도 밑으로 서핑 보드랑 같이 다이빙을 한대요. 그거를 '덕다이브'라고 한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이현석 소설가인데요. 전작으로는 『다른 세계에서도』라는 소설집이 있고요. 이 분은 등단을 하기 전부터 직업이 있었어요. 직업 환경 의학과 의사입니다. 직업의 환경이 노동자의 건강이나 질병 상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전작에서도 본인의 직업적 기술을 십분 활용해서 쓰는 소설이 많았고요. 작년에 제가 『다른 세계에서도』를 읽고 제 기준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신작이 나왔다고 해서 읽어봤고 역시나 좋았습니다.
발리에 있는 서프 캠프가 소설의 배경인데요. 발리에 한국인들의 서프 캠프들이 많대요. 한국인이 캠프를 차려놓고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발리에서 서핑 강의를 하는 거죠. 그 서프 캠프에서 일하고 있는 '태경'이라는 사람이 주인공인데요. 태경은 다양한 곳에서 일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발리로 여행을 갔다가 서핑을 한번 배우고 빠져들게 됩니다. 그래서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서핑 강사가 되어서 한국인들한테 서핑을 가르치게 됐고요. 태경이 일하고 있는 서핑 캠프에는 '종민'이라는 사람이 사장님으로 있는데요. 지금 한창 장사가 잘 되고 있는 시즌이라 발리의 다른 도시에 분점을 내야겠다고 계획을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종민이라는 사장은 어떻게든 더 사업을 키워서 분점을 잘 내야 될 텐데 라는 생각으로 (홍보를 위해)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를 섭외해서 데리고 와요. 그런데 그 인플루언서가 태경한테 '저 모르시겠어요?'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거기 병원, 우리 같이 다녔잖아요'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태경도 떠오르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플래시백이 됩니다.
태경은 종합 병원에서 간호 업무를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태움'이라는 문화가 존재했고, 누군가 왕따의 피해자가 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계속 소외를 당하고 다른 사람들은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그 사회를 어느 정도 눈감아주는 상황이 그려지는데요. 태경은 눈감아주는 쪽이었고, 이 인플루언서는 예전에 '민다영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태움을 당하던 쪽이었던 거예요. 갑자기 그 예전의 기억이 다가오면서 산업 재해와 사람들 간의 스트레스와 한국 사회에서의 불평등과 그 모든 것이 다시 이 서핑 캠프 안에서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작가가 이렇게 발리의 서핑 캠프의 문화를 잘 그려낸 것에 흥미가 있었는데, 작가의 취미가 서핑이더라고요. 발리에 가서 이런 캠프에서 서핑을 배우기도 했고요. 작가의 경험이 잘 들어간 예시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직업 환경 의학과로서의 이야기도 십분 들어가게 되고요. 이현석 소설가님이 인터뷰에서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냐'라는 물음에 '자기와 조금씩 더 멀어지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전작 소설집보다 조금 더 멀리 들어간 게 『덕다이브』라는 소설인 것 같고요. 앞으로 더 어느 쪽으로 멀리 가게 될지 기대가 되는 소설가입니다.
김도훈, 김미연, 배순탁, 이화정, 주성철 저 | 푸른숲
이 책은 JTBC <방구석 1열>을 만들었던 PD님과 출연진이 함께 쓴 책이에요. 김미연 CP, 배순탁 음악 평론가, 그리고 <씨네 21>를 비롯한 영화 전문지에서 기자와 편집장 등을 역임했던 주성철, 이화정, 김도훈 기자가 쓴 에세이가 실려 있습니다.
특정 영화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하는 글들은 아니고요. 씨네필들의 이야기입니다. 다섯 저자가 90년대 씨네필이에요. 아마도 1970년대에 태어나서 1990년대에 영화와 같이 청춘을 같이 보낸 분들이 아닐까 싶은데요. 내가 영화와 어떻게 사랑에 빠졌고 어떻게 사랑했고 지금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 이 시간까지 어떻게 흘러왔는지, 썰을 풀어내는 책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세대는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자님 세대일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저도 재밌게 읽었거든요. 아마 이 시대를 같이 보낸 분들은 더 재밌게 읽으실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이 책을 소개한다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나눌 법한 이야기들이 다 있다고 할 수 있어요. 1장의 제목은 「이 판에 발을 들이게 된 건」입니다. 어떻게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와요. 2장은 「씨네필 시대의 낭만과 사랑」인데요. 피카디리와 단성사 사이를 누비며 봤던 영화들과 그 영화들이 나에게 미친 영향, 그런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자신들의 영화적 취향이 어떻게 확립이 되었는지, 그리고 90년대에 들어서 비디오가 보급되면서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이야기합니다. 3장은 「영화 사담」이에요. 영화 속 좋아하는 대사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요. 4장 「영화로 먹고 사는 일」에서는 현직에서 일한 사람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에피소드와 노하우, 괴로움에 대해 들을 수 있습니다.
또 재밌는 건 사이사이에 앙케이트가 들어있어요. 앙케이트의 주제가 재밌습니다. '가장 많이 본 영화', '잠 못 이루게 만들었던 배우', '가장 좋아하는 대사', '모두가 찬양하지만 도무지 동의할 수 없는 영화' 같은 질문들이에요. 답변을 읽으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재밌었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 책에는 영화 좀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오고 갈 법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어요. 그 시절 우리의 영화 추억부터 시작해서 왜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그 영화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영화 보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 일의 딜레마는 무엇이고 배운 건 무엇인지, 그런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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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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