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주년 특집] 종이 잡지를 볼 때 찾아드는 감정 - 김신식 감정 사회학 연구자
<월간 채널예스> 2022년 7월호
웹진과 유튜브의 시대, 종이로 된 잡지는 이제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김신식 연구자에 따르면 독자에게 가닿은 잡지 한 권이 읽히는 방식은, 놀랍게도 넷플릭스나 웨이브 같은 OTT 서비스의 시청 방식과 유사할 수도 있다. (2022.07.12)
웹진과 유튜브의 시대, 종이로 된 잡지는 이제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김신식 연구자에 따르면, 독자에게 가닿은 잡지 한 권이 읽히는 방식은, 놀랍게도 넷플릭스나 웨이브 같은 OTT 서비스의 시청 방식과 유사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도 독자의 책꽂이를 지키고 있는 <월간 채널예스>도 마찬가지다.
이젠 유물처럼 인식되지만, 영화를 비디오로 감상한 시절이 있었다. 이를 두고 미디어 이론가 지그프리트 칠린스키(Siegfried Zielinski)는 영화 보기가 책의 이용과 닮았다고 말했다. 가령 비디오테이프는 영화를 책처럼 빌려 보거나 소장하는 경험을 제공했다. VCR은 보고픈 다음 페이지로 얼른 넘어가거나(빨리 감기) 이해가 되지 않는 페이지는 다시 들추어 보는 행위(되감기)와 비슷한 경험을 선사했다. 옛날이야기를 한 김에 좀 더 하자면 오래전 대학 수업이 떠오른다. 『미디어의 이해』(1964)란 고전을 강독하는데 저자인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의 생각에 꽤 충격을 받았더랬다. 홈 비디오가 제대로 보급되지도 않은 1960년대 당시에 맥루언은 일찍이 예언했다. 영화는 책의 단계로 들어설 것이라고.
정리해 보면 오늘날 유튜브, OTT에서 발생된 영상 문화 때문에 서적 소비의 인기가 줄어드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책이나 잡지 등 종이로 된 기록물을 보는 경험과 영상을 보는 경험이 서로 적대적인 건 아니다. 가령 OTT 서비스를 상징하는 ‘오프닝 건너뛰기’를 떠올려보자. 이는 미용실이나 은행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면서 잡지 앞쪽부터 거칠게 넘기며 보다가, 끌리는 기사가 나오면 눈길을 고정해 온 경험과 유사하다.
특히, 건너뛰어 보기는 잡지의 큰 매력이다. 잡지엔 이른바 ‘스킵(skip)하며 보기’의 미덕이 있다. 순서대로 보아야 하는 절차를 생략하고선 페이지를 건너뛰어 내 취향과 충동에 부합하는 지면으로 직결할 자유가 허락된다. 그러한 자유 아래 나는 독서에 관한 부끄러움을 덜게 됐다. 잡지는 정보나 지식을 받아들이는 너의 태도는 한참 잘못됐다는 꾸지람 앞에서 주눅 들지 않게 해주는 둥지였다.
이처럼 잡지를 접하는 경험을 대표해 온 ‘스킵하며 보기’는 현장에서 잡지를 만드는 사람의 지론을 고려할 때 도드라진다. 혹자는 잡지도 책처럼 오랫동안 간직될 생명력을 지닌 매체라고 역설한다(간직론). 다른 누군가는 잡지는 간직되려는 순간 망한다며 시의성이 다하면 쉽게 버려짐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휘발론). 언뜻 스킵하며 보기는 ‘휘발론자’의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한데, 개중엔 잡지가 신경 쓰는 시의성에 아랑곳하지 않는 독자도 존재한다. 이들은 잡지 관계자가 강조하는 ‘지금 이때 읽으세요! 나중에 읽으면 시들시들할 거예요.’ 식의 주문을 건너뛴다. 한참 시간이 흘러 비닐도 뜯지 않은 채로 모아둔 과월호를 몰아 보면서 자신의 삶에 들어맞는 시의적절함을 확인한다.
마치 본방 사수는 놓쳤지만 OTT로 몰아서 보며 자신만의 묘미를 찾는 시청자와 흡사하다고 할까. 앞서 든 예시는 달력에 명시된 기념일, 일간지의 헤드라인, 포털이 선택한 화두로 짜인 타임라인이 곧 잡지를 이루는 주된 타임라인일 필요가 없음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그런 타임라인에 갇혀 잡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음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다분히 낯섦을 감수한 다음의 표현은 어떨까.
‘잡지를 볼 땐 꼭 본방을 사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여기 아무개가 갓 나온 잡지를 손에 쥐고 있다. 그는 다음 호가 나올 때까지 잡지 속 기록을 되도록 신속하게 읽어버려야 잡지를 제값에 본 것이라는 부담감에 은근히 사로잡혀 있다. 그러다 보니 잡지 속 글을 일정 기간 내에 당장 읽지 않으면 손에 쥔 잡지를 대하는 마음이 빨리 식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연스레 정착됐다. 그런데 이러한 두려움은 잡지를 기획하거나 소비하는 이라면 불가피하게 감내해야 할 감정일까?
잡지를 향한 감정에도 정전(canon)이 있다면, 잡지란 주어진 시기 안에 금세 읽지 않으면 왜 기록의 열기가 식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얽혀 있을까? 이러한 두려움은 잡지를 기획하거나 소비하는 이라면 불가피하게 감내해야 할 감정일까? 이 사회를 지배해 온 시간대를 의식한 기록물이 아닌, 남다른 시간성을 발명하는 기록물인 잡지를 상상한다면 무모한 걸까? 극장에서부터 OTT까지 영화를 접하는 경험의 변천사를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듯 잡지도 마찬가지리라. 그리하여 나는 지금의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할 잡지의 미래를 기다리는 쪽을 조심스레 택했다. 이를 위해 나는 ‘잡지는 잡지답게 보기’라는 기존의 경험을 스킵한 상태로 잡지를 본다.
그리고 <월간 채널예스>를 본다. 내가 겪어온 출판계는 그 어느 영역보다 누군가에게 업데이트된 소식을 안겨다 주어야 한다는 것에 민감했고, 그로 인해 예상하지 못한 소식이 들려오면 몹시도 아파하는 곳이기도 했다. 신묘하게도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세계를 떠나지 못하는 종사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의 복잡 미묘한 심정을 <월간 채널예스>가 지금보다 더 섬세히 조망해 주길 소망해 본다. 그런 기록은 스킵할 이유가 없다.
*김신식 감정 사회학 연구자. 『다소 곤란한 감정』, 『연구자의 탄생』(공저) 등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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