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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솔의 적당한 실례] 지금부터 노래를 할게요

<월간 채널예스>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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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제가 노래를 하겠습니다. 절대 잘 불러서 부르는 게 아닙니다. 저를 보러 여기에 와주신 귀한 여러분께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부릅니다. (2022.07.05)


북 토크의 말미에는 독자분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제가 노래를 하겠습니다. 절대 잘 불러서 부르는 게 아닙니다. 저를 보러 여기에 와주신 귀한 여러분께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부릅니다.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주셔야 합니다. 얘가 정말 진심으로 고마운가 봐…. 그렇게 생각해 주세요. 죄송하지만 영상으로 찍지는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을 위한 것인데 그 장면이 영상으로 박제되어 직캠처럼 SNS에 올라온 걸 보았을 때 머리에는 두통이, 배에는 복통이, 심장에는 흉통이 덮쳐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원곡자에게도 저에게도 세상에도 이롭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렇게 노래 두 곡을 열창한 나에게 한 독자분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못 부르는데도 두 곡이나 부르시다니, 정말 진심이 느껴져요.”

십여 명의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마스크를 쓴 채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 조그만 스피커를 노트북에 연결해 유튜브로 MR을 찾아 틀고 두 곡을 차례로 열창한 참이었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네 시간 기차를 타고 빈속으로 도착한 곳이었다. 음 이탈이 네 번 정도 났고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을 땐 돌이킬 수도 없었다. 마지막 한 소절까지 완창했을 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던 일을 자초한 스스로에 대한 회한이 덮쳐 왔다. 위로의 박수가 터졌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나고 있었다.

“진심이 전해졌다니 그것참 다행이네요. 하하.”

책을 내고 나서 가장 많이 했던 것은 말이다. 글 쓰는 작가가 되면 당연히 글을 더 많이 쓰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실상은 말하러 다니느라 바빠 글 쓸 시간이 없어졌다. 나는 정말이지 말을 하러 다녔다. 출간한 이후 석 달 동안 살면서 가장 많은 말을 했다. 전국 방방곡곡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에 갔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으며, 무대에 섰고 마이크를 쥐었고 사인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실제로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야기는 짧게는 한 시간 반부터 세 시간까지 이어졌다. 무대에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누군가가 귀한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오롯이 내가 이야기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 아이러니를 이해하기까지 한동안 시간이 걸렸다. 그래, 내가 앉아서 이야기를 썼지. 그 이야기가 책이 됐지. 그런데 왜 사람들이 왔지?

그것은 마치 당장 귀한 손님들이 몰려온다는데 집이 텅 빈 것 같았다. 호환 마마보다 무서웠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다. 북 토크가 뭐죠? 북은 책이고, 토크는 이야기잖아. 그런데 할 얘기는 책에 다 썼는데? 작가, 편집자, 출판사 대표, 엄마, 이모, 언니, 서점 사장님, 식당 아줌마, 사촌 언니, 화장품 가게 직원, 문구점 아저씨, 분식집 사장님에게 물었다. 좋은 북 토크가 뭐죠? 내어 드릴 살점이라도 없을까 하고 거울 앞에 서서 몸을 샅샅이 살폈다. 사람들이 왜 오는지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을 듯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 나를 보러 온 사람들의 선택과 시간을 책임져야 했다. 할 수 있다면 공중제비라도 돌아야 했다. 어찌 됐건 그곳에 온 것을 후회하게 할 수는 없었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누군가 말했다. 

“근황을 얘기해.” 

누구는 말했다. 

“예쁘게 하고 가.” 

또 이렇게 말했다. 

“말이 북 토크지 양다솔 쇼야. 알지?”

몇 주간 밤낮으로 고민하며 무대를 준비했다. 대본을 쓰고 발표물을 만들고 책에는 언급할 곳마다 북마크로 표시해 두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며 불러올 만한 장면을 발견하면 귀퉁이를 살짝 접어두었다. 무대를 상상하며 정신을 수양하고 콘셉트를 정하고 신중하게 옷을 골랐다. 북 토크 전날에는 목욕재계를 하고 입을 옷을 다려두었다. 당일에는 공복에 달리기를 하고 가장 비싼 보이차를 내려 마시고 소화가 잘되는 식사를 하였으며 마음이 정화되는 클래식을 들으며 속눈썹 한 가닥까지 정성스럽게 올렸다. 마치 그 옛날에 왕을 알현하는 궁녀 같았다. 그러고 나면 선곡표를 작성했다. 사랑해 마지않는 노래들이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Valerie’, 서영은의 ‘연극이 끝난 후’, 이상은의 ‘어기여 디여라’,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빔의 ‘The Girl from Ipanema’, 자우림의 ‘반딧불’, 엘라 피츠제럴드의 ‘Let’s do it’까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멜로디와 주옥같은 노랫말이 담긴 노래들이었다. 단 3분이라도 내 얘기를 안 할 수 있는 귀한 찬스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왜 보잘것없는 저 따위를 보러 오셨나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저 멀리에 두고 오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낮추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를 보러 온 사람마저 낮추게 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내어 나를 찾아와 귀를 열고 눈을 빛내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잠시간 잊어버린다. 지구의 유일한 입이 된 것처럼 떠들기 시작한다.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 이토록 감사했던 적이 없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제야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긴장이 서서히 누그러진다.

‘우리 집 골방에서 쓴 이야기가 흐르고 흘러 당신에게까지 다다랐군요. 나만 아는 이야기가 될 줄 알았는데 어느새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군요. 그것으로 흐르고 흘러 당신을 여기까지 데려왔다니 정말 황홀하군요. 지금 이 순간은 우리 삶의 어디쯤에 꽂힌 이야기가 될까요.’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시시덕거린다.

여러분, 저 그냥 까불겠습니다. 

마지막에는 목을 가다듬고 말한다. 

제가 지금부터 노래를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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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양다솔(작가)

글쓰기 소상공인. 에세이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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