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로 이루어진 클래식 플레이리스트
『클래식 감상자의 낱말 노트』 김태용 저자 인터뷰
대중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감상'입니다. 음악을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청취의 감각이 가장 선행돼야 했죠. (2022.07.19)
클래식 음악은 오랜 시간 우리 가까이에 늘 있어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다가서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클래식 음악을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용어들일 것이다. 『클래식 감상자의 낱말 노트』는 기본 음악 용어나 어려운 용어만을 풀이해 놓은 책이 아니다. 클래식을 감상하는 데 실재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낱말들, 알고 있던 곡도 다시 들어보며 감상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만한 낱말들을 모았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알려온 김태용 저자가 이번에는 '낱말'이라는 키워드로 색다른 감상의 시간을 선사한다.
『90일 밤의 클래식』 이후 2년 만에 신간이네요. 『클래식 감상자의 낱말 노트』는 어떤 책인가요?
이전 책들도 그랬지만 이번 책에서도 클래식 음악의 보이지 않는 높은 진입 장벽을 깨고 싶었어요. 대중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감상'입니다. 음악을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청취의 감각이 가장 선행돼야 했죠. 『클래식 감상자의 낱말 노트』는 감상을 최우선에 두되,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불필요한 정보를 피했으며, 무리한 음악 이론이나 상식 아닌 상식이라는 주입식 글을 지양했습니다. 전공자나 비전공자 모두에게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는 70가지 주제를 구성해, 실재적인 감상에 다가설 수 있도록 했어요. 이렇게도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낱말'이라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오르셨나요?
늘 그랬지만 음악을 글로 푼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에요. 말문이 막힌다고 해야 할까요? 이번 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책들은 1년 간격으로 출간했는데, 이번에는 무려 2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초반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제동이 걸렸지요. 대강의 목적은 분명히 있었으나 어떻게 뼈대를 맞춰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러던 중 TV 예능 프로그램 <클래식은 왜 그래> 시즌 2를 촬영하다가 아이디어를 찾았어요. 저 같은 전문가가 말하는 음악 용어가 시청자들에게 어렵고 헷갈리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책꽂이에 있는 오래된 영어 단어집을 보고 무릎을 탁 쳤죠. 감상자를 위한 음악 용어를 기준 삼아 제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보면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단어집처럼 무수한 음악 용어를 나열해 뜻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에 활용할 수 있는 용어만을 선별하고 때로는 인문학적 내용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색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변칙적 방향을 모색했어요. 나아가 음악도 참고로 들어볼 수 있도록 QR코드를 넣어 실용성에 더욱 무게를 두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설명하고 표현하는 수많은 낱말 중에 70개를 고르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셨나요?
저는 음대를 나와 클래식 저널 기자로 일했고,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클래식 작가로 독립해 여러 강연과 방송을 통해 대중과 만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력 덕분에 클래식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과 일반 대중의 시선 모두 이해하게 됐어요. 클래식 애호가가 바라보는 관심사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갖는 클래식에 대한 편견이 서로 다른 세상에 있죠. 이것들을 합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습니다.
첫째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활용성’에, 둘째로는 ‘본질에 충실한 전문성’에 초점을 두었어요. 음악의 기본이 되는 것에 ‘왜’라는 의문을 던져 풀어보고자 한 것이죠. 마지막은 ‘의외의 요소’입니다. 기존 책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음악적 특징을 화두로, 감상의 색다른 즐거움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곡 제목부터 복잡하고, 관련 지식이 있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렵게 느껴지기도 해요.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감상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정말 자주 받는 질문입니다. '감상법'이란 낱말 자체가 어쩌면 음악적인 질문보다 훨씬 더 난해해요. 사실 감상법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개인마다 음악을 즐기는 방식이 모두 다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감상법이란 말보다 줄여서 ‘감상’이란 말로 단순화해 이해를 돕는 편입니다. 법칙이란 말이 들어가면 꼭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잖아요. 감상은 늘 언제 어디에서든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상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주로 예술 작품을 이해하며 즐기고 평가한다는 뜻인데, 이해와 즐기는 것, 평가 모두 제한 없는 자유로움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클래식 음악도 음악 장르 가운데 하나일 뿐이죠. 아주 본질적인 얘기를 하자면, 음악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새로움이 더해져 발전하고 있는 음악이 지금의 클래식 음악입니다. 시각을 조금 달리 바라보면 클래식 음악 감상은 '음악의 역사를 듣는 것'입니다.
『클래식 감상자의 낱말 노트』 내용 중 작가님에게 가장 재밌었던 주제가 무엇이었나요? 어려웠던 주제도 있었나요?
솔직히 쉬운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매 주제마다 쉽게 넘어가지 못했죠. 잘 써야 한다는 압박과 지루하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을 안았으니까요. ‘음악사’ 편은 음악학이 제 전공이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다른 주제보다는 빠르게 썼고, ‘학부모’ 편은 어떻게 해야 이 책을 보는 학부모들이 불편해하지 않고 공감해주실까 고민하다 무척 오래 걸렸지요. 개인적으로 독자분들이 재밌어할 것 같다고 생각한 글은 ‘데스크 파트너’ 편입니다. 이건 다른 책에서 잘 볼 수 없는 내용인데요. 앙상블에서 하나의 보면대를 두 연주자가 같이 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데, 제가 직접 경험한 거라 예전에 연주했던 추억을 되살리며 웃으며 썼답니다.
머리말에서 음악이 주는 힘과 행복을 이야기하셨어요. 작가님이 힘들 때 특히 생각나고 듣게 되는 곡이 있나요?
저는 재작년 팬데믹 초창기, 아직 세계에서 극소수였던 감염자였습니다. 전혀 겪어보지 못한 병에 걸린 것도 억울한데 시설에 들어가 2주나 격리되어야 했죠. 좁은 방에 갇혀 너무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일부 신체 기능이 마비되고 기침과 열이 나는데 이제껏 느끼지 못한 묘한 고통이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견디는 게 전부였기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지요. 그곳에서 유일하게 저의 정신을 강하게 만들어주고 위로해준 것이 바로 음악입니다.
주로 기악 음악 위주로 들었습니다. 성악 음악도 좋지만, 생각할 여유가 필요했기에 가사의 방해를 피하고 싶었죠. 그 가운데 심신의 안정에 큰 도움을 주었던 작품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와 현악 사중주 작품들이었습니다. 악기의 수가 많지 않아 부담이 적었고, 조용한 방에서 듣기에 적합했어요. 무엇보다 베토벤 일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장르들이기에 그의 삶을 저의 삶과 동화시켜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때론 슬픔이, 때론 격정이, 때론 환희가 공존하는 베토벤의 음악은 마치 저를 위한 음악인 듯 느껴졌습니다. 사실 베토벤 음악이 저에게 이렇게까지 도움을 줄 줄 몰랐어요. 요즘에도 지치거나 힘들 때 베토벤의 음악을 찾습니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그가 어디에선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지고, 제 어깨를 살포시 눌러주며 힘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와 작가님의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저 역시도 음악을 다루는 음악인입니다. 악기를 놓은 지 오래됐고, 연주를 보여 드릴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제가 음악을 빌어 많은 분과 소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아름다운 음악의 소리를 글로 형상화하는 작업입니다. 음악을 음표로 표현하는 악보와 마찬가지로요. 음악에 듣는 재미가 있다면,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아무쪼록 『클래식 감상자의 낱말 노트』가 음악의 시야를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앞으로도 음악의 미(美)를 저만의 방식으로 알릴 것입니다. 음악은 인간의 마음에 존재하는 위대한 가능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라 여깁니다. 비록 제가 하는 일이 미약하지만, 음악 예술의 놀라움을 엿볼 수 있는 창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김태용 서양 음악사 저술가 겸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 추계예술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를 수석 졸업했고, 체코 오파브 필하모닉, 루마니아 지우르지우 필하모닉, 국립경찰교향악단 등과 협연했다. 이후, 연세대학교 대학원 음악대학에서 음악학 석사 과정을 이수했으며, 동 대학 고음악 과정을 마쳤다. 국제적 권위의 영국 클래식 저널 <the Strad> 및 <International Piano> 코리아 매거진의 전문 클래식 음악 기자와 상임 에디터를 역임하며 세계적인 연주자들에 대한 칼럼들을 기고했다. 또한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금호아트홀 등의 클래식 전문 공연장의 공연 기획자로서 클래식 음악의 대중적 육성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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