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장애인 중심인지 (G. 황승택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259회) 『다시 말해 줄래요?』
지금 제 옆에 “내 삶을 쌓아온 것은 ‘무던한 성실함’”이라고 말하는, 두 번째 에세이 『다시 말해 줄래요?』를 출간하신 황승택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2.05.26)
내 인생은 궤도에서 크게 두 번이나 이탈했다. 1차로 세 번 발병한 혈액암과 이후의 급성중이염으로 청력과 평형감각 손상이라는 2차 사고가 생겼다. 그래도 ‘꾸역꾸역’ 나는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이탈한 궤도를 수정하며 원래 궤도를 향해 삶의 페달을 돌리고 있다. 힘들고 지칠 땐 잠시 쉬더라도 정신과 몸의 기운이 보강되면 나는 다시 어떻게든 내 삶의 페달을 돌릴 것이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황승택 작가님의 『다시 말해 줄래요?』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세 번에 걸친 혈액암 치료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한 황승택 작가님은 2020년, 급성중이염으로 청력을 잃게 됩니다. 인공와우 수술로 청력의 80%를 회복하게 되기까지 고된 시간이 계속됐죠. 그러나 황승택 작가님은 삶의 페달을 계속 밟아 나갑니다. 성실하게, 근면하게 삶을 살고 아픈 몸과 장애를 새로운 정체성으로 받아들입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다시 말해 줄래요?』를 출간하신 황승택 작가님을 모시고, 아픈 몸으로 산다는 것, 장애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오은 : 2020년에 급성중이염으로 청력을 잃게 되고, 현재에는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계시죠. 책을 읽으면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셨겠구나, 예상할 수 있었는데요. 현재는 청력 상태는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황승택 : 보통 청력을 100%라고 한다면 지금은 약 70~80% 정도 회복된 것 같아요. 인공와우라는 게 보청기와 비슷한데 그보다 좀 더 복잡한 기계예요. 저는 인공와우를 착용하지 않으면 전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상황이죠. 앞으로도 청력에 대한 재활은 평생 해야 하고요. 그렇다면 모든 소리가 완벽하게 들리는지 궁금하실 수 있을 텐데요. 사람의 목소리나 기계음 같은 것들은 100% 들리고요. 다만 음색 같은 것이 제 기억과는 조금 달라졌어요. 그리고 제일 안타까운 건 저에게서 음악이 사라졌다는 것이죠. 기술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인공와우도 기계이기 때문에 현악기나 건반 악기의 화성을 정확히 구현하지는 못해요. 분명히 아름다운 멜로디인데 그게 저에게는 꽝꽝거리는 소리로 들리는 거예요. 이것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한데요. 계속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니까 언젠가 음악을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참고 있습니다.
오은 : 이제 작가님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아빠. 작가. 뉴스 한가운데서 일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천생 기자. 특별한 이유 없이 책 읽는 게 마냥 좋았던, 수업 시간에는 언제나 손을 들어 질문하고, 발표하던 어린이였다. 다만 몸치인 탓에 체육은 꾸준히 못했다. 식음을 전폐하고 무협지를 읽던 학창시절을 지났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영화에 푹 빠졌다. 혼자 '부산국제영화제를 가기도 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뜨거운 여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하루키의 에세이 『슬픈 외국어』에 등장하는 이 문장,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라’라는 대목을 읽고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황승택은 2004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경쟁사 보도부터 체크하던, 단독 기사도 쓰던, 잘 나간다고 자신만만하던 기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암병동 특파원이 된다. 2015년 10월, 건강검진을 받다 응급실로 가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백혈병 판정을 받고 곧장 입원을 하게 됐다.
그의 좌우명은 “나이 들어 ‘괜찮은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자”였는데 암이 재발했을 때 문득, 자신이 그 바람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차 재발과 신종플루 동시 확진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긴 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에게 자동차를 선물한 것이었다. 무려 2시간 만에 차를 구매했다. 그렇게 비싼 물건을 그 정도로 고민없이 산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암 투병 후 감격의 복직을 한 지 1년 만에 다시 환자가 되고, 급성중이염 수술 이후 평생 처음, 소리 없는 시간을 보냈지만 매일 운동을 쉬지 않았고, 성실하게 치료 받아 두 딸과 함께 하는 시간을 되찾았다.
택시면허증이 있다. 토요일에 출근하기를 좋아하는, 기아타이거스의 찐팬 황승택. 숨기는 것과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두 딸이 언제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양육자를 소망한다.”
황승택 : 제작진 분들의 지금 깨알 같은 조사력이 거의 탐사 보도 수준이에요.(웃음) 깜짝 놀랐습니다.
오은 : 백혈병이 발병한 때의 이야기는 첫 책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에 담겨 있는데요. 거기에 스스로에게 자동차를 선물하는 장면이 나오죠.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마음으로 자동차를 구입하셨던 거예요?
황승택 : 혈액암 재발과 함께 신종플루가 같이 왔어요. 당시에는 섬망도 보이고, 바이탈 사인도 아주 위험한 순간이 많았어요. 죽음에 제일 가까이 갔던 순간이 있었죠. 그러다 어떻게 돌아온 거예요. 그러고 나니까 사는 동안 과연 나를 위해 마음 편하게 뭔가를 했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차를 사기로 했고요. 정말 1초의 고민도 없이 검색을 해서 나오는 자동차 대리점에 전화를 했어요. 색깔도 상관없으니까 가장 빨리 출고될 수 있는 차를 가지고 계약서에 내가 사인만 할 수 있게 준비해서 병실로 와 달라고 했죠. 그것이 도움이 됐던 것이, 심리적으로 막 힘들 때가 있었는데요. 그럴 때 밤에 조용히 병원 주차장에 내려가 차를 보면서 ‘난 저 차를 타고 내가 혼자 퇴원할 거야’ 하고 마음을 다졌었거든요. 지금도 차 사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은 : 이제 『다시 말해 줄래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님께서 직접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소개를 해주시는 시간을 마련했어요. 이 책, 어떤 책이죠?
황승택 : 어떻게 설명해드리면 좋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한 마디로 ‘장애 체험서’라고 표현하면 될 것 같아요. 장애에 대해 누가 설명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장애를 체험한 사람의 장애 체험서인 거죠. 여기에 설명을 더한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지 설명한 책입니다. 비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의 특권층이라는 점을 설명해주는 책이거든요. 그것을 제가 몸으로 체험하고 생각하고 가다듬은 내용이에요.
오은 : 출간하신 두 책 모두 기록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어요. 보통은 회복을 위해서 애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는 동안에도 기록을 하기로 마음먹은 동기가 궁금했어요.
황승택 : 엄청나게 뚜렷한 목적 의식이 있었기보다는 저에게 주어진 시간을 무기력하게 보내지 않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 같아요. 거의 1년 가까운 넘는 기간을 병원에서 있었거든요. 병원은 하루가 길어요. 특히 저 같은 혈액암 환자 같은 경우는 하루가 새벽 4시에 시작하거든요. 매일 아침 피 검사를 통해 몸 상태를 의사들이 체크해여 하는데 회진이 오전 7-8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피 검사는 몇 시간 전에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나서 피를 뽑는 건데 그러고 나면 잠이 안 와요. 또 옆 병동에 같이 있던 환자가 사망하는 모습도 보고, 죽음이란 게 관념이 아닌 현실이 되니까 아무리 의지로 낙관한다 해도 힘든 순간들이 오거든요. 그럴 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기록이었죠.
처음에는 그냥 일기를 꾸준히 쓰려고 했는데요. 두 번째 발병했을 때는 쓰고 있는 기록이 어떤 유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록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너무 힘들고 어려웠던, 혼란스러운 감정이나 좌절도 일단 쓰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는 것이었어요. 지금의 힘듦과 고통을 버티는 구명정 역할을 글쓰기가 지금까지 계속 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오은 :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 드리도록 할게요. 청취자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은 무엇인가요?
황승택 : 두 권 소개하고 싶어요.(웃음) 첫 번째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리고 두 번째는 임경선 작가님의 『자유로울 것』인데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면서는 고통과 장애를 통해 삶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라는 화두를 얻게 됐어요. 혹시 청취자 분들 중에서도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과연 지금 이것이 나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 건지 생각해보시면 좋겠어요. 이 책이 해답을 찾는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자유로울 것』은 임경선 작가님이 작가가 되기로 한 배경은 물론 어떤 것이 좋은 에세이인지를 말해주고요. 전업 작가로서의 조언 등 거의 뼈를 때리는 냉철한 분석을 해주거든요. 뿐만 아니라 글과 삶에서 어떻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지, 이 책에 담긴 얘기들이 다 좋아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황승택 1978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는 춘천에서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식품자원경제학을 전공했다. 새로운 도전을 인생 목표로 삼고 2004년 MBN 공채로 기자 생활을 시작해 2011년 채널A 개국과 함께 이직했다. 2013년에는 신문기자로 변신, 1년 동안 동아일보 정치부 소속 기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방송기자로 복귀했다. 2015년 10월 첫 백혈병 진단에 이어 2016년 2차, 2018년 3차 발병을 긍정에너지로 이겨내며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재활에 매진하고 있다. 평화로운 생활도 잠시, 2020년 급성중이염으로 청력을 잃는 경험을 하며 또다시 아픈 몸과 함께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힘든 상황 가운데에서도 이를 상실의 사건으로만 받아들이기보다 장애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된 계기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두 딸을 사랑하는 아빠이자 뉴스의 한복판에 있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끼는 기자로서 하루하루의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저서로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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