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 다정한 유령 - 『우리 집에 유령이 살고 있어요!』

그림책 『우리 집에 유령이 살고 있어요!』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책속의 유령들은 귀엽고 엉뚱하고 제멋대로입니다. 가끔 혼자 남겨진 주인공 어린이를 보살피는 것 같은 따뜻함도 보여줍니다. (2022.07.29)


매주 수요일, 김지은 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 한미화 출판평론가,
이상희 시인, 최현미 기자가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유령은 어디에나 살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 유령이 살고 있어요!』라는 이 그림책의 제목이 선뜻 놀랍지 않은 이유입니다. 일상의 농담 중에도 유령은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열어 놓았던 문이 인적 없이 스르르 닫힐 때 우리는 유령이, 또는 귀신이 그랬을 거라고 말하곤 해요. 문이 닫힐 만한 과학적 이유가 있었겠지만, 유령 핑계를 댑니다. 때마침 그때 바람이 불었을 수도 있고 선뜻 눈치채기 어렵지만 기울기의 차이라든가, 문에 어떤 힘이 작용하는 건물의 구조가 있어서 문이 닫혔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예기치 못한 일에 “깜짝이야!”를 외치던 사람들은 유령이 그랬다고 말하며 호들갑을 떠는 쪽을 선호합니다. “장난이야!”하면서 순간적으로 놀란 기분을 툭툭 털어버리는 거죠. 이럴 때 보면 우리가 유령을 두려워하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해요.

책을 받아들면 가장 먼저 두 개의 둥근 구멍이 보여요. 하나에는 종탑 위의 유령이 있고 문에 뚫린 두 번째 구멍에는 파랗게 질린 표정의 어린이가 서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화자는 누구일까요? “안녕, 잘 찾아왔네.”라는 첫 문장은 누가 한 말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마 이 어린이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책장을 넘기고 독자는 그 유령의 집에 들어섭니다. 중앙 복도가 나옵니다. 흑백 사진은 휑한 공간의 느낌을 그림보다 생생하게 전달할 뿐 아니라 장소가 지닌 역사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미지 하단을 보면 그림책에서는 보기 드문, 작은 글자의 주석이 달려 있습니다. “1760년에 지어진 이 멋진 저택에서 가장 눈에 띄는 훌륭한 장소이지요.”라고 되어 있어요. 호레이스 월폴 고딕의 『오트란토 성』이 출간된 1764년과 가까운 시기입니다. 최초의 고딕 소설로 불리는 이 무시무시한 소설은 난데없이 출현한 검은 투구가 영주의 어린 아들을 깔아뭉개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어린이의 희생이 이야기의 출발인 거죠. 우리가 고딕풍의 이 집에 혼자 살면서 말을 걸어오는 주인공 어린이를 예사롭게 지나칠 수 없는 이유입니다.

300년이 넘은 귀신의 집은 작가 올리버 제퍼스의 상상력 속에서 다정하고 흥미진진한 새 옷을 입습니다. 그는 이 한 권의 책을 위해서 45권의 참고 문헌을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공포 소설 중의 하나인 셜리 잭슨의 소설 『힐 하우스의 유령』(1959)이 주요 도서로 참조된 것 같습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리, 복도를 떠도는 유령, 벽에 적힌 낙서 같은 아이디어들은 너무 무섭지 않은 방식으로 이 그림책에 옮겨졌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이 그림책을 다룬 서평에서 “이 책은  『힐 하우스의 유령』에서 위협적인 요소를 걷어내고 어린이를 위한 유쾌한 숨은그림찾기로 바꾸어 놓았다.”고 말합니다.

올리버 제퍼스는 이 책을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유령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령이 나타나는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반투명의 종이는 절묘하게 유령의 모습을 감추고 또 드러냅니다. 독자는 주인공 어린이와 함께 이 깜찍한 소동에 동참하여 속았다가 알아차리기를 반복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집에 유령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유령이 세 종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 집 자체입니다. 전체 구조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삐걱거리는 고택은 그 자체로 유령의 성격을 지닙니다. 두 번째는 하얀 천을 뒤집어쓴 유령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전혀 유령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하고 어린 유령입니다. 저는 이 어린 유령이 책 속에 있고 우리를 장면마다 바라보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추측합니다.

책속의 유령들은 귀엽고 엉뚱하고 제멋대로입니다. 가끔 혼자 남겨진 주인공 어린이를 보살피는 것 같은 따뜻함도 보여줍니다. 올리버 제퍼스는 오래된 집에 관한 책이나 건축 관련 자료, 부동산업체가 집을 팔기 위해서 내놓은 광고 속의 사진 등을 훑어보면서 콜라주에 쓸 장면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리모델링한 것으로 보이는 욕실의 인테리어나 한밤중 거실에 놓인 피아노의 연식, 원목에 조각한 서재의 책꽂이 등이 장면을 넘길 때마다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 유령!”이라고 외치면서 숨은 유령의 존재를 알아차립니다.

여름은 길고 무더위는 견디기 어려우며 우리에게는 더 많은 서늘하고 우아한 유령이 필요합니다. 윌리엄 볼컴이 1970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하면서 작곡한 음악 ‘우아한 유령(Graceful Ghost)’과 함께 이 그림책을 감상하시기를 권합니다. 여러 연주가 있지만 제가 추천하는 것은 양인모와 홍사헌의 연주입니다.



우리 집에 유령이 살고 있어요!
우리 집에 유령이 살고 있어요!
올리버 제퍼스 글그림 | 신수진 역
비룡소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김지은(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

ebook
힐 하우스의 유령

<셜리 잭슨> 저/<김시현> 역10,500원(0% + 5%)

그 어떤 생명체도 절대적 현실에 갇힌 채로 살아간다면 광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공포의 저택에 스스로를 가둔 사람들. 광기가 낳는 충격적 결말. 어머니의 죽음 후 난생처음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힐 하우스로 온 엘리너. 그녀는 이곳이 자신의 지긋지긋한 삶을 바꿔 줄 환상적인 장소라고 믿는다. 하지만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나를 살리는 딥마인드

『김미경의 마흔 수업』 김미경 저자의 신작.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절망과 공허함에 빠진 이들에게 스스로를 치유하는 말인 '딥마인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정한 행복과 삶의 해답을 찾기 위해,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는 자신만의 딥마인드 스위치를 켜는 방법을 진솔하게 담았다.

화가들이 전하고 싶었던 사랑 이야기

이창용 도슨트와 함께 엿보는 명화 속 사랑의 이야기. 이중섭, 클림트, 에곤 실레, 뭉크, 프리다 칼로 등 강렬한 사랑의 기억을 남긴 화가 7인의 작품을 통해 이들이 남긴 감정을 살펴본다. 화가의 생애와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해석은 작품 감상에 깊이를 더한다.

필사 열풍은 계속된다

2024년은 필사하는 해였다. 전작 『더 나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에 이어 글쓰기 대가가 남긴 주옥같은 글을 실었다. 이번 편은 특히 표현력, 어휘력에 집중했다. 부록으로 문장에 품격을 더할 어휘 330을 실었으며, 사철제본으로 필사의 편리함을 더했다.

슈뻘맨과 함께 국어 완전 정복!

유쾌 발랄 슈뻘맨과 함께 국어 능력 레벨 업! 좌충우돌 웃음 가득한 일상 에피소드 속에 숨어 있는 어휘, 맞춤법, 사자성어, 속담 등을 찾으며 국어 지식을 배우는 학습 만화입니다. 숨은 국어 상식을 찾아 보는 정보 페이지와 국어 능력 시험을 통해 초등 국어를 재미있게 정복해보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