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시선으로 쓴 ‘하이브리드 과학서’
『역사가 묻고 화학이 답하다』 장홍제 저자 인터뷰
딱딱하고 어렵다고 미리 선을 긋지 말고 바라보면 누구보다 빠르게 화학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원소라는 알파벳을 통해 분자라는 단어들을 만들고, 화학반응이라는 문법으로 문장을 써내려가 보세요. (2022.06.09)
『역사가 묻고 화학이 답하다』는 세상 구석구석에서 화학의 흔적을 발견하는 화학자가 역사와 화학이 교차하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광운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연구 활동과 저술을 활발히 병행해오고 있는 저자는 『역사가 묻고 화학이 답하다』 라는 제목과 어울리는 인문학적 시선으로 독특한 ‘하이브리드 과학서’를 완성했다. 고대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펼쳤던 전술을 서술하며 산과 식초에 대한 상식을 풀어내는가 하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죽음을 납, 수은 등의 독성과 함께 심층적으로 다룬다. 연금술의 발달 과정, 성당 건물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유리의 특성, 화학무기 발전사 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화학 속의 세상, 세상 속의 화학을 들여다보길 권하기도 한다.
인문학과 화학의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화학자의 흥미로운 잡담에 동참하고 나면 독자들은 아마 텔레비전 사극을 보다가도, 명화를 감상하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책이나 영화를 보다가도 곳곳에서 화학의 자취를 더 쉽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화학도 역사도 조금은 더 만만하고 흥미로워져 있을 것이다.
『역사가 묻고 화학이 답하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책으로 독자님들을 뵙게 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책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과정의 쉽고 어려움을 떠나 정말로 기쁜 순간입니다. 보통, 학술 논문을 게재했을 때는 최종 통과 후 딱 하루 정도 기분이 좋곤 하는데, 『역사가 묻고 화학이 답하다』는 지금까지도 설레는 걸 보니 감회가 남다른 듯합니다.
책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화학이란 무엇인가를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화학’ 하면 복잡하게 생긴 알쏭달쏭한 화학식이나 위험한 액체로 실험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낯설고 어렵게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이런 청소년들을 위해 화학이 어떤 학문인지 쉽게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솔직히 알쏭달쏭한 화학식이나 위험한 액체로 실험하는 학문이 맞습니다. 하지만 일부러 멋져 보이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어를 배울 때 기본적인 문법과 맞춤법을 배우는 것처럼, 어떤 것을 배우더라도 그 학문에서 사용되는 기본적인 용어와 문법, 규칙, 사용법 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부터 시작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배움의 과정을 따라가며 조금씩 깊이 알고 또 빠져들게 되는 것이죠.
화학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학을 공부해본 적이 없다면, 화학식들이 마치 낯선 외국어처럼 알쏭달쏭하게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외국어를 배우고 나면 먼 타국에서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쉽게 접할 수 없는 책이나 그림의 매력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화학을 조금만 알아본다면 우리 주위를 둘러싼 모든 물질의 유용함과 주의점을 외우지 않아도 기억하게 될 겁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알고 나면 현대 사회에서 그 무엇보다 유용한 학문이 바로 화학입니다.
책에 실린 ‘화학을 좋아하기 때문에 화학을 공부한다’는 저자 소개를 보고 정말 화학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교수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화학의 매력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안 되실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냥 화학이 좋았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화학을 좋아했다고, 저는 기억도 못 하지만 부모님께서 종종 말씀해주시기도 했을 정도로요. 우리가 화학에 대해 보통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이 저에게는 모두 매력적이었습니다. 정체불명의 부글부글 끓는 액체라든지, 섞으면 펑 하고 터지는 물질들이나, 녹거나 가라앉고, 색과 향이 변화하는, 흔히 말하는 실험이라는 대상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 꼭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납니다. 화학이 저에게는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화학을 사랑하는 화학자로서, 누구라도 쉽고 재밌게 화학 지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서들을 많이 써오셨는데요. 이번 책에서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화학자의 시선으로 풀어내셨어요. 어떻게 역사와 화학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로 보이는 두 학문을 엮을 생각을 하셨나요?
본업이 화학자인 만큼 화학에 대해서는 자의든 타의든 계속해서 접해왔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조금 달랐습니다. 외워야 할 것 같고, 연도와 인물, 국가 등 수없이 복잡한 정보들이 나열된 학문이라 생각해 개인적으로는 다소 심심하다 느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화학의 역사(화학사)를 찬찬히 들여다볼 일이 생겼고, 오히려 역사에 대해 알수록 화학이 발달해온 과정이나 이유가 더 잘 와닿는 것을 느꼈습니다. 역사와 다른 학문의 융합적인 해석에 매력을 느꼈고, 화학사는 화학자들에게는 뿌리와 같은 중요한 내용이지만, 화학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불필요한 내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역사와 화학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흥미를 느끼도록 돕고 싶어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렘브란트의 그림부터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죽음, 포에니 2차 전쟁의 전략, 거울 나라의 앨리스까지, 말 그대로 시간과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인문학적 소재를 화학자의 눈으로 소개해주셨는데요. 이런 소재들은 어떻게 선정하게 되셨나요?
사실 역사 속에서 화학이 관여하는 부분은 크지 않습니다. 물론 전반적으로 그 시대 사회나 생활에 작용하곤 있겠지만, 화학 때문에 어느 한 국가가 멸망한다거나, 중요 인물이 세상을 떠나고, 새로운 국가 정세의 흐름이 바뀌는 일은 정말로 흔치 않습니다. 그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해도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작용일 뿐 화학 자체가 변환점이 되진 않죠.
사실 이 때문에 주제를 고르는 게 정말 어려웠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다뤄진 역사 속 화학의 이야기들을 포함하기도 했고, 책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사례들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관심 있던 역사적 사건들을 화학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해보려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저도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고, 알던 것들은 다시 되새겨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재미도 있었고 의미도 있었던 작업이었습니다.
『역사가 묻고 화학이 답하다』를 읽으면서 정말 세상 곳곳에 화학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또 어디에서 흥미진진한 화학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데요. 이 책에선 미처 다루지 못했지만 언젠가 독자님들께 꼭 소개해드리고 싶은 역사 속 화학 이야기나 또 다른 흥미로운 화학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역사 속 화학에 대해서는 지금 더 이상 떠오르는 이거다 싶은 내용은 솔직히 없네요. 주제를 추리는데 많이 고생해서 그런 듯합니다. 만약 이 정도로 재미있어 보이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내용들이 떠오른다면 후속으로 더 이야기를 풀어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원소나 물질, 역사를 넘어 다뤄보지 않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중요성은 있지만 전문가의 수가 적어 흡사 환상 속의 화학 분야처럼 생각되는 것들 말이죠. 천체 화학이나 법화학 등이 당장은 떠오르네요. 물론, 제가 지금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박식해져야만 손이라도 살짝 대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직 화학을 어렵게 느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청소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딱딱하고 어렵다고 미리 선을 긋지 말고 바라보면 누구보다 빠르게 화학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원소라는 알파벳을 통해 분자라는 단어들을 만들고, 화학반응이라는 문법으로 문장을 써내려가 보세요.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내뱉는 것처럼, 혹은 외국어를 공부해서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화학을 통해서 물질과 의사소통하는 순간이 곧 찾아올 것입니다.
*장홍제 광운대학교 화학과 교수. 과학과 실험 속에 낭만이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믿는 화학자이자 잡지식 수집가, 데스메탈 마니아, 월드오브워크래프트 플레이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평소 화학이 좋아서 화학을 공부한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화학에 빠져 계속 물질의 비밀을 탐구하지만 여전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최근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물질의 변화를 추구하는 나노화학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낮에는 논문을 쓰고 밤에는 책을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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