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임차인의 민족’ 독일 주택 정책의 비밀은
『주택, 시장보다 국가』 문수현 저자 서면 인터뷰
이제는 주택 문제를 5년 단위 정치의 시간을 넘어서는 장기적인 시간대에 놓고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시장과 국가 사이’의 무수한 사잇길에 대해서 시민 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면 좋겠습니다. (2022.07.12)
한국 사회에서 ‘집’은 어떤 의미일까? 내 집 마련이 모두의 꿈인 요즘, ‘집’은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지만, 갖기는 어려운 값비싼 상품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주거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정책이 바뀔 때마다 임대인의 손해를 부각하여 다루는 기사들과, 규제 아니면 공급을 외치는 정치인들. 우리에게 한정된 선택지 앞에서 고민하기보다, 주거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 아닐까?
『주택, 시장보다 국가』는 주택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넓혀주는 책이다. 독일 주택 정책에 대해 오래 연구한 문수현 저자가 150년간 이어진 독일 주택 정책의 쟁점들을 다뤘다. 독일은 한국 주택 정책을 논할 때, 자주 참조되지만 그만큼 오해도 많다. 독일은 2021년 퇴임한 메르켈 총리가 2005년 기준 임대료 20유로였던 건물에서 16년 동안 거주한 사실이 화제가 될 정도로, 자가 보유와 임대가 균형을 이루는 임대 주택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독일의 사례를 바로 한국에 대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계급 갈등, 경제 체제 등 여러 요인을 종합하는 ‘체제’의 관점으로 본 독일 주택 정책의 모습을 살펴보자.
독일 주택 정책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유학했던 구 서독 지역들은 주거 여건이 너무나 좋아서, 어떻게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언젠가는 책을 쓰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10년 전에 논문 한 편을 마무리하고 다시 펼쳐볼 생각을 못 하다가, 최근 들어 한국의 주택 문제가 너무 심각해졌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주택 시스템에 대해 정확히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의 주택 정책에 대한 연구들이 있지만, 이미 완결된 제도적 특징들을 나열하는데 그치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현재의 제도들을 나열하는 것으로는 그 제도가 가지는 의미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사학자인 제가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새 정권이 시작될 때,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부동산 대책입니다. 주택 문제를 정책이나 정권의 문제로 보는 우리의 믿음이 반영된 결과인데요. 이를 ‘주택체제’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주거 시스템을 ‘주택체제’로 봐야 한다는 것은 저의 고유한 입장이 아니라 이미 여러 학자들이 언급하고 있는 바입니다. 주택 문제는 결국 권력 문제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 안에 존재하는 계급 갈등, 국가와 시민 간의 관계, 경제 체제, 여러 이데올로기들을 한데 아울러야만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주택 정책은 가족 정책, 조세 정책, 경제 정책, 사회 복지 정책, 도시 환경 정책, 건축 정책 등 여러 문제의 교차로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전체, 그러니까 하나의 ‘체제’로서 살펴보아야만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이렇게 주택 문제를 ‘주택체제’로 바라보자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또 5년 계약의 정부가 임기 내에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관’에 대한 신뢰, 혹은 과도한 기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과도한 기대를 담아 ‘아파트를 더 짓겠다’는 정당과 ‘부동산 관련 과세를 강화하겠다’고 나서는 정당 사이를 오가는 일을 반복해 왔습니다.
이제는 주택 문제를 5년 단위 정치의 시간을 넘어서는 장기적인 시간대에 놓고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시장과 국가 사이’의 무수한 사잇길에 대해서 시민 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면 좋겠습니다. 시민 사회가 요구하지 않는데 정치권이 앞장서서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주택 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시민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할 리가 있겠습니까?
한국에서는 독일의 주택 정책이 ‘국가 개입’의 성공 혹은 실패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그러나 작가님은 독일의 주택 정책사를 한국 사회에 바로 적용하는 것은 경계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구한말 신사 유람단을 파견한 이래, 소위 선진국에 대해 너무나 열린 자세를 갖고 한 수 배우려 하지만, 공터에 집을 지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닌 마당에 외국 경험에 근거한 제도가 우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주택 문제는 성패로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입니다. 가령, 충분한 주택 개보수가 이루어지지 못해서 주거 여건이 점차 나빠지던 동독의 주택 정책만 하더라도 누구를 중심으로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도 가능합니다. 동독에서는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거 약자로 꼽히는 싱글맘, 이민자 등의 경우에도 주거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저소득층의 경우에도 가처분 소득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임대와 소유가 균형을 이루게 된 서독의 주택 정책이 성공 사례로 꼽히지만, 독일의 자가 소유율이 낮기 때문에 중위 가구 자산이 유럽 연합 어느 국가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주택이 충분한지 부족한지에 대해서조차도 합의에 이르기 어렵습니다.
가령, 독일 제국 시기 주택난이 극도로 심각했던 때에도 임대인들은 주택 문제가 임차인의 인색함에서 비롯된 문제일 뿐 주택 부족은 없다고 단언했었거든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주택이 부족한지 충분한지에 대해서 합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논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주택 정책의 목표를 무엇으로 삼을 것인지, 어떻게 그 목표에 이를지, 그 과정에서 어떤 기회비용이 발생하게 될지 등 여러 난제에 대해서 남의 판단이나 남의 지혜를 빌릴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주택 임대차 보호법 시행 이후, 임대인에게 불이익이 갈 것이라는 보도를 많이 본 것 같습니다. 특히 임대료 상한제를 운영한 독일의 사례를 언급하며, 임대 주택의 질이 저하되거나 임대료가 급등할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는데요. 이 이슈를 어떻게 보셨는지요?
사회 안에서 재화, 특히 모든 개인과 가정에 본질적인 재화인 주택을 어떻게 배분할지의 문제는 치열한 갈등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노사 분규가 당연하듯이 임대인과 임차인 간에도 치열한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독일과 비교해 보자면 우리 사회는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린 것으로 보일 정도로 실제로는 임차인들인 여러 시민들이 임대인의 편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담론을 생산해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담론은 무도할 정도로 단순합니다.
가령, '임대료에 대한 통제가 임대 주택의 질 저하를 낳는다'라는 논리도 독일사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매우 문제적입니다. 물론 임대료를 통제하게 되면, 임대 주택으로부터의 기대 수익이 낮아지기 때문에, 임대 주택에 투자를 하지 않게 되어 임대 주택의 질 저하를 낳을 수는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주택 문제에 대한 정부 개입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그런 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임대료 통제는 결국 임차인과 목수 간의 대립을 낳게 된다는 식의 논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이 오랫동안 임대료 통제를 해 오면서도 임대 주택의 질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그것은 임대 주택에 대한 개보수를 실시할 경우 매년 11%까지 임대료를 인상하는 것을 허용해왔기 때문입니다. 임대료 통제를 하는 것과 주택의 질 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길을 찾아낸 것입니다. 문제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아붙여서 임차인 편에서 제도 개혁을 하지 못하도록, 말하자면 재갈을 물리는 방식의 단순한 담론 구조를 부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 세입자를 국가가 보호하는 정책이 시행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미디어에서 임대인의 사유 재산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고, 임대료 인상을 목적으로 세입자를 몰아내는 사례도 자주 보입니다. 주택에 대한 어떤 상상력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독일에서 세입자를 보호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대도시들에서 세입자의 비율은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유권자 전체를 보호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 수밖에 없습니다. 책에도 썼지만, 독일 언론에서 주거난을 다룰 때 주어는 '우리는...'입니다. 세입자가 타자로 '그들...'로 범주화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특히 서울의 경우를 보게 되면 자가 비율이 42%에 불과한데도 언론 매체에서 주택 문제를 다룰 때 종부세나 보유세를 납부하지 못해서 강남에 살다가 내쫓기게 되는 집주인들의 시각에서 주택 문제를 다루는 것이 저로서는 너무 의아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물론 주택 문제를 임대인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임차인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주택 문제를 주택 소유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선택’을 하고 있는데도 전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로, 임대인 및 주택 소유자의 입장에서 주택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그 문제를 바라보는 유일한 방식인 것처럼 바라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임차인의 민족’인 독일의 주택 정책들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것은 독일처럼 우리도 ‘임차인의 민족’이 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반대로 ‘임대인의 민족’인 것처럼 처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택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자고 할 때 어떤 경제적인 법칙에 위배되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임금에는 회사의 지불 능력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생계비에 대한 고려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끝없는 주택 가격 인상은 끝없는 임금 인상을 의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독일 주택사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확인하게 됩니다. 임대인 단체와 기업가 단체는 충돌하고 있었고, '라인 강의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주택강제경제'로 인해 가처분 소득이 높았고, 이로 인해 내수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상황도 중요한 배경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60년대 주택강제경제를 철폐하게 되었을 때, 월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이 20%에 달하게 되었는데, 그에 대한 사회의 저항이 매우 컸을 정도입니다. 현재 독일의 경우, 이 비율은 30%를 훨씬 넘어서 있는 상황입니다.
주택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선거를 앞두고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나아갈 방향과 관련된 큰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 경우 좌우 대립의 문제로 구분하는 것은 정말 유치한 생각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택에 대한 국가 통제를 얘기할 때 전경련 소속의 기업가들과 강남 거주 주택 소유자들의 입장은 분명 다른데, 왜 주택 소유자들을 위주로 한 주택 정책이 친시장적이라고 하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일까요?
독일의 주택체제는 ‘임차인의 민족’이라 할 정도로 자가 보유와 임대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지적하셨어요. 이 배경에는 국가가 주도하여 자율과 통제의 균형점을 찾아온 역사가 있다고요. 작가님이 가장 인상적으로 본 사례는 무엇인지, 또 어떤 한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독일이 처음부터 ‘임차인의 민족’이지는 않았습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1872년 베를린 블루멘슈트라세의 임차인 시위의 경우에 잘 드러나듯이, 당시 독일 제국 정부는 기업의 편에 서서 노동자들의 파업을 진압하듯이, 임대인의 편에 서서 임차인의 파업을 진압했습니다. 독일에서 주택 문제에 대한 중앙 정부의 개입이 최초로 가시화된 것은 1차 대전 참전 병사들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고, 전쟁을 지나며 주거 문제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당시에 ‘주택강제경제’로 불리던 임대 계약에 대한 통제를 전후에 제도화해서 실제로는 1960년대 초까지 50년 정도 지속시켰습니다.
그러다가 주택부장관을 지낸 '파울 뤼케'의 이름을 딴 '뤼케 계획'을 통해서 임대 주택 시장을 자유화시켰지만, 10여 년 만에 다시 임대 계약에 대한 통제에 나섰습니다. 그러니까 1차 대전 발발 이후에 독일 사회에서 임대 계약이 자유로워서 임대료 인상을 위해 세입자를 내모는 것이 가능한 기간이 10여 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임대료 인상을 원할 때 세입자가 나가는 것은 작용과 반작용의 물리 법칙처럼 말하곤 하지만, 그것은 물리 법칙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택한 하나의 길입니다. 유일한 길이 아닌 거지요.
최근 들어 베를린의 임대료 통제 및 동결 조치가 나타나고, 임대 주택 회사에 대한 국유화를 주민 투표에 부쳐서 과반 득표를 하는 현상은 얼핏 매우 놀랍지만, 가령 누대로 베를린에 살아온 시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닥 놀라울 것이 없는 셈입니다.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대에서 이미 경험한 제도였던 것이죠.
대대적인 임차인 파업이 이미 1872년에 있었고, 최초의 임차인 단체 역시도 그 무렵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도 21세기인 현재도 베를린에서 임차인 시위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정부가 주도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관련 법규를 만드는 것으로 쉽게 해결이 될 수 있겠지만, 주택 수요는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수요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수요 공급이 맞지 않게 될 경우 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령 ‘주택강제경제’를 통해서 임대료에 대한 대대적인 통제가 있던 1919년 독일제국주택담당관이 ‘대부분의 신규 임대 계약이 신고되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신고를 회피하고 있었던 것인데, 결국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과 시장,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잘 작동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21년에 베를린에서 임대료 통제를 떠나서 임대료 동결 조치가 나오기도 했지만, 임대료가 치솟고 있는 것은 다시금 법과 시장 모두가 잘 작동해야 주택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시장 자율에 맡기느냐, 국가가 개입하느냐의 양자택일의 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의 무수한 선택지를 두고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택 문제는 결국 인간의 소유욕과 관련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땅 투기 업계의 나폴레옹으로 불리던 카슈텐이나 ‘구주택황제’로 불리던 임대업자 귄터 카우센, 독일노조 소유 주택 건설 회사 대표로 엄청난 부정 축재를 한 끝에 결국 ‘주택 공공성’을 철폐하는데 빌미를 제공한 알베르트 비토 등 가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고, '토지개혁가연맹'을 조직한 아돌프 바그너, 동독 출신으로 베를린 시 주택 담당자이던 카트린 롬프셔 등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19세기 로마의 건설 투기와 관련하여 “건물주가 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꿈이었다”는 대목을 발견했을 때, “동독인들이 노동을 하고,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고, 이는 모두 아파트 한 채를 얻기 위해서였다”는 표현을 발견했을 때 너무 뭉클했습니다.
유학 시절, 독일의 주거 상황을 체감하신 대목이 흥미로웠습니다. 현지에서 어떻게 느끼셨는지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독일에서 유학할 때 선후배들은 북쪽 베를린에서 남쪽 아우크스부르크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른 도시에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두 명이 같은 도시에 공부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반대로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선배들은 모두 파리에서 공부하고 계셨습니다. 이 간단한 사실만으로도 지방 분권인 독일과 중앙 집권적인 프랑스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공부한 독일 빌레펠트는 인구 30만 정도로서 인구순으로 하자면 독일 18대 도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소득층일 수밖에 없는 유학생들의 주거 여건도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살던 도시의 유학생들은 사회 주택에 거주하건 기숙사에 거주하건 비교적 좋은 주거 여건에 살고 있었지만, 프랑스의 경우 현저히 높은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도 없고 층 전체에 화장실이 하나 있는 학생용 숙소에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상대적으로 좋은 독일의 주거 여건은 지방 분권으로 인해 가능한 부분이 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무주택자가 다수인 젊은 세대들은 ‘영끌’해서 집을 사거나, 아예 주택 소유를 포기한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혹시 참조할 독일의 사례가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서 독일에서 거주하는 청년들에게 물어도 ‘영끌’해서 집을 살 의사는 없어 보였습니다. 주택 구매를 위한 문턱이 높고, 주택 소유에 따르는 책임도 큰 것이 현실이라서요. 이는 반대로 여유 자본이 있다고 해서 실수요자가 아닌데 자본 증식을 위해 쉽게 집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의미겠습니다.
장애인용 주차 공간이 있을 때,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용 주차 공간에 주차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용 주차 공간이라는 하나의 제도가 유지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장애인용 주차 공간에 주차를 하지 않는 것이 시민 의식인 것처럼, 시민 사회가 주택을 투기에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갖지 않는다면,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모든 시도는 다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19세기 허스토리』를 공동 저술하시는 등 ‘여성의 삶’에 대한 주제도 꾸준히 연구하고 계신데요. 향후의 연구 계획이 궁금합니다.
지금은 최근까지 독일의 집권 여당이던 ‘기민련’의 역사에 대한 책을 쓰고 있습니다. 여성사는 계속해서 공부해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문수현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독일 현대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니스트 기초과정부에 재직했으며, 현재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허용되는 운신의 폭이 매우 좁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학술적인 관심을 넘어 여성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쓰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여성의 삶을 고민하는 글을 써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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