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달을 가리키며 움켜쥔 동전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달도 차오르고 줄듯, 삶의 여정에서 현실에 만족하는 시절이 있고, 염증을 느끼며 달을 그리워하는 시절도 있겠지 싶다. (2022.07.15)

언스플래쉬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소설을 꼽으라면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이야기할 것이다. 내 정체성을 잘 알지 못했던, 그래서 원하는 삶을 그려보고 지우기 바빴던 스무 살에 읽었던 책. 당시 책이 내게 던진 물음은 강렬했다.



별다른 특징 없이 은행원이자 안정적인 중산층의 삶을 살던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어느 날 신내림을 받은 듯 예술의 열병에 걸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이야기다. 화가 고갱을 모티브로 쓰인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제목의 '달'은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을 '6펜스'는 현실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은 한때, 보통은 소싯적에, 손가락으로 저 달을 가리켰지만, 말 그대로 먹고 살다 보니 현실의 문제를 위한 6펜스에 골몰하게 된다. 오늘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저 달을 위해 내일의 6펜스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스무 살 언저리의 나는 달을 좇겠다며 다짐했지만, 굽이쳐오는 삶의 고개를 넘다 보니 어느새 6펜스를 꾹 움켜쥐고 있었다. 손에 쥔 얼마간의 동전들에 만족하다가, 지금의 나에게 손가락을 들어 가리킬 달이 있는지 초조해질 때도 있다.

고백하자면 스무 살의 나는 6펜스를 비웃었다. 평범한 직장인과 주부로, 아이들을 키우며 '누구 엄마 아빠'로 살아가는 사람들. 당시 나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을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이상을 좇아 살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때를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지만, 출퇴근을 반복하는 일상과 가끔씩의 술자리,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 정주행 같은 일들로 점철된 삶에 숨 막히기도 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다만, '시시한' 사람들을 비웃던 그때와 달라진 점은 모두가 달을 따라 살 수 없음을 안다는 것 정도. '스트릭랜드'는 내면 깊이 숨어있던 예술혼을 불태우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 그 결정은 동시에 그의 가족과 조력자들을 고통 속에 밀어 넣는다. 그의 여정은 마치 그들을 제물 삼아 나아가는 듯했다. 내가 태어난 이후로 본 내 아버지의 삶은 6펜스만을 위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나는 달을 그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모두가 달만을 좇으며 사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현실을 위해 이상을 내면 한구석에 넣어두고 사는 사람들도 있기에 이상을 좇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 한편,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지상에 두고 가끔 자신이 가리키던 달을 올려보며 살아가고 있을 거다. 달도 차오르고 줄듯, 삶의 여정에서 현실에 만족하는 시절이 있고, 염증을 느끼며 달을 그리워하는 시절도 있겠지 싶다. 그러니까, 스트릭랜드와는 달리 우리 삶에 달과 6펜스는 밀물과 썰물처럼 차오르고 빠져나가고 한다. 밀물과 썰물 그 어디쯤에서 두 다리로 버티고 있는 나와 많은 사람들을 응원한다.



달과 6펜스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저 | 송무 역
민음사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남기산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인게 인생이라던데 슬픔도 유쾌하게 쓰고 싶습니다. kysan@yes24.com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저/<송무> 역9,000원(10% + 5%)

화가 폴 고갱의 삶의 단편들을 소설로 옮긴 강렬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예술에 사로잡힌 한 영혼의 악마적 개성과 예술 편력이 한 글자마다 거칠게 때로는 타히티의 태양볕처럼 열정적으로 칠해져 있다. 한 화가의 모습을 그려내는 동시에 원시에의 갈망과 현대 사회의 병폐적인 모순에 대한 반항적 요소가 고루 섞여 들어감으..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ebook
달과 6펜스 - 세계문학전집 038

<서머싯 몸> 저/<송무> 역7,000원(0% + 5%)

화가 폴 고갱의 삶의 단편들을 소설로 옮긴 강렬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예술에 사로잡힌 한 영혼의 악마적 개성과 예술 편력이 한 글자마다 거칠게 때로는 타히티의 태양볕처럼 열정적으로 칠해져 있다. 한 화가의 모습을 그려내는 동시에 원시에의 갈망과 현대 사회의 병폐적인 모순에 대한 반항적 요소가 고루 섞여 들어감으..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박노해 시인의 첫 자전 에세이

좋은 어른은 어떤 유년시절을 보냈을까? 어두운 시대를 밝힌 박노해 시인의 소년시절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가 출간됐다. 지금의 박노해 시인을 만들어 준 남도의 작은 마을 동강에서의 추억과 유소년 “평이”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33편의 산문과 연필그림으로 담았다.

도도새 그림 속 숨겨져 있던 화가의 삶

도도새 화가, 김선우의 첫 에세이. 지금은 멸종된 도도새를 소재로 현대인의 꿈, 자유 등을 10여 년 동안 표현해 온 김선우. 이번에는 무명 시절에서부터 ‘MZ 세대에게 인기 높은 작가’로 꼽히기까지 펼쳐 온 노력, 예술에 관한 간절함, 여행 등을 글로 펼쳐 보인다.

왜 수학을 배워야 할까?

계산기는 물론 AI가 거의 모든 질문에 답하는 세상에서 왜 수학을 배워야 할까? 질문 안에 답이 있다. 수학의 본질은 복잡한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것이다. 미래 예측부터 OTT의 추천 알고리즘까지, 모든 곳에 수학은 존재하고 핵심 원리로 작동한다. 급변하는 세상, 수학은 언제나 올바른 도구다.

기회가 오고 있다!

2009년 최초의 비트코인 채굴 후 4년 주기로 도래한 반감기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과거 세 차례의 반감기를 거치며 상승했던 가격은 곧 도래할 4차 반감기를 맞아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인가? 비트코인 사이클의 비밀을 밝혀내고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전략을 제시한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