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인간을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게 합니다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284회) 『표범이 말했다』, 『봄의 제전』, 『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
1차 세계 대전이나 2차 세계 대전이나 양쪽 다 대규모 인명 살해라는 참혹한 피해를 낳은 전쟁이었는데, 두 개의 전쟁 다 대중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전쟁이라는 점이, 인간을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게 하는 면이 있어요. (2022.08.25)
제레미 모로 글·그림 / 이나무 역 | 웅진주니어
제레미 모로 작가의 작품이 국내에 출간된 건 이 책이 처음이라고 해요. 제레미 모로는 천재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데, 여덟 살 때부터 매년 '앙굴렘 국제 만화제 학습만화' 부문에 출품을 했다고 합니다. 2005년부터 다수의 상을 받았고요. 2018년에는 앙굴렘 만화제에서 최고 작품상에 해당하는 황금 야수상을 받았습니다(『그리므르 연대기(La Saga de Grimr)』). 『표범이 말했다』는 2021년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코믹스 영어덜트 부문 대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표범이 말했다』는 그래픽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작품(그래픽노블)이고요. 동물이 등장하는 우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섯 편의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 동물들이 여섯 편의 이야기 안에서 서로 마주쳐요.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됩니다. 다루고 있는 주제는 굉장히 철학적이에요. 역사, 자유 의지, 아름다움, 외로움,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담고 있어요.
첫 번째 에피소드에는 물소와 코모도 도마뱀이 등장하는데요. 엄청 큰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섬 같은 곳이 배경이에요. 이 바위산을 물소가 혼자 뿔로 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가 고픈 코모도 도마뱀이 사냥을 하려고 물소의 뒷다리를 물어요. 물소는 '내가 지금 임무 중인데, 어떻게 나를 물 수 있냐'고 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혜성이 섬을 향해 떨어지고 있어서 혜성이 떨어지지 않는 지점으로 섬을 옮기기 위해서 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코모도 도마뱀한테 물렸잖아요. 아시다시피 코모도 도마뱀은 타액에 독이 있어서 물리면 감염이 되지 않습니까. (물소에게) 이제 남은 날이 며칠 안 되는 거죠. 물소는 누가 자신의 뒤를 이어서 이 일을 할까 고민하는데, 코모도 도마뱀이 '내가 해볼게'라고 말합니다. 그때부터 둘이 밤낮으로 번갈아 자가면서 섬을 밀기 위해 노력합니다.
결국 혜성이 다가오고 물소가 죽습니다. 그때 독수리 떼가 배를 채우려고 날아와요. 코모도 도마뱀은 눈물을 흘리면서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물소를 묻고 '이 물소는 아무도 먹을 수 없어!'라고 말합니다. 독수리 입장에서는, 그리고 자연의 질서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거죠. '모두가 매장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지?'라고 독수리가 불만을 표하게 됩니다. 그래서 숲의 현자인 표범을 찾아가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물어보는 거죠. 표범 '소피아'는 자신이 생각한 것이 완벽하게 정리되기 전에는 입을 열지 않는 굉장히 현명한 캐릭터예요. 그래서 한참 동안 '이 사안의 숨은 이면이 무엇인가, 이것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다가 "친애하는 산 자들이여"로 시작하는 짧은 연설을 합니다. 죽음이란 무엇이고 산 자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주는 이야기였어요.
모드리스 엑스타인스 저 / 최파일 역 | 글항아리
모드리스 엑스타인스는 독일 현대사와 문화 분야를 연구하는 캐나다의 역사학자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전간기에 대한 관심 때문인데요.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사이, 그 시기가 항상 궁금하거든요. 1차 세계 대전이나 2차 세계 대전이나 양쪽 다 대규모 인명 살해라는 참혹한 피해를 낳은 전쟁이었는데, 두 개의 전쟁 다 대중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전쟁이라는 점이, 인간을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게 하는 면이 있어요. 또, '전쟁을 해보았기 때문에 전쟁은 피해야 한다'라고 인류가 생각을 한 게 아니라 전쟁을 해보았기 때문에 전쟁을 다시 일으킨 것에 가깝거든요. 그 점이 항상 새삼스럽고, 그래서 틈날 때마다 전쟁사 관련 책을 읽고 있고, 이 책이 제가 가장 최근에 읽은 그쪽 장르의 책입니다.
제목인 '봄의 제전'은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무용곡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책은 1913년 5월 29일 밤을 묘사하는 장으로 시작됩니다. 이날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하고 니진스키가 안무를 맡은 무용곡 <봄의 제전>이 초연됩니다. 공연은 초연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프랑스 발레가 예쁘장한 기교 중심의 발레였다고 해요. 그러다가 러시아 발레가 소개가 되면서 예술을 소비하는 파리 대중이 아방가르드에 눈을 뜬 시기였는데, 이전까지는 예술계 스타들이 여성의 신체를 하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니진스키라는 무용수가 등장하면서 젊은 남성의 육체가 예술적 찬미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샹젤리제 극장이라는 새로운 건축물에서, 그것도 스트라빈스키라는 걸출한 작곡가가 작곡한 무용곡에 니진스키가 안무한 발레의 초연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공연은 곧 사건이 됩니다. 공연이 시작됐는데 발레 동작이 기존의 발레하고 너무 다른 거예요. 그리고 무용곡의 멜로디가 거의 없고 박자로 이루어진 춤곡이 계속 이어지니까 공연장은 야유와 환호로 뒤섞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바로 이 사건을 주목합니다. 음악과 발레라는 공연의 내용보다는 이 소동 자체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이 되면서 관객의 반응 자체가 이벤트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예술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으로 저자는 이 일을 짚고 있습니다.
1913년 5월이니까 1차 세계 대전을 약 1년 정도 앞둔 봄밤이거든요. (저자는) 이 공연을 전후로 프랑스, 영국, 독일을 중심으로 문화를 통해서 중간 계급 대중의 욕망을 살피는 일부터 시작하는데요. 그러면서 바로 1차 세계 대전의 격전지인 서부 전선으로 이동합니다. 서부 전선을 중심으로 세계 대전이 시작될 무렵에 기존의 가치를 향한 염증이나 권태 이런 것들이 새로운 세계를 향한 열망과 충돌할 때 전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리고 어떤 양상으로 가능했는지, 1차 세계 대전은 지루하게 계속 이어지는 참호전이었는데 이런 참혹한 전쟁 양상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전쟁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는지, 그리고 전선과 후방 각각에서 사람들은 전쟁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이 점들을 다양한 편지 사료들을 찾아내서 살펴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봄의 제전>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둘러싼 소동으로 시작된 이 책은 공연이 엄청난 이벤트가 되어 버린 밤부터 시작을 해서 1945년 히틀러가 참호에서 자살하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는 날로 마지막 장을 닫는데요. 히틀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의 분량이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서부 전선이라는 전쟁의 공간과 그 시대가 되게 중요한데, 요(要)는 이거예요. 전쟁은 중간 계급 대중이 원해서 벌어졌고 원해서 이어졌으며 원해서 다시 벌어졌다, 라는 이야기였고. 저는 이 책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전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던 구세대 가치와 전위의 충돌 그리고 전쟁에 병사로 참가한 독일 대중의 열망과 열광 그리고 그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 예술 산업 정치들을 세세한 자료들과 사료들을 통해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루스 리스터 저 / 장상미 역 | 갈라파고스
이 책은 영국에서 2004년에 처음 출간이 됐고요. 2021년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2004년에 출간했을 때 영국 폴리티 출판사의 핵심 개념 시리즈 중에 한 권이었다고 해요. 빈곤의 개념을 짚어주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빈곤의 개념을 짚었을 때는 또 여러 가지 갈래로 나뉠 수가 있을 것 같은데요. 빈곤이란 무엇인가라고 정의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요. 빈곤을 측정하는 방법이라든지 혹은 어떤 양식에 대해서 정의하는 시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 다음에 개념화라든지, 학문적으로 어떻게 이 빈곤을 논의하고 있는지에 대한 흐름 같은 것을 짚어주는 책입니다.
책에 수레바퀴 모양의 그림이 나오는데요. 빈곤을 생각했을 때 사람들이 다 돈을 생각하게 되는데, 저자가 봤을 때는 돈은 수레바퀴의 가장 핵심 부분에 불과할 뿐이고, 빈곤을 이루는 것은 그 핵심에 따라서 나있는 바퀴살 같은 문제들이 있다는 거죠. 그러면 내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물질적 곤란에 처해 있다라는 상황에서는 비존중의 문제도 생길 수 있고 수치나 낙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타자화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시민권이 축소되는 문제로도 발현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모든 파생된 것들을 맥락과 방식에 따라서 다 세심하게 봐야 한다고 주문을 하고 있고요.
총 여섯 장으로 되어 있는데요. 1장에서는 먼저 빈곤을 정의를 하고 있어요. 빈곤의 일종의 인공물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빈곤을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어느 면에서는 역사적 맥락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한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요. 2장에서는 그럼 어떻게 빈곤을 측정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요. 보통은 소득 비율로 우리가 빈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반드시 소득이 높다고 해서 빈곤을 벗어났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죠.
3장에서는 불평등과 사회적 범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요. 빈곤과 박탈을 구별하는 범주 중에 하나로 성별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질적인 차원이 아니라 시간적 요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요. 빈곤 상태에 놓인 사람이 돈을 아끼려고 시간을 소모하고 그 소모되는 시간으로 인해서 더욱더 소득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죠. 물질적으로 풍부한 사람도 물론 시간 빈곤이 있죠. 그리고 인종 문제도 빈곤의 문제랑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문제여서 이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고요.
4장에서는 담론으로서의 빈곤을 이야기하는데요. '빈곤이 빈민과 비빈민 사이의 관계를 가리킨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가난한 사람들도 가난에 대해서 사회적인 어떤 인식을 만들고 있고 상대적으로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도 또 가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만들고 있지만 주로 빈민이나 가난함에 대한 상은 비빈민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빈민이 취하는 담론이나 태도나 행동이 빈곤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거죠. 그게 꼭 부자들만의 문제는 아니고 언론 문제도 있을 수 있겠죠. 언론에서 비추는 가난 자체가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고, 그런 와중에서 빈곤한 사람은 가난의 희생자라는 모습으로 자꾸 재현되게 됩니다. 그럼 그걸 보는 사람들은 다시금 빈곤한 사람들은 무조건 피해자라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게 되겠죠. 그래서 타자화는 결국 가난한 사람을 피해자 아니면 악의적으로 복지에 의존하는 사람, 둘 중에 하나로 만들어 버리는 효과를 낳게 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6장에서는 빈곤과 인권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결국에는 빈곤한 사람들도 인권이 있고 그 사람을 존중하고 존엄하게 대해야 된다는 인식적 변화가 빈곤 문제를 제대로 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로 저는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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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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