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 오지윤의 첫 에세이 『작고 기특한 불행』
『작고 기특한 불행』 오지윤 저자 인터뷰
요즘 많은 콘텐츠들이 강박적으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인생에는, 행복하기 보다는 찌질하고 우울한 날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일상적인 불행과 사이 좋게 지내는 게 진짜 행복의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22.08.04)
제목부터 조금 낯설고 독특한 단어 조합이 눈길을 끄는 에세이 『작고 기특한 불행』은 오지윤 작가가 불행을 잘 길들이는 게 곧 행복의 시작이라는 믿음으로 쓴 책이다. 일상에 깃든 불행 이면의 행복, 행복 이면의 불행에 대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 없는 시선으로 써내려 간 글들은 담백하기 그지없다. SNS로 타인의 삶을 엿보다 문득 나 빼고 다 잘되고 나 빼고 다 행복한 것 같아,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지고 찌질해진 기분이 드는 날, 『작고 기특한 불행』을 펼쳐 보길 강력히 권한다. 크고 작은 불행을 마주하는 일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눈을 맞추는 것만큼이나 우리의 일상에 필요하다고, 작가는 명랑한 목소리로 자신의 웃픈 하루하루를 여과 없이 펼쳐 보인다.
브런치북에 연재하셨던 『작고 기특한 불행』이 어떻게 한 권의 책으로 묶이게 되었는지, 또 출간 과정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사람은 누구나 여러 정체성으로 살아가잖아요. 저는 계속 글을 쓰며 살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다른 직업도 있기 때문에 장치가 필요했어요. 저와 글쓰기 사이에 수갑을 채운다는 마음으로 1년 반 전부터 ‘보낸이 오지윤’이라는 에세이 레터를 보내고, 브런치북도 시작했습니다. 쓰다 보니 80 여 편의 에세이가 쌓였어요. 그중 가장 사랑받은 글, 꼭 나누고 싶은 글을 선별해 이번 산문집에 담았습니다.
브런치북 대상으로 선정되어 책을 출간하게 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제 글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출판사와 편집자를 만났다는 거예요. 5,000여 편의 원고를 뒤로하고 저를 선택해 준 편집자와 책을 내는 거잖아요. 작가로서 살아도 된다는 따뜻한 허락을 받는 기분으로, 행복하게 책을 준비했습니다.
『작고 기특한 불행』은 책 표지와 제목부터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에세이 같아요.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책 소개 자유롭게 부탁드려요.
책 표지를 보신 독자분들의 반응이 다양하더라고요. 누군가는 표지 속 소년의 모습이 물에 빠진 것 같다고 하고, 누군가는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 같다고 하세요. 지금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느끼시는 걸까요? 분명한 건 이 책이 절대 우울한 책은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그 반대랍니다. 요즘 많은 콘텐츠들이 강박적으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인생에는, 행복하기 보다는 찌질하고 우울한 날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일상적인 불행과 사이 좋게 지내는 게 진짜 행복의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이크 밀스 감독의 「우리의 20세기」라는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어요. 여럿이 함께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주인공이 “생리!”라고 크게 외치고, 모두가 머쓱해 하면서도 그 말을 따라해요. 주인공은 금기시되는 단어를 해방시켜 주고 싶었던 거예요. 저도 비슷한 마음으로 이 책을 쓴 것 같아요. “불행은 도처에 있으니, 불행을 길들이며 살자”고 말하고 싶었어요.
40여 편의 글을 엮은 산문집인데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상의 에피소드들이면서도, 그 안에 작가님만의 통찰이 빛나는 문장들이 녹아 있어 밑줄 치며 읽게 돼요. 이 책에서 작가님이 특별히 애정하는 글이나 문장이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두 가지가 생각나는데요. 하나는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글이에요. 이 말은 제가 인터뷰에 답변하는 이 순간에도 도움이 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부담을 내려놓고, 나다운 행동을 하게끔 도와주는 마법 같은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는 “마땅한 것들이 서글프게 느껴질 때는 녹색 앞에 설 것”이라는 문장입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저는 허무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에요. 언제나 ‘종결’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요. 대자연의 색깔인 녹색은 그런 저를 위로해 줍니다. 서글픈 것도 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색깔에 대해 쓰시오’라는 글에 나오는 문장인데 꼭 읽어봐 주세요.
『작고 기특한 불행』의 주제는 '불행'이지만 매 순간 불행을 딛고 ‘행복’을 향해 나아가려는 사람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해요. 요즘 작가님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결핍과 불행을 자꾸 성찰하는 사람일수록 변화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사람이에요. 나는 잘살고 있는가를 자꾸 자문하는 ‘성찰 중독자’입니다. 그 결과, 몇 주 전에는 퇴사를 했답니다. 9년 가까이 대기업을 다니면서 저의 여러 가지 정체성을 꼭 쥐고 있었어요.
‘조직 중독자’, ‘월급 중독자’로 살아온 세월이 길었습니다. 앞으로 한동안은 온전히 ‘나’에 소속되어 글도 더 많이 쓰고 다양한 도전을 하고 싶어요. 요즘은 오후 서너 시쯤 산책을 나가요. 업무 메일이나 카톡 걱정 없이 마냥 걷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강아지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걷다 보면 ‘아,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그동안 카피라이터와 마케터로 활동하시고, 6년 동안 제일기획에서도 일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그냥 지나치기 쉬운 순간들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무척 섬세하면서도 명징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원고를 쓸 때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는지요?
부사를 잘 안 쓰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구어체로 말할 때는 ‘정말’, ‘너무’, ‘완전’ 같은 부사를 많이 쓰면서 부산스럽게 말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저의 습관적 부사들이 글의 감각을 왜곡하지 않도록 노력해요. 제가 전하려는 뜻에 적합한 단어를 찾기까지 시간을 많이 들이기도 하고요.
저에게 글쓰기는 많은 의미가 있지만 첫째로 재미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글을 쓸 때 ‘슬롯머신’을 상상하곤 했어요. 그림과 숫자들이 빠르게 바뀌다가 하나의 조합으로 멈추는 기계 있잖아요. 제가 면밀하게 조합한 문장으로 제 생각과 상상을 전달한다는 건 참 재밌는 일입니다. 글쓰기의 많은 의미와 효과가 있지만, 일단 재미를 추구하며 글을 쓰고 싶어요.
'코로나 시대의 사랑', '오늘의 서식지', '나는 다른 민족이고 싶다' 등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달라진 생활에 대한 단상이 담긴 글들을 재밌게 읽었어요. 외출이 줄고 해외여행이 사라진 일상에 새롭게 채워진 행복, 또는 새롭게 시도한 일들이 있다면요?
이 책에는 싣지 않았지만 ‘멍청한 감탄사’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좋은 풍경을 보면 “외국 같다”라는 감탄사를 자주 써요.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되게 이상한 거예요. 왜 내가 사는 곳이 아름답다는 걸 그대로 인정하지 못할까. 코로나 시대가 저한테는 우리나라를 더 낯설게 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한강, 통영, 강릉, 제주도. 어딜 가든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래서 주말마다 서울 근교나 강원도 여행을 자주 갔던 것 같아요. 외국이랑 비교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많이 반성했습니다.(웃음)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차기작에서는 어떤 주제들을 다루고 싶으신가요? 또, 『작고 기특한 불행』을 읽고 작가님의 다음 책을 기다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차기작을 빨리 내달라는 독자분들이 계셔서 기뻤습니다. 아직 결정된 바는 없어요. 하지만 ‘월급 중독 치료기’라는 주제로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 볼 생각입니다. 에세이 레터 ‘보낸이 오지윤’도 변함없이 보낼 예정이고, 사회부 기자 분과 글쓰기를 주제로 나눈 대화를 담은 특집호도 준비 중에 있어요. 그리고 책 날개의 프로필에 '쓰다만 소설과 시나리오가 많다'고 썼는데요. 올해 ,안에는 꼭 완성하려고 해요. 이곳에 선언했으니, 꼭 지켜야겠습니다. 제 책을 좋아해 주신 분들을 잊지 않고 계속 써나갈게요.
*오지윤 밖에서는 카피라이터와 마케터로 일하고, 집에서는 쪼그려 앉아 글을 쓴다. 생업이야 계속 변하겠지만 글은 변함없이 쓸 테다. 글쓰기는 중2 때도 재밌었고 30대에도 재밌으니 할머니가 돼도 재밌을 것을 안다. 쓰다 만 소설과 시놉시스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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