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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정한 그림책] 용감한 할머니 - 『나의 개를 만나러 가는 특별한 방법』
그림책 『나의 개를 만나러 가는 특별한 방법』
『나의 개를 만나러 가는 특별한 방법』은 다른 무엇보다 저에게 멋진 할머니 한 분을 소개해준 책입니다. (2022.08.31)
매주 수요일, 김지은 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 한미화 출판평론가, 이상희 시인, 최현미 기자가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
가만히 있어도 화가 치솟는 봄날이었습니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니 제가 더 늙어 보였고, 자꾸 두렵고 겁이 났습니다. 하는 수 있나요,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신경질이라도 내야죠! 이런 나를 보고 C가 "그러지 말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겠어"하고 생각해보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뭐? 할머니라고! 아직도 멀리서 보면 아주 늦게 대학원 들어온 왕언니 같다는 소리를 듣는데...'라며 버럭 화를 내려다 잠시 멈추었어요. '귀여운 할머니'라니, 대체 어떤 할머니가 귀여운 할머니입니까?
'나의 개를 만나러 가는 특별한 방법'이라는 제목을 한참 들여다보다 '원제가 뭘까' 싶었어요. 책의 앞부분에 있는 저작권 페이지를 살펴보니 'Every dog in the neighborhood'로군요. 원제와 한국어 제목 모두 '개'를 중심에 두었네요. 저라면 좀 다르게 제목을 지었을 것 같아요. 일테면 '용기 있는 할머니'라든가, '할머니는 분노한다'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 책의 표면적인 주인공은 손자와 손자가 찾아나선 개가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적인 주인공은 할머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암요, 할머니이고 말고요.
사건은 손자가 할머니에게 개를 갖고 싶다고 말하며 시작됩니다. 할머니는 동네에 이미 개가 많다고 합니다. 손자는 시청에 '우리 동네에는 얼마나 많은 개가 있지요?'하는 질문을 담은 편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한껏 겉치레로 보낸 답장이 도착했죠. 아마 인공 지능이 썼을지도 몰라요. 이제 손자는 동네의 개들을 직접 알아보기로 하고 이웃을 방문하고 조사를 합니다. 첫 번째로 찾아간 집에서 '하비'라는 개를 만난 이래 열아홉 번째로 만난 '오그레'까지 말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루이스는 의기양양하게 열아홉 마리의 개가 있다고 할머니에게 말하지요. 하지만 할머니는 아직 한 마리가 남았다며 일어섭니다. 왜, 아시죠? 할머니는 동네 사람이건 일에 관해 모르는 게 없잖아요.
자, 이렇게 텍스트에 담긴 이야기를 따라가면 손자 루이스가 자신의 개와 만나는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게 다일까요? 왜 그림책은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일을 했는지는 들려주지 않을까요. 할머니가 한 일을 찾으려면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린이는 가까이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신뢰할 뿐 아니라 그들의 말투와 행동까지 따라 합니다. 손자 루이스는 할머니를 모르는 게 없는 대단한 사람으로 존경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루이스가 혼자서 해낸 일의 배후에도 누군가 있다는 게 짐작 가능하지요. 아마도 루이스가 시청에 편지를 쓴 것도, 목록표를 작성한 것도, 집집마다 다니며 조사를 한 것도 실은 본보기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누구겠어요? 바로 할머니지요. 이제 그림책을 보면 그림 속 할머니 행동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화가 나서 시청에 편지를 썼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뭔가를 조사했다는 건데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이 그림책에 글을 쓴 사람은 필립 C. 스테드입니다. 아내이자 그림 작가인 에린 E. 스테드와 함께 『아모스 할아버지가 아픈 날』을 펴낸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림을 그린 매튜 코델은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로 2018년 칼데콧 메달을 수상했지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는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길 잃은 소녀와 무리에서 뒤떨어진 새끼 늑대의 만남, 그리고 가족의 회복을 인상적으로 그려냈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겁니다.
『나의 개를 만나러 가는 특별한 방법』은 생각보다 텍스트의 양도 많은데, 그럼에도 두 작가는 교묘한 방식으로 이야기 안에 이야기의 집을 만들어 독자에게 스스로 생각해볼 것을 권합니다. 펜과 잉크 그리고 수채화로 그린 듯한 스타일의 작가들이 있지요. 당나귀 '실베스터'의 윌리엄 스타이그나 로알드 달의 동화에 많은 삽화를 그린 퀀틴 블레이크 등이죠. 매튜 코델의 그림 또한 낙서하듯 그려낸 특유의 스타일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영화배우 제인 폰다는 기후 변화 대비를 위한 정책 수립을 요구하며 미국 국회 의사당 앞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집회를 벌인 걸로 유명하지요. 그때마다 체포되어 감옥에 가길 반복했어요. 처음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나이는 무려 82살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풀려나며 "82세는 감옥에 가기 딱 좋은 나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나의 개를 만나러 가는 특별한 방법』에 나오는 할머니는 "가끔은 말이다. (…) 정말로 이뤄졌으면 하는 게 있다면 스스로 해내야만 한단다"라는 명언을 남겼고요.
솔직히 저는 귀엽고 다정한 할머니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지금도 제가 귀엽지는 않거든요! 다만 닮고 싶은 할머니 한 분은 마음속에 품으려고요. 저는 루이스의 할머니처럼 용감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루이스의 할머니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분노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분노합니다.(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알 수 있지요) 『나의 개를 만나러 가는 특별한 방법』은 다른 무엇보다 저에게 멋진 할머니 한 분을 소개해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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