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가 ‘일상의 폐허’를 끝장내는 방법
『좀비, 해방의 괴물』 김형식 저자 인터뷰
『좀비, 해방의 괴물』은 또한 『좀비학』에 이어 김형식 작가가 좀비라는 ‘대중의 괴물’을 통해 현 세계를 분석하고,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모색하려는 두 번째 시도기도 하다. (2022.06.17)
좀비, 코로나19 팬데믹, 철학. 『좀비, 해방의 괴물』은 얼핏 보기에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만나 시너지를 내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감염병 괴물’ 좀비와 ‘감염병 재난’ 코로나19 팬데믹이 원래 한 몸이었던 듯 자연스럽게 만난다. 또한 이 책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폭로한 현 세계의 위기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윤리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말하자면 이 책은 코로나19에 대한 가장 독창적인 분석이자 반복되는 재난에 맞서는 가장 급진적인 철학적 선언이다.
『좀비, 해방의 괴물』은 또한 『좀비학』에 이어 김형식 작가가 좀비라는 ‘대중의 괴물’을 통해 현 세계를 분석하고,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모색하려는 두 번째 시도기도 하다. 그를 만나 좀비에게 천착하는 이유와 좀비가 어떻게 ‘해방의 괴물’이 될 수 있는지, 재난에서 해방된 세계는 어떻게 가능한지를 물어봤다.
좀비와 코로나19의 조합이 독특합니다. 이 둘을 엮어서 책을 쓰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좀비는 괴물이면서 동시에 재난에 해당하는 양면적 특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좀비는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를 따라 변신을 거듭하며 힘을 축적해 나갑니다. 과거의 좀비는 무기력한 노예나 무지몽매한 대중의 은유였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에서 글로벌 자본주의로 변모하며 광범위해진 자본주의의 착취 규모에 발맞춰서, 좀비는 파괴적이고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는 인류적 재난으로 거듭났습니다. 빠른 발을 가진 좀비는 순식간에 확산되어 사회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세계 전체를 위기로 몰아갑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바이러스로 전파되는 좀비는 팬데믹 재난의 일종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좀비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에 해당합니다. 두 가지 재난은 모두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개발과 파괴의 확대, 매끄러운 상품 순환을 위해 과도하게 발달한 물류 유통 경로, 끊임없이 해당 지역을 착취한 뒤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나서는 자본주의의 탐욕에서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좀비라는 유용한 가상의 렌즈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을 진단하고 대처할 방법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전작 『좀비학』에 이어 『좀비, 해방의 괴물』에서도 좀비라는 괴물을 다루면서 좀비의 가능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좀비에 주목하시는 이유, 그리고 좀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일까요?
좀비는 그 기원에서부터 ‘정상 인간’에 의해 타자화된 하층민이자 소수자의 기표로 존재해왔습니다. 제국주의 시절 피식민지 노예였던 부두교 좀비는 자본가의 이윤 창출을 위해 농장과 공장에서 끝없는 노동에 시달리다 죽어 나갔습니다. 이렇듯 좀비의 신체에는 제국주의의 폭력과 자본주의 착취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좀비는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흡수하며 변신하는 괴물이기도 합니다. 좀비는 제작자의 의도를 넘어 대중의 욕망에 따라 진화해왔습니다. 이렇듯 좀비는 끊임없이 억압받아온 대중의 괴물입니다. 따라서 좀비의 해방 가능성과 주체로서의 역능을 탐색하는 것이 저의 주요한 관심사입니다.
좀비가 ‘해방의 괴물’이라고 할 때, 해방이란 누군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해방은 스스로 행하는 자기 해방입니다. 그것은 현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사멸 가능한 비인간의 위치에 처해 있다는 진실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날 세계는 피폐해진 삶의 원인을 비가시적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체성들 사이의 내전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좀비라는 사실을 깨닫는 건 세계의 거짓말에서 벗어나는 방법입니다. 좀비가 된다는 것은 세계가 제안하는 ‘좋은 삶’의 선택지를 거부하고 참된 삶을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윤리는 세계를 재난으로부터 구출하는 일, 그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럼 재난의 시기에는 어떤 윤리가 필요할까요?
재난이 엄습할 때면 우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여기에서 가능한 일차원적 윤리는 자신의 안위를 돌보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존과 만족을 위해 힘쓰고 그것만이 전부인 삶, 그것은 죽음과 불모의 삶을 지시합니다.
두 번째로 가능한 윤리는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생존을 함께 돌보는 행위입니다.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은 윤리적인 행동이며, 소방관이나 의료진은 이런 윤리를 대표합니다. 오늘날 세계는 이들이 찬사를 받아 마땅한 ‘영웅’이라고 선전합니다. 재난으로부터 세계를 구출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일이 최고의 윤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윤리가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윤리의 세 번째 차원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은 재난이 반복되지 않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기획과 변혁에 착수하는 일입니다. 세 번째 차원의 윤리는 새로운 세계와 인류를 향한 고민과 사유, 그리고 그것을 결단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것은 20세기 이후 종적을 감추어 버린 거대한 프로젝트를 다시금 시작하며, 도래할 유토피아의 지평을 예비하는 일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인간은 충분히 윤리적이었다고 보시나요? 특히 철학이 제 역할을 했다고 보시나요?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철학에 질문을 던지거나 철학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철학자보다 정치가와 기업인, 심지어 연예인이나 유튜버의 말을 더 신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신 사람들은 철학자에게 밤마다 TV에 나와 온갖 잡다한 현안들에 관해 해설하고 평을 남기며, 소리를 지르고 논쟁을 벌이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철학자의 역할은 제기된 모든 질문에 답하거나 논평하는 잡학 지식인이 아닙니다.
팬데믹 시기에 사람들은 음모론과 검증되지 않은 유언비어에 휩쓸리고, 외부에 책임을 떠넘기고, 백신을 독점하려 했습니다. 이럴 때 철학 고유의 역할이 작동해야 합니다. 철학자는 자신이 싸울 전장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발 딛고 서 있는 지형 전체를 변화시키려는 사람입니다. 숨어 있던 물줄기를 땅 위로 솟구치게 하고 산맥을 가라앉혀 보이지 않던 것들을 드러내 사물의 기존 배치를 뒤흔드는 사람입니다.
철학자는 통념에 맞서는 근본적인 질문을 개진하고 안온한 일상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사유의 운동이 멈추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팬데믹을 사유함으로써 재난의 본질을 탐색하고 장래의 재난에 대비하도록 힘쓰는 것이 철학에 주어진 과업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철학을 이야기할 때,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그는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를 가장 앞장서서 외쳤고, 이를 둘러싼 여러 논란이 있었습니다. 책에서도 언급하셨지만, 아감벤의 주장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팬데믹과 관련해 아감벤은 철학자가 아니라 잡학 지식인처럼 보입니다. 팬데믹이라는 눈앞에 닥친 위기 상황에 어떻게 즉각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철학자는 무능합니다. 철학자는 방역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가 아닌 보통의 시민일 뿐입니다. 바이러스는 엄연히 실존하고, 이 때문에 고통받고 죽는 사람들이 있다는 진실을 외면하거나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아감벤을 ‘하이데거의 후예’라고 봅니다.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잃어버린 원시, 기원에 대한 향수가 있습니다. 아감벤은 현상은 눈속임이고 팬데믹은 숫자의 거짓말이라 주장하며, 라틴어 경전을 뒤적거리고 낭만주의 시를 낭송하며 과거를 반추하라고 일갈할 뿐입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기보다 본질을 바라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아감벤의 말대로 우리는 재난의 본질을 사유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상과 본질은 양자택일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둘 다 선택해야 합니다. 취약한 생명들을 돌보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힘쓰면서, 동시에 재난을 초래한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합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재난의 시퀀스 막바지에 있을, ‘일상의 회복’이라는 이름을 한 향락주의의 유혹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셨는데, 사적 모임의 인원 제한이 없어지고 식당, 카페 등에서 방역 패스를 찍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바로 그때 같습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일상을 상실했다고 한탄합니다. 새로운 맛집 탐방, 관광지로의 휴가, 지인들과의 파티 등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이죠. 그러나 그런 생각은 선후관계가 뒤바뀐 것입니다. 그동안 익숙했던 ‘망가진 일상’의 반복이 가져다준 귀결이 재난입니다. 이유 없이 재난이 침투해 일상을 파괴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파괴되어 있던 일상의 축적이 재난이라는 가시적 결과물이 되어 귀환한 것뿐입니다.
또한, 재난은 외부에 존재하는 미지의 대상이나 맞서 싸울 적도 아닙니다.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가 번성하기 좋은 환경을 만나 전파되었을 뿐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재난에 대비하지 않고 금융 자본 축적에만 골몰한 현재의 자본주의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일상은 ‘회복’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끝장’나야 할 대상입니다. 이전의 향락적이고 소비적인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재난은 반복해 도래할 것입니다.
즐기지 못했던 일들에 탐닉하는 행동을 멈추고 미래를 예비해야 합니다. 일상으로의 회귀가 공공연하게 선언되는 시점이야말로 말로 철학적 사유의 움직임이 빛을 발해야 할 때입니다.
이 책을 “철학과 대중문화를 아우르는 횡단적 사유의 결과물”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횡단적 사유’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좀비학』에서 존재론을 다룬 후, 저의 관심사는 줄곧 윤리를 향해 있습니다. 이번 책에서도 언뜻 드러났듯이 저는 영웅과 윤리의 관계를 연구하고자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최근 유행하는 슈퍼히어로 장르를 통해 현시대의 윤리를 점검할 것입니다.
슈퍼히어로는 대개 ‘윤리적 주체’라고 가정되지만, 제가 보기에 슈퍼히어로 중에 ‘윤리적’인 인물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그들은 보수적인 ‘일상의 수호자’이자 ‘치안 보조자’로 머뭅니다. 우리는 오히려 ‘빌런’이라고 불리는 인물들에게서 흥미로운 점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세계에서 겪은 상실과 고통의 경험으로 탄생하며, 세계를 근본적으로 뒤엎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세계는 변화를 추구하는 행동을 범죄와 테러로 몰아가기 때문에, 그런 자들은 끊임없이 악당으로 분류됩니다.
저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분석하며 오늘날 통용되는 거짓 윤리의 다섯 가지 원칙을 끌어낸 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윤리의 다섯 가지 테제를 개진하려고 합니다. 『좀비, 해방의 괴물』은 그중 하나인 ‘일상의 윤리’를 넘어서는 ‘사건의 윤리’ 테제를 담고 있습니다.
*김형식 문화연구자. 중앙대학교 문화연구학과에서 문화이론과 영상이론을 공부했으며, 2014년 <문화/과학>으로 문화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좀비학』(2020), 『재난과 영화』(2022, 공저)가 있다. 절망에 빠지지 않고 희망을 간직하기 위해 절망을 탐구하고자 한다. 빛의 희미한 궤적을 추적하려면 어두운 장소로 들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현실과 불화하며 세계에 충격을 선사하는 것들, 이를테면 파국의 위태로운 힘이나 괴물들의 전복적 가능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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