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지구에서 탈탄소 비전을 꿈꾸다
『기후담판』 정내권 저자 인터뷰
『기후담판』은 기후 위기에 대응해온 지구 차원의 노력, 국제적인 기후 외교·지구 환경 외교의 결정적인 12장면을 보여준다. (2022.07.27)
지구가 불타고 있다. 뉴스를 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세계의 많은 지역이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높은 기온과 이상 기후에 시달리고 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당장은 에어컨 바람 뒤로 숨을 수 있겠지만 그건 대안도 해법도 아니다. 기후 위기는 빈부나 계급, 성별, 나이를 가리지 않는, 지구 전체의 위기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선진국과 개도국은 각자의 이해득실을 우선하고 있다.
『기후담판』은 기후 위기에 대응해온 지구 차원의 노력, 국제적인 기후 외교·지구 환경 외교의 결정적인 12장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희망과 실망이 교차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래도 손을 놓을 수는 없다. 정내권 기후변화대사는 『기후담판』의 마지막 4부에서 지구 환경 외교 현장을 누비며 몸으로 얻은 비전과 패러다임, 실천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기후 외교'라고 하면 뭔가 모여서 덕담만 나눌 것 같은데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우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12개의 기후담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뽑는다면요?
2009년 4월 27일, 미국 워싱턴의 미 국무성 대회의실에서 열렸던 주요 경제국 기후 변화 포럼을 뽑고 싶습니다. 책에서도 강조했지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선진국과 기후 협약에서 이야기하는 선진국은 다른 말입니다. 기후 협약상의 선진국은 지난 수백 년간 산업화를 통해 기후 위기를 촉발한 역사적 책임을 지는 국가를 말해요.
1990년대 OECD에 가입한 이후부터 우리나라에 기후 협약상의 선진국 책임을 지우려는 시도가 많았어요. 일본 대사는 공개적으로 한국 등의 국명을 거론하며 압박을 가한 적도 있었고요. 워싱턴 주요 경제국 기후 변화 포럼에서 우리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 행동을 서약하는 별도의 대안을 제안하면서, 그동안 우리를 겨냥했던 부당한 압력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외교가 거둔 중요한 성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30년에 걸친 기후 변화 협상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미국의 책임에 대해 길게 언급하였는데, 이러한 미국 입장의 배경은 무엇인지요?
유엔에서의 기후 변화 논의는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책임 공방을 하다 허송세월을 하였고, 결국은 특별한 법적 구속력이 없는 파리기후체제에 합의하는 데 그쳤습니다. 미국은 끝까지 개도국과 동등한 법적 구속력을 주장했어요.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나 산업화 걸음마 단계인 개도국이나 같은 기준을 적용하자는 겁니다. 미국의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은 사실 모든 나라가 공유하는 어떤 생각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이 경제 성장에 부담이 될 거라는 생각이죠. 이 고정 관념이 모든 나라로 하여금 자국 우선의 방어적 자세를 취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환경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거라는 주장은 지금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이 경제에 부담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의 기회라는 인식의 전환이 없으면 기후변화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녹색성장’이라는 비전을 제;안했어요. OECD나 세계은행 등도 녹색성장 개념을 받아들여서 이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을 비롯해 몇몇 국가들도 자신들의 국가 발전 계획에 포함시키고 있고요.
녹색성장 제안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존 전통 경제학의 틀을 기후경제학으로 전환하는 보다 근본적인 혁신이 있어야 합니다. 기후경제학은 다른 상상력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해줍니다. 지금 익숙한 화석연료 문명에서 탈탄소 미래로 전환하는 것은 말이 끌던 ‘마차 시대’에서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자동차 시대’로 넘어가는 것과 같은 문명의 전환입니다. 친환경 대안들이 경제 성장을 방해할 것이라는 주장은 처음 자동차가 등장하던 시절 마차가 줄어들 것이라 주장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공포 마케팅이에요. 마차는 줄었지만 대신 내연기관 자동차가 늘어났듯, 이제 내연기관 자동차가 줄어들면 전기자동차와 또 다른 대안 교통 체계가 늘어날 겁니다.
최근 ‘Net Zero 2050’ 등을 내걸고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발표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목표치들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시나요?
이미 역사적으로 1992년도의 '유엔 기후 협약', 1997년도의 '교토 의정서', 2009년도의 '코펜하겐 의정서'에서도 이러한 목표치 발표를 한 바 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인 목표치의 발표도 중요하지만, 에너지 전환과 산업에만 부담을 지게 하는 지금과 같은 목표치 설정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해요. 이제는 탄소 가격을 시장 가격에 반영하는, 보다 근본적인 접근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탄소 가격을 시장 가격에 반영한다는 게 어떤 걸까요?
현재 기후나 환경 등을 자유재로 취급하는 자유 시장을 기반으로 경제를 운용하고 있는데, 이제 탄소 가격을 시장 가격에 반영하는 지속 가능 시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더 이상 기후를 자유재 즉, 공짜로 취급하면 안돼요.
탄소 가격을 시장에 반영하는 방법으로는 먼저 '탄소세'가 있습니다. 지금은 소득 창출처럼 바람직한 활동에는 세금을 부과하고, 탄소 배출처럼 나쁜 행동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어요.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 활동을 촉진하고 기후 변화 방지를 원한다면, 당연히 소득에 대한 세금은 낮추고 탄소 배출에 세금을 부과하는 게 필요합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아니라 '탄소 있는 곳에 세금'으로 전환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정부 주도의 대형 인프라 사업과 대기업의 민간 투자 등 가능한 부분부터 탄소의 잠재 가격을 반영하는 정책이 도입돼야 합니다. 가령, 광역 전철망을 계획할 때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하는데, 거기에 탄소 잠재 가격을 반영하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지금도 공기 질이나 미세먼지 저감 등 일부 환경 효과를 포함하긴 하지만 그 이상이어야 해요. 광역 전철망으로 줄어들 자동차 운행과 그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량에 톤당 100달러, 200달러 식으로 탄소 잠재 가격을 적용하는 거죠.
여전히 탈탄소, 탄소 중립에 막연한 감이 있습니다. 탄소와 관련된 걸 세금이나 정책 판단의 근거로 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할지 궁금합니다.
2018년도에 우리나라에서 교통 체증으로 68조 원의 비용이 발생했어요. 도로에 멈춰있는 것만으로 그런 비용이 발생하는 겁니다. 실질 GDP의 3.6%에 해당하는, 그해 우리나라 국방비 55조 원보다 큰 금액이에요. 나는 이거를 줄이는 게 실질적인 탄소 중립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으로만 줄여도 매년 34조 원을 버는 거잖아요.
이를 위해서는 녹색 교통 즉, 대중교통 중에서도 철도, 지하철, 전철을 중심으로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구석구석에 철도가 들어가고, 전철 급행 노선을 만들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등 장애나 노인, 아이들까지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여야 합니다. '예산이 없다', '투자 대비 편익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예비 조사에 탄소 잠재 가격을 반영하면 되는 거예요. 투자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겁니다.
개인 차원에서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텀블러도 좋고 일회용품을 안 쓰는 것도 좋지만, 더 과감해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정부나 기업이 어떤 조치를 취해주기를 막연히 기다릴 수 없어요. 온실가스 배출의 원인 제공자인 개개인들이 스스로 탄소 가격을 지불하겠다는 적극적인 운동을 전개하여야 합니다.
개인과 기업들이 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 에너지 전기'를 선택해 비용을 내고 쓰면 되는 거예요. 자발적인 ‘재생 에너지 가격 지불 제도’나 ‘탄소 가격 지불 제도’라고 할 수 있겠죠. 시민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탄소 가격을 지불하고 주변의 일반 소비자들도 동참하게 될 때, 우리 사회의 소비와 생산 패턴이 비로소 탈탄소로 전환될 수 있을 겁니다.
*정내권 한국의 초대 기후변화대사로 대한민국의 지구 환경 외교 일선에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편, 유엔 사무총장의 기후 변화 수석 자문관과 유엔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 환경개발국장으로 기후 변화 관련 유엔 활동에 참여하고 ‘녹색 성장’을 주창하였다. 현재,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반기문 재단’의 이사와 러시아 ‘글로벌 에너지 프라이즈’의 심사 위원장을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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