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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 책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
<월간 채널예스> 2022년 7월호
‘인문사회과학 책을 왜 읽어야 할까.’ 스스로를 ‘인문사회과학’ 덕후라 말하는 인권 활동가 ‘우공’에게 물었고 속 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2022.07.07)
‘인문사회과학 책을 왜 읽어야 할까.’
스스로를 ‘인문사회과학’ 덕후라 말하는 인권 활동가 ‘우공’에게 물었고 속 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언제나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은 인문서에 있었다고. 꾸준하게 쌓아 올린 그의 독서 생활을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으로 정리했다.
고민하는 문제에 답을 얻기 위해 책을 읽어요. 그 질문이 사회 이슈일 때도 있고, 친구와 어떻게 화해할까 같은 일상적인 문제일 때도 있죠. 고민이 들 때마다 책을 검색하면 제 문제와 맞닿는 인문사회과학 책이 한 권쯤은 있더라고요. 물론 책에서 명확한 해답을 기대하진 않아요. 다만, 잘 정리된 생각을 읽으면 제 문제도 정리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매일 언론사의 북 섹션과 온라인 서점의 신간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네요.
제 직업은 ‘인권재단 사람’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모금 활동을 하는 것인데요. 그러려면 활동가들의 인권 활동을 잘 소개하고, 사회 이슈를 알리는 게 필요하거든요. 마치 번역 작업처럼, 활동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그럴 때 인문사회과학서를 읽으면 도움이 돼요. 편집자로 10년간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책을 독자에게 왜 읽으라고 해야 하지 고민이 많았어요. 책 내용이 어렵더라도, 결국 어떤 맥락에서 당신의 문제와 연결되는지 설명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한때 『정의란 무엇인가』가 결코 쉬운 책이 아니지만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해당 이슈가 당시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졌기 때문인 것 같거든요.
‘덕질’ 하듯이 책 목록을 만들어요.(웃음) 인문사회과학서는 주장이 놓인 위치를 알아야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나의 주장이 있으면 반대 입장도 있고 틀린 이야기가 아닌지 검증도 해야 하죠. 그래서 책 한 권을 읽어도 관련된 도서 목록을 만들어요. 그럼 읽어야 할 책이 굉장히 늘어나지만, 그 자체가 재밌더라고요. 모든 책을 읽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지형에 책이 놓여있는지 찾아 나가는 경험이 좋아요.
『깻잎 투쟁기』는 현장에서 도움을 받은 책이에요. 작년에 이주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 활동을 했어요. 활동가도 모든 이슈를 알지는 못하니까 자료를 많이 찾아보는데, 우춘희 저자가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를 연구하고 사진전을 연 것을 알았어요. 그 책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먹는 깻잎을 이주 노동자들이 일일이 떼어내며 일한다는 걸 알게 됐죠. 모금 활동으로도 이어졌으니, 책이 나왔을 때 참 반가웠어요. 아무도 제게 시키지 않았지만, 책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요.
저는 생물학적 남성이지만, 대부분의 여성 문제는 곧 남성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1970년대 페미니스트 기자가 엄마와의 이야기를 기록한 『사나운 애착』을 즐겁게 읽었어요. 엄마와 딸의 관계에 애정이 아닌 ‘애착’, 거기다 ‘사나운’을 붙였잖아요. 그만큼 애증이 섞인 복잡한 욕망을 기발한 전개로 풀어내요. 어머니와 뉴욕 거리를 걸으면서 티격태격 말싸움을 하다가, 과거를 회상하며 갑자기 엄마를 포함한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로 연결되죠. 여성 간의 복잡한 감정은 제가 아무리 관찰한다고 해도 포착하기 어려운데, 이 책이 들려주고 있더라고요. 나는 왜 부모님과의 관계를 이렇게까지 고민하지 않았지 낯설어질 정도였어요.
친구들과 책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어요. 코너명 ‘책방, 우물공사’는 한 우물을 파듯이 하나의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소개하는 컨셉이에요. 같은 주제의 책을 모아보면, 한 권의 위치도 확인할 수 있고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욕심을 내서 무려 6권의 책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책도 점점 어려워지고 죽겠더라고요.(웃음) 코로나 상황으로 한동안 쉬다가 최근에는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지성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지금까지의 독서법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어요.(웃음) ‘케임브리지 학파’가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론을 소개한 책인데요. 흔히 역사적인 사상가의 대표작만 읽고 교훈을 뽑아내거나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잖아요. 이 책은 그런 입장에 반대하면서, 특수한 역사적 상황과 논쟁 속에서 한 사람의 사상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해요. 다른 시공간의 산물임을 인정하고 당대의 맥락에서 특수함을 읽어내야 한다는 거죠. 이제 적어도 몇 권만 읽고 ‘난 이 사상가를 다 이해했어’ 쉽게 말하지 않게 됐어요. 독서의 큰 전환점이었죠.
*우공 ‘인권재단 사람’에서 활동가와 시민을 연결하는 일을 하는 활동가. ‘우공이산’처럼 꾸준함을 무기로 성실히 배우고 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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