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작가 이상권, 끝나지 않은 시대의 비극을 그리다
『시간여행 가이드, 하얀 고양이』 이상권 저자 인터뷰
여러분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스스로 새로운 사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 자그마한 고민이 이 책에서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2.08.22)
원폭 피해는 역사 속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시대의 아픔이다. 이상권 작가는 무월경, 심근경색, 소아암, 탈모 증세 등 끊임없는 질병과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한편의 시간여행 스토리 속에 생생히 녹여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환상적인 시간여행 속 가족의 비밀이 '원자 폭탄'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흥미진진하게 풀린다. 무거운 주제를 아름답고 따스한 시선으로 감싸 안은 『시간여행 가이드, 하얀 고양이』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자.
시간여행을 통해 히로시마 피폭 3세대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특별한 이야기가 탄생한 것 같아요. 『시간여행 가이드, 하얀 고양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히로시마 피폭이라고 하면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습니다. 마을 앞으로 마스크를 쓴 아버지와 딸이 지나다녔지요. 아버지는 눈이 거의 멀었고 지팡이를 곤충의 더듬이처럼 움직이면서 겨우겨우 걸어갔어요. 코도 문드러져서 없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들 나병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답니다. 나중에서야 저는 그분들이 원자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분들이 어디론가 떠나고 나서요. 그제야 원자병이 나병만큼이나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아픔이, 그런 역사가 바로 내 주위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많이 놀랐어요. 그런 이유 때문인지 핵문제에 대해서 늘 관심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가족의 시간 속을 여행하는 시간여행 가이드로 하얀 고양이가 등장하는 것이 신선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시간여행 가이드로 고양이를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핵무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동물들이 죽어갑니다. 핵무기의 위력을 실험하기 위해서 동물들을 상대로 실험했을 테니까요. 심지어 미국은 공개적으로 각종 동물들을 배에다 실어놓고, 그 배에다 핵을 떨어트리기도 했답니다. 그러고 보면 핵무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동물들입니다. 인간들끼리 전쟁하기 위해서 만든 무기인데, 죄 없는 생명체들이 죽어가는 거지요. 그러니 일본에 떨어진 원폭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죽어갔을지 상상할 수 있었어요. 인간은 그런 생명체들의 죽음까지 생각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소설에서는 일부러 고양이를 내세운 겁니다.
작품 속에서 코로나19라는 현실의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던 것도 눈에 띄는 점이었어요. 이 부분에 있어 작가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셨던 의미가 있다면요?
핵무기는 인간들끼리 싸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다른 생명체들이 엄청나게 죽어갑니다. 대자연의 재앙이지요. 그 재앙은 순전히 인간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이지만, 그것들이 아무 이유 없이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코로나를 물리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다시 들여다보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동안 숱한 전염병들이 생겨났지만, 과학이 그들을 무찔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시간이 인간들에게 오히려 오만함을 심어준 거지요. 이번 코로나는 인간의 과학이 얼마나 초라한지 까발린 셈입니다. 저는 그런 인간의 욕망을 핵무기와 상징적으로 연계한 것입니다.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결국 같은 몸을 가진 신해와 박선의 이야기가 마음을 씁쓸하게 하면서도,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어요. 선생님께서 이 책을 통해 꼭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사실 소설 속 인물이지만, 두 아이에게 가장 미안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핵공격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도 피폭자들이 존재하잖아요? 그런데 아예 모른 체하면서 살고 있는 거지요. 알려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국가에서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두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힘들고 미안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까마득한 과거 속에서나 존재하는 아픈 역사가 우리 주위에서 아직도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던 것도 있고요. 이 소설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아무도 그런 사실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계속 아파하면서 더 외롭게 다음 세대로,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낸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 폭탄 피폭 사건을 알면서도, 부끄럽지만 그간 무관심했던 것 같아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할 텐데요. 이런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만약 우리 사회가 그런 피해자들을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그들을 치료해주려고 했다면, 피폭자 후손들이 숨을 이유가 없지요.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피폭으로 인한 고통은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경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과학으로도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고요. 그러니 피폭자 후손들은 자꾸만 숨어들 수밖에 없는 거지요.
결국, 국가나 사회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선 얼마나 많은 피폭자 후손들이 살고 있는지 파악이 되어야 하고, 그들이 겪는 질병과 고통을 사회가 치료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이런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핵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핵이란 단순한 전쟁 무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처럼 좁은 곳에서의 핵전쟁이란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무조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겁니다. 어느 쪽이든 그것을 사용하는 순간, 한반도의 생명체들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절망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미래 사회에 대한 우리의 대안을 이야기할 때 핵을 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핵무기나 다름없이 방사능을 갖고 있는 원전 문제도 더 자유롭게 논의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당장 없앨 수 없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이 단순하게 경제의 논리만으로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정치인들의 몫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 본질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만약 선생님께서 하얀 고양이를 만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언제로 가보고 싶으신가요? 또, 그 시간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제한테 시간여행 가이드 하얀 고양이가 찾아온다면, 저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로 갈 겁니다. 아픈 시간이겠지만, 제 온몸으로 그 피폭의 시간을 보고 싶습니다. 직접 보는 것이랑 후대의 사람들이 쓴 자료를 접하는 것은 차이가 크니까요. 더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은 우리 입장에서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지요. 왜냐면 대부분의 자료들이 일본인들의 입장에서 쓴 것이니까요. 그들은 절대 조선인이나 다른 생명체들의 피폭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그러니 그들이 쓴 피폭 이야기를 보면, 자신들이 원자탄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 그것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합니다. 객관적일 수가 없다는 뜻이지요. 그들이 만들어낸 자료들, 그런 것들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때 터진 원자탄은 지금 핵무기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합니다. 그래도 경험자들 대부분은 세상이 멸망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혹은 지구와 행성이 충돌한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 과정을 직접 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훨씬 더 실재적이면서도 아픈 이야기를 쓸 수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시간여행 가이드, 하얀 고양이』를 읽은 청소년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 주위에 아파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그 친구를 공격하지 말고 무조건 감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나한테도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거니까요. 이 글이 핵 문제와 관련이 있다 보니, 우리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스스로 새로운 사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 자그마한 고민이 이 책에서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권 산과 강이 있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는 나만의 옹달샘이 있었고, 나만의 나무도 여러 그루 있었고, 나만의 동굴도 있었다. 대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불안증과 난독증으로 학교생활이 불가능해졌을 때 문학이 찾아왔다. <창작과 비평>에 소설 「눈물 한번 씻고 세상을 보니」를 발표하면서 작가가 됐고, 소설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는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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