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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불행이 꼭 불행으로만 끝나진 않아요”

『꽤 괜찮은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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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끝이라고 생각되는 어떤 순간들이 찾아왔을 때, 내 삶에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 절망의 엔딩이 아니라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 있다고 기대하는 마음들이 독자분들께 생기면 좋겠어요. (2022.06.08)


2003년 출간된 『지선아 사랑해』로 40만 독자를 만났던 이지선 작가가 새 책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펴냈다. 2000년 7월, 스물 셋 대학생이었던 이지선 작가는 오빠의 차로 귀가하던 중 음주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전신 55%에 3도의 중화상을 입었다. ‘대한민국 화상 1등’이라고 불릴 만큼 심각한 화상, 살 가망이 없다는 병원의 비관적인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이지선 작가는 40번이 넘는 수술과 재활치료를 이겨내고 현재 한동대학교 상담심리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살아가고 있다.

“사고와 헤어진 사람”에서 이제는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이 된 이지선 작가. 보스턴대와 컬럼비아대에서 각각 재활상담학,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여전히 ‘희망’을 전하는 강연도 이어가고 있다.



첫 책을 냈을 때보다 훨씬 건강해요

『지선아 사랑해』 개정판이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가 2010년에 나왔으니 꼭 12년 만에 새 책을 쓰셨어요. 책 계약 당시에 사원이었던 편집자님이 이제 과장이 되셨다고요.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싸이월드가 사라질 줄 몰랐어요. 싸이월드 게시판에 일기를 많이 써 놓았는데 다 날라간 거예요. 사진은 다행히 복구가 됐지만 글은 찾을 수가 없어서 1년, 2년이 지나가고 또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어요. 그래도 독자분들과 한 약속을 지키게 되어 기쁜 마음이에요. 

지금 몸담고 있는 대학에 포항에 있죠?

네. 집에서 학교가 10분밖에 안 걸리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할 일이 많지 않아 워라밸이 있는 삶을 살고 있어요. 예전에는 밤새서 수업 준비를 해야 했고 학생들 상담도 많았거든요. 팬데믹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책을 마감할 수 있었어요.

작가님의 책을 기다린 독자들이 많더라고요. 어떤 리뷰를 들을 때 가장 반갑나요?

책 구절을 옮기시면서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제가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라서요. (웃음) 진짜 단순하게 책이 재밌었다고 하시면 좋아요. 제 책이 누군가에게 재미를 주었다면, 그것이 깔깔거리는 모습이 아니라 살며시 미소 짓는 재미여도 감사해요.

『지선아 사랑해』의 초판을 기점으로 하면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이번 책으로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나요?

『지선아 사랑해』가 사고와 회복, 말하자면 사고 이후의 삶을 사실대로 기록한 책이었다면 『꽤 괜찮은 해피엔딩』은 교통사고 이후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그때를 회상하면서 다시 해석되는 것들을 담은 책이에요. 사고와 회복을 동력으로 살아온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좋은 소식이 되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사람들의 눈물을 쏙 빼는 책이 아니라, 20년 전 막막하고 힘들었던 제게 큰 응원을 보내주신 분들께 안부를 전하고 싶었고 그분들께 힘이 되는 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님을 10년 전에 뵈었는데 목소리가 하나도 안 바뀌셨어요.

기자님도 하나도 안 바뀌셨어요. (웃음)

교수님이 되셔서 좀 달라지셨을 거라 생각했는데 똑같아서 놀랐어요.

목소리가 워낙 작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라서 정말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잘 안 들리죠. 강연이나 수업할 때는 마이크를 사용하지만 목소리 자체가 작아서요. 듣는 분들께 죄송하지만 또 장점이 될 때도 있어요. 오히려 더 집중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거든요.

벌써  교수가 된 지 6년차시라고요. 

마음은 되게 젊은 교수라고 생각하는데 어느덧 학생들의 부모님 나이와 약간 비슷해졌더라고요. 대화할 때도 세대 차이를 의식하게 되고요. 또 한동대학교가 독특한 문화가 많으니까요. 학생들은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감사하게 지내고 있어요.

요즘 컨디션은 어떤가요? 피부 이식 수술도 계속 하고 있나요?

첫 책을 냈을 때보다 훨씬 건강해요. 아픈 데도 없고요. 요즘엔 책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요. (웃음) 책에 관한 반응을 마주칠 때마다 얻는 에너지도 크고요. 수술은 조금씩 하고 있어요. 예전에 피부를 크게 이식해 놓은 자리를 조금 덜 도드라지게 하는 수술, 정리하는 수술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병원 원장님과 “우리 이제 이런 간단한 것도 한다”고 말하기도 해요.



사람들의 응원과 기대, 포기할 수 없는 동력이 됐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손가락을 잃고 나서였다고요. 손가락을 정리하는 수술을 받을 즈음, “나는 진심으로 떼어내야 하는 부위가 팔 전체가 아니라 손가락 한 마디여서, 더 많이 잃지 않아서 감사할 수 있었다.(23쪽)”고 하셨어요.

손 수술을 할 때 얼굴에 인조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도 함께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그마저도 다 녹아서 없어졌어요. 그때부터 저는 진심으로 제게 남은 것들, 지금 가용한 존재가 더 강렬하게 고마워졌고 이 마음으로부터 남겨진 엄지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외상 후 성장을 연구한 학자들은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게 표현적 글쓰기를 권한다고 해요. 당시 제 모습을 보면 하루 24시간 슬프고 외롭고 괴로운 일만 있을 것 같았지만 하루하루 희로애락이 있었거든요. 혼자 조용히 글을 쓰면서 고통을 토해내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어요. 모니터는 제 이야기를 무조건 들어줄 수밖에 없으니까요. 모니터를 상담자 삼아 마음을 털어냈죠.

‘비교 행복’이라는 글 속에서 이지선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변하지 않았구나, 실감했어요. 반갑기도 했고요. 

예전 제 책을 읽으시거나 강연을 듣고 ‘나도 힘내서 살아야지’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반가웠어요. 하지만 ‘나는 이지선처럼 다치지 않고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으니 감사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전혀 달갑지가 않았어요. 조금 갑갑하고 안타까웠죠. 왜냐면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과 비교해서 얻은 감사와 행복은 결코 오래갈 수 없어요. 비교 행복은 일시적인 진통제처럼 잠깐 위안이 될지도 모르지만 내 삶을 이끌어갈 힘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유학 생활 이야기도 책에 등장합니다. 재활상담학, 사회복지학 석사를 마치고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스스로를 ‘엘에이 쭈그리 박사’라고 표현하셨어요. (웃음)

공부하는 것이 좋아질 뻔도 했다가 그러기엔 머리가 너무 안 따라준다는 현실에 직면하기도 했어요. 모자란 지혜와 체력을 안타까워하면서 꾸준히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모든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뿐이었죠. 한국에 다시 정착하기까지 11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요. 미국의 동서부를 오가며 시애틀, 보스턴, 뉴욕, LA까지 4개 도시에서 공부를 하며 버틸 수 있었던 건 고비마다 선물처럼 찾아온 주님의 은혜와 많은 사람의 격려와 지지 덕분이었어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고생할 만큼 했는데 뭘 또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나 생각할 때도 많았는데요. 최종적으로 못 그만둔 건 제가 너무 뱉은 말이 많아서예요. (웃음) 포기하지 못하게 된 어떤 중요한 요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제 삶에 나쁘게 작용하지는 않았어요. 사람들의 기대와 제가 갖는 부담이 결국 제가 힘을 낼 수 있는 요인이 됐으니까요. 너무 감사하죠. 그리고 다 똑같은 것 같아요. ‘나랑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을 도와 줘야지’라는 결심으로 버티다가 또 주어진 일을 그냥 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지나고, 그렇게 11년 반을 산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했지만 한 번도 “어떡하다가 그렇게 됐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요.

신기하게도 정말 그랬어요. 그런데 방학이 돼서 한국에 오면 늘 느꼈어요. 저를 전혀 모르는 처음 간 가게에서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훅 들어와서 묻는 것, 그런 일은 여전히 겪고 있어요. 예전만큼 많진 않지만요. 책에 조카 이야기를 썼는데요. 셋째 조카가 색소모반증을 갖고 태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여러 차례 수술을 해야 했는데, 어느 날은 움직이면 안 되는 상황이라 깁스를 한 상태로 식당에 갔어요. 우리 가족은 너무 즐겁게 외식을 하고 있는데 낯선 분이 와서는 “어쩌다 이렇게 팔을 많이 다쳤냐”고 묻는 거죠. 뭔가 불쾌한 관심인 거예요. 우리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꼭 알아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정말 너무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또 하나의 울타리가 존재했다

요즘 질병, 돌봄 서사를 기록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죠. 나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나누는 일의 가치가 정말 크다는 걸 실감합니다.

스피노자가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 고통이기를 멈춘다”고 했잖아요. 물론 글로 마음을 표현하자마자 고통이 행복으로 바뀌는 건 아니지만, 글을 쓰고 나면 나를 괴롭혔던 일들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이는 건 분명해요. 지난주보다 나아진 것들을 기록하면서 지금보다 나아질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거죠. 지금 이 순간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과 조금 거리를 둘 수 있게 하는 것, 정말 글인 것 같아요.

“외상 후 성장에 대해 공부할수록 내 삶과 닮은 점을 많이 발견한다.(19쪽)”고 쓰셨어요.

‘사고를 당한 사람인가, 아니면 사고를 만났지만 헤어진 사람인가.’ 이 질문을 오랫동안 했어요. 사고와 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음주운전 교통사고의 피해자로 살지 않았고, 매일 오늘을 살았으니까요. 예상치 못해서 피할 수 없었고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제 어깨를 치고 간 사람의 뒤통수를 잠깐 째려보고 툭툭 털고 가던 길을 다시 가는 것처럼 제 미래를 ‘다시 쓰는’ 일은 저에게 놀라운 회복을 가져다 줬어요.

아픈 가족을 돌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뭘까요? 사실 저는 사고를 겪고 지금까지 가족 때문에 상처받았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가족들의 온전한 희생이 있었죠. 그리고 그 희생을 제 앞에서 티 내려고 하지 않았던 어떤 완전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상처받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 돌봄은 온전히 가족의 몫이었어요. 그런데 엄마, 아빠, 오빠를 지지하는 친구들, 교회 식구들, 이모, 삼촌, 친척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잠깐씩이라도 숨을 쉴 구멍을 만들 수 있었어요. 우리 가족이 똘똘 뭉쳐서 그 어려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지만, 저희를 둘러싼 또 하나의 울타리가 존재했기 때문에 그것도 가능했던 것 같아요.

작가님은 오랫동안 푸르메재단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계시죠. 2019년 봄부터는 방송인 이성미, 송은이, 이영표, 션 씨와 함께 수감생활중인 미성년 자녀를 돕는 아동복지기관 ‘세움’을 돕는 봉사활동을 시작하셨어요.

같은 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공통점으로 만나온 제가 너무 좋아하는 분들인데요. 대화가 깊어지다 보면 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과 청년이 겪는 어려움을 걱정하는 이야기로 이어졌어요. 모임의 가장 연장자인 이성미 집사님이 함께 좋은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고 ‘세움’이라는 기관의 아이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게 됐어요. 소풍도 가고 연탄 배달 봉사도 참여하면서 아이들이 부모님과 살고 있었다면 주말에 한 번쯤 했을 법한 일들을 함께 하고 있어요. 제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사회봉사를 가르치는데요. 자발적인 봉사가 가져다 주는 놀라운 힘에 대해 말하곤 하는데, 저도 할 말이 생긴 거예요. “내가 하고 있는데 정말 좋다”고. 제 삶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더 좋더라고요.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도 지치실 때가 있을 텐데요. 일상의 사소한 괴로움은 어떻게 푸시나요? 

이런저런 취미도 가져보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도 많이 해봤는데요. 결국은 글쓰기였고 또 친한 사람들과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긴 글을 쓰기도 하지만 SNS에 짧은 글을 쓰기도 하거든요. 글을 꼬아서 해석하거나 저를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 곁에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고요.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여러 사람과 친구가 되는 에너지는 제게 많지 않아서요. 여전히 엄마에게 마음을 가장 많이 표현하는 것 같아요.



제목이 참 좋아요. 자꾸 곱씹게 되는 해피엔딩입니다.

편집자님이 정말 기가 막히게 뽑아주셨는데요.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되는 어떤 순간들이 찾아왔을 때, 내 삶에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 절망의 엔딩이 아니라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 있다고 기대하는 마음들이 독자분들께 생기면 좋겠어요. 불행이 꼭 불행으로만 끝나진 않거든요. 불행 안에서도 좋은 걸 찾을 수 있으니까요.

후속작을 기대해도 될까요?

오래 전에 출판사랑 동화를 쓰기로 약속했는데요. 그 약속을 아직도 못 지켰어요. 언젠가 동화를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지선

이제는 사고와 헤어진 사람. 스물세 살에 교통사고를 만나 중화상을 입고, 40번이 넘는 고통스러운 수술을 이겨내 ‘두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기막힌 운명과 화해하고 희망을 되찾기까지 그녀가 발견한 삶의 비밀을 첫 책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를 통해 전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보스턴대에서 재활상담학 석사학위를, 컬럼비아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동대학교 상담심리 사회복지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꽤 괜찮은 해피엔딩
꽤 괜찮은 해피엔딩
이지선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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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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