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낭만러는 아닙니다, 부여잡은 거죠
『그대로 괜찮은 파랑』 진초록 저자 인터뷰
온 힘을 다해 여러분 곁을 지키는 마음이 되려고 이 책을 썼다고 전하고 싶어요. 또, 제 삶 속 가장 안쪽의 세계는 온통 읽고 쓰는 일로 가득한데 그 속에서 여러분 덕분에 행복한 요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2022.06.14)
사람은 색에서 위로를 얻고, 색 자체가 사람을 흔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 작가는 어느 날부터 자신의 인생 팔레트를 하나하나 되짚어보기 시작한다. 작가의 팔레트에는 어린 날, 처음으로 용기를 배우게 해준 두발자전거에 달린 구슬들의 형광색이 담겼고, 강원도 산골 외갓집 뒷산을 쏘다니며 따먹은 산딸기의 라즈베리 핑크가 담겼다. 독립해서 새로 얻은 집으로 이사하는 날, 엄마가 기꺼이 내준 샤워 가운의 라벤더색도, 발레리나를 꿈꾼 동생이 신었던 토슈즈의 핑크도,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본 노을의 주황빛도 담겼다.
『그대로 괜찮은 파랑』을 쓴 진초록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그대로 괜찮은 파랑』을 출간한지 어느새 열흘째인데요. 어떻게 보내셨어요?
열흘 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이상해요. 한 달은 된 거 같거든요. 먼저 온라인 서점, 오프라인 서점들을 두루 둘러보며 책들의 안부를 묻고 독자들께 출간 소식을 알렸고요. 열심히 사인한 책을 잔뜩 들고 우체국에 가 자체 서평단 책 배송도 했네요. 책을 핑계로 한참을 만나지 못했던 그리운 이들의 얼굴도 여럿 보았고, 유년 시절 내내 함께 했던 친구들과 랜선으로 세 시간씩 ‘저자와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어요. 깊은 마음까지도 전부 내보여준 친구들을 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함께 제가 왜 글을 쓰는지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제부터는 출간 기념 이벤트도 시작했어요. 내 인생의 색을 하나 골라 그 이유와 함께 소개해주시길 부탁드렸죠. 한 달 동안 이벤트를 열어두고 독자들께서 올려주시는 멋진 인생 팔레트들 속을 유영하며 지내보려고요. 제 마음을 온통 흔들어주신 팔레트 세계관 최강자께 제가 사랑하는 사진 전문 서점 이라선(@irasun_official)에서 제가 직접 고른 사진집을 선물하기로 했어요.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서도 얼른 오셔서 함께 해주세요. 『그대로 괜찮은 파랑』의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shine.fine.colored로 오시면 된답니다.
어떤 책인지 책을 소개해주세요.
2019년 여름 첫 번째 에세이집을 출간하고 꼬박 3년 만에 두 번째 책으로 『그대로 괜찮은 파랑』을 선보이게 되었는데요. 『그대로 괜찮은 파랑』은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은 모두 색과 함께 온다’는 모토로 일상의 색채를, 제 인생의 팔레트를 활자로 담아낸 책이에요. 독자들께서 이 책을 통해 오늘의 선연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가올 내일의 색채를 고대하며 살아가실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썼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그렇게 살 수 있게 되었거든요. “힘든 날도, 슬프고 잔인한 날들도 있지만 그 지난함 속에서도 눈부신 것은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영영 우리는 눈부신 삶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는 한 마디가 결국 이 책을 통해 여러분께 선물하고 싶은 저의 마음입니다.
책을 쓰면서 하셨던 생각이 궁금해요. 가령, 누구를 위해서 썼다든지, 어디까지 가 닿으면 좋겠는지 같은.
책이 어디까지 흘러 누구에게 가 닿는지는 책의 일이래요. 책을 펴내고 나면 제 손을 떠나는 거라는 말인 거죠. 책에게는 책의 운명이 있다고 해요. 멈추지 않는 물결처럼 흐르고 흘러 먼 땅 끝까지도, 이름 모를 어느 섬까지도 가 닿기를 바라지만 그건 책에게 맡길게요. 저는 어떤 마음으로, 누구를 위해 책을 썼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요.
여기저기 출간 인사를 하면서 한 번은 제가 이렇게 적었어요. ‘나는 나를 위해 이 책을 썼다.’고요. 정확히는 “예쁘고 빛나고 찡하고 위로가 되는 책을 쓰고 싶었어요. 그 누구보다도 저를 위해서 썼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도 온전히 권할 수 있어요. 이 책을 쓰며 제가 저를 치유했고 저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저를 더 보듬고 스스로 따스해졌듯이 여러분에게도 그런 마음을 선물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라고 썼네요.
그렇다면 결국 모두를 위해서 쓴 책인 거죠. 힘들지 않은 사람도, 지쳐본 일이 없는 사람도, 절망하고 외롭고 흔들리고 방황하지 않는 사람도 없잖아요. 그 모든 날이 영영 어둡고 잿빛이기만 하다면 어떻게 버티고 또 내일을 살아가겠어요. 우리 모두는 한 번쯤 위로가 필요하고 치유와 회복의 기회가 필요하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중인데, 저 역시 그 삶을 건너가는 중이라 이 책을 썼습니다.
독자들과 나눈 이야기 중 마음에 남은 것들이 있으실까요?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는 저만의 방법이 있느냐고 누군가 물어봐주셨는데요. 이미 아름다운 것들은 내 곁에 와 있고, 바라보는 일만으로 충분한 것 같아요. 다만 잠깐 멈춰 서서요. 그게 마음이든 몸의 걸음이든. 지나쳐가려는 마음만으로는 아무 것도 기억해낼 수가 없는 것 같아서요. 저는 혼자 산책할 때 진짜 열 번은 가다 멈추고 또 가다 멈추는 데요. 멈춰 서서 그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두기도 하고 메모장에 적어두기도 하고, 멍하니 하늘을 보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는 무용한 시간들을 부러 가지죠. 그 순간이 인간을 살게 해요. 그렇게 믿는 편입니다.
기억나는 스몰 토크로는 이공 계열 박사 친구가 해준 얘기를 빼놓기가 힘든데요. 그 친구가 “색깔로 300페이지…를 어떻게 써? 너 뭔데?” 했던 게 너무 웃기고 즐거웠어요. 세 시간 만에 완독을 하고 와서는 불꽃의 색에 대한 글 ‘가장 오래 타오르는 마음의 색’ 얘기를 꺼내면서 “친구야, 너의 불꽃색은 리튬이야 칼슘이야?”라고 묻더라고요. 기절할 뻔 했어요 정말. 저희 문이과의 대척점에 있는 포지션이라서, 친구의 완독으로 자신감을 얻었어요.
선뜻 하나의 ‘최애’ 글을 고르기가 어려웠는데요. 특별히 마음이 가는 글 있으세요?
개인적인 이유로 좋아하는 글이나 문장을 꼽아보기보다는 추천하고 싶은 글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해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불안하고 방황하게 되는 10대, 20대 (30대도 살짝 끼워 넣고 싶은 30대 저자...)의 청춘 독자들께는 「미켈란젤로 언덕의 노을」과 「불이 붙지 않아도 나는 성냥인 것을」, 「너의 이름은 최초의 용기」를 추천 드리고 싶고요. 늘 소중하고 그리운 이들에게 진심을 전하고픈 분들에게는 「파랑새는 푸른 달에 살지」, 「라벤더색의 샤워가운」, 「젖은 모래 위에 앉은 당신을 사랑하는 일」 등을 일독하시길 권해드려요.
또, 내일로 건너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발밑이 푹푹 빠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분들께는 「그대로 괜찮은 파랑」과 「희고 거칠은 내 등딱지의 무덤」, 「금빛 날개의 숲에서」 등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아, 저 고양이 집사님들 빼먹을 뻔 했네요. 「내 고양이의 하얀 발, 우리 둘의 우주에서」와 「누아는 잘못이 없지」를 읽어주러 빨리 오세요.
전작과 비교하면 감성이나 결이 사뭇 다른데요. ‘어떤 의미로는 첫 책과 완전히 이어진 후속작’이라고 표현하셨어요.
『그대로 괜찮은 파랑』을 읽다보면 이 책을 쓴 진초록이라는 사람은 원래 이렇게 일상에서 멋지고 좋은 것들을 찾아내고 그걸 동력으로 살아가는 초긍정왕! 혹은 타고난 본투비 낭만러인가보다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근데, 그런 거 아니고 부여잡은 거예요.
첫 번째 책 『우리는 살아남는 중이다』는 제목부터 무겁고 어렵잖아요. 저 그때 정말로 ‘살아남는’ 중이었거든요. 개인적인 사건이면서 동시에 사회 구조적인 부조리와 불의의 종합세트 같은 일을 겪었고 그 일로 사회와 시대를 각성하면서 그간 겪었던 불의, 불합리, 부조리와 부정의를 돌아보며 첫 책을 썼어요. 쓰면서 괴로웠고 쓰고 나서도 한참을 괜찮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대로 괜찮은 파랑』이 필요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분명 길이 있을 텐데 저에게는 쓰는 일이 구원에 준하니까. 이번엔 아름다운 것을 쓰자, 생각했죠. ‘살아남는 것 그 이상의 삶을 나는 누릴 자격이 있다. 나는 이제 찬란한 것들에 대해서도 쓴다. 쓸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인생의 모든 눈부신 순간과 눈부셔야 마땅한 순간들, 그 기억과 색채들을 몽땅 털어 넣어 이 책을 만들었어요. 어찌 보면 『우리는 살아남는 중이다』의 서사가 이제야 『그대로 괜찮은 파랑』을 통해 완성된 것 같아요. 살아남았고, 나는 이제 지금 모습 그대로 괜찮으니까.
본 인터뷰를 빌어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대로 괜찮은 파랑』은 원래 이렇게 좋은 것, 빛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던 사람의 원래 아름다운 삶을 노래한 게 아니라고요. 지난날이 어땠든, 오늘이 어떻든, 내일이 어떨 예정이든 모두가 햇볕 아래로 옮겨 앉을 수 있을 거라고요. 언젠가는 꼭 모두가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에요. 전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지요. 작가님의 다음 행보도 궁금해요.
온 힘을 다해 여러분 곁을 지키는 마음이 되려고 이 책을 썼다고 전하고 싶어요. 또, 제 삶 속 가장 안쪽의 세계는 온통 읽고 쓰는 일로 가득한데 그 속에서 여러분 덕분에 행복한 요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읽어주신 분들과 이야기 나누며 새로운 것들을 깨닫고 있거든요.
다음 행보는 일단 쉬지 않고 계속 쓰는 거요. 활자로 만들어내는 모든 게 다 좋아요. 내년 초쯤에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주 최강 사랑둥이! 제 고양이 가을이와 저의 일상을 담은 고양이 단상집이 출간될 예정이고요. 장편소설 한 권과 비건 에세이, 음악 에세이 한 권을 병행해 작업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모두 무사히 책이 될 수 있게 노력해봐야겠죠?
요즘 제게 그대로 괜찮은 파랑을 닮은 하루 보내시길 바란다는 인사 해주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독자 여러분도 그대로 괜찮은, 있는 그대로 멋진 하루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진초록 로스쿨에 다니며 글을 쓴다. 대학에서는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잡지를 펴낸 적이 있고 방송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짧게 일했다. 서울 생활이 답답해 못 견딜 때쯤 훌쩍 바닷가로 이주했다. 고양이와 함께 산다. 여행자처럼 헤매었고 먼바다와 무등의 도시를 건너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 모든 모험을 함께한 고양이와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내 삶의 팔레트를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영영 생각하기를 멈출 수 없었다. 내 생을 스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기억과 추억에 대해서. 그것들에 물든 온갖 색채들에 대해서. 그로부터 얻어진 마음들에 대해서. 『그대로 괜찮은 파랑』은 어느 푸르고 쨍한 밤, 사람은 색에서 위로를 얻고 색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힘을 가졌다는 걸 느꼈던 그 밤 이후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하나씩 되짚어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써나간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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