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릭의 창작 일기] 수어를 수어수어
슬릭의 창작 일기 6화
수어 통역사가 없는 행사에 가서도 내 노랫말을 수어로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일단 수어를 배워보기로 했다. (2022.06.08)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나의 주요 수입원은 행사였다. 페미니스트 래퍼가 된 후 각종 인권 행사의 풍악을 담당하며 내 나름의 블루 오션을 개척하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인권 행사에 초대되어 메일로 각종 자료를 주고받는데 담당자분께서 공연할 곡의 가사 전문을 보내달라고 하셨다. 자막이라도 띄우려나 하는 마음에 여쭤보니 행사 당일 수어 통역을 하시는 분께 드리기 위함이라는 답장이 왔다. 그 전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소리를 통해 내 노래를 듣기 어려운 사람도 내 노랫말을 궁금해할 수 있겠구나.’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소리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골몰하던 나는 뒤통수를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잘도 소수자 인권 운운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수어 통역사가 없는 행사에 가서도 내 노랫말을 수어로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일단 수어를 배워보기로 했다.
운이 좋았다. '안 고독한 슬릭방'이라는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마침 그 방에 수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시는 분이 계셨던 것이다. 세상 수많은 수어 선생님 중에 슬릭을 알고 있고, 심지어 팬인(!) 사람이 있다니.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수어 알기를 아주 쉽게 알았다. 조금만 배우면 금방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노래를 부르며 동시에 수어를 할 수 있게 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빨리 기본적인 단어들을 습득하고 싶은 마음에 배운 단어들은 놓치지 않고 복습했다. 보통 언어를 공부할 때에는 읽고 쓰는 방법을 택했는데, 수어는 공책에 적을 수 없으니 영상을 찍어 기록해두었다. 늦게나마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 SNS에 영상을 업로드해 보기도 했는데, 수어선생님께서 보시고 도대체 무슨 수어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무얼 잘못하고 있던 걸까?
때마침 나는 브라질에 있는 친구와 1년여간 카톡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보통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종종 나는 그에게 사전에 나오지 않는 한국어 밈들을, 그는 나에게 브라질에서 통용되는 포르투갈어를 가르쳐 주며 놀았다. 카톡으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기존의 알고 있던 언어와 섞어서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은 굉장히 신기하고 재밌었다. 마치 머릿속에 두 사람이 따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의 생각은 한국어로 하는 동시에 또 다른 생각은 영어-포르투갈어로 하고 있었는데 신기한 점은 그 두 생각이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브라질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는 다시 떠올려보아도 영어-포르투갈어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수어를 배울 때에는 한국어로 먼저 배웠던 단어를 떠올린 후 다시 수어로 치환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브라질 친구와의 대화는 아예 한국어가 삭제된 채 독자적인 언어로 머릿속에 존재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수어를 배울 수 있다면 조금 더 자연스럽게 수어를 구사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 배우던 수어 수업을 주변에 홍보하기 시작했다. 수어로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두 명이던 멤버가 다섯 명이 되었다. 소개로, 소개의 소개로 친한 친구부터 모르는 사람까지 옹기종기 모여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 목표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며 수어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 언어만 사용해서, 이 언어를 이해하고 체화해서 '수다'를 떨어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매주 모여 각자 한 주 동안 있었던 일을 수어로 표현해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각자 바쁘기도 참 바쁜 삶을 살다가 오느라 지난주에 배운 표현들을 이번 주에도 또 배우고, 다음 주에 또 배울 것 같았지만 재미있었다. 서로 근황만 이야기해도 약속한 수업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수어 선생님을 빼고 네 명 중 세 명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라 겹치는 주제가 많았다. ‘다들 지난주에 뭐 하셨는지 수어로 표현해 볼까요?’ ‘저는 지난주에 공연을 했어요.’ ‘앗, 저도요.’ ‘앗, 저도요! 다음 주에는 이러이러한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헉, 저돈데.’ 인권 행사는 그렇게 많지 않아 우리의 스케줄은 종종 겹쳤고, 행사장에서 마주칠 때 장난스럽게 수어를 사용하면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수고하셨습니다.’ 딱 이 한 단어만 떠올라도 열심히 팔을 두드리며 웃었다.
수어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아무래도 직관성일 것이다. '이렇게까지 직설적인 표현을 한다고?'라고 느낄 정도로 가치 판단과 상관없이 머릿속에서 바로 연상되는 것들이 수어가 되었다. 역대 대통령들을 표현하는 수어를 배우며 가장 크게 느꼈었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머리'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쥐'로 표현할 수 있었다. 수어 선생님께서 진지하게 이런 수어들을 가르쳐 주실 때 마음속에서는 큰 혼란이 일었다. 정말 이 수어가 농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수어란 말인가, 외우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살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수어로 이야기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누군가 혹시라도 물어본다면 아주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수어를 배우는 데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역시 한국어와 다른 문장 구조를 가진다는 점이다. 어느 언어를 배워도 그렇겠지만, 단어를 열심히 외우고 더 정확한 표현을 위해 발음 - 수어의 경우에는 동작 - 을 익히는 것보다 실제 대화를 할 때 '말이 되게' 구사하는 것이 언어를 배우는 목적이기도 하다. 의사소통을 할 수 없으면 아무리 많은 단어를 알고 있거나 아무리 정확한 수형을 구현할 수 있어도 수어를 제대로 배웠다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항상 한계를 느꼈다. 단어 단어를 기워 문장을 만들어보아도 순서가 틀렸거나 문법적으로 옳지 않은 문장이 되기 일쑤였다. 한국 수어라면 당연히 한국어와 어순이 일치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내가 느낀 바로는 수어 문장은 한국어보다 영어의 그것에 더 가까웠다. 문장을 구사하는 중간중간 '어디', '무엇'에 해당하는 수어가 나올 때에도 당황스러웠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오늘 갔다왔어. 어디? 친구네 집에', '오늘 먹었어, 무엇? 라면을'. 목적어보다 동사를 먼저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영어와 결이 같지만 또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결국 한국수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어순을 계속 생각하며 문장을 구사해야 한다.
흔히들 수어를 '손의 언어’라고 생각하지만 '비수지신호', 즉 얼굴과 몸의 표현 역시 수어의 큰 파트를 차지한다. 내가 SNS에 업로드한 수어 영상을 보고 수어 선생님께서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몰랐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상 속 나는 손동작만 바쁠 뿐 얼굴 표정은 무엇을 표현하던 똑같았던 것이다. 수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구사할 때에도 '비언어'를 포착하여 의미를 이해하듯, 시각 언어인 수어를 구사할 때에도 작게는 눈동자와 눈썹의 움직임, 입술의 모양, 크게는 머리, 고개, 어깨의 위치와 움직임 등이 의미 파악에 큰 역할을 한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표현'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비수지신호를 배운 후 수어를 하는 내 모습을 보니 그렇게 뚝딱거릴 수가 없었다. 아직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아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영상으로 그날 배운 수어를 기록할 때에는 되도록 표정까지 명확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수어를 배우고 난 후 나에게 이렇게 다양한 표정이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처음 수어를 배우고 싶었을 때, 내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수어가 아니라 '수지 한국어'였다. 말하자면 나는 수어로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내 노래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고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에 닿기 어려운 언어 사용이 될 것이다. 수어를 배운 지 1년여, 지금 나의 목표는 아주 달라졌다. 길을 가다 수어 선생님을 마주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수어로 안부를 묻고 잠깐 동안 수어로 수다를 떨다가 헤어지는 것이다. 한국어로 생각하다가도 브라질 친구에게 메시지가 오면 당연히 그와 공유하던 언어로 안부를 물을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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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작가. 누구도 해치지 않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 『괄호가 많은 편지』를 함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