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필요해
관계를 원한다면 대화가 따라와야 한다
갈등이 일어난 사람과 직접 대화하는 것보다는 남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내 편이 되어줄 것을 호소하는 게 훨씬 쉽다. (2022.08.05)
술자리에서 나온 소소한 연애상담 Q. A와 B는 사귄 지 n년 된 기념일을 맞아 캠핑하러 갔다. A는 물을 받아오기로 하고 B는 텐트를 치기로 했다. A는 캠핑장의 사람들이 너무 많이 기다리는 게 눈치가 보여서 물을 절반만 받아 돌아왔다. B는 한참 기다린 끝에 온 A가 물을 다 받아오지 않았다고 뭐라고 했다. A는 애써서 갔다 온 노력은 무시당한 채 핀잔을 듣자 섭섭했다. B는 분위기가 불편해지자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해 나머지 물을 받아오겠다며 일어섰다. A는 B가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작된 대판 싸움. 여기서 먼저 잘못한 사람은? 1) A 2) B 3)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
물론 답은 3번이다. 대개는 편들어주기를 요청하는 말이므로, 상황에 따라 적당하게 A가 말하면 B가 잘못했다고 하고, B가 말하면 A가 잘못했다고 역성을 들어주면 된다. 문제는 그 자리에 A와 B 모두 있었고 나는 편을 들 수가 없었다.
연애 상담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관계 문제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떤 관계든 대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남의 말은 언제까지나 남의 말이다. 말만으로는 누가 잘못했고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이 피곤하다. 서로 대화하면 될 일을 넘겨짚고 제삼자에게 잘잘못을 가려달라고 관계를 아웃소싱하는 과정, 저 사람이 잘못했다는 걸 남들에게 확인받고 안심하는 과정, 연애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 모두. 모든 관계의 문제는 처음 갈등이 일어난 이유는 중요해지지 않고 결국 '아니 근데 쟤가 먼저' 상태에서 대화가 단절되어 생긴다. 이 상황에서 붙일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럴 수도 있지'거나, 더 힘을 내면 '대화를 해 보면 어때?'가 전부다.
내 기조는 이렇다. '쟤는 도대체 왜 저러지'에서 '왜'를 알려면 일단 '쟤'와 대화해 봐야 한다. '왜'를 알고 싶지조차 않다면 그때는 '쟤'와 절연해야 할 때다. 절연하고 싶지 않다면 대화하고, 대화하고 싶지 않다면 절연해야 한다. 둘 다 안 할 순 없다. 관계를 원한다면 대화가 따라와야 한다.
왜 대화하지 않지? 대화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니까 안 하는 거겠지. 넘겨짚는 상황이 쌓이면 점점 더 상대방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갈등이 일어난 사람과 직접 대화하는 것보다는 남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내 편이 되어줄 것을 호소하는 게 훨씬 쉽다. 그렇게 다들 대화하지 않고 고집불통으로 식식대다가 네이트 판 같은 곳에 사연을 올리게 된다. 누가 더 잘못했나요, 하면서. 기왕 연이 다하는 거라면 좋게 헤어지고 싶은데 쉽지 않다.
남의 일이라 쉽게 말했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이게 다 사람들이 기력이 없어서 그렇다. 에너지가 있어야 싸우지. 나는 이제 정신적 호호할미가 되어 주변 사람들과 싸우지도 않는다.(이것은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할머니들이 젊은이보다 더 심하게 싸운다) 양방에서 한쪽이 싸울 의지가 없으면 싸움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것에 또 화가 나서 싸우기 시작한다. 너는 왜 아무 말도 안 해! 하면서.
싸우면서 대화의 가장 첫 번째 발걸음을 떼는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싸우기라도 하면, 뭐라도 대화할 가능성은 있다. 더 나아가 넘겨짚기를 그만두면 인생에서 욱할 일이 줄어든다. 힘들어도 한 번 턴을 넘기고 대화를 시작하면 이해가 넓어진다. 무엇보다 같이 보내는 시간을 좀 보내야 한다.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체득할 시간. 당연하고 모두가 아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왔다. 일상생활에 적용이 힘들 뿐.
앞의 이야기에서 흔들리는 동공을 붙잡고 내가 한 마지막 대답은 왜 굳이 기념일에 피곤하게 캠핑하러 가느냐, 였다. 싸움 뒤에도 안 헤어지고 붙어 있던 A와 B는 캠핑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나를 질타했고 나는 아하하 그런가, 나는 잘 몰라서, 하고 넘어갔다. 속으로는 이럴 거면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구시렁대면서. 이래서 나한테 연애 상담을 하는 사람이 없다. 다 내 탓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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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jungchung@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