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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권의 뒷면] 백 년 전 달항아리 - 『백 년 전 영국, 조선을 만나다』

<월간 채널예스> 202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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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건 뭘까. 때로 책을 만든다는 건 100년 전 조선의 오래된 반닫이에 실려 낯선 영국인의 손에 이끌려 그 땅으로 건너간 달항아리 한 점이 건네는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만든 책 한 권이 여기에 있다. (2022.09.01)


어떻게 말해야 할까. 새 책이 나왔다. 혼자 꾸려 일하는 출판사, 혜화1117의 18번째 책. 책마다 '이 책을 둘러싼 날들의 풍경'을 덧붙여왔다. '한 권의 책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어떻게 만들어지며, 이후 어떻게 독자들과 이야기를 만들어가는가에 대한 편집자의 기록'. 증쇄 때마다 출간 이후를 덧붙이니 풍경의 기록은 길어진다. 새 책에도 실었다. 원고를 처음 만난 2021년 9월부터 2022년 8월까지를 촘촘히 담았다. 모든 마음을 다 담을 수는 없다. 못 담은 그 마음을 여기에 담아보기로 한다.

내게 세상의 중심은 '지금 만드는 책'이다. 어떻게 하면 세상에 빨리 내놓을 수 있을까, 그 마음으로 가득하다. 이 좋고, 재미있는 걸 얼른 독자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그 마음만큼 따라가지 못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느라 늘 허둥지둥하는 형국이다. 인쇄가 시작되면 조급한 발걸음은 기어이 SNS에 출간 소식을 서둘러 올리게 한다.



『백 년 전 영국, 조선을 만나다』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아끼고 아껴 늦게 내놓고 싶다, 나 혼자 조금만 더 품고 싶다, 한 번 더 어루만지고 싶다, 흐트러진 곳은 없는지 매무새를 다듬고 또 다듬고 싶다, 그 마음이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처음 원고를 볼 때부터 완성하여 세상에 막 내놓은 순간까지, 내내. 출간 소식을 SNS에 올린 건 온라인 서점에 서지 정보를 보낸 뒤, 더 미룰 수 없을 때였다.

이 책은 100년 전 영국과 조선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그 무렵의 만남이란 으레 '그쪽'에서 '이쪽' 방향으로 방점이 찍힌다. 이 책은 정반대다. '이쪽'에서 '그쪽'이다. 어디를 보아도 감성과 감정이 아닌 사실과 맥락으로 빼곡하다. 그런데 어찌된 까닭인지 내게는 이 책 맨 밑 어딘가에 물기 어린 서정이, 애틋함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것이 흘러흘러 내 마음 깊은 곳까지 건너와 넘실대는 것 같았다. 책의 시작점에 선 달항아리 때문임이 분명하다. 원고와 함께 받은 사진 속 달항아리. 저자는 달항아리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100년 전 영국과 조선의 만남을 향한 물음표가 생겼고, 그 이후 10여 년 동안 물음표의 행진을 따라 걸어온 발걸음의 종착지가 이 원고라고 했다.

모니터에 달항아리를 띄워놓고 바라보았다. 100년 전 이 땅을 떠난 조선의 달항아리가 100년 후 저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그때 이 낯선 땅에 도착한 조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손을 내민 것 같았다. 그 손을 맞잡은 저자가 영국에 남은 조선의 자취를 찾고, 그 자취로 그 시대를 살핀 걸음의 총합이 원고가 되어 내 앞에 당도한 것처럼도 여겨졌다. 1년여, 원고를 품고 살았다. 달항아리에서 저자로, 저자에게서 내게로 흐르는 그 물기를 요란스럽지 않게 독자에게 전할 수 있을 방도를 내내 궁리했다. 조심스럽게, 귀하게, 애틋하게 세상에 내놓고 싶은 마음이 책 만드는 동안 저 밑바닥에 고요히 흘렀다.

100여 년 전 그 달항아리는 오늘날 외롭지 않다. 영국박물관 한국관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고, 수많은 영국 도예가들은 진작부터 심취해 왔다. 사진작가 구본창 선생이 이 달항아리에 영감을 받아 백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그러니 달항아리는 달항아리만으로도 책 한 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시대 풍경의 매개자가 되었다.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건 뭘까. 때로 책을 만든다는 건 100년 전 조선의 오래된 반닫이에 실려 낯선 영국인의 손에 이끌려 그 땅으로 건너간 달항아리 한 점이 건네는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만든 책 한 권이 여기에 있다.

자, 그렇다면 100년 전 달항아리에서 저자로, 저자에서 편집자인 나에게로 이어지던 그 물기 어린 서정의 흐름은 이 책을 통해 어디로 어떻게 가닿을까. 나는 이제부터 그것을 가만히 지켜볼 참이다. 눈에 띄는 몇몇 풍경은 '이 책을 둘러싼 날들의 풍경'의 다음 버전에 덧붙여지기도 할 것이다.



백 년 전 영국, 조선을 만나다
백 년 전 영국, 조선을 만나다
홍지혜 저
혜화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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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현화

줄곧 인문교양, 문화예술서를 만들다 1936년생 한옥과의 인연으로 2018년 출판사 '혜화1117'을 시작했다. 『나의 집이 되어 가는 중입니다』와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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