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권나무 "사랑하면 싸울 수밖에 없어요"
에세이 『다정하다고 말해주세요』
뭔가를 사랑해서 깊이 몰입할 때, 다른 시공간으로 탁 점프하는 듯한 순간이 있잖아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이 느껴지면 제겐 성공이에요. (2022.07.06)
포크 가수 권나무는 뮤지션이자 초등학교 교사다. 두 가지 일 모두를 사랑하기에 이번 생은 두 배로 싸울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동안 권나무의 노래는 어떤 ‘다정함’으로 다가왔다. 세월호와 관련된 곡 ‘이천십사년사월’을 통해 “이맘때면 잠깐의 감기라도 나눠 앓”자고 했고, “사람은 사람을 말해야 하지 않겠”(‘깃발’)냐고 힘주어 말했다. 이 다정함이 일상에서의 조용한 싸움이었음을 그는 첫 에세이 『다정하다고 말해주세요』를 통해 담담히 고백한다.
3집 앨범을 낸 가수지만, 에세이는 처음이잖아요. 기분이 어떤가요?
딱 세 달만 휴가를 다녀오고 싶어요. 하하. 사실 이 책은 오랜 약속에서 시작됐어요. 10년 전쯤 음악을 막 시작했을 때, 편집자님이 “글을 한번 써보는 게 어때요” 하고 제안하셨어요. 당시엔 음악하기 바쁘니까 생각만 해보겠다고 하고 계약서를 안 썼는데, 그 약속이 1-2년 단위로 계속 이어진 거예요. “올해는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어 볼게요, 원고를 시작해 볼게요.” 하는 식으로요. 잊을 만하면 편집자님이 메일을 보냈고, 그때마다 다음 약속을 정했죠.
서로를 신뢰했기에 가능했던 거네요.
맞아요. 마지막 약속이 “올해 말까지 원고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였거든요. 제가 얼마나 약속을 철저히 지켰냐면, 딱 12월 31일 자정에 마지막 원고를 보냈더라고요.(웃음) 그 이후의 과정은 편집자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갔어요. 협업 과정 내내 즐거웠죠.
제목이 ‘다정하다고 말해주세요’잖아요. 그런데 정작 본문에는 ‘다정함’이 나오지 않아요.
이 책이 보여주는 색깔은 여러 가지이지만, 마냥 경쾌하기보다는 차분하고 가라앉는 면이 있거든요. 처음에는 제목도 그 분위기에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편집자님이 “나무 씨 글, 충분히 포근하고 다정해요.” 하시더라고요. 그때 누군가는 이 책을 다정하다고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그럼 더 솔직해져 보자. 작가로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게 아닐까. 그렇게 ‘다정하다고 말해주세요’ 하고 부탁하는 듯한 제목이 됐죠.
스스로 다정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게 더 신기해요. 권나무 님의 노래를 들으면 어조는 담담하지만 다정함을 느낄 때가 많았거든요.
하하. 자신은 스스로의 알몸을 알잖아요. 음악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건 저이기도 하고 제가 아니기도 해요. 그렇다고 진짜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만큼 제게도 여러 가지 모습이 있는 거겠죠. 물론 예전에 “너 알고 보면 다정한 사람인데 왜 아닌 척하냐?”라고 말해준 사람이 딱 한 명 있었어요. 제목을 짓다가 문득 그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외롭고 슬픈 마음이 들 때 읽었다면, 복잡하고 무거울 때는 무엇이든 썼다”(199쪽)고요.
주로 기쁠 때보다는 힘들었던 순간에 썼어요.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면 생각이 많이 떠오르죠.음악 창작할 때의 습관과도 비슷한데요. 너무 화가 나거나, 억울할 때, 혹은 너무 기쁠 때, 표현 욕망이 오르락내리락하잖아요. 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에세이는 음악이랑 다른 옷이잖아요. 어떻게 달랐나요?
일단 글쓰기는 정말 어렵다.(웃음) 제게 음악은 길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가사로 표현하거나, 기타를 딱 내려쳤을 때의 쾌감을 전할 수도 있죠. 그리고 노래 가사를 쓸 때는 단어를 잡아당겨서 늘릴 수 있어요. 멜로디로 조절하거나 침묵을 포함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글쓰기에서는 그게 안 돼서 한동안 답답한 마음도 들었어요. 결국, 누군가의 글을 흉내내기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써보자는 마음으로 꾹꾹 눌러썼죠.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알게 된 것도 있었겠어요.
처음에는 나의 ‘주장’을 쓴다고 생각했어요. 무언가를 주장한다는 건, 내 생각을 선명하게 꺼내놓는 거잖아요. 말이 쉽지 굉장히 어렵고, 상대의 반응이 어떻건 밀고 나가야 하는 일이죠. 그러니 이 작업이 춤을 추듯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음악과 다른 섬세함이 필요했고, 결국 나를 해치지 않고 독자를 배려하는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졌어요. 동시에 음악을 할 때 거쳐온 창작 과정들이 떠오르면서, 이 경험들이 내 삶에 자양분이 되어왔구나 깨닫기도 했어요. 마음 깊은 곳에선 4집 앨범을 만든 것처럼 느껴져요.
작가님을 이루는 두 가지 정체성은 음악가와 교사예요. 보통 두 가지 직업을 가지면 어떻게 균형을 잡느냐고 물을 것 같은데, 글을 읽다 보니 ‘균형’이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직업 중 어떤 게 일이고 취미냐, 균형은 어떻게 잡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요. 일이냐 물으면 ‘취미예요’하고, 취미냐 물으면 ‘일이에요’ 하고 답하는데요.(웃음) 세상에 완벽한 균형이 어디 있을까요? 하다못해 나무도 똑바로 자라지 않고 이리저리 뻗어 가면서 중심을 잡는데요. 저는 기질적으로 일과 취미를 딱 분리해서, 적당히 일하고 퇴근하면 음악만 하겠다는 식으로 살 수 없어요. 전부 일이면 일이고 취미면 취미지, 어느 하나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대에서는 음악가로서 교실에서는 교사로서 충만하려고 해요.
‘권나무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일상도 담겨 있어요.
자랑 같아서 쑥스럽지만,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는 '좋은 선생님'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크게 문제가 생긴 적이 없고, 다 대화로 해결됐어요. 심지어 술 취해서 저를 찾아온 아버님과도 몇 분만 이야기하면 해결됐죠. 만나보면 어떤 마음인지 이해할 수 있고, 부모님도 모르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저는 아니까요. 그런데 함께 일하는 입장에서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해야 할 때는 참 어려워요. 전 에둘러 말하지 않는 편이고 그게 제 나름의 존중인데, 누군가에게는 그게 불편할 수 있겠더라고요.
어린이가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한다거나, 교육의 목적을 잃어버린 체험장을 볼 때 화가 났다고 썼죠. 어떤 입장을 가질수록 싸워야 할 것이 많아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하면 싸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쉽게 음악을 할 수는 없는 거예요. 일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어렵게 해야 할 일을 쉽게 하자는 말은 못 참아요. 특히 교육에 관해서는 어려운 일은 어렵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당한 일을 마주할 때마다 참아야 하나, 이번엔 정말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하나 늘 고민이에요. 그러다 크게 화를 낼 때도 있는데요. 여전히 어려워요.
‘나는 왜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종종 묻고는 하셨다고요. 작가님에게는 창작물이 ‘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믿음과 세상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지향이 둘 다 있는 것 같아요. 어려운 목표 같은데요.
애초에 ‘세상과 나를 연결하겠다.’는 생각을 안 하면 될 것 같아요.(웃음) 왜냐하면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순간 이미 대화를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저는 창작자라면 솔직하게 나만의 것을 내놓아야 한다고 믿어요. 지나치게 반응을 신경 쓰거나,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맞추려는 건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요.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으니 충실하게 나의 것을 내놓자. 그것이 세상에 대한 나의 입장이고 결국 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건강해요.
3개의 앨범을 작업하며 겪은 변화와도 맞닿아 있을 것 같아요. 1집 <그림>이 관조적이었다면, 3집 <새로운 날>은 보다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을 모색했다고요.
1집 앨범은 20대 후반의 관조적인 태도가 많이 들어 있어요. 진심을 다했고 지금도 그 앨범을 정말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주장하고 싶은 마음 없어’ 하는 쿨한 태도가 들어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당시 인터뷰 기사에 ‘권나무, 저 태도 좀 마음에 안 든다’라는 댓글이 달린 적이 있어요. 평소 같으면 넘겼겠지만, 마음에 스크래치가 났어요. 솔직하게 세상에 ‘나’를 꺼내 놨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거쳐 2, 3집을 만들었죠.
3집 <새로운 날>은 보다 견고한 ‘입장’이 느껴지는 앨범이었어요.
3집은 아예 달라야 할 것 같았어요. 지금까지 1집과 2집으로 두 개의 점을 찍은 셈이니까, 이제는 세 점을 연결하여 삼각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책을 뒤지니 제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는 문장이 나오더라고요. 칼 융과 마이클 슈나이더의 말을 빌려, 반대를 거쳐 제3의 것이 탄생하고 잃어버린 통일성이 회복된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정반합을 거쳐 세상과 적극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죠. 실제로 악기 구성이나 곡의 형태도 변화를 주려고 했고요.
주말마다 공연을 통해 관객을 만나잖아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공연’은 무엇인가요?
수많은 무대에 올랐지만, 공연은 늘 예측이 안 돼요. 리허설을 아무리 많이 해도 무대에 올라갈 때의 제 마음은 알 수가 없죠. 그래서 이제는 무대를 함부로 상상하지 않아요. 그냥 좋아하는 순간을 많이 느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만 가지려고 하죠. 뭔가를 사랑해서 깊이 몰입할 때, 다른 시공간으로 탁 점프하는 듯한 순간이 있잖아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이 느껴지면 제겐 성공이에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하나요?
책이 다소 짙은 푸른색처럼 느껴지더라도, 다양한 색깔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화가 난 상태로 집에 돌아온 날일 수도 있고, 외로운 밤 이 책을 펼칠 수도 있겠죠. 어떤 순간이든 이 책이 곁에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싶어요.
*권나무 포크 뮤지션이자 교사, 두 개의 정체성을 지키며 산다. 2015, 2016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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